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7)화 (216/320)

217화

오광휘 단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저도 강 단원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이대로 모른 척 하는 건 좀 아닌 거 같습니다.”

“우선 내가 내일 검찰청에 들어가 대질조사를 할 예정이야.”

“직접 검찰청에 들어가신다고요?”

“내가 책임자 아닌가. 들어가서 검사에게 어필을 좀 해보도록 하지.”

박규영 본부장은 소탈하게 답했다.

그도 내심 원리원칙만 내세우기 찝찝했던 모양이다.

거기에 태건이 넌지시 덧붙여 말했다.

“노주민 대원에 대한 문책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촬영 허가를 내준 게 나야. 그런데 이제 와서 나무라면 안 되지.”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좀 편안하네요.”

태건은 굳어진 어깨를 슬쩍 내렸다.

“후우. 그게 좀 걸렸는데,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의 표정도 한결 부드럽게 변했다.

집무실 분위기도 상당히 밝아졌다.

그때 박규영 본부장이 넌지시 농담을 곁들였다.

“영상을 보고 느꼈는데, 대면보고를 받는 거보다 나은 부분이 있던 거 같아.”

찡긋.

눈짓까지 곁들였다.

익살스런 농담이지만 아예 없는 소리는 아닌 듯 싶었다.

그에 오광휘 단장이 동조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보고서 제출대용으로 딱 인거 같긴 합니다.”

“요즘 소방관들이 개인방송 개설이 늘었다던데, 저희도 공식 계정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넌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오광휘 단장이 브레이크를 걸자 태건이 갸웃거렸다.

“왜요?”

“네 무전에 반은 윽박지르는 거고, 반은 욕이더라. 현장에서 성질머리가 얼마나 유별나신지.”

그 지적에 울컥한 태건이 반격에 나섰다.

“하! 단장님 무전은 뭐 엄청 신사적인 줄 아십니까.”

“내가 뭐, 내가 뭘!”

“야, 자, 너, 인마, 호출명 마음대로 바꾸기 일인자시잖습니까.”

태건이 툭툭 쏘아붙이자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훈계했다.

“어디서 단장이 하는 일에 막내가 태클을 걸어. 씁, 그럼 못 써.”

“네네. 전 욕 밖에 모르는 막내지요. 어디 출동 없나. 단장님한테 무전하고 싶네.”

“뭐 짜샤. 욕하고 싶다고?”

“제가요? 언제요?”

태건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오광휘 단장이 기막혀했다.

“본부장님, 얘 보세요. 이런다니까요!”

“본부장님. 제가 언제 욕하겠다고 한 적 있습니까?”

휙휙!

제 삼자인 박규영 본부장에게 번갈아 물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달란 무언의 부탁이었다.

어쩌다가 가운데 낀 박규영 본부장은 편두통이 일었다.

“왜 내 앞에서 이러는 거야.”

그러나 그의 말은 혼잣말로 전락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대답을 듣지 않고 다시 서로를 헐뜯고 있었다.

“단장님은 그러면 안 되는…….”

“넌 뭘 잘했다고 맨날 나한테…….”

투덕거림이 점점 강해졌다.

그 장소가 어디고 누구 앞인지도 잊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박규영 본부장의 이마에 결국 힘줄이 솟아났다.

빠직.

“둘 다 나가!”

끝내 호통이 울려 퍼졌다.

곧 본부장실 문이 과격하게 열렸다.

벌컥!

그 열린 문으로 오광휘 단장과 태건이 후다닥 나와 다급히 인사했다.

“그럼 이만.”

“실례했습니다.”

인사가 끝남과 동시였다.

쌔앵!

둘 다 잰걸음으로 부리나케 옥상으로 피신했다.

“너 때문에…….”

“단장님이…….”

이 와중에도 다투는 모습이 너무도 그들다웠다.

곧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옥상으로 올라왔다.

대기소 앞에 후보대원들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단원들이 좌우로 오가며 선배 포스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똑바로 섭니다.”

“두 눈 제자리에 둡니다.”

“차렷 모릅니까. 차렷.”

