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태건이 바로 최성철을 낚아챘다.
“이리 와. 그리고 여긴 김지수가 서포터 붙어.”
“그럴게요. 선배님, 우선 식염수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사삭.
김지수 후보대원은 과감하게 다가가 거침없이 행동했다.
주특기 분야라 좀 더 생동감이 느껴졌다.
“소독약, 타박상 연고, 압박 붕대…….”
이지성도 김지수 후보대원이 유연하게 서포터하자 흥분을 억누르고 응급처치를 이어갔다.
최성철 후보대원은 더욱 어깨를 움츠렸다.
그 꼴을 태건이 가만히 두고 볼 성격이 아니었다.
바로 그의 어깨를 묵직하게 쳤다.
퍼억!
“커윽!”
“긴장 놓지 마!”
“크. 알겠습니다!”
“요구조자들 어디에 밀집되어 있나. 빨리 보고해.”
태건은 최성철 후보대원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나무라는 건 아니었다.
뚝뚝.
얼굴 가득 땀이 구슬구슬 맺혀 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기에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 거였다.
태건의 강한 말투에 최성철 후보대원이 바짝 긴장해 답했다.
“8호부터 12호실에 모셨습니다!”
“뒤쪽 라인이라, 오케이. 그럼 6층 요구조자 분들은 모두 올라오셨나?”
“거의 다 올라오셨습니다.”
“거의 다라니, 정확히 몇 명 중에 몇 명 남았는지 확실히 해야 할 거 아냐!”
다독이려던 태건의 목소리가 일순간 따가워졌다.
티끌만한 안일함이 누군가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화를 내는 거였다.
“…….”
최성철 후보대원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때 비상구 문이 거칠게 열렸다.
벌컥!
그 틈으로 노주민 후보대원과 다른 후보대원들이 요구조자들을 부축해 올라왔다.
“다 왔습니다. 조심, 또 조심이요!”
“허으으. 하악하악.”
시간이 지난 만큼 요구조자들의 모습이 엉망이었다.
후보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다가온 노주민 후보대원이 소리쳐 외쳤다.
“이분들이 마지막입니다!”
“확실해?”
태건이 묻자 노주민 후보대원이 얼른 답했다.
“네. 모든 객실 열어서 소리쳐 알리고, 내부도 확인했습니다!”
“그분들 먼저 지성 선배에게 인계해.”
“네. 다들 이쪽으로!”
척. 척.
노주민 후보대원이 요구조자를 부축하며 태건을 지나쳐갔다.
다른 이들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그 사이 태건은 현장 도착 후 처음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나…….”
상당히 흘렀다.
헬기에 매달린 순간부터 흐른 시간이었다.
현장 규모를 생각했을 때 빠른 건지, 느린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럴 정도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였었다.
태건이 투입시간을 확인할 때였다.
태건과 황대산의 산소통에서 커다란 휘파람 소리가 났다.
-삐이이.
잔여산소가 거의 남지 않았단 신호였다.
1시간 호흡량이 충전되는 산소통이다.
얼마나 많이 움직였고, 요구조자들에게 나눠 줬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 산소통들은 남녀 요구조자의 호흡기로 활용 중이었다.
휘파람 소리에 이지성 표정이 싹 굳어졌다.
“젠장. 이것도 다 썼어?”
“선배, 다른 산소통들은 어딨습니까?”
“몇 개는 응급환자 호흡 잡고 있고, 몇 개는 다 쓰고……. 그나마 선배하고 네 걸 기대했는데, 이것도 틀렸어. 쯧!”
이지성의 일그러진 표정이 펴질 줄을 몰랐다.
그때 김지수와 노주민 등. 후보대원들이 얼른 산소통을 벗었다.
퉁, 퉁.
“여기 있습니다!”
“제 것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두 눈엔 어떤 계산도 보이지 않았다.
‘호오.’
태건과 단원들은 그 점에 대해선 약간 관심을 보였다.
그때 비상구 문이 한 번 더 열렸다.
고수현과 송강우를 비롯한 다른 후보대원들이 도착했다.
푸슈슈.
방화복에 연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일부 타들어간 흔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허어억, 헉헉!”
거친 숨을 쉬며 다들 산소통을 내려놓고 호흡기커버를 벗었다.
부욱!
방화복 앞섶도 거칠게 열었다.
안에 쌓인 열기를 빼내기 위함이었다.
태건이 얼른 최성철 후보대원에게 소리쳤다.
“소화전 호스 어딨어. 호스!”
“잠시만요!”
타다닥.
헐레벌떡 뛰어간 최성철 후보대원이 재빨리 소방호스를 쥐고 뛰어왔다.
근처에 있었던 모양이다.
샤아아.
5층보다 더 약한 수압이었다.
조금 비관적으로 말하면 수도꼭지를 열은 거 같았다.
그마저도 지금은 단비였다.
태건이 열을 빼는 고수현과 후보대원들에게 골고루 뿌렸다.
샤아아.
동시에 현황파악을 위해 물었다.
“이제 5층에 잔류 인원은 없는 겁니까?”
“없어, 어후우. 헉헉. 진짜 없어.”
“화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푸우.”
처적, 처적.
고수현은 숨을 툭 내뱉으며 얼굴에 흐르는 물을 닦았다.
그 사이에 태건은 미간을 좁혔다.
“그렇다면 시간이 많지 않단 거네요.”
“6층이 비어 있는 상황이라 시간을 오래 벌지 못하겠지.”
고수현이 쓰게 말을 받았다.
그 소리에 황대산이 숨을 들이켜며 몸에 힘을 줬다.
“이럴 때가 아니야. 다들 끄으응.”
