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그에 대해 태건은 좀 더 정확한 정보들을 요구했다.
“화재 상황에 집중해서 재통보 요청.”
그에 초점을 맞춘 무전이 빠르게 들려왔다.
-띠릭. 6층 6개 객실 불길 확인, 2개 객실은 부분 진압, 4개 호실은 출입문 차단으로 확산 방지. 이상.
-띠릭. 7층 전면 방향 3개 객실 불길 확인, 요구조자 모두 다른 객실로 대피, 억제 중이나 여의치 않은 상태라 통보. 이상.
-띠릭. 비상구 층계, 열기 가중, 아직 견딜만한 상황이나 요구조자들이 버티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이상.
그런데 거기서 끊이지 않고 추가로 무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운전라텔, 정비창 접근 중, 항공유 보충 후 현장 재도착까지 최대 40분 소요예정!
-띠릭, 라텔캡, 미즈호텔 주차차량 견인 중, 50퍼센트 육박, 소방관들 진입로 확보로 호텔 입구 근처로 접근 중!
-띠릭. 지원팀장, 현 위치 조정경기장까지 5킬로미터. 최대 5분 내에 현장 도착 예상!
-띠릭. 본부 지원팀, 주민센터 등 유관기관과 협력사항 조율 중, 적극 지원 약속, 현장에 필요한 게 있는지, 사육!
김여훈 지원팀장에 이어 강영직 지원대원까지 보고했다.
현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어 한 번 더 각자 하는 일을 짚어주는 거였다.
태건은 새삼 라텔이 하나의 팀이 아닌, 단체로 발전 했단 걸 강하게 느꼈다.
‘그래, 이제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모두가 내 일처럼 여기고 성심으로 협력 중이다.
고립된 게 아니다.
각자 해야 할 일이 다르고, 있어야할 자리가 다른 거다.
“푸우우.”
태건은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
한 호흡을 고른 후였다.
놀랍게도 태건의 입가는 차분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뒤가 든든하다면 뭐가 무서울까.
지금 태건이 그랬다.
무서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불길 가득한 복도를 향한 눈빛이 차가울 수 있었다.
이내 태건이 움직였다.
플래시를 비추며 불길을 향해 그대로 내달았다.
툭, 휙!
동시에 방화복에 매달아둔 소화볼을 던지며 무전했다.
“현재 5층 화재에 잠식, 6층 각 객실 재확인 바라며 요구조자들은 가급적 7층으로 이동 요망!”
돌연 무전기가 터질 듯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빅라텔이다. 뭐라고, 5층에 불이 들끓는다고, 내가, 기다려. 내가 간다!
“빅라텔 스톱, 뭐가 중요한지 또 말해야 합니까!”
태건이 무전기를 터트릴 정도로 고함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날아가던 소화볼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터졌다.
퍼엉!
소화가루가 흩날리며 폭발에 직격을 당한 불길이 순간 밀려났다.
뿌연 그 장소를 태건이 뚫고 나오며 이어서 무전했다.
“까칠라텔, 빅라텔 지원바람. 요구조자들을 최대한 안전한 장소로 집결시켜 주십시오. 무조건 그거부터 완료해야 합니다!”
-띠릭. 까칠, 확인. 혼자 영웅놀이하다 골로 가지 말고 어디 짱 박혀 있어.
“큭큭. 제 성질머리가 그렇게 곱지 않아서 말입니다.”
태건은 계속 불을 향해 달려가며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드세게 일어난 불을 비웃는 듯 했다.
하지만 지금 태건을 볼 수 없었던 모두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띠릭. 라텔캡이다. 라면, 무리하지 마!
-띠릭. 지원팀장이 알림,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지원하겠다. 막내라텔 현재 상황유지 바람!
걱정이 높아져 따가운 무전소리가 울려왔다.
그 모든 소리가 이어진 누군가의 무전소리에 모두 먹혀버렸다.
-띠릭. 본부장 송신. 더 라스트를 지지한다. 그 더러운 성질머리로 모두 이겨낼 걸 명령한다. 절대 굴복하지 마라.
박규영 본부장의 목소리가 무겁게 무전기에서 울렸다.
싱긋.
태건의 한쪽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
“막내라텔,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띠릭. 현장 종료 후 대면보고를 기다리겠다. 사육.
살아서 돌아오란 의미를 박규영 본부장 스타일대로 꺼낸 거였다.
그리고 확인까지 받으려 했다.
태건은 덤덤히 무전기를 눌렀다.
띠릭.
“사칠.”
그와 동시였다.
화르르.
태건은 솟구치는 불길 속으로 거칠게 뛰어들었다.
태건이 무작정 불길 속에 뛰어든 건 결코 아니었다.
잠시 후.
샤아악.
불길 속에서 거짓말처럼 물줄기가 터져 나왔다.
그 물줄기의 시작점엔 태건이 소방호스를 쥐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이것도 물이라고, 치잇!”
물살이 펌프차 소방호스의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옥내 소화전치고도 엄청나게 수압이 약한 편이라 멀리 뻗어나가지를 못했다.
그래도 없는 거보다야 백 배 천 배 나았다.
태건은 비상구가 있는 중앙복도로 우선 방향을 잡았다.
퇴로 확보를 위함이다.
촤아악.
시원치 않아도 물은 물이다.
끼얹듯 불에 쏘자 바로 반응이 일어났다.
푸아아, 스스스.
불길 곳곳이 물 끓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수증기와 유독 연기를 내뿜었다.
순식간에 시야를 잠식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봐서 뭐해. 그냥 갈겨!”
사아악.
방향을 잡은 상황이라 무작정 물줄기를 쏘아댔다.
그 사이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소리에 무전기가 쉴 새 없이 울렸다.
