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그걸 빤히 바라본 이지성이 어이없단 얼굴로 답했다.
“오른쪽이네요.”
“이게 왜 오른쪽이야. 왼쪽이지!”
“그건 선배가 가리키는 방향이고, 제 시선으로 보면 오른쪽입니다. 봐요. 이렇게, 이렇게!”
슥슥.
이지성이 똑같이 손짓했다.
서로 마주보고 있어 미러 효과가 발생했다.
멈칫한 황대산이 직접 이지성을 따라해보며 갸웃거렸다.
슥슥.
“그래. 이렇게, 이건 오른쪽…….”
“아이씨. 그게 왼쪽!”
“이게 왼쪽…….”
황대산이 또 헷갈리자 이지성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건 오른쪽. 어떻게 매번 저걸 헷갈려. 진짜 피곤하네!”
“이 자식이. 넌 뭐 다 잘해? 힘도 없고, 지구력도 개판인 게!”
“구조를 힘으로만 합니까!”
“힘이 있어야 뭘 들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으르렁.
둘이 서로 잡아먹을 듯 날을 세웠다.
태건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 쪽은 말을 못 알아듣고, 한 쪽은 말을 더럽게 안 듣고, 천생연분이야.”
어이없어할 때 유중헌이 슬그머니 다가와 물병을 내밀었다.
“무, 물 마셨어?”
“한 모금 더 마시면 좋죠. 그런데 뭐 궁금한 거 있으세요?”
턱.
태건이 받아들며 묻자 유중헌이 쭈뼛거리며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아까 레펠 지, 진입 훈련할 때, 나 너무 엉망이었지?”
“몇 번 안 해보신 거잖아요.”
“그래도 후, 후보 애들도 보는데 쪽팔리지 않았어?”
유중헌은 자신의 부족함이 라텔 모두에 대한 부족함으로 비칠지를 우려하고 있었다.
태건은 오히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전 멋졌는데요.”
“거, 거짓말.”
“진짭니다. 부족한 게 뭐 창피한 겁니까. 부족한 걸 알면서 노력을 안 하는 게 창피한 거지.”
꿀꺽.
태건은 대답 후 보란 듯이 물을 마셨다.
유중헌은 한 번 더 곱씹어 생각하더니, 이내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 그래. 노력하면 나도 채워지겠지?”
“그럼요. 조종사 충원되면 선배가 당장 현장 뛰어든다고 할까봐 벌써부터 겁나는데요.”
“말이라도, 참.”
“진짭니다.”
태건은 의욕을 잔뜩 불어넣어줬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유중헌의 습득력은 후보대원들보다 낮은 편이었다.
그건 포지션상 이런 훈련을 많이 받지 않아서였다.
스스로도 알기에 부족함을 메우려 더욱 부지런히 훈련 중이다.
그 점을 누구보다 높이 평가했다.
그렇게 라텔 모두는 무작정 후보대원들만 굴리지 않았다.
같이 훈련하고 같이 땀 흘렸다.
후보대원들에게 보여준단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런 시간을 빌려 한 번 더 연습하고 복습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는 거였다.
그 모든 행동이 자발적인 결정이었다.
송강우와 후보대원들이 그런 라텔을 쭉 지켜봤다.
그리고 송강우가 한 마디 했다.
“선배들이 저런데, 우리가 힘들다고 하는 게 말이 되겠어?”
“…….”
“진짜 백 번 본받아도 부족한 선배들이야. 성격 빼고.”
송강우가 경외를 표하며 넌지시 단서를 붙였다.
그 뒷말에 모두 쓰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각자 파악한 성격들을 언급했다.
“단장님은 화가 엄청 많으신 거 같아.”
“지금도 고 선배한테 배우면서 윽박지르고 있긴 하지. 받아치는 고 선배도 보통 아니야.”
“황 선배랑 이 선배는 대놓고 싸우고 있고.”
“성격이 너무 달라도 보통 달라야지. 완전 상극이잖아.”
누군가 시작하자 한 마디씩 툭툭 터져 나왔다.
이어서 마저 언급했다.
“유 선배야 그렇다고 치고, 강 선배는…….”
“됐어. 말하지 마. 성격 이상한 걸로는 무조건 원 탑이야.”
“…….”
끄덕끄덕.
모두가 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태건에 대한 평가만큼은 절대적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살랑살랑.
이순이와 삼식이가 꼬리를 흔들며 도도하게 지나갔다.
그 방향 끝엔 라텔 단원들이 있었다.
후보대원들은 강아지들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말했다.
“쟤들은 왜 훈련하는데 계속 같이 있는 거야.”
“혼나고 있으면 와서 같이 으르렁거리고, 아주 상전이라니까.”
“어쩔 땐 선배들보다 쟤들이 더 얄미워.”
괜히 강아지들을 험담하며 투덜거렸다.
그때 태건이 호각을 불고 외쳤다.
-휘리릭!
“오후 훈련 시작합시다!”
힘찬 외침에 단원들과 후보대원들이 모두 빠릿하게 움직였다.
오후 훈련은 딱 하나였다.
평가 기준에서도 가장 비중이 높은 훈련이었다.
그건 급속강하훈련이다.
어느새 헬기가 우면산 정상 위에 호버링 중이었다.
투다다다.
이내 완전 무장한 소방관이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간다아아!”
등에 얇은 로프 하나가 유일한 명줄이자 생명줄이었다.
의지할게 없어 그대로 추락했다.
속절없이 추락하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 누군가는 낙하 속도를 줄이려 주변 가득한 나무들을 활용했다.
