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3)화 (212/320)

213화

그러나 태건은 오늘 그들의 기분을 챙기고 설득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미즈호텔의 정면은 지금도 불과 사투 중이다.

여기가 한가하다고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압박을 해야 했다.

그래서 태건은 대뜸 역카운트를 시작했다.

“하나에 뜁니다. 셋, 둘…….”

“저, 저기요!”

후들후들.

창가에 선 남녀는 꼭 끌어안고 두 다리를 가늘게 떨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이 돌연 미소 지었다.

‘어렵다면 도와드리는 게 인지상정.’

그리고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말했다.

스윽.

“무섭죠. 그 기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좀 안심하실 수 있게 손 잡아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반색하며 손을 잡았다.

텁.

그 순간 태건의 미소가 사악하게 물들었다.

“그럼, 뛰어.”

“네?”

“바이.”

휙!

태건은 남자의 손을 거칠게 밖으로 당겼다.

순간적으로 가해진 힘을 감당하지 못한 남자는 균형을 잃었다.

허둥거리던 그는 결국 여성을 끌어안고 떨어졌다.

“어어어, 아아악!”

“꺄아아아!”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풀썩.

태건은 그들이 떨어지고, 또 에어매트에 안착하는 모습을 무심히 지켜봤다.

이어서 고개를 돌렸다.

다음으로 대기하고 있는 요구조자를 바라봤다.

동시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드릴까요?”

“허으읍.”

절레절레.

요구조자는 양손을 얼른 감추며 거칠게 고개를 흔들어 거부했다.

그러나 반항은 한순간이었다.

이내 그는 결국 태건의 손에 이끌려 추락했다.

“으아아아악, 강태거어어언!”

그가 내뱉는 비명소리가 결코 좋은 의미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태건에겐 천상의 하모니로 들려왔다.

“탈출하는 소리는 역시 아름답네요. 자, 다음!”

태건은 대기 중인 요구조자들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내보였다.

이럴 수밖에 없는 건 역시나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태건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다른 라인은 아예 요구조자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아, 뛰어야 한다니까요!”

“무섭다니까요!”

“그럼 옆으로 나오시라고요. 다들 기다린다고요!”

“재촉하지 좀 마요. 진짜 감사한데, 고마운데, 아으씨!”

모두 단원들에 대한 고마움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7층을 맨몸으로 뛰어야 하는 공포심 또한 진심이었다.

그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니 고맙다면서도 화를 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로 인한 요구조자들의 충격도 상당한 모양이었다.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로 소리쳤다.

-띠릭. 이 자식들아, 막 떠밀지 말고, 좀 조심히 안내해라!

-띠릭, 그게 저희 마음대로 되는 줄 아십니까. 시간은 없지, 무섭다고 안 뛴다고 그러지, 우리도 죽겠다고요!

-띠릭. 어디서 말대꾸야. 이제 좀 살만하지? 니들 요구조자들 탈출 끝나면 죄다 불 끄면서 내려와!

티격태격.

어느새 다시 말다툼이 시작됐다.

탈출이라는 대업이 진행되니 긴장이 조금 느슨해진 거였다.

결국 듣다 못한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띠릭.

“아, 진짜 쫌!”

-띠릭. 크흐흠. 롸져. 다들 안전하게들 모셔라!

오광휘 단장이 찔끔한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띠릭. 긴장 놓지 말고 진행합시다.

괜히 한 소리 들은 선배들은 다시 차분하게 요구조자들을 안내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무전소리가 어느 원룸에서 울려 퍼졌다.

-띠릭. 이 자식들아, 막 떠밀지 말고, 좀 조심히 안내해라!

-띠릭, 그게 저희 마음대로 되는 줄 아십니까. 시간은 없지, 무섭다고 안 뛴다고 그러지, 우리도 죽겠다고요!

-띠릭. 어디서 말대꾸야. 이제 좀 살만하지? 니들 요구조자들 탈출 끝나면 죄다 불 끄면서 내려와!

분명 라텔들이 서로 무전하는 소리였다.

그 무전은 상당히 전문적인 무선장비에서 송출되고 있었다.

무전을 도청하는 인물은 20대 초중반의 젊은 남자였다.

“하하하. 이 사람들 진짜 매력덩어리들이야.”

끼익.

뒷머리를 손으로 받친 그는 의자에 깊게 기대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원룸 안에는 그 혼자 있었다.

역시나 그의 말에 대한 대답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무전 그 만 듣는 게 아니었다.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 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채팅창에 채팅이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슉슉슉.

- 오 단장님 역할은 코믹.

- 강 단원 성격 대박, 단장한테 소리치는 인성.

- 선배들 쫄았다. 이거 하극상임. 케케.

- 울고 웃고, 진짜 오늘 너무 새로운 경험 중이에요.

접속자 수가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하나 둘 입소문을 타고 들어온 거였다.

그렇게 라텔의 무전은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나갔다.

시간이 흐른 후.

모든 요구조자들의 탈출이 마무리됐다.

이제 소방관들이 탈출할 순서다.

한데 모은 장비부터 내리고 곧 후보대원들이 차례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송강우, 강하!”

“최성철, 번지!”

촤아악. 촤아악.

그들도 맨몸으로 뛰어내렸지만 요구조자들과 달리 확실히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이 없어 쭉쭉 탈출이 진행됐다.