-띠릭. 캡이다. 빅라텔, 요구조자들 7층으로 대피까지 얼마나 걸려?
-띠릭. 빅라텔 송신, 후보대원 7명으로 증원된 상황이라 10분 내외로 예상됩니다.
-띠릭. 서둘러 움직이고……. 까칠, 응급환자 현재까지 몇 명 파악 됐어!
-띠릭. 까칠라텔 송신, 대략 30여명 가량으로 집계, 호흡부전으로 인한 중상자가 많아 모든 호흡기 가동 중. 탈출도 문제지만 산소 부족 해결이 더 시급합니다.
바로 김여훈 지원팀장이 무전을 받았다.
-띠릭. 지원팀장, 현장 접근 중! 현장까지 1분 남짓.
-띠릭. 까칠입니다. 온다고 해도 산소통을 어떻게 올릴 겁니까. 그게 문젭니다!
-띠릭. 라텔캡 송신. 그건 사다리차로……. 아씨 창살이 또 걸리네. 뭐라고요? 하남소방관들이 사다리차 탑승해서 뜯어버리겠다고 통보.
모든 무전들이 라텔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들 전용 채널인 탓이다.
다른 목소리들이 섞이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상황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단 장점이 더 컸다.
거기까지 들은 태건이 바로 끼어들었다.
“현재 건물 외로 연기가 가득할 텐데, 작업 가능하답니까?”
-띠릭. 라텔캡 송신. 벌써 준비 중이야. 뭐든 하겠다고 아니, 우리보다 더 해.
“그럼 건물 뒤쪽으로 방향 잡아야 합니다.”
-띠릭. 앞에 사다리차 올리면 통구이 될 상황인 건 나도 알아. 사다리차 벌써 움직인……. 어어어.
갑자기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당혹으로 물들었다.
‘왜?’
그 의문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쿠웅!
뭔가 충격을 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에 직접 부딪친 건 아니지만 꽤나 육중한 무언가가 쓰러진 소리였다.
궁금할 틈도 없이 바로 오광휘 단장의 무전이 이어서 들려왔다.
-띠릭. 지대가 무르다면서 밭으로 바로 돌진하면 바퀴가 굴러가겠냐고! 밭두렁 넘자마자 앞바퀴 아웃 상태야!
-띠릭. 지원팀장이다. 다른 소방차에 연결해 견인해야 하다니, 저게 뭔 망신이야! 이제 현장 도착했는데, 진짜!
-띠릭. 저거 지게차도 못 들어간답니다!
-띠릭. 내가 봐도 못 들어가게 생겼습니다. 마음 급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 성급했어요. 이제 어쩌나.
김여훈 지원팀장은 기껏 달려온 노력이 허사가 될 위기에 놓이자 애달파 했다.
그 소리에 불길을 부분부분 제압하던 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밭, 밭?
산골에서 자라난 게 이 순간 도움이 됐다.
태건의 눈빛이 빛나며 재빨리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트랙터, 콤바인, 아무튼 농업기계들!”
밭을 오가는데 최강자들이다.
태건의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강영직 지원대원의 무전이 울렸다.
-띠릭. 하남시청, 그리고 미사동 주민센터에 동시에 수배요청 중……. 미사동에서 긍정 답변, 하남시청은 살수차 등 지원차량 급파 실시!
불과 몇 초 사이에 차량수배와 지원요청까지 완료됐다.
모든 유관기관과 실시간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체계적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정보가 오가고 있었다.
태건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이런 소방시스템은 한국이 처음일 거야.’
소방관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일어난 기분 좋은 변화였다.
긍정적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눈앞에 일어난 불을 억누르고 퇴로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런 태건의 마음과 달리 물줄기는 여전히 시원치 않았다.
샤아악.
보일러가 폭발하며 수압펌프도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칫.’
태건이 쓴소리를 애써 삼켰다.
사실 지금 태건의 몸속에 쌓인 열기가 상당했다.
주르륵.
땀이 흐르다 못해 속옷을 흠뻑 적신 상태였다.
일렬로 뻗은 복도라 열기가 갈 데가 없어 축적된 탓이다.
거기에 여기저기 객실 문이 열려 있고, 그 속에 제압되지 않은 불길이 세력을 크게 키우고 있다.
객실 불길을 당장 제압할 수 없어 퇴로부터 확보 중인 상황이다.
혼자서는 한계가 명확했다.
아무리 태건이 날고 긴다고 해도 몸이 나뉘거나 손발이 늘어날 순 없었다.
뿌리는 물보다 밀려오는 열기가 더 강렬했다.
그런 상황이 문제였다.
여차하면 태건도 5층을 포기하고 6층에 합류해야 할 지도 몰랐다.
‘그건 최악까지 몰렸을 때고!’
그 전까지는 5층을 사수해야 한다.
그래야 요구조자들이 탈출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었다.
태건의 뚝심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힘에 부쳐오는 건 막아설 방도가 없었다.
“크으으.”
열이 쌓이고 땀이 쏟아져 나와 입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눈앞도 살짝 흐려지는 낌새가 보였다.
으득.
또 한 번 입술을 깨물며 자신을 다잡았다.
그런 와중에도 비상구와 그 주변까지 불길은 제압했다.
정말 악착 같이 해낸 성과였다.
“흐으, 흐우우…….”
잠시 멈춰 한 박자 숨을 골랐다.
5층에 도착하고 흐른 시간은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5분은 절대 넘지 않았을 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전기는 쉴 새 없이 말을 전달해줬다. 그렇게 오간 상황 전달에 맞춰 대응방안도 속속들이 마련되고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야.”
늘 부족한 그 시간이 이번에도 발목을 잡았다.
뿌리치려면 한숨 돌리는 이 순간마저도 사치였다.
처억.
태건이 다시 소방호스를 앞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