207화
무전 중이란 이유로 태건은 멈춰 있지 않았다.
타다닥.
몸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비상계단을 빙글빙글 돌며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 오광휘 단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전 단원 주목, 객실 도어락 마스터 넘버 부른다. 자동잠금 방식이라 숙지하고 있도록, 샵…….
오광휘 단장은 여섯 개의 숫자를 불러줬다.
쉬운 숫자라 바로 머릿속에 담았다.
지휘권을 넘겨받자마자 알아보고 알려주는 모양이다.
태건은 무전기를 힐끔거렸다.
‘이래서 단장님은 거기 계셔야 합니다.’
같이 현장을 누비고 요구조자를 구하고 싶은 마음은 태건도 있었다.
오광휘 단장과 가장 손발이 잘 맞고, 뜻도 잘 통했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어느 순간 맨손 피부에 닿는 온도가 급격히 변화했다.
“윽.”
사삭.
얼른 방화장갑부터 다시 착용했다.
이어서 층수를 확인하자 4층과 5층 사이였다.
‘그럼 4층부터.’
마저 계단을 내려가 비상구 문을 열었다.
후루룩.
뜨거운 열기가 묵직하게 몰려왔다.
복도를 가득 매운 짙은 연기는 6층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
복도에 선 태건은 플래시로 좌우를 비쳐봤다.
슥, 슥.
빙 둘러진 복도식 구조라 다른 면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확연히 보이는 부분은 있었다.
객실 문 곳곳이 열려 있다.
그 열린 객실 문틈에서 열기와 연기가 집중적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태건은 당황하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가늠했다.
‘저긴 빈 방이야.’
투숙객들이 일찌감치 대피했거나, 위층으로 올라갔거나.
둘 중에 하나일 터였다.
추측이 맞을거라 생각하던 태건이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럼 닫힌 문은?”
이런!
태건의 표정이 확 굳어지며 가장 가까운 객실 문으로 돌진했다.
순식간에 도착한 태건은 문부터 열어봤다.
띡띡띡.
오광휘 단장이 알려준 마스터 번호가 정확했다.
벌컥!
태건은 출입문을 열자마자 박차고 들어가며 소리쳤다.
“소방관입니다!”
…….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까지 투숙객들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모두 피신한 객실인 모양이다.
‘후.’
천만다행이다.
안심하며 돌아 나왔다.
그렇게 닫힌 객실 문이 몇몇 존재했다.
다른 객실도 이럴 가능성이 높다?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현장에선 결코 뒤를 남기지 않는 게 ‘더 라스트’다.
곧바로 닫힌 객실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휙휙.
열린 객실을 지날 때엔 그 속에 가득한 열기만 느껴지지 않았다.
콰르르르!
어떤 객실엔 불길이 온 객실을 점령하고 복도까지 빨간 혀를 날름거렸다.
또 다른 객실은 연기가 화력발전소 같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탁, 턱.
태건은 문을 닫을 수 있는 객실은 모두 닫았다.
그래야 다른 객실로 확산될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던 탓이다.
그리고 닫힌 객실을 빼먹지 않고 일일이 들어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어느 닫힌 객실을 열었다.
띠릭.
문을 열자 엄청난 연기가 몰려왔다.
“읍!”
휙휙.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연기에 태건이 손을 크게 휘저었다.
뭉쳐있던 연기였는지 일정부분 쏟아져 나온 후엔 옅어져갔다.
‘불이 났다가 산소가 부족해 꺼진 모양이네.’
파악을 끝내고 다른 객실로 향하려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뚝.
“…….”
태건의 두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움직이려던 두 다리는 딱 달라붙은 듯 고정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렇게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저 속에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설핏 봤지만 온몸이 화상 그 자체였다.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투숙객일 터였다.
……으적!
태건이 입술을 잘끈 씹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타닥!
짤막한 인사만 건네고는 옆 객실로 이동했다.
태건이 이렇게 누군가를 발견하고 지나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체를 수습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은 누군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시간일 수도 있었다.
소중한 이 시간은 낙오한 누군가를 찾거나, 절규할 누군가를 구하는데 모두 사용해도 모자랐다.
그래서 지금은 사망한 누군가를 챙길 여력이 없었다.
대신 무전으로는 알렸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410호 투숙객 신상정보 파악 되는대로 경찰에 신원확인 의뢰해 주십시오.”
-띠릭. 푸우우우. 알았다. 그리고 지원차량은 얼마 후에 도착할 거야. 주차장에 주차된 자동차들부터 레커로 걷어내는 중이고.
“확인, 수색 계속 진행하고, 변경사항은 확인하는 대로 알리겠습니다.”
-띠릭. 라면아, 4층 확인 신속히 마치도록, 밖에서 볼 때는 5층까지 상당히 불길이 많이 번져 있어.
오광휘 단장은 좋지 않은 말을 너무도 냉정하게 했다.
지휘자일 때 목소리다.
수색 중인 태건도 감정을 감춘 건 매한가지였다.
띠릭.
“최대한 빨리 수색하겠습니다.”
-띠릭. 이쪽에서도 탈출 방법 강구로 머리 싸매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캡, 헬리콥터에 줄 매달아서 쇠창살들을 잡아 뜯으면 안 됩니까?”
태건은 이 와중에도 아이디어를 냈다.
그에 대해 오광휘 단장이 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띠릭. 무척이나 좋은 계획이지만, 헬리콥터가 없어 진행 불가.
