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그런 그들도 결국 용기를 쥐어짜 뛰어내렸다.
휙.
-끄아아아!
휙.
-끼야아으아!
떨어지는 족족 비명소리가 우면산을 울렸다.
헬기 속에서 무심히 내려다보는 태건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선배들이 대단한 거였네.”
새삼 단원들이 다시 보였다.
각 분야의 최고봉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우석진 전 정책과장의 말이 지금 피부로 와 닿았다.
그렇다고 태건은 결코 후보대원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이 정상이다.
‘그럼 우리는……. 업스톤칠드런즈(상돌아이들)?’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엉터리 영어로 대충 흘려 넘겼다.
그렇게 2일차 교육훈련이 흘러갔다.
다음날.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후보대원들은 각자 짐을 챙겨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 앞엔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박규영 본부장이 중앙에 서 있었다.
차수장인 송강우가 경례하며 보고 했다.
“라텔 2기 선별 교육훈련 1차수 퇴소를 명받았습니다. 라텔!”
“라텔. 다들 고생 많았습니다. 결과는 2차수 훈련까지 진행 후 개별통보 될 예정입니다.”
“네!”
“라텔 합격 여부를 떠나, 이번 교육훈련을 통해 스스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짝짝.
축사를 마친 박규영 본부장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오광휘 단장과 태건, 그리고 단원들도 같이 박수치며 한 마디씩 건넸다.
짝짝짝.
“고생들 했다.”
“조심히 돌아가.”
“볼 수 있음 또 보고, 아님 현장에서 보자.”
단원들의 인사말이 다소 삭막했다.
워낙 이렇게 어울리는 재주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응원의 마음까지 삭막한 건 아니었다.
투박하게 건네는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렇게 퇴소식이 마무리됐다.
다들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
후보대원들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축축해지는 거 같았다.
“자자, 인사 끝났으면 각자 갈 길 가자.”
오광휘 단장이 크게 외쳐 재촉했다.
괜히 신파로 흘러가는 분위기를 미연에 방지하는 거였다.
태건과 단원들도 그런 흐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뭘 쳐다보고 있어.”
“후딱후딱 가자. 우리도 좀 쉬게.”
휙휙.
손짓까지 하며 밀어냈다.
이내 몇몇 후보대원들이 돌아섰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듣기 좋은 말을 건넸지만 몸은 주차장 쪽으로 벌써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우리도 들어가야죠.”
태건이 돌아서며 단원들에게 말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태건의 어깨를 잡아챘다.
턱.
“너 나 좀 따라와야겠다.”
“또 왜요?”
“또라는 건 제 발 저린단 표현이지.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고 살아라.”
“다른 분이라도 문제성 발언이지만 단장님에게 들으니 더욱더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태건의 차진 반응에 오광휘 단장이 울컥했다.
“하여간 뭐 하나 곱게 넘어가는 법이 없냐.”
“그러니까 왜 부르시는데요.”
으르렁.
둘 다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바로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났다.
그런 두 사람 옆으로 누군가 다가섰다.
척.
“저, 저기…….”
당혹감 가득한 목소리였다.
스윽.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동시에 돌아봤다.
거기엔 송강우와 최성철이 서 있었다.
“크, 크흠.”
민망한지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눈썹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뚱한 얼굴로 오광휘 단장이 먼저 물었다.
“니들은 왜 안 가고 부르는 건데?”
“감사하단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고맙습니다.”
꾸뻑.
둘 다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좀 갑작스러웠다.
그게 의아한 태건은 오광휘 단장에게 물었다.
“쟤들만 따로 밤에 불러서 야식 사주셨습니까?”
“먹으면 나 혼자 먹었겠지.”
“그러니까요. 그런데 뭐가 고맙단 걸까요?”
“그러게. 진짜 이래도 되나 싶게 굴렸는데, 특히 네가.”
찌리릿.
둘은 이 와중에도 한 마디씩 디스했다.
송강우와 최성철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알아서 답했다.
“이천에서도, 하남에서도 도움 많이 주셔서요.”
“저희 때문에 현장에서 화도 많이 내시고, 죄송하기도 하고요.”
“언제 다시 뵐지 몰라서…….”
“꼭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둘이 번갈아 한 마디씩 했다.
그런 그들의 말투며 분위기가 상당히 진지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바로 눈치 챘다.
스윽.
서로를 향한 디스의 시선을 거두고 제법 진지해졌다.
오광휘 단장이 헛기침을 하며 먼저 말했다.
“크흠. 어이, 송바보, 최멍청.”
“네?”
“그래. 너희들.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니냐.”
“무슨…….”
둘이 의아해 하는 순간 태건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현장에서 누가 돕고, 누굴 도운 게 어딨어.”
“그래도 저희가 모자라서 방해된 부분들도 있고…….”
“우리도 부족해. 아직 한참 멀었어.”
“…….”
둘 다 침묵했다.
뭔가 한 마디가 더 필요한 표정들이었다.