분위기가 뭔지 모르게 험악했다.

바로 다가간 오광휘 단장이 얼른 물었다.

“왜, 뭔데 이래?”

“영상 촬영한 거 허락 받은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태건이 바로 덧붙여 말했다.

그에 대해 황대산이 오광휘 단장에게 먼저 보고했다.

“현장에서 개판 친 거 훈육 중입니다.”

“흐음. 굳이 이 시간에 옥상에서?”

오광휘 단장이 가볍게 물음을 던졌다.

그러자 황대산이 후보대원들을 흘겨보며 언급했다.

“물론입니다. 응급처치 중인 선배를 잡아 패대기친 누군가가 있지를 않나!”

“…….”

흠칫.

김지수가 바짝 얼어붙어 어깨를 떨었다.

좌우에서 고수현과 이지성이 한 마디씩 꺼냈다.

“호스 잡았다고, 선배 재끼고 앞으로 튀어나갔다가 통구이 될 뻔한 누군가도 있고!”

“…….”

후들후들.

송강우의 두 다리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응급처치 중에 집중 못하는 건 어디 누구신지!”

“……헙.”

최성철이 헛숨을 들이켰다.

가만히 들어보던 태건이 갑자기 움직였다.

터억.

이지성의 옆에 서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현장 상황 파악 못하고 뛰어다니다가 자빠진 누구씨도 있네요.”

“…….”

파르르.

느닷없이 언급된 노주민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태건까지 합류해 모든 단원들이 후보대원들을 잡아먹을 기세를 풍겼다.

화르륵.

마치 단원들의 등뒤에 불길이 일렁이는 거 같았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실수일 터였다.

그러나 본인, 나아가 동료, 무엇보다 요구조자의 안전과 연관된 잘못들이다.

그건 얼렁뚱땅 넘어갈 수가 없었다.

모두가 으르렁거릴 때였다.

휙휙.

오광휘 단장이 끼어들어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눈 빠질라, 적당히 노려봐라.”

“단장님. 이렇게 대충 넘어갈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쿠궁.

황대산이 묵직하게 반발했다.

그 순간 슬렁슬렁 하던 오광휘 단장 표정이 싹 돌변했다.

“황대산이, 이게 옳아?”

“아무리 후보대원이라도 현장에서…….”

“내 말은 여기서 이러는 게 맞냔 소리야.”

“네?”

황대산은 물론 모두가 갸웃거렸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천천히 몸을 돌려 후보대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리도록 차갑게 외쳤다.

“후보대원들 전원 교육실로, 이동시간……. 1분.”

“허억. 우, 움직여!”

터더덕.

자신의 편이라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은 후보대원들이 헐레벌떡 움직였다.

그런 그들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아악, 악악!”

“까으으. 뛰, 뛰어야…….”

어그적, 어그적.

마음은 벌써 교육실에 도착했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했다.

다시 돌아선 오광휘 단장이 태건과 단원들에게 쓰게 말했다.

“짜식들아, 다 저녁에 이러면 집합이지!”

“그럼요?”

“교육실에서 현장복기를 한다면서 갈궈야 뒷말이 없을 거 아냐.”

“아하. 역시 우리 단장님.”

처억.

태건과 단원들 모두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합리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건 오광휘 단장이 최고였다.

무엇보다 후보대원들의 교육훈련은 이 순간도 진행 중이었다.

턱. 턱.

이제야 움직이는 라텔 모두의 눈빛에 살벌함이 감돌았다.

그리고 오광휘 단장이 교육훈련의 각오를 내비췄다.

“이 자식들, 감히 현장에서 개판을 쳐? 다 죽었어!”

“우오!”

모두가 소리 높여 동조했다.

곧 교육실에서 현장 출동 복기가 시작됐다.

현장 도착의 순간부터 복귀할 때까지 모든 걸 짚고 넘어갔다.

그에 대한 참고자료도 있었다.

바로 노주민 후보대원이 업로드한 현장 촬영 영상이었다.

탁.

