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0)화 (209/320)

210화

태건과 황대산의 모든 신경은 객실 문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단 당기겠습니다. 끄으으!”

치이익.

문고리를 잡는 순간 방화장갑과 열기가 싸움을 시작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악물며 당겼다.

“아으으윽!”

…….

당겨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황대산은 그렇게 노력하는 태건에게 일조했다.

“차아압!”

터엉!

노루발의 날카로운 끝을 문틈에 찔렀다.

한 번으로는 어떤 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황대산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바로 그때 태건이 문에 얼굴을 바짝 붙이며 소리쳤다.

“안에, 이 문, 열 수, 있습니까!”

호흡기커버에 소리가 막힌 터라 끊어서 물었다.

안에서 들려오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텅……. 터엉…….

두드리는 소리가 상당히 느려지고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부릅뜬 황대산이 거칠게 소리쳤다.

“요구조자 상황이 좋지 않아!”

“물러서요!”

태건이 뒤따라 외쳤다.

그와 동시에 황대산이 노루발로 문틈을 찍고 또 찍었다.

유압공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수공구 밖에 없었다.

두드리면 열린다는데, 어찌된 문인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퉁, 퉁.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도 더욱 약해졌다.

“아으씨, 좀!”

텅, 쾅!

황대산은 노루발로 부족했는지 발로 차기까지 했다.

화재상황에서 유독 감정 변화가 심했다.

태건은 그 이유가 궁금할 여력도 없었다.

문득 든 생각 탓이었다.

‘여기만 일까?’

누군가 더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여길 황대산에게 맡기고 떠나겠단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바로 무전기로 손을 뻗었다.

띠릭.

“막내라텔 송신, 5층 수색 지원요청, 최소 기존 단원 1명, 후보대원 2명 이상.”

-띠릭, 핸썸라텔 수신.

고수현이 짤막하게 응답했다.

곧 내려올 게 틀림없었다.

태건은 송강우와 김지수를 향해 외쳤다.

“아무나 한 명, 저쪽으로, 빨리!”

“제가!”

파바박.

송강우 후보대원이 방향을 돌려 부리나케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띠릭. 핸썸라텔, 후보대원 3명과 함께 5층 왼쪽 복도 수색 시작 알림.

“막내라텔입니다. 화재가 상당하니 요구조자 구조에 집중 바랍니다.

-띠릭. 크으으. 나도 이 불덩이들이랑 오래 있고 싶지 않아. 후배님들 빨리 움직입니다. 빨리!

고수현의 무전에서 소방학교 조교 같은 말투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가 후배들을 대하는 방식인 모양이다.

태건은 불필요한 정보를 과감하게 흘렸다.

이젠 여기에 몰두할 수 있다.

“대산 선배, 같이!”

“여기, 잡아!”

터덕.

황대산이 노루발의 굽은 부분을 미세한 틈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태건과 기다란 막대부분은 같이 붙들었다.

태건이 바로 신호했다.

“셋, 차아아!”

“아자자!”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힘을 쏟았다.

꾸국. 구구구.

둘의 힘에 굴복했는지 미세한 틈이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는 객실 문이 장시간 열에 노출된 여파였다.

당장 이 객실 문을 열기 위해선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좀!”

“제발, 열려라아앗!”

그그극.

가능성이 보이자 태건과 황대산은 악을 쓰며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힘에 힘을 더해가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우지……. 우지직.

문틈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열렸다.

와자작!

“됐다!”

“안으로……. 아악!”

뛰어 들어가려던 태건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입구에 쓰러진 20대 남녀의 모습 탓이었다.

태건과 황대산은 재빨리 자세를 낮춰 각각 확인했다.

“이봐요!”

“소방관입니다!”

흔들흔들.

흔들며 재촉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

두 사람 모두 반응이 너무 약했다.

남자의 손은 주먹을 쥐고 있고, 피부가 찢어져 피가 맺혀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이마가 찢어져 있었다.

둘 다 얼마나 필사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구했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 와중에 다행이라면 얼굴에 젖은 수건을 가득 두르고 있단 점이다.

스륵.

수건을 벗기며 동시에 보조호흡기를 댔다.

“후으으, 으으…….”

숨소리가 가느다랗게 울리자 태건이 외쳤다.

“여성분은 자가호흡 합니다!”

“남자……. 숨 쉬어, 숨!”

콰앙!

황대산이 과격하게 주먹으로 남성의 가슴을 힘껏 내리쳤다.

그걸 본 김지수 후보대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다.

“꺄악!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이리 나와요!”

터억.

그대로 황대산의 뒷덜미를 낚아채버렸다.

대비치 못한 황대산이 뒤로 넘어졌다.

우당탕.

“허윽!”

“응급의 ABC 몰라요. 이렇게 사람을 때린다고 숨을……. 숨을……. 어어?”

쏘아붙이며 남성을 살피던 김지수 후보대원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

“푸흐으, 흐으으.”

남성에게서 호흡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

김지수 후보대원은 순간 굳어져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태건은 여성의 호흡을 체크하며 힐끗 쳐다봤다.

뿌연 연기에 김지수 후보대원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분명히, 당황한 표정이 눈에 훤히 보이는 거 같았다.

“이 상황에서 ABC 따져?”

푸욱!

태건이 쓰게 던진 말이 김지수 후보대원에게 날아가 깊이 꽂혔다.

