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4)화 (213/320)

214화

투두두!

로터 소리가 이제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모두의 무전기가 동시에 울렸다.

-띠릭. 여기는 운전라텔, 내가 돌아왔다! 물 퍼부을 거니까 다들 요구조자들 챙겨. 투하 20초 전!

유중헌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반면, 무전기를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가득했다.

오광휘 단장이 쓰게 한 마디 내뱉었다.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여기 상황을 모르는 거 같습니다.”

“주유하면서 무전대기 안하고 뭐했대?”

“그건 직접 물어보시면 될 거 같은데요. 아, 빨리 말씀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톡톡.

태건이 무전기를 가볍게 두드리며 답했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 직접 대화가 가능하단 걸 강조해 알렸다.

재촉하는 건 헬기가 오는 방향 탓이었다.

미즈호텔의 뒤쪽으로 접근 중이다.

유중헌이 단원들을 내려준 방향이라 그쪽을 집중 공략할 모양이었다.

타이밍을 본 오광휘 단장이 얼른 무전기를 눌렀다.

띠릭.

“운전, 나 캡이다. 엉뚱한데 퍼붓지 말고, 건물 정면으로 날아와!”

-띠릭. 뒤가 막혀서 앞으로 몰려간 겁니까?

“너 무전대기 안하고 뭐했어. 뭐했는데 아무것도 몰라?”

-띠릭. 배터리 없어서 충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유중헌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이런 중차대한 순간에 배터리 방전이라니.

물론 혼자 헬기를 운용 중이라 발생한 공백일 터였다.

오광휘 단장도 알지만 무전기를 누를 힘마저 빠진 허탈한 표정이었다.

“얘 어쩌면 좋냐.”

“…….”

절레절레.

다들 쓴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대신 태건이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현재 상황을 알렸다.

띠릭.

“막내라텔 송신, 전원 건물에서 모두 탈출한 상황입니다.”

-띠릭. 진짜야? 와아! 다들 무사해? 괜찮냐!

“저희는 괜찮습니다만 건물 전면의 화재가 잡히지 않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띠릭. 딱 기다리라고 해. 내가 확 퍼부어 줄 테니까!

유중헌의 목소리에 활기가 감돌았다.

그의 기분만큼 헬기의 움직임도 더욱 신속해졌다.

“참 알기 쉬운 선배야.”

읊조린 태건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유중헌은 운전대를 잡으면 거칠어지지만 내면의 착한 심성은 변함이 없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은 다른 무전기로 현장 모두에게 경고했다.

“물 폭탄 쏟아부을 겁니다. 다들 대비하세요!”

무전 소리가 현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소방관들은 얼른 미즈호텔에서 멀어졌다.

곧 헬기가 미즈호텔 상공에 접근했다.

투다다다!

머리 위를 크게 회전한 헬기는 미즈호텔의 정면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타이밍 맞춰 거대한 물주머니를 터트렸다.

푸와아아악!

엄청난 양의 물이 한 번에 쏟아지며 미즈호텔을 그대로 덮쳤다.

“와아아!”

“시원하네!”

물보라가 얼굴에 가득 튀어 흠뻑 젖어갔다.

그럼에도 태건과 모두는 이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물이 덮치자 활활 타오르던 미즈호텔의 불길이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물론 내부 깊숙한 불길은 아직 잔존했기에 완벽한 진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의 물세례로 외부 불길은 거의 진압됐다.

그 변화에 하남소방관들의 의욕이 하늘 높게 솟구쳤다.

“얘들아, 뚫렸다. 가자!”

“다 꺼뜨려 버리겠다. 아자자!”

우르르.

물러선 모두가 동시에 미즈호텔로 돌격했다.

라텔과 후보대원들은 그 속에 함께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오광휘 단장이 대표로 말했다.

“길 텄으면 됐어.”

“마무리는 저분들이 하셔야죠.”

“그거까지 참견하면 밥그릇 뺏는단 소리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오광휘 단장이 분위기를 잔뜩 잡으며 말꼬리를 늘렸다.

그리고 라텔 무전기를 들며 남은 말을 이어갔다.

띠릭.

“라텔, 상황종료.”

시원하게 상황을 공표한 오광휘 단장이 돌아섰다.

척, 척.

이어서 그를 중심으로 좌우로 태건과 단원들이 나란히 걸었다.

그 뒤를 후보대원들이 따랐다.

그런 모두의 뒤엔 흠뻑 젖은 미즈호텔이 배경처럼 자리해 있었다.

*  *  *

점심 무렵.

출동한 모두가 특수소방단 본부로 돌아왔다.

인원이 부쩍 늘어 두 대의 승합차를 지원 받아 왔다.

처억.

모두가 내려선 그때였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묵직하게 본부 전역에 울렸다.

건물 앞에는 본부 대원들 모두가 나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 박규영 본부장이 흐뭇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무사히 귀환한 모두를 반기는 환영의 순간이었다.

“이거 괜히 찡해지게.”

“뭐 새삼스럽게.”

다들 멋쩍어하고 또 쑥스러워했다.

단원들은 특히나 이런 번잡한 걸 썩 좋아하지 않았다.

태건도 물론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러는 이유에 대해 감이 왔다.

‘정식으로는 첫 출동이었어.’