-띠릭. 운전라텔 송신, 연비가 아주 뭐 같아서 항공유 주유하러 가는 길이라고 통보.
유중헌의 목소리에 짜증이 실려 있었다.
이미 멀어진 모양이다.
“진작 헬리콥터로 뜯어냈어야 했는데.‘
미쳐 빨리 캐치하지 못한 자신의 센스를 탓했다.
그렇게 태건의 입에 씁쓸함이 그려질 때였다.
우르르릉!
건물에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흔들림이 감지됐다.
드드드
“크, 뭐야.”
태건은 일단 본능적으로 엎드렸다.
동시에 오광휘 단장의 다급한 소리가 실시간으로 들려왔다.
-띠릭. 지진도 아니고, 뭡니까. 뭐요? 지반이 약하다니요……. 이 사람들이, 무너질지도 모른단 건 뭔 개소리야!
“…….”
무전기를 향한 태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처음 듣는 소리인 탓이다.
그런데 잘못들은 게 아닌 모양이다.
오광휘 단장의 무전소리가 다급하게 돌변했다.
-띠릭. 라텔캡 전 단원에게 알린다. 보일러 2차 폭발로 추측되는 상황이고, 그 흔들림이 여기서도 목격되고 있는 상황이다.
태건은 바로 무전기를 누르려 했다.
그때 삶에 대한 집착이 태건만큼 강한 고수현이 다급히 무전해 왔다.
-띠릭. 그래서 뭐 흔들리다가 폭삭 무너지기라도 한답니까!
-띠릭. 가능성이 없진 않은 모양이야.
-띠릭. 네?
-띠릭. 최대한 빨리 구조를 마무리 짓고 탈출 준비하도록. 이쪽에선 뭐든 지원하겠다. 요구조자들과 최우선 탈출에 집중 바란다.
그그그.
오광휘 단장의 재촉이 틀린 게 아닌지 정말 땅이 크게 흔들렸다.
“젠장. 산 너머 산이잖아.”
아직 산도 제대로 못 만났는데 백두산이 눈앞에 솟구친 거 같았다.
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뚫어야할지 태건도 쉽게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돌연 태건은 자기 손으로 방화헬멧을 두드렸다.
텅!
“어쨌든 단장님 말이 옳아.”
지금은 요구조자들 탈출만 생각해야할 때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요구조자는 물론, 모두가 안전하게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기틀을 단단히 굳혀야 한다.
그게 지금 태건이 여기 있는 이유기도 했다.
타다닥.
표정을 굳힌 태건은 다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태건은 4층의 모든 객실 문을 닫았다.
당장 복도에 들고 일어난 거대한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소된 건 아니다.
자그마한 불길과 불씨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불들은 어딘가에 움츠린 채 다시 일어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복도에 가득한 연기들이 그 증거였다.
태건은 또아리를 틀은 채 숨죽이고 있는 불길의 기묘한 분위기를 재빨리 간파한 후 중얼거렸다.
“당장 시간은 좀 벌었겠지?”
곱씹는 표정은 너무도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지금 이 말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희망사항으로 그칠지 장담할 수 없던 탓이다.
다행이라면 아직 추가 사망자 발견이 없었다.
4층을 뒤로한 태건은 재빨리 5층으로 올라갔다.
내려갈 때 닫혀 있던 문이다.
다시 올라온 지금 역시 닫혀 있었다.
턱.
문을 연 순간 태건의 바람은 오로지 희망사항에 그쳤다.
“크윽!”
절로 표정이 구겨지고 쓴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렇듯 5층 복도는 불길에 대부분이 잠식되어 있었다.
화르륵!
고생하며 4층에 불이 확산되는 걸 막고 온 길이다.
그런데 그 노력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5층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불길 틈틈이 보이는 객실 문이 대부분 열려 있었다.
이러니 밖에서 5층에 불이 많이 보인단 말이 나온 모양이다.
“빌어먹을.”
태건이 거친 소리를 내뱉었다.
흐름을 좀 더 명확히 읽게 된 지금이다.
불은 그런 태건을 가소롭다는 듯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래서 화재가 무섭다는 거였다.
어떤 추측과 예측을 해도 그걸 뛰어넘는 변수가 존재했다.
태건은 정신부터 단단히 재무장했다.
지금 5층이 뚫리면 6층과 7층까지 확산은 시간문제다. 이미 치고 올라간 불길은 어쩔 수 없어도 추가 확산은 막아야 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불길을 억눌러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지금 자신은 혼자다.
알고 있다.
그러나.
흔들리면 안 된다.
여기서 누구라도 흔들리면 모두가 무너진다.
번뜩!
눈빛부터 굳혔다.
태건은 이어서 무전을 작동시켰다.
전체적인 현장 상황부터 다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띠릭.
“막내라텔 송신, 각 파트별 상황이 어떤지 확인 바람.”
곧 선배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띠릭. 빅라텔, 6층 요구조자 구조 및 응급처치, 그리고 유리창 일부 부숴 호흡 확보 중. 후보대원 4명 대동.
-띠릭. 까칠라텔, 7층 상동, 후보대원 2명 대동.
-띠릭. 핸썸라텔, 응급 요구조자 우선 로프 탈출 서포터 중 현재까지 3명 탈출 완료, 후보대원 2명 대동.
일차적인 현장 단원들의 무전이 차례로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