이윽고 단원들 순서가 됐다.

그런데 다들 객실 문을 바라보며 초조해했다.

단원들 중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태건이었다.

이지성이 다른 선배들에게 인상을 팍팍 찌푸리며 물었다.

“태건이는 갑자기 어딜 간 겁니까?”

“하여간 강태건이, 이 청개구리를 어떻게 해야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건지!”

“걔 그거 가져갔던데, 산소통.”

고수현이 무심코 말을 흘렸다.

그 소리에 다들 멈칫했다.

그러다 이지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꼭꼭 짚어 물었다.

“그러니까 갑자기 산소통을 메고 갔다고요?”

“산소통 게이지 확인하더니 가장 많이 남은 거 차고 간 거 같아.”

“이 자식, 뭔 생각이지?”

이지성이 말을 던졌지만 모두가 갸웃거렸다.

이내 무전기도 울렸다.

-띠릭. 니들 탈출 안 하냐!

“잠시만요. 곧……. 이거 뭐야. 타는 냄새 아니야?”

대답하던 황대산이 순간 풍겨오는 매캐한 냄새에 신경을 잔뜩 곤두세웠다.

고수현과 이지성도 맡은 모양이었다.

“뭐야. 언제 7층까지 번졌어!”

“이 자식, 찾으러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지성이 산소통을 낚아챌 기세를 가득 풍겼다.

바로 그때 완전무장한 소방관이 객실로 들어왔다.

어깨에 하얀 이불로 감싼 무언가가 있었다.

화아악.

탄 냄새는 그가 들어서자 강하게 풍겨왔다.

그를 본 순간 선배들이 미간을 좁히며 외쳤다.

“야, 강태건!”

“헉헉, 후우.”

태건은 거칠게 숨을 쉬며 어깨에 걸쳐 온 이불더미를 조심히 내렸다.

사락.

이불 한 쪽 끝이 흘러내렸다.

그 속에 싸인 무언가를 본 순간 선배들이 멈칫했다.

“태건아, 혹시 이분…….”

“네. 아까 무전으로 보고한 그분입니다.”

“새끼, 진작 말하지. 아니, 말하고 갔어야지!”

투덜거린 게 미안했는지 뾰족하게 따졌다.

태건은 이불을 다시 꼼꼼하게 싸며 쓰게 말했다.

“다들 정리 중이셨으니까요. 도저히 이대로 가지 못하겠어서 모셔 온 겁니다.”

“잘했다. 이건 잘했는데, 인마. 독단행동은 금지야. 지금도, 앞으로도!”

“네. 걱정 끼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얼른 모시고 우리도 뜨죠. 6층까지 개판 났습니다.”

태건이 차분히 모두를 재촉했다.

끄덕.

선배들이 일제히 고갯짓했다.

곧 사망자와 라텔 단원들이 현장에서 탈출했다.

“끝이다. 끝!”

촤아악!

에어매트에 푹 파묻힌 태건이 짤막하게 외쳤다.

이 지긋지긋한 현장은 당장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아쉬움과 미련을 내려두고 이렇게 다들 무사히 탈출했음에 감사했다.

잠시 후.

다들 지친 몸을 이끌고 지휘소로 향했다.

터덕, 터덕.

“더럽게 잘 타네.”

미즈호텔의 현재 상황을 처음으로 한 눈에 담은 태건의 첫 마디였다.

호텔 전면 대부분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미 모든 소방차량과 소방관들이 총동원되어 진화 중이었다.

그러나 초기 진화 실패로 인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져 있었다.

“그쪽, 막아!”

“안 됩니다. 뒤로!”

“물러서지 마!”

소방관들의 처절한 사투가 끝없이 이어졌다.

태건은 불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흐름을 읽어봤다.

‘저건……. 어렵겠는데.’

하남 소방관들이 무능력한 게 아니다.

내부를 모두 삼켜버린 불길이 절정에 이른 거였다.

터억.

멈춰선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대로 복귀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처적.

이내 오광휘 단장이 쓴 얼굴로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이렇게 가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저렇게 불타는데 당장 우리 체력이 문젭니까.”

“불을 체력으로 끕니까. 정신력이지.”

선배들이 하나둘 동조의 말을 건넸다.

이대로 우리 일이 끝났다고 두 손 들고 돌아가는 건 아무래도 뒤가 개운치 않았다.

“후우웁.”

후보대원들은 말이 아닌 호흡을 다잡는 걸로 의견을 대신했다.

그래도 오광휘 단장이 툭 던져 말했다.

“후보대원들, 발목 붙들 거 같으면 자진해서 빠져.”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지원차량으로 가서 산소통부터 정비하고 한 게임 더 하자. 오케?”

“위치로!”

우르릉.

결연한 각오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처음 교육실에서 봤을 때보다 더 기합이 가득 들어간 모습이었다.

사삭!

일제히 방향을 돌린 후보대원들이 신속히 지원차량으로 달리려 했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이지성이 갑자기 막아섰다.

“다들 제자리에.”

“…….”

우뚝.

후보대원들이 걸음도 떼지 못하고 멈칫했다.

그들보다 태건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바로 물었다.

“선배, 왜요?”

“물폭탄이 배달 중이라.”

스윽.

이지성이 손끝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휙 돌아갔다.

저 먼 하늘에 헬기가 존재했다.

아래 커다란 물주머니를 매달고 이쪽으로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