그걸 직감한 태건이 이어서 말하려는 찰나였다.
“그…….”
터억.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짚으며 대신 나섰다.
“니들 훈련할 때 뭐 했냐?”
“네?”
“태건이가 왜 입 아프게 소리쳤겠어.”
“……아!”
잠시 지난 훈련을 곱씹던 둘이 탄성을 자아냈다.
힘들었던 기억만 가득했다.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이제와 떠올리니 태건의 외침이 남아 있었다.
-송강우, 체력 봐라. 체력!
-최성철, 집중해. 하나만 봐!
답답해서 반복해 지적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그에 대해서 태건이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부분들을 좀 더 채우면 좋을 거 같아서 잔소리한 거지.”
“그런 거였다니…….”
“내 눈이 정답은 아니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하나는 얻고 가야할 거 같아서.”
“…….”
송강우와 최성철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스케줄대로 흘러간 게 아니란 걸 이렇게 듣고야 알게 된 게 부끄러운 거였다.
그런 두 사람에게 태건이 슬쩍 한 마디 덧붙였다.
“뭐, 시간 관계상 대충 넘어간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
“그건 저희가 라텔이 되면 채워주실 거 아닙니까.”
송강우가 뜬금없이 툭 내뱉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응?”
“잉?”
그런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성철이 뻔뻔하게 말했다.
“짐 싸 놓고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니들 마음대로?”
“마음대로 해도 되면 당장 내일 들어오겠습니다.”
반짝반짝.
최성철은 물론이고 송강우도 눈빛을 반짝였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도 참 엉뚱했다.
오광휘 단장은 대놓고 통보하는 게 어이가 없어 물었다.
“라텔이 뭐가 좋다고.”
“선배님들이 계시잖습니까.”
“우리? 알수록 피곤해지는 성격들이야.”
“그래도 알아가고 싶습니다. 저희를 합격시켜 주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당찬 포부를 강하게 어필했다.
그 용기가 가상하게 보일 법했다.
그러나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시답지 않은 소리 말고 그만 가라.”
“질척거리는 건 딱 질색이야. 쿨하게 살자.”
딱 잘라 밀어냈다.
의외로 둘 다 바로 순응했다.
“네. 그럼 연락 주십시오.”
“정말 꼭 같이 함께하고 싶습니다.”
꾸벅.
깊이 인사하고 그대로 떠나갔다.
태건이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쿨하게 가네요.”
“쟤들 괜찮겠냐. 현장에서 불속으로 뛰어들라면 뛰어들 거 같은데.”
“아직 확정 아닙니다.”
“총평이 남았고 2차수도 남았지. 다시 볼 거 같지만.”
오광휘 단장은 어느 정도 확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사실 태건도 다르지는 않았다.
‘현장에서도, 훈련에서도 자꾸 눈에 밟히긴 했어.’
그렇게 속으로 읊조렸다.
그러던 태건의 눈길을 사로잡는 모습들이 있었다.
우선 황대산과 김지수였다.
“거, 내가 말이 좀 심했다면, 크흠, 미안하고…….”
“아닙니다. 저도 그때 실수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합류시켜 주세요.”
“뭘 아직 그걸 생각……. 뭐라고?”
“다음 출동 나갔을 땐 선배님이 제 어깨를 잡아당기시면 쌤쌤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라텔로 뽑아주세요.”
김지수의 결론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원치 않게 엿들은 태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김지수도 진짜 엉뚱한 애야.’
그런데 그 엉뚱함이 빛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었다.
노주민이었다.
다른 쪽에서 유중헌과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헬기 아래에 광각카메라를 달아서 지원팀에 실시간 화면 전송시켜서…….”
“그, 그게 나쁜 생각은 아닌데…….”
“또 무전기 말입니다. 선배님이 개조한 걸 잠시 살펴봤는데, 제 생각에는…….”
노주민이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뭔가 강하게 어필했다.
거리가 멀지 않아 태건도 들었지만 곧 갸웃거렸다.
‘무전기 기판이 어쩌고, 플러스가 어쩌고. 대체 뭔 소리야.’
기계적인 내용이라 알아듣지를 못했다.
신기하게도 유중헌은 고개를 끄덕이고 또 틈틈이 자기 생각도 말했다.
이상한데서 둘이 대화가 통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태건이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턱.
오광휘 단장의 묵직한 손길이 어깨에 닿았다.
“뭐하냐, 본부장님 호출을 그새 까먹었냐?”
“아니요. 좀 둘러봤습니다.”
“신기하지. 다시 볼 사람하고, 다시 못 볼 사람하고 딱 나뉘는 게 말이야.”
가볍게 말했지만 가볍지 않은 의미였다.
아직 떠나지 않은 후보대원들은 모두 4명이다.
처음부터 눈길을 끌었던 그들만 끝까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태건은 섣부른 확답을 말하지 않았다.
“결론은 나중에.”
“그래. 일단 남은 뚜껑까지 열어보고 판단하자.”
“들어가시죠.”
스윽.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함께 본부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