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09)화 (208/320)

209화

노즐을 비틀어 물을 쏘려는 그때였다.

파강!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태건은 일순간 긴장감에 뒷머리가 쭈뼛 섰다.

그런데 괜한 긴장이었다.

후루루.

사방을 꽉 채운 연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건 어딘가 추가로 구멍이 생긴 흐름이야.’

그 구멍의 크기까지도 얼추 감이 잡혔다.

자그마한 창문 정도 크기.

비상구 창문?

띵!

태건이 추측을 확신으로 굳힌 그때였다.

“강태건이!”

촤작!

강렬한 외침과 함께 비상구에서 튀어나온 소방관이 보였다.

한 손에 망치를 들고 있고, 커다란 덩치를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선배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큼지막한 출동가방도 함께라 몰라볼 수가 없었다.

“대산 선배!”

“후욱, 후욱. 무사하냐. 괜찮냐!”

터덕.

단숨에 다가온 황대산은 태건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물었다.

군데군데 불과 싸운 흔적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런 자신보다 황대산의 등장에 놀라워했다.

“6층 요구조자들은 모두 이동시킨 겁니까!”

“핸썸이하고 까칠이가 알아서 하기로 했어.”

“선배!”

턱.

태건이 그를 붙들며 사납게 불렀다.

그제야 황대산이 호흡기커버 속 무덤덤한 얼굴로 답했다.

“대충 떠넘기고 왔을까봐? 라텔 정신이 그렇게 허접한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

“…….”

“핸썸이 비상창문에서 철수, 까칠이하고 7층에서 탈출구를 새로 만들겠다고 올라갔어. 그리고 요구조자들은 후보대원들이 힘쓰는 중.”

이제야 제대로 말하는 황대산에게 태건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

“그럼 그렇다고, 그냥 한 번에 좀 말씀하시면 안 됩니까?”

“사내 자슥이. 이럴수록 여유를 챙겨야 할 거 아니야!”

황대산이 되려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런 그의 호흡기커버 속 얼굴도 엉망진창이었다.

땀이 흐르다 못해 호흡기커버 안쪽에 쌓인 게 보일 정도였다.

“하아아. 하아아.”

가뿐 숨소리가 커버 밖까지 흘러나왔다.

번뜩!

태건은 친숙해진만큼 황대산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훤히 그릴 수 있었다.

‘응급환자들만 혼자 들고 나른 후에 내려온 거야.’

그렇게 투박한 표현과 달리 속은 따뜻한 마초남이었다.

그런데 황대산만 내려온 게 아니었다.

타다닥.

“선배님!”

비상구에서 두 명이 쏙쏙 5층으로 들어왔다.

낯이 익지 않은 이들이라 누군지 명확히 구분해낼 수가 없었다.

“…….”

태건이 바라만 보자 둘 중 앞선 후보대원이 소리쳐 답했다.

“저 송강우입니다. 그리고 김지수 대원입니다.”

“그래. 차수장……. 또 누구라고?”

태건의 목소리 끝이 확 올라갔다.

그 순간 김지수 후보대원은 번쩍 손을 들며 씩씩하게 외쳤다.

처억!

“김지수, 라텔 후보대원입니다.”

“이름을 몰라서가 아니라. 응급 출신인데 지성 선배 쪽이 좋지 않겠어?”

“요구조자에게 도움이 될 장소라면 현장 어디든 가리지 않습니다!”

씩씩하다 못해 똑 부러지는 대답이었다.

태건은 더 이상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소방관으로서 현장에 뛰어들었다면 성별은 무의미했다.

그 점을 강조해 말했다.

“난 누구라도 현장에서 나가떨어지면 엉덩이 차버린다.”

“맞으려고 온 거 아닙니다. 그리고 제 엉덩이는 소중해서 아무나 건드리게 하지 않습니다.”

“……그, 그래. 그 소중한 거 잘 보호해.”

대답하는 태건의 표정이 얼떨떨했다.

씩씩한 말투는 둘째 치고, 이 순간 저런 대답이 나온단 게 엉뚱하게 느껴졌다.

황대산이 슬쩍 태건에게 말했다.

“쟤도 보통 아니야.”

“왜 라텔에 지원했는지 좀 알 거 같습니다.”

“나도 느낌이 딱 오더라.”

황대산은 이미 경험한 목소리였다.

왈가왈부는 한순간이었다.

…….

순식간에 말수가 적어지며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열기가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르륵.

태건이 일시 진압한 불길이 약간의 틈을 주자 꿈틀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처억.

황대산이 소방호스를 빼앗아들며 태건을 디스했다.

“뭔 라면이 이렇게 뒤처리를 부실하게 했어!”

“그거 열어 보고 말씀하세요.”

“뭘 열어보고……. 얘, 왜 이래!”

샤아아.

노즐을 열어 수압을 직접 확인한 황대산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한 탓이다.

송강우와 김지수의 시선은 반사적으로 태건에게로 향했다.

‘저 수압으로 이렇게나 껐다고?’

‘불이……. 불에 코앞까지 접근해야 가능할 텐데.’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릴 지경이었다.

난 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

대답을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태건의 방화복이 유독 엉망진창인 이유를 그들은 스스로 찾아내고 납득했다.

정체된 건 한순간이었다.

태건과 황대산이 동시에 분위기를 싹 휘어잡았다.

“객실 확인해야 합니다.”

“바로 돌입하자. 김지수, 내 뒤에 따라붙어, 그리고 송강우는 라인하나 더 빼서 태건의 뒤에 붙는다. 실시!”

“실시!”

순식간에 버디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움직이려 했다.

그때 태건이 귀를 꿈틀거리더니 모두에게 소리쳤다.