촤자작!
“허어업, 아자잣!”
방화복에 산소통까지 갖췄음에도 날다람쥐 같이 움직였다.
터덩!
이윽고 땅에 안착한 누군가가 방화헬멧과 호흡기커버를 같이 벗었다.
그 누군가는 태건이 아니었다.
바로 고수현이었다.
촤악.
땀을 훔쳐낸 고수현이 헬기를 보며 무전기를 눌렀다.
띠릭.
“핸썸라텔 착지 완료, 아주 퍼펙트 했으!”
스스로 만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헬기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투다다다.
로터음 가득한 내부에 고수현의 무전이 울렸다.
-띠릭. 핸썸라텔 착지 완료. 아주 퍼펙트 했으!
활기찬 그 보고에 태건은 헬멧 무전기를 작동시켜 반발했다.
띠릭.
“노노. 안 퍼펙트 합니다.”
-띠릭. 이 정도면 완벽했지!
“첫 번째 목표 선정이 너무 늦습니다. 아예 정해놓고 뛰라니까요.”
-띠릭. 우씨. 그래도 이 정도 시범이었으면 A급이야. A급!
고수현의 밉지 않은 억지가 들려왔다.
은근히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말 그대로 투정이었다.
그걸 알기에 태건은 그 무전에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대기 중인 이들을 바라봤다.
스윽.
“…….”
후보대원들이 바짝 긴장하다 못해 얼어붙어 있었다.
태건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봐도 별 거 없죠. 그냥 뛰면 됩니다.”
그 목소리는 헬멧 내부 스피커를 통해 귀에 쏙쏙 흘러들어갔다.
그러나 미소 짓는 건 태건 뿐이었다.
“…….”
덜덜덜, 주르륵.
다리를 떠는 걸로 부족했는지 온몸에 식은땀이 한가득이었다.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었다.
태건은 그래도 웃는 낯으로 첫 주자를 호명했다.
“최성철, 뛰어야지?”
“허거덕!”
“포기? 오케이. 그 다음은…….”
태건이 바로 다른 후보대원을 호명하려 했다.
두 번 권할 이유가 없었다.
라텔이 되고 싶은 건 저들이다.
태건은 단 한 번도 라텔이 되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었다.
‘싫다는데 굳이.’
강요할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최성철도 그걸 눈치 챈 모양이었다.
덥썩.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태건을 붙들었다.
“선배님!”
“왜?”
“하, 하, 하, 하겠습니다. 하아알 수 있습니다!”
뭔가 어정쩡한 뉘앙스의 외침이었다.
태건은 단원들에게 했던 거와 정반대로 그를 타일렀다.
“아니야. 자신 없으면 하지 마.”
“할 겁니다!”
“줄 길이 잘못 계산 됐음 바로 끽이야. 그건 개죽음이잖아.”
스윽.
태건은 대놓고 부정적인 가정을 말하고, 심지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까지 했다.
최성철이 모를 리 없었다.
“아, 아으으…….”
덜덜덜.
상상을 했는지 몸의 떨림이 더욱 격렬해졌다.
태건은 그런 그의 어깨를 차분한 손짓으로 다독여줬다.
툭툭.
“괜찮아. 그냥 쉬고 있어. 다음 차례가……. 음?”
밀어내던 태건이 멈칫했다.
턱.
최성철이 태건을 붙든 탓이었다.
공포를 모두 떨친 게 아닌지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뛰뛰, 뛸 겁니다.”
“뭐라고 하지 않는다니까.”
“제가 뛴다니까요. 아씨! 쓰브럴. 저도…….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버럭!
최성철이 악을 썼다.
엄청난 결심을 굳히고 외친 절규였다.
그런데도 태건의 표정은 무심했다.
“그럼 뛰어.”
“네?”
“뛴다며, 뛰라고.”
스윽.
헬기 밖을 가볍게 손짓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최성철이 소리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좋은 일이다.
결심을 굳혀 장하다는 위로와 격려를 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후.
헬기에서 최성철이 뛰어내렸다.
-아아아악!
추락하는 최성철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우면산을 뒤흔들었다.
내려다본 태건이 버럭버럭 소리쳤다.
“손 뻗어, 잡아!”
그러나 최성철은 귀가 닫힌 모양이었다.
옴짝달싹도 못 했다.
-크아아악!
촤자작.
나뭇가지들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추락했다.
이대로는 훈련이고 뭐고 말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최후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촤르륵.
철저히 계산된 로프가 빠르게 풀렸다.
그렇게 풀리던 로프가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졌다.
터엉!
그걸 본 태건이 헬멧 무전기로 물었다.
띠릭.
“최성철 어떻게 됐습니까?”
-띠릭. 얘 눈 뒤집어졌는데 어쩌냐.
“그럴 거 같더라니. 대충 풀어서 옆에 눕혀 주세요.”
-띠릭. 롸져.
고수현의 대답이 들려왔다.
스윽.
아래를 보자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기절한 최성철을 풀어내고 있었다.
같이 보고 있었는지 유중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케케케, 눈물, 콧물, 다 짜더니 기절까지. 그랜드슬램이네.
당사자가 들었다면 얄미울 이죽거림이었다.
태건은 다시 대기 중인 후보대원들을 바라봤다.
“자, 다음은 누구지?”
싱긋.
태건의 얼굴엔 어떤 동요도 없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 모습이 보는 시각에 따라선 더없이 사악하게 느껴졌다.
“…….”
덜덜덜.
남은 세 명의 후보대원들은 서로를 붙든 채 온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