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5)화 (214/320)

215화

같은 시각.

박규영 본부장실에 이혜지 행정팀장이 들어왔다.

탁.

“라텔 전원 휴식에 들어갔어요.”

“혹시 눈치 챈 단원은 없었나?”

“네. 휴대폰으로 뭘 검색할 기력도 없어 보였어요.”

“그래. 이따가 알게 되더라도 지금은 쉬는 게 옳아.”

박규영 본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지 이혜지 행정팀장이 쓰게 말했다.

“무전을 도청 당했단 걸 알면 잠이 달아날 테니까요.”

“나 같아도 기분 나쁠 거 같아. 아니, 기분 나쁜 일이지.”

“그보다 파급력이 적지는 않은 거 같던데요. 어떻게 되고 있나요?”

“방송 채널은 폐쇄 조치됐고, 채널 주인은 긴급체포명령이 떨어졌다더군.”

그런데 말하는 박규영 본부장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걸 눈치 챈 이혜지 행정팀장이 넌지시 물었다.

“뭐가 잘 안 풀리는 게 있나요?”

“방송 캡쳐본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도청된 무전 내용이 벌써 많이 퍼진 거 같아.”

“벌써요?”

“SNS가 소문내는 데에 특화 되어 있으니까. 이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글쎄.”

턱. 턱.

박규영 본부장이 우려 섞인 얼굴로 책상을 반복적으로 짚었다.

한편.

남자숙직실에 후보대원들이 제각각 누워 있었다.

김지수는 여자숙직실에서 따로 휴식 중이었다.

다들 눕자마자 잠들었는지 코 고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드르렁.”

그런 그들 속에서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는 인물이 있었다.

노주민이었다.

액션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업로드 중이었다.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해. 하아암.”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는 걸 보면 편집을 생략하게 될 조짐이 강했다.

눈이 충혈 되어 시뻘게져 있었다.

그럼에도 업로드 되는 걸 꾸역꾸역 지켜봤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고, 뛰고, 날아다녔던 피곤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꾸벅, 꾸벅.

“…….”

서서히 눈이 감기더니 고개를 떨어뜨리며 졸기 시작했다.

스르륵.

결국 노주민은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라텔, 미즈호텔 화재 출동 A TO Z.

-UPLOAD…….

노트북만이 쉬지 않고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무렵이 됐다.

옥상 대기실엔 라텔 모두가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라텔 단원들이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으으.”

“크윽, 으으.”

앓는 소리가 기상 신호처럼 울렸다.

현장에선 긴장한 탓에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긴장을 완전히 놓은 지금은 축적된 아픔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부스럭.

삭신이 쑤신 단원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 몸의 상처부터 살폈다.

“끄응. 종아리를 대체 어디서 부딪친 거야.”

“어깨가 아으으, 안 올라갑니다.”

“허우, 허리야. 파스 좀 붙여주세요.”

퉁퉁 부어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이느라 진땀을 뺐다.

그런 그들을 유중헌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

“단장님, 이거 타박상 여, 연고요.”

“대산 선배, 팔부터 내려요. 억지로 우, 움직이지 말고.”

“야, 이지성, 너는 네, 네가 구급담당인데…….”

조용했던 대기실이 거짓말처럼 웅성거림과 앓는 소리로 물들었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이나 불만을 터트리진 않았다.

현장에서 입은 상처다.

영광이라고 하긴 멋쩍었지만 부끄럽진 않았다.

태건의 몸 상태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꾸욱, 꾸욱.

“손이 왜 이래. 팔도, 쓰읍. 뻑뻑하고.”

퉁퉁 부은 팔과 손을 움직여 조금씩 유연하게 풀었다.

그걸 봤는지 유중헌이 찾았다.

“태, 태건아. 진통제라도 하나 줄까?”

“아니요.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너무 아, 아니라고만 하지 말고 언제든지 말해.”

유중헌의 친절이 유독 과했다.

다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오늘 현장에서 자신만 동떨어져 안전했던 게 미안한 거였다. 그의 포지션상 이 모습이 옳았지만 유중헌은 스스로 마음 무거워했다.

태건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괜히 언급해서 기분 상할 이유가 없었다.

‘뭐…….’

꾹. 꾹.

쓴 미소를 지은 태건은 계속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이내 손이 유연하게 움직이자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공백의 시간이 있어 습관적으로 확인하는 거였다.

몇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가장 먼저 화면에 떠오른 건 친구들의 메시지였다.

-정혜랑, 태건. 내가 친구로서 이런 말이 참 쑥스럽지만……. 짜샤, 존경한다.

-박유신, 태건아. 그 속이 그런 줄 정말 몰랐다. 그냥 다 고맙다.

-김윤재, 인마. 내가……. 아, 됐고. 쉬는 날 연락해. 내가 무조건 술 산다. 알찌?

영문 모를 인사들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이 자식들이 나 빼고 만나서 낮술을 쳐 마셨나.”

갑작스런 연락도 모자라 감사인사를 받으니 황당하기만 했다.

태건은 그 황당함을 다음 메시지에서도 느껴야 했다.

-손미주, 선배 따따봉, 님 좀 짱이신 듯. 와우, 엑설런트!

-유채연, 강태건 선배님, 동아리 장이에요. 재학생을 대표해 감사 인사드려요.

-박수찬. 태건 선배, 오랜만에 뜬금없지? 나 감동 만땅. 선배, 우리 언제 한 번 만나욤.

…….

후배들이 보낸 메시지였다.