노트북 스페이스바를 거칠게 누른 오광휘 단장이 멈춘 화면을 지휘봉으로 짚으며 소리쳤다.

그 장면은 헬기에 매달려 현장으로 이동하는 장면이었다.

“이거 이거, 이게 뭐야. 이거 말이야!”

“…….”

“아주 멋대로 설쳤네, 그래……. 이거 담당 단원 앞으로.”

윽박지른 오광휘 단장이 바로 바통 터치를 했다.

그 부름에 유중헌이 단상에 섰다.

“에, 어, 그러니까…….”

쭈뼛, 쭈뼛.

성격상 싫은 소리를 쉽게 꺼내지 못했다.

후보대원들은 눈치를 보며 침묵했다.

‘다행이다.’

‘저 선배는 운전 중만 아니면 돼.’

어느새 단원들의 특징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그때 태건이 유중헌에게 다가가 슬며시 뭔가 쥐어줬다.

그건 헬리캠 리모컨이었다.

투둥.

리모컨을 잡는 그 순간 유중헌의 기세가 살벌하게 변했다.

“이런 쓰벌 새끼들, 헬기에 누가 이렇게 대충 매달리라고 했어. 떨어져 뒤지고 싶어 환장했냐!”

“헙, 아닙니다!”

후보대원들이 화들짝 놀라 얼른 대답했다.

동시에 태건을 향한 원망의 눈초리를 슬쩍 흘렸다.

‘때리는……. 말리는……. 에이씨.’

‘태건 선배가 좋은 선배인 줄 알았는데. 으휴.’

그런 후보대원들의 낌새를 눈치 챘는지 유중헌이 더욱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쉐퀴들이 어디서 눈을 굴려, 그냥 확!”

“아닙니다.”

“니들은 다 아니냐. 맞는 게 하나도 없어? 어디 이런 생퀴들이 굴러 들어와서, 앙!”

유중헌은 교육실이 떠나가라 버럭버럭 소리쳤다.

욕이 대부분이었지만 부주의에 대한 잘못을 분명히 명시했다.

“…….”

후보대원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찍소리도 못했다.

현장 영상은 참고용일 뿐이었다.

영상 외에 일어난 일들이 더 많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황대산이 겪은 일이 대표적이었다. 그때 일이 잊히지 않는지 김지수를 물고 늘어졌다.

“김지수, 뭐? 응급의 ABC도 모르냐고?”

“죄, 죄송합니다.”

“짜샤. 누가 FM몰라. 나는 응급처치 교육 안 받았냐고. 상황에 따라 응급처치 방법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잖아!”

버럭버럭.

황대산의 윽박지름이 계속 이어졌다.

지켜보던 태건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선배도 뒤끝 있네.’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지만 정도가 좀 심하긴 했다.

정확히 10분 뒤.

황대산에 대한 평가가 고스란히 태건에게로 향했다.

그것도 모든 단원들의 일치단결한 생각이었다.

‘강태건, 하여간 저 뒤끝.’

‘와, 찍히면 아주 작살나네.’

‘그만 좀 뼈 때려라. 애 순살 되겠다.’

단원들 모두 그렇게 똑같은 생각을 품었다.

그 시선 끝에 태건이 있었다.

태건은 노주민을 잡아먹을 듯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속도 조절 못해서 넘어져? 그것도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그게 아니라 미끄러워서…….”

“물에 젖은 타일이 당연히 미끄럽지. 현장의 지형지물 상태 확인도 안하고 냅다 뛰나!”

“죄송합니다.”

“죄송하지 말고 죄송할 짓을 하지 말란 말이야. 기본 중에 기본인데 왜 그걸 무시하냐고!”

푹, 푹푹.

태건이 내지른 소리가 노주민의 가슴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얼마나 비수를 꽂았는지 노주민은 녹초가 되어갔다.

그리고.

“흐으윽. 흡.”

끝내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태건만 강하게 몰아붙이는 건 아니었다.

고수현도, 이지성도, 심지어 오광휘 단장도.

다 그놈이 그놈이었다.

그런 현장 출동 복기(?)는 밤이 깊어지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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