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2)화 (211/320)

212화

바로 그때 오광휘 단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막내라텔, 대기. 거기 지금 밖에 손 내민 거 누구야. 빨리 대답해!

“막내라텔 송신.”

-띠릭. 아니, 너 말고. 지금 밖으로 손 내민 녀석 누구냐고!

“저라니까요. 단장님은 어디서……. 흠!”

태건은 울컥해 대답했다.

그리고 뻗은 손을 접고 그 틈에 눈을 바짝 들이댔다.

밖의 상황을 본 태건은 깜짝 놀랐다.

건물 우측면으로 밭이 펼쳐진 장소였다.

그 밭의 한 가운데 오광휘 단장이 떡하니 서 있었다.

그의 뒤엔 커다란 물통이 달린 트렉터가 자리해 있었고, 고압호스를 통해 물을 이쪽으로 쏘고 있었다.

트렉터 주변에 다른 농기계들이 대기 중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목쉬도록 외치던 현장지원이 갖춰진 모습이었다.

감탄하려던 태건은 이상함을 직감했다.

“아……. 아니, 그런데 연기가 왜!”

풀풀풀.

건물 벽을 따라 솟구쳐야할 검은 연기가 조금 거리를 두고 솟구쳐 올라왔다.

무전기를 눌렀었는지 지원팀장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지원팀장이다, 각 배연기 작동 양호. 라텔들 확인바람.

-띠릭. 핸썸라텔, 후면입니다. 어쩐지 연기 유입이 확 줄었다 싶더니!

-띠릭. 빅라텔, 좌측면은 어푸푸, 쿨럭! 여긴 해당사항 없습니까?

긍정과 부정의 목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그에 오광휘 단장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따갑게 터져 나왔다.

-띠릭. 우리만 다 갔다쓰냐. 정면에서 불길 억누르느라 지금 다들 쌔빠지게 고생 중이야. 빨리 쇠창살부터 뜯어!

휙휙.

오광휘 단장이 힘차게 손을 흔들어 재촉했다.

밖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감히 추측도 되지 않았다.

그럼 이쪽에서도 응하는 게 옳았다.

“뭐해, 이깟 창살 발로 차버려!”

콰앙!

태건이 솔선수범해 쇠창살을 차버렸다.

그 거침없는 행동에 후보대원들도 힘을 냈다.

“부셔져라!”

“꺼져버렷!”

쾅, 쾅!

쇠창살을 발로 있는 힘껏 찼다.

그것도 모자라 침대 사이드 테이블까지 뜯어 던져버렸다.

그런데 쇠창살이 예상보다 더 튼튼했다.

그극. 그극.

약간 유격이 생긴 정도일 뿐, 쉽사리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건 좀 대충 마감하지!”

너무 튼튼하게 공사한 업체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어느새 숨이 가빠져왔다.

“훅, 훅.”

체력이 떨어진데다 방화복으로 무장한 상황 탓이다.

이렇게는 쇠창살 하나 부수는데 힘을 다 쏟을지도 몰랐다.

콰앙, 콰앙.

옆 객실에서 울림이 들려오더니 황대산의 짜증이 뒤따라 들려왔다.

어느새 옮겨온 모양이었다.

“아으씨, 이 빌어먹을 게 왜 안 부셔져!”

“이게 마지막인데, 이게 끝인데, 정말 더럽게 안 풀리네!”

후면 쪽에서 고수현의 짜증소리도 들려왔다.

거기에 요구조자들의 아우성이 더해졌다.

“내보내줘, 제발!”

“아아악!”

인내의 한계를 지나 모든 감정이 터져버린 절규들이었다.

그 절규가 밖까지 울린 모양이다.

오광휘 단장의 굳은 무전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띠릭. 전 라텔, 내가 뭐랬냐. 부셔, 다 부숴버려. 니들 그거 밖에 안 되냐!

-띠릭. 더럽게 튼튼합니다!

-띠릭. 튼튼하면 더 힘을 줘서 부셔. 짜샤, 라텔이 뭐하는 거야!

오광휘 단장은 버럭버럭 소리치며 자극했다.

그 자극에 오죽 화가 뻗쳤으면 위아래가 확실한 황대산이 반말로 따졌다.

-띠릭. 아으, 야, 단장, 당장 올라와. 올라와서 니가 부숴봐!

-띠릭. 뭐, 이 새끼야!

-띠릭. 우리도 속 터져 죽겠다고!

코앞에서 진전이 없는 탈출 상황에 모두의 예민함이 폭발해버렸다.

그때 태건이 무전기를 잡아먹을 듯 쏘아붙였다.

띠릭.

“다들 셧업, 그대로 대기!”

그 무전을 마친 태건은 재빨리 몸을 돌려 객실을 나갔다.

사삭, 휙!

순식간에 다시 돌아온 태건은 한 손엔 로프를 들고 있고, 다른 손엔 고수현이 붙들려 있었다.

끌려온 고수현이 당황해 소리쳤다.

“난 갑자기 왜!”

“쇠창살 로프로 묶어서 늘어뜨리세요.”

“밖에서 당기라고? 사람이 많다고 해도 높이가 있는데, 그게 돼?”

“걱정 마시고, 얼른!”

툭.

태건은 고수현에게 로프를 안겨주며 쇠창살 쪽으로 떠밀었다.

고수현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일단 로프를 묶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이럴 때마다 뭔 생각인지…….”

슥슥.

투덜거리면서도 로프를 묶는 손길은 섬세했다.

그걸 본 태건은 얼른 무전기에 대고 계획한 걸 알렸다.

띠릭.

“캡, 로프 내려갈 겁니다. 농기계에 묶어서 당겨버려요!”