후들후들.
몸을 긴장시키며 일어나려 했지만 쉽지 않아보였다.
가장 체력이 강한 황대산이 이렇게나 힘들어했다.
다른 단원들 상황을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태건은 침착하게 숨을 몇 번 몰아쉬었다.
“후우우, 후우우.”
샤아아.
머리에 물도 한번 끼얹었다.
이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는 거 같았다.
‘총 인원 확인, 그리고 탈출루트 확보, 마지막으로 신속한 탈출.’
차례로 해야 할 일을 곱씹었다.
마침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각자 일을 나눠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행동해야할 터였다.
마지막이다.
모든 힘을 쏟아 탈출을 위한 최후의 결전을 펼쳐야 한다.
마지막엔 웃을 거다.
지금의 힘듦이 보람으로 바뀔 거란 의욕부터 강하게 끌어올렸다.
태건이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할 때였다.
구우우.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결연하면서 강렬하게 변화했다.
-더 라스트.
중요한 순간엔 어김없이 나타나는 태건의 진짜 모습이다.
거기에 흐름이란 묘리를 업그레이드했다.
느껴지는 분위기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긴장함으로 가득했다.
그런 태건의 달라진 분위기는 모두에게 뻗어갔다.
…….
순간 승강기 앞이 고요해졌다.
압도되었단 표현이 전혀 오버스럽지 않았다.
그 중 단원들의 눈빛에 기대가 서서히 서렸다.
“강태건이가 저러는 걸 보니, 우리도 단단히 준비해야겠어.”
“짜식, 기 모으네.”
“너 알아서 하세요. 난 응급처치나 계속 할 테니까.”
이지성이 삐딱하게 말하며 응급처치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도 태건이라면 뭔가 보여줄 거란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반면, 여덟 명의 후보대원들은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태건을 놀라워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거 같아.”
“왠지 모르게 집중해야 할 거 같고.”
“저 선배 포스 쩐다.”
“라텔 중에서도 라텔이라더니…….”
후들.
살짝 다리가 흔들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압박감이었다.
요구조자들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특수소방단이 대단하다더니.’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닌가 봐.’
‘분위기 대박.’
연령대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라 표현부터 남달랐다.
이내 태건의 눈빛이 반짝였다.
번뜩!
“고 선배, 총 인원 파악부터 부탁드립니다. 객실 상황하고 응급처치 받은 분들 상태도 같이요. 두 명 데려가십시오.”
“그래. 움직일 때가 됐어. 최성철하고 그 옆에 너. 따라와!”
파바박.
고수현과 두 명의 후보대원들이 나란히 움직였다.
그 다음 태건이 이지성에게 물었다.
“가급적 빨리 응급처치 마무리 짓고 황 선배 쪽으로 합류하십시오.”
“두말하면 잔소리.”
“김지수, 네가 전담으로 선배 커버 쳐.”
“알겠습니다!”
이지성에 이어 김지수 후보대원의 대답이 차례로 울렸다.
이어서 태건은 황대산에게 말했다.
“선배하고 나는 각각 흩어져서 탈출로 확보. 창살 뜯어내 버리는 겁니다.”
“그게 내 전문이니까.”
파앙!
방화장갑을 강하게 부딪친 황대산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몇 명 필요 하십니까.”
“내가 세 명 데려갈게. 너부터 너까지. 움직여!”
차자작.
황대산과 세 명의 후보대원들이 왼쪽 라인으로 움직였다.
주변엔 노주민과 송강우가 남아 있었다.
태건은 그 사이 출동가방을 찾아 다시 크로스로 멨다.
꾸욱.
어깨에 압박이 올 정도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이내 태건은 손짓과 함께 움직였다.
“가자.”
“네!”
처저적.
태건과 두 명의 후보대원도 재빨리 오른쪽 라인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곧 빈 객실에 들어섰다.
요구조자들이 모여 있는 객실과 가까운 위치였다.
선팅이 된 내창이 멀쩡했다.
투웅.
침대에 출동가방을 올린 태건이 넓게 펼쳤다.
거기엔 망치, 드라이버, 니퍼, 스페너 등 현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공구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처억.
망치를 든 태건이 싸늘하게 말했다.
“죄다 때려 부셔.”
“부셔여!”
터덕.
송강우와 노주민이 각각 공구를 들고 유리창을 향해 돌진했다.
그간 쌓인 걸 모두 풀려는지 거칠게 휘둘렀다.
콰광. 꽈지직.
“에라이, 꺼져, 나와 새꺄!”
“으아아, 죽어어!”
철천지원수 대하는 감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그만큼 고생한 현장에 이가 갈리는 모양이었다.
태건이 그 틈에 끼어들지 못할 정도였다.
아니, 차라리 한 걸음 물러났다.
‘니들이 그렇다면…….’
척.
태건은 무전기에 손을 댔다.
띠릭.
“막내라텔 송신, 캡, 밖의 상황은요!”
질문한 그때였다.
와지직.
송강우와 노주민이 선팅된 유리창을 뜯어냈다.
여러 번의 충격을 받은 덕분인지 외창 쇠창살의 유리조각들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틈으로 밀려들어오는 검은 연기의 양이 너무도 적었다.
“어? 맑은 공기다!”
“진짜! 이건 뭐지, 물?”
샤아아.
수압이 약한 물보라가 들어오고 있었다.
소방용수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흩뿌리고 있었다.
“선배님!”
후보대원들이 다급히 태건을 찾았다.
“물이라니!”
사삭.
재빨리 다가간 태건이 가장 큰 틈으로 손을 내밀어봤다.
비가 오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물보라가 어디서 오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