특수소방단은 최근 엄청난 격변을 겪었다.

그 후에 발생한 실종견 수색은 변화한 시스템 점검을 겸한 예행 출동이었다.

그래서 본 출동은 오늘이 처음인 거였다.

박규영 본부장이 저렇게 마중을 나온 걸 봐도 의미 깊은 순간임을 무시할 수 없었다.

모든 상황을 간파한 태건이 외면하는 모두에게 조용히 말했다.

“분위기 좋은데 깽판 죽이면, 그것도 실례입니다.”

“그건 그래.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서라. 할 땐 화끈하게 하자.”

“네!”

사삭.

흐트러져 있던 모두가 재빨리 오와 열을 맞춰 섰다.

그리고 오광휘 단장을 주축으로 질서정연하게 박규영 본부장 앞으로 향했다.

잠깐 사이 태건은 얼른 환영해주는 대원들을 둘러봤다.

한 명이 빠진 탓이었다.

그 단원은 유중헌이었다.

헬기로 이동한 그는 따로 움직여야 했다.

슥슥.

둘러보던 태건은 곧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저기서 같이 박수 치고 있는 유중헌을 발견한 거였다.

‘저 선배도 참.’

거기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박수치는 유중헌이 황당하기만 했다.

그런 유중헌을 향해 태건은 얼른 손짓해 불렀다.

휙휙.

‘선배, 빨리 와요. 빨리!’

유중헌이 움찔하며 자신을 가리켰다.

스윽.

‘나?’

‘어서 오라니까요!’

태건은 표정과 손짓으로 재촉했다.

이번 현장 출동에 일등 공신이 저러고 있으니 속이 터질 듯 답답했다.

휘이익!

‘선배, 빨리!’

결국 태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크게 손을 휘저었다.

그 협박(?)을 보고야 유중헌은 쭈뼛거리며 스리슬쩍 라텔 대열에 합류했다.

이내 모두가 박규영 본부장 앞에 섰다.

척!

오광휘 단장이 정식으로 보고했다.

“전체 차렷!”

“…….”

팟!

단원들과 후보대원들 모두 정자세로 섰다.

바로 이어 오광휘 단장이 거수경례하며 외쳤다.

“전원 무사 복귀했습니다. 라텔!”

“라텔.”

스윽.

박규영 본부장이 힘찬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았다.

이어서 그는 모두를 넓게 둘러보며 말했다.

“고생한 사람들 붙들고 당장 뭔 얘기를 하나.”

“…….”

“식사 준비해 놨으니 먹고, 씻고, 그리고 한숨 푹 자도록 해. 보고는 그 후에 듣지. 이상.”

박규영 본부장은 간결하게 이 순간을 마무리 지었다.

쿨내가 진동하는 순간이었다.

다들 굳은 얼굴에 미소가 환히 그려졌다.

‘일장연설을 듣나 했는데.’

‘본부장님이 시원한 면이 있다니까.’

모두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으로 번지지 않은데 대한 기쁨이 가득 차올랐다.

놀라운 일은 또 있었다.

본부 대원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살가운 인사도 없었고, 다가올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

처저적.

잰걸음으로 라텔을 지나쳐 그대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태건과 모두는 어떤 이유인지 대번에 눈치 챘다.

‘일단 쉬라고 배려해 주시는 거네.’

박규영 본부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거다.

피곤함이 가득한 지금으로썬 고마운 일이었다.

유일하게 이혜지 행정팀장이 라텔 앞에 있었다.

“모두 고생했어. 얼른 식당으로 이동합시다.”

터억.

문까지 열며 모두를 안내했다.

뭔지 모르게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두는 물론, 태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팀장님께서 안내를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대우를 받는 이 순간을 즐기기 바빴다.

모두의 놀람은 식당에서도 이어졌다.

특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거 뭐야, 곰탕이잖아!”

“이렇게 지쳤을 땐 역시 밥에 훌훌 말아 한술 뜨는 게 제격 아닙니까.”

“잘 먹겠습니다.”

인사와 동시에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후룩, 후룩.

“우와, 국물 예술이다!”

“본부장님, 쎈스 최고!”

“난 처음부터 그 분이 좋았다니까!”

“제가 먼저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들이 앞을 다퉈 아부했다.

이지성이 어이없단 표정으로 말을 툭 던졌다.

“고작 곰탕 한 그릇에 양심을 팔다니.”

“그럼 넌 먹지 마.”

“……음식엔 죄가 없습니다.”

이지성이 바로 꼬리를 내리자 모두가 파안대소했다.

“푸하하!”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 자리가 이어졌다.

잠시 후.

단원들은 옥상 대기소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한결 아니, 엄청 깨끗해진 모습이었다.

태건이 이불을 끌어올리는 그때 오광휘 단장이 물어왔다.

“막내야, 그 녀석들은 어디 자빠져 있냐?”

“숙직실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 알아서 하겠지. 일단 좀 자자……. 드르렁!”

잠깐 침묵 후 오광휘 단장의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이 단원들 모두 그대로 뻗어버렸다.

“커거겅!”

“크헝!”

코 고는 소리가 아주 오케스트라였다.

그들 중엔 태건도 속해 있었다.

“크르렁!”

코가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요란하게 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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