친한 후배부터 최근 연락이 뜸해진 후배들까지 우르르 연락이 왔다.

생각지도 못한 연락들이 태건을 멍하게 했다.

“이것들이 단체로 낮술 파티하나.”

한 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정연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오빠, 고생했어. 많이 힘들었지? 앞으로 응석 안 부릴게. 내가 너무 철이 없었어.

너무도 엉뚱한 고백이었다.

태건은 이제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이거 꿈……. 인가?”

뭔가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어보면 될 일이다.

스윽.

결국 휴대폰 들고 일어나며 선배들에게 말했다.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어디다 전화를 해?”

“여친.”

벌컥.

대답한 태건이 대기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뒤에서 단원들의 원성이 강하게 울렸다.

“우우. 출동보고를 여친한테 먼저 하냐!”

“맞다. 막내야. 너 본부장님한테 보고해야지!”

“아무리 여친이 좋아도 일에 우선순위는 챙겨!”

질투와 시샘이 폭발해 대기실이 들썩거렸다.

고개를 돌린 태건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풋. 솔로들이란.”

쿵.

한껏 약 올린 후 대기실 문을 닫았다.

그 속에선 약이 바짝 오른 단원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아우씨, 이 자식을……. 아, 아으윽. 내가 몸만 멀쩡했어도!

-저 자식 다리몽둥이 분질러서 입원시켜!

-입원하면 연미 씨랑 24시간 붙어 있을 거 같은데요.

-그건 안 되지, 절대 안 돼. 그럼 저거 출장 보내. 어디든 보내버려!

대기소가 폭발할 듯 들썩였다.

태건은 그런 선배들의 질투를 뒤로하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섰다.

턱.

“아, 운치 있고 좋네.”

주차된 헬기와 그 뒤에 노을 가득한 우면산이 겹쳐 보였다.

엉뚱한 조합이지만 의외로 멋들어졌다.

그 모습을 감상하며 정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탈칵.

“응, 오빠.”

정연미가 전화를 받자 태건은 부드럽게 첫인사부터 꺼냈다.

“퇴근할 시간이네. 오늘은 별일 없었어?”

“별일은 나한테 찾을 게 아니잖아. 오빠는 어디 다친데 없어, 괜찮아?”

“아, 맞다. 출동한 건 어떻게 알았어?”

태건이 묻자 정연미의 약간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어떻게 몰라.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하긴 그 호텔 화재가 좀 심각하긴 했지.”

“영상만 봐도 알겠더라. 그러니까 오빠랑 다른 분들이 서로 욕하고 싸우고 그랬겠지.”

무심코 대답하던 태건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 욕이라기보다는……. 잠깐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오빠가 막 단장님한테도 소리치던 걸. 오죽 위험하고 급했으면 그랬을까.”

“그게 무슨, 뭔 소린지 도통 모르겠네.”

“몰라? 미즈호텔 출동한 거 영상이 지금 난린데, 잠깐만.”

……띠링.

잠시 침묵이 일더니 링크주소가 메시지로 도착했다.

태건은 그에 대해 물었다.

“무슨 링크야?”

“그 영상, 누가 다 수집해서 순서대로 짜깁기한 거야. 그 영상이 가장 핫해.”

“그으래……. 일단 이거부터 좀 확인할게. 집에 잘 들어가고 조만간 얼굴 보자.”

태건은 최대한 신속하게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뚝.

전화가 끊어짐과 동시였다.

태건이 갸웃거리며 재빨리 링크주소를 눌렀다.

스스슥.

화면이 빠르게 바뀌더니 곧 영상 하나가 재생됐다.

-라텔, 미즈호텔 출동 영상 최종본.

태건은 제목을 보자 느낌이 뭔가 싸해졌다.

“뭐가 최종이란 거야.”

말하기 무섭게 영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화면의 배경이 너무도 익숙했다.

바로 이곳 특수소방단 본부의 훈련장 앞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외침이 스피커를 터트릴 듯 터져 나왔다.

-후보대원들, 신속히 도열합니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황대산과 고수현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이거 후보대원들 훈련할 때잖아.’

그 자리에 있던 태건이라 선명히 기억했다.

정확한 기억이었다.

그 다음은…….

생각이 이어질 무렵이었다.

곧 출동 무전소리가 화면 가득 울렸다.

-띠릭, 지원요청 접수, 라텔 출동!

무전과 동시에 라텔 단원들이 재빨리 뛰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인물이 태건, 자신이었다.

이렇게 화면으로 보니 조금 색다르게 보였다.

“뛰는 폼이 좀 엉망이네.”

이상한 감탄을 흘렸다.

그리고 이 영상을 올린 인물이 누군지 눈치 챘다.

노주민 후보대원.

“피곤해하더니 언제 올린 거지?”

갸웃거리며 좀 더 영상을 지켜봤다.

화면은 싹뚝 잘려 미즈호텔 화재 현장을 비췄다.

그건 액션캠이 아닌 전혀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거였다.

주변에 사람이 가득한 모습부터 달랐다.

-퍼어엉!

보일러 폭발로 인한 굉음이 휴대폰에서 울렸다.

그에 대한 시민들 반응이 생생히 들려왔다.

-꺄아악, 무슨 폭발이야!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저러다 무너지겠어요!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큰일 나겠네, 증말!

두려움과 안타까움 등등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흐음.”

태건은 묵직한 탄성을 흘렸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촬영해 SNS에 공유한 영상을 일부 편집해 넣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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