-띠릭. 오오옷. 오케이. 저쪽으로요. 로프 내려온 답니다. 어서요!

짜증을 일순간 벗어던진 외침이 가득 들려왔다.

태건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음 계획을 전달했다.

띠릭.

“아래에 에어매트 준비, 최대한 빨리!”

-띠릭. 지원팀장이다. 접수. 최대한 신속히 준비하겠다!

김여훈 지원팀장의 목소리도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때였다.

터더덩.

황대산이 다급히 이쪽 객실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누가 이런 장한 생각을 했어!”

“그게 중요합니까. 어서 요구조자들에게 상황 알리고 탈출 준비 해야죠!”

“오케이. 후보들 전부 나 따라와. 어서!”

휙.

황대산에 이어 후보대원들이 잽싸게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후.

-와아아아!

미즈호텔 7층이 들썩이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 환호성이 식기도 전이었다.

우지지직!

-띠릭. 당긴다, 당겨어!

오광휘 단장의 쥐어뜯는 무전소리가 울렸다.

콰과과!

거친 엔진소리도 생생히 들려왔다.

그리고.

끼긱. 끼기긱.

쇠창살이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된다. 뜯어진다!”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던 태건이 외친 바로 그때였다.

꽈지지직!

지긋지긋한 애물단지인 쇠창살이 뜯어졌다.

“됐다아아!”

“탈출이다!”

와락.

태건과 고수현은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끌어안아 버렸다.

어색함과 불쾌함은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홀가분한 심정으로 포옹했다.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였다.

-우르르릉!

건물이 진동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여력조차 없었다.

지금 이런 소리가 난 자체가 문제였다.

번뜩!

둘 다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빨리 에어매트에 공기 넣어!”

“구조대, 구급대 대기시키고, 들것하고 구급차 대기 시켜. 서둘러!”

태건과 고수현의 외침이 미즈호텔 외부를 진동시킬 정도로 강하게 울렸다.

잠시 후.

가용한 모든 인원들이 건물의 우측에 집결됐다.

구조대와 구급대가 매트를 둘러서서 떨어질 누군가를 도우려 대기 중이었다.

그들 뒤에 늘어놓은 들것만 수십 개였다.

“매트, 오케이!”

“구조대, 준비 됐습니다!”

“구급대, 아자자!”

모두의 다부진 결의를 외쳤다.

같은 시각.

쇠창살을 뜯어낸 창문이 세 개로 늘어났다.

라텔 단원들이 창가에 대기 중이었다.

각각 태건과 황대산, 고수현이었고, 로프를 침대 다리에 묶어 안전도 잊지 않고 챙겼다.

“막내라텔, 준비 완료!”

-띠릭. 빅라텔, 언제든지!

-띠릭. 핸섬라텔, 오케이!

각자 무전으로 상황을 알림과 동시였다.

이지성과 후보대원들이 요구조자들을 통제하며 각 객실로 이끌었다.

“요구조자들 탈출 시작합니다.”

“밀고 나온다고 빨리 탈출하는 게 아닙니다!”

“조금만 더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

“밀고 나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타이르거나 다독이는 목소리, 간간이 따가운 소리도 들려왔다.

요구조자들의 어수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구라도 이 공간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을 터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이들은 응급환자들이었다.

들것에 누워 있거나, 압박붕대를 감고 있었다.

안내한 이지성이 빠르게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는 무조건 응급이야.”

“호흡에 문제없는 분들입니까?”

“뭔 소리야. 호흡이 문제지!”

휙!

이지성은 타박하며 객실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 일은 태건에게 일임한단 의미밖에 되지 않았다.

태건은 퍽 난감했다.

“……할 수 없지.”

처억.

들것에 단단히 묶인 환자를 창틀에 위치시켰다.

“흐으, 흐으으.”

휘이잉.

응급환자라도 의식이 있어 갑자기 펼쳐진 창공에 당황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에게 차분히, 그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한순간입니다. 두 눈 꼭 감고 계시면 밑에 도착해 있을 겁니다.”

“어, 어어어…….”

“그럼. 모시겠습니다. 하강!”

휙.

태건은 외침과 동시에 들것 그대로 밀어버렸다.

에어매트는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 제작된 소방용품이라 걱정하지 않았다.

곧 아래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어억, 요구조자 눈 뒤집어졌어!”

“얼른 구급차로 모셔!”

“서둘러! 응급실이죠. 응급환자 모시고 갑니다, 전부 대기시켜주세요!”

기절한 응급환자를 중증으로 오해해 서두르는 외침이 다각도로 울렸다.

위에서 지켜본 태건은 놀랍게도 만족해하고 있었다.

“응급환자는 빨리 모셔야지.”

그 뒤로도 저항이 불가한 응급환자들이 속속 창문 밖으로 떠밀려 떨어졌다.

태건과 황대산, 고수현의 표정엔 미안함과 자책이 전혀 없었다.

응급환자의 빠른 이송을 위한 결단인 탓이다.

응급환자들 다음으로 요구조자들 탈출 차례가 됐다.

터덕.

곧 20대 남녀가 다가 왔다.

태건이 가볍게 손으로 막으며 무전부터 했다.

“1번 창문, 요구조자 도착, 확인바랍니다.”

-띠릭. 1번 스텐바이, 타이밍은 그쪽에 일임한다.

대답을 들은 태건이 남녀에게 손짓했다.

“두 분, 이쪽으로.”

“네. 드디어……. 허어억!”

호기롭게 다가온 요구조자들이 막상 앞에 서자 크게 헛숨을 들이켰다.

막상 자리를 잡고 서서 내려다보니 아찔한 모양이었다.

응급환자들과 달랐다.

요구조자들이 자의적으로 뛰어내려야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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