“전원 정지!”

처억!

손까지 뻗어 의구심마저 차단했다.

“…….”

우뚝.

멈춰선 모두가 태건의 행동을 주시했다.

적막이 찾아온 바로 그때였다.

-퉁, 퉁.

어디선가 자그맣지만 묵직한 울림이 들려왔다.

“음?”

다들 이제 들은 모양이다.

눈빛을 굳히며 더욱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했다.

-퉁. 퉁.

소리가 또 울려왔다.

그런데 그 위치가 모호했다.

현재 태건과 모두가 자리한 건 승강기 근처였다.

좌우 양쪽으로 복도가 뻗어 있었다.

심지어 ‘ㅁ’ 모양의 건물 구조라 복도 끝이 각각 새로운 장소로 연결된다.

화재까지 들끓는 상황이라 소리가 온전히 전달되어 오지 않았다.

“젠장. 어딘지 알 수가 있나. 일단 질러는 봐야지, 내가 왼쪽…….”

그 말이 끝을 맺기도 전이었다.

“전부 귀 막아.”

-빼애액, 빼애액, 빼애액!

태건의 경고와 동시에 엄청난 소음이 귀를 강타했다.

“크으윽.”

“아악!”

대비치 못한 모두가 괴로움을 토로했다.

유일하게 태건만이 인상을 찌푸리며 얼른 인명구조경보기 클립을 채웠다.

“…….”

표정하나 굳히지 않은 채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다들 무슨 상황인지 직감했는지 굳은 표정 그대로 재빨리 청력에 집중했다.

인명구조경보기의 소음은 역시 대단했다.

-텅, 텅. 텅.

울리는 소리가 대번에 커지고 빨라졌다.

누군가의 구조요청 신호다.

이 불길 가득한 5층 속에 아직 잔류인원이 남아 있다니.

태건조차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요구조자가 있다면 소방관은 어디든 달려간다.

방향은?

“오른쪽!”

“달려!”

파바박!

태건과 황대산은 반사적으로 뛰었다.

그 뒤를 송강우와 김지수가 바짝 뒤쫓았다.

달려가는 저 앞에 불길이 복도를 막고 있었다.

태건이 뚫고 온 옥내소화전 너머였다.

턱, 터덕.

반사적으로 가슴에 손을 댄 태건이 잡히는 게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

비상용 소화볼을 모두 사용한 거였다.

‘필요할 때 꼭!’

마침 옥내소화전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태건은 곧장 호흡기커버가 들썩일 정도로 소리쳤다.

“송강우, 라인 하나 더 잡아!”

“알겠습니다!”

사삭

송강우는 대답과 동시에 옆으로 빠졌다.

나란히 달리던 황대산이 그런 태건을 힐끗 쳐다봤다.

우람한 덩치에 출동가방까지 함께라 발소리가 남달랐다.

쿵쿵.

처음엔 부담스러워하더니, 이젠 묵직한 출동가방이 익숙해졌는지 한 몸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 또한 특수소방단으로 함께한 시간만큼 태건의 행동을 바로 간파했다.

황대산은 재빨리 자신의 가슴께에 달린 소화볼을 뜯어 그대로 힘껏 던졌다.

“차앗!”

쌔앵.

강속구 같이 날아간 소화볼은 천장을 강타했다.

동시에 소방용수를 내뻗었다.

샤아아. 퍼버벙!

소방용수와 소화볼이 동시에 불길에 닿으며 합동 진화를 선보였다.

황대산의 순간적인 대처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와.”

뒤에서 김지수의 놀란 목소리가 살짝 들려왔다.

“…….”

태건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라텔에겐 이 정도는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탓이다.

창단 초기엔 태건이 대부분 나서야 했었다.

그러나 이젠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차고 넘치는 실력과 열정을 갖추고 있었다.

황대산의 대처로 불길이 잠시 밀려나며 객실 문이 나타났다.

- 504호.

문패가 반쯤 녹아내려 뚫어지게 봐야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불길에 오래 노출된 객실이었다.

태건은 우선 문고리로 손을 뻗었다.

“흠.”

멈칫.

문고리를 잡으려는 태건은 일순간 멈칫했다.

도어락이 상당히 녹아있던 탓이다.

얼마나 녹았는지 숫자 키패드를 덮은 커버가 흘러내렸다. 카드키를 꼽을 구멍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어떻게 봐도 도어락이 작동될 상태가 아니었다.

태건은 황대산의 출동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 노루발 있습니까?”

“이거?”

불쑥.

그는 바로 노루발을 꺼내 내밀었다.

요술주머니 같은 모습이다.

태건은 한 치의 놀람도 보이지 않았다.

벌써 시선을 돌려 플래시로 객실 문을 이리저리 비추며 틈을 찾았다.

사삭.

그런데 의외로 틈이 없었다.

그 자체가 일장일단이 있었다.

이런 기밀성 탓에 요구조자가 지금까지 생존했을 터였다. 반대로 그 기밀성 탓에 자신들이 들어가기가 어려워졌다.

태건은 파악과 동시에 황대산에게 말했다.

“선배, 찔러요!”

“김지수, 서포터.”

터억.

소방호스를 바로 김지수 후보대원에게 넘겼다.

김지수 후보대원은 받아들자마자 태건과 황대산 옆으로 넘실거리는 불길을 공략했다.

샤아아.

약한 물줄기가 불길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김지수 후보대원의 현장 노하우가 부족해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이익!”

샤아아.

김지수 후보대원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는지 이를 악물며 물을 뿌려댔다.

그때 번개 같이 송강우 후보대원이 다가왔다.

타다닥.

“나도!”

샤아아.

물줄기가 두 배로 늘었지만 그리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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