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18)화 (217/320)

218화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었다.

후보대원들의 영혼까지 탈탈 털릴 즈음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선언했다.

“금일 출동 복기 끝, 다들 해산.”

차수장인 송강우가 벌떡 일어나 선창했다.

“전체 차렷, 경례.”

“수, 수고하셨습니다!”

후다닥.

인사와 동시에 후보대원들은 눈썹을 휘날리며 교육실을 빠져나갔다.

곧 교육실에는 단원들만 남았다.

그릉. 그릉.

어질러진 교육실을 묵묵히 뒷정리했다.

오광휘 단장이 노트북을 챙기며 모두에게 말했다.

“니들이 얼마나 쏘아 붙였으면, 애들이 의자도 내팽개치고 도망가냐.”

그 말에 태건이 가늘게 미소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잔소리한 만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단 걸 알까요?”

단원들이 싱겁게 웃으며 답했다.

“진저리를 치고 있을 걸.”

“몰래 인형 만들어서 바늘 꽂을지도 몰라.”

“울면서 짐 싸고 있을 겁니다.”

“더러워서 안 한다, 막 이러면서요. 큭큭.”

후보대원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꿰뚫어보는 대답들이었다.

태건은 마저 의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이겨내면 같이 하는 거고, 싫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극한까지 몰아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성격도 약간 문제가 있긴 하지.”

“머릿속에 각인 시켜놔야 현장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니까요.”

태건은 소탈하게 대답했다.

다들 그에 대해선 고개만 끄덕였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단원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인 게 아닌가 하며 씁쓸해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육훈련의 1일차가 마무리 되어갔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지도 않은 새벽 우면산이 들썩였다.

파사삭, 파사삭!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후보대원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사삭. 삭.

“커허헉.”

“학학.”

폐가 터질 듯 고통스런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멈출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몰아붙이는 단원들 탓이었다.

“뛰어, 달려, 이 짜식들아!”

“어쭈, 다리 보인다. 더 빨리 안 뛰냐!”

“겨우 이거 뛰면서 뭘 숨넘어가려고 해. 정신 차려!”

어젯밤 교육실에서 씁쓸해하던 게 거짓말 같았다.

심지어 가늘게 미소까지 지었다.

괴롭히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게 분명했다.

어제 출동으로 후보대원들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 점을 누군가 어필했다.

“헉헉헉. 저, 저희가 지금 몸이…….”

“할 말 있으면 똑바로 해!”

“커허헉. 몸이 정상이, 헉헉. 아닙니다!”

끝내 불만을 토로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나란히 달리며 어이없어 했다.

“우린 정상이냐?”

“……헉헉…….”

따진 누군가는 쌜쭉해진 채 숨을 헐떡거렸다.

오광휘 단장은 계속 달리며 모두가 듣도록 크게 외쳤다.

“정상 도착까지 앞으로 3분, 한 명이라도 도착 못하면 전원 한 번 더 산 탄다. 시작!”

“끄아아아악!”

“괜히 말 꺼내, 아아악!”

후보대원들이 이를 악물며 힘을 쥐어짰다.

원망을 쏘아내는 후보대원도 있었다.

그 모든 걸 같이 달리는 단원들이 모두 체크 중이었다.

‘오호, 너. 어제도 반항적이더니……. 오케이.’

‘힘들다고 동료를 탓하다니, 넌 마이너스.’

후보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평가 항목이었다.

그런데 후보대원들을 압박하는 건 단원들만이 아니었다.

하얀 강아지들이 같이 달리고 있었다.

차자작!

-멍멍!

-캉캉!

이순이와 삼식이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후보대원들을 독촉했다.

그 모습은 신병교육대 조교와 매우 흡사했다.

-그거 밖에 못 합니까.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헛둘, 헛둘.

그런 뉘앙스가 풍겨지는 듯했다.

그저 억측이 아니다.

재촉하는 강아지들의 꼬리가 팔랑팔랑 움직였다.

이 순간을 대놓고 즐기고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어제부터 후보대원들에겐 유독 엄격한 모습을 보였다.

그 행동들을 곱씹어보던 태건은 순간 아차 했다.

“우리가 문제네.”

이순이와 삼식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들이다.

그저 태건과 단원들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거였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다.

우면산 등정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라텔에겐 그저 하루를 시작하며 가볍게 뛰는 러닝코스였다.

훈련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후보대원들은 그걸 몰랐다.

훈련장으로 내려온 그들은 사방 군데 널브러져 숨을 급히 헐떡였다.

“헉헉.”

“하악, 하악.”

얼굴이 창백해질 지경이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 태건이 떡하니 다가섰다.

처억.

땀을 쓸고 숨을 가볍게 고르며 부드럽게 물었다.

“후우우. 아침부터 많이 힘들지?”

“학학, 아닙니다!”

“아니라면서 계속 퍼져 있네?”

싱긋.

태건은 환하게 웃으면서 재차 물었다.

분명 밝은 목소리였지만 뜻은 결코 환하지 않았다.

그 순간 모든 후보대원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흠칫.

‘꼰대다.’

‘지상 최대 꼰대.’

섬뜩함을 느낀 모두는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벌떡!

“하악, 헉헉.”

“푸우우. 푸우!”

급히 숨을 고르는 그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설마 라떼까지 나오진 않겠지?’

혹시나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태건은 그런 후보대원들의 기대감을 원 없이 충족시켜줬다.

“나 때는 말이야…….”