“…….”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런 김지수 후보대원의 뒤에서 거대한 산이 솟구쳤다.

쿠구구.

“김, 지, 수.”

“…….”

파르르.

김지수 후보대원이 몸을 떨었다.

황대산은 그런 김지수 후보대원에게 덧붙여 말했다.

“너! 복귀하고 보자.”

“…….”

“대답 안 하냐!”

“허억, 네!”

흠칫.

김지수 후보대원이 놀라 대답했다.

황대산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으로 밀어냈다.

“시간 없어, 비켜!”

“어엇!”

터덕.

떠밀린 김지수 후보대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사이 태건은 여성을 어깨에 들쳐 메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김지수 후보대원을 향해 싸늘하게 으르렁거렸다.

“길부터 열어.”

“……네!”

타다닥.

정신을 일깨운 김지수 후보대원이 부리나케 객실 밖으로 나갔다.

던져 놓은 소방호스를 찾아들고 다시 불길을 밀어냈다.

태건은 남성을 들쳐 업는 황대산을 조용히 불렀다.

그가 느꼈을 불쾌함이 걱정된 탓이었다.

“선배…….”

“저 녀석도 아차 싶었겠지.”

“그, 그렇죠?”

“그래도 누구처럼 발로 차진 않았잖아. 어서 이분들을 지성이에게 데려가는 게 좋겠어. 움직이자!”

터더덕.

남성을 둘러업은 황대산이 먼저 움직였다.

뒤따르던 태건이 갸웃거리다 움찔했다.

“그때 스포츠센터에서, 그건……. 에이씨. 나중에 봅시다.”

갑자기 억울해졌지만 그 감정 또한 현장을 빠져나간 후로 미뤘다.

복도로 나오자 김지수 후보대원이 밀려오는 불길을 방어 중이었다.

“히이익!”

샤아아.

수압이 약해 효율적인 방어가 어려워 보였다.

불길이 조금씩 밀려오자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태건은 김지수에게 소리쳤다.

“김지수, 내 뒤로 붙어. 엄호하면서 이동해!”

“네!”

턱, 턱.

빠르게 뒤로 후퇴하며 불길과 거리를 벌렸다.

비상구로 향하는 중이다.

태건은 들쳐 멘 요구조자의 호흡을 주시하며 이동했다.

“스흐흐, 스흐흐.”

가느다란 숨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천만다행이다.

확인을 하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무전기를 작동시켰다.

띠릭.

“막내라텔, 요구조자 2명 발견, 빅라텔과 각각 1명씩 이송 중, 7층 까칠라텔 준비 바람!

-띠릭. 까칠 송신, 가까운데 자리 마련해 놓을게!

“핸썸라텔에게 알림, 신속히 남은 객실마저 확인 후 대피 바람!”

-띠릭, 핸썸 확인.

타닥.

고수현의 대답을 들으며 태건은 앞선 황대산의 뒤를 바짝 쫓았다.

순식간에 계단을 박차 7층에 도착했다.

벌컥!

비상구 문을 열자 이지성은 승강기 근처에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복도에는 옅은 연기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호흡에 엄청난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5층에 비하면 쾌적한 수준이었다.

한 마디로 숨 쉴만했다.

이지성도 산소통을 벗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지금 이곳 미즈호텔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때 이지성이 손을 들며 외쳤다.

“이쪽!”

“제가 돕겠습니다!”

최성철 후보대원이 얼른 다가와 보조했다.

그 도움을 받은 태건과 황대산은 남녀 요구조자들을 각각 준비된 장소에 내려놓았다.

터덕.

“프하아.”

황대산이 훌렁 호흡기커버를 벗으며 크게 숨을 쉬었다.

후두둑.

호흡기커버 안쪽에 쌓인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태건도 호흡기 커버를 벗었다.

현장에 도착한 후로 처음이었다.

훌렁.

“푸우우.”

숨을 쉴 때마다 약간 매캐한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그래도 숨을 쉬는데 문제없을 정도라 벗을 수가 있었다.

그만큼 7층은 다른 층과 비교불가 할 정도로 양호했다.

스윽.

태건은 주변을 둘러보며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쪽이 정면 쪽인데, 객실 문을 모두 닫아서 외부 연기 유입을 차단했어.’

측면과 후면에서도 연기가 올라오겠지만 공기 유입이 어느 정도 되는 거 같았다.

그렇게 태건과 황대산이 한 숨을 고를 때였다.

그 사이 이지성은 응급처치에 들어가 있었다.

“이분들도 연기를 많이 먹었어. 일단 호흡기로 계속 호흡 잡아주고. 이 상처들은 뭐야. 드레싱 준비!“

“드레싱……. 아!”

최성철의 반응이 한 박자 늦었다.

응급처치 순간에 이지성은 불 속에서 태건만큼 날카로웠다.

쨍!

“이 새끼가, 응급처치 교육 안 받았어?”

“죄송합니다. 지금 준비…….”

“뭘 지금 준비한다는 거야, 숨넘어간 다음에 내밀어서 뭐하게!”

“…….”

최성철이 아무런 말도 못하고 손만 움직였다.

척, 척.

따가운 압박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건 칭찬 받아도 좋을 모습이었다.

그러나 현장은 연습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런 어설픔을 단지 경험 미숙이란 이유로 넘어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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