“헙!”

“왜 그러지?”

태건이 묻자 헛숨을 들이켠 후보대원들이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크흠. 아무튼 나는 가볍게 러닝 끝나면 선배님들 오시기 전에 교보재 싹 세팅해 놓고 그랬는데…….”

“…….”

“뭐, 그렇다고.”

스윽.

적당히 말을 끊은 태건은 괜스레 창고를 바라봤다.

눈치라는 게 있으면 뭘 해야 할지 알 수밖에 없었다.

“저, 저희가 얼른, 헉헉,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야. 힘든데 움직일 거 없어. 내가 하면 돼.”

“아닙니다.”

“아니기는, 그러면서 그냥 서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갈게.”

처억.

태건이 슬쩍 한 발짝 떼자 후보대원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주, 준비하러 가자!”

“헉헉. 움직여!”

타다닥.

후보대원들은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한 채 창고로 달려갔다.

태건은 슬쩍 반대로 돌아섰다.

이어서 곧바로 두 손으로 얼른 팔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삭삭삭.

“어흐, 내가 봐도 진짜 재수 없다. 진짜 최악.”

자신의 모습을 삼자 입장에서 본 평가였다.

그러나 여긴 소방학교가 아니다.

누가 준비해주고, 도와주는 친절함을 바라는 건 잘못된 거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장비는 스스로 챙기는 게 옳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교육훈련은 분 단위로 빡빡하게 진행됐다.

어제 출동으로 예정된 스케줄이 전부 꼬인 탓이다.

훈련이 누락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미흡한 부분들을 먼저 봤기에 그 부분들을 더욱 몰아붙였다.

대표로 태건이 나서서 지적을 담당했다.

- 악마 조교는 제가 하겠습니다.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진행하는 거였다.

그래서 태건은 각 훈련 때마다 일일이 호명해가며 소리쳤다.

기초체력훈련.

“송강우, 체력이 왜 그 모양이야, 배에 힘 줘!”

“아아악!”

산악구조 모의훈련.

“최성철, 균형 잡아, 균형. 혼자 힘들어?”

“아닙, 아으으!”

건물화재 모의훈련.

“김지수, 뭐하자는 거야. 더 빨리 움직여, 더, 더!”

“하악, 하아아!”

현장 유형별 레펠 진입 훈련.

“노주민, 로프 꽉 잡아, 새꺄. 떨어져 뒤지고 싶어!”

“꽉 잡, 아흑!”

그런 강행군에 후보대원들은 말 그대로 죽어나갔다.

그들의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술술 흘러갔다.

어느덧 오전이 지나 오후가 되었다.

곧 시작될 오후 훈련을 위해 후보대원들이 어기적거리며 훈련장에 다시 모였다.

다들 온몸이 엉망진창이었다.

“오후는 또 얼마나 힘들까.”

“어휴휴.”

상상하니 끔찍한 모양이었다.

그때 10명의 후보대원들 속에서 누군가의 짜증이 들려왔다.

“이건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니야?”

“…….”

“솔직히 돌아서면 훈련, 돌아서면 또 훈련, 몸 상태도 안 좋은데 이러는 건 아니잖아.”

“…….”

그 주인공이 누군지 그들은 바로 알아챘다.

구태여 색출하지 않았다.

대신 차수장인 송강우가 한 쪽을 가리켰다.

처억.

“저기 보고 그런 소리가 나와?”

그쪽으로 향한 표정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후보대원들의 시선 끝에 닿은 건 라텔 단원들이었다.

그들은 벌써 훈련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전 내내 후보대원들과 똑같이 훈련했다.

훈련이 시작되기 전 오전 훈련을 되돌아보며 자체평가들 중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쓴 얼굴로 스스로를 나무랐다.

“산악구조 훈련에서 나무에 로프 묶는 타이밍이 또 늦었단 말이지. 광휘야, 넌 언제 숙달될래.”

태건은 그런 그에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단장님, 수현 선배와 상의해 보시죠.”

“벌써 5번째니까 이러지.”

“10번이고 100번이고 부족하면 보충 수업해야죠.”

“그건 또 그렇지……. 어이, 로프 마스터. 이리 와서 내가 묶는 거 한 번 봐줘.”

스윽.

오광휘 단장이 고수현을 부르며 움직였다.

곧 나무 하나를 붙들고 로프 매듭법을 복습했다.

휘리릭.

“아으, 또 이러네, 난 아카데미 매듭이 왜 이렇게 안 되냐.”

“굵기가 다른 두 줄을 잇는 복합 매듭이니까 쉽지 않은 겁니다.”

“쉽게 다시 좀 알려줘 봐. 족집게 과외를 괜히 하는 게 아니잖아.”

“같은 굵기로 연습하고 차츰 굵기를 바꿔보시라니까요. 한 번에 되는 게 어딨습니까.”

매듭을 앞에 둔 두 사람의 대화가 빠르게 오갔다.

그런 둘의 표정이며 말투는 더없이 진지했다.

그런 반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황대산과 이지성이었다.

황대산이 발끈한 얼굴로 이지성에게 따졌다.

“이지성이, 아까 화재 모의훈련에서 왜 나한테 왼쪽으로 가라고 했어. 오른쪽이었잖아!”

“또 그러신다. 오른쪽으로 사인 보냈잖아요!”

“야, 이게, 이게, 오른쪽이냐!”

휙휙.

황대산이 방향을 손짓하며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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