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21)화 (220/320)

221화

잠시 후.

두 사람은 회의실에 자리했다.

그 자리에는 박규영 본부장 뿐 아니라 이혜지 행정팀장, 김여훈 지원팀장도 함께였다.

각자 얼굴을 숙이고 서류를 검토 중이었다.

이번 1차수 후보대원들의 체크리스트였다.

훈련부터 생활태도까지.

그 채점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했다.

-미루지 말자.

언제 출동이 걸릴지 모르는 터라 할 일은 그때그때 하자는 주의였다.

“…….”

사각, 사각.

조용한 가운데 필기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곧 모든 서류가 박규영 본부장 손에 취합됐다.

그에 대한 결과도 바로 발표됐다.

“그럼 1기 합격인원은 이렇게 네 사람이 될 거 같군. 혹시 추가할 인원 있나?”

스윽.

박규영 본부장의 시선이 라텔에게로 향했다.

그가 언급한 네 명은 예상대로 송강우, 최성철, 노주민, 김지수였다.

꼼꼼히 체크하고 결정된 거라 더 나눌 의견은 없었다.

오광휘 단장이 바로 답했다.

“저희는 더 없습니다.”

뒤따라 행정팀장과 지원팀장이 차례로 답했다.

“행정도요.”

“지원도 같습니다.”

박규영 본부장이 마지막으로 합격자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사락.

“그럼 그렇게 결정짓도록 하지.”

그 말로 중역회의는 짤막하게 마무리됐다.

회의는 끝이 났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규영 본부장이 그 이유를 말했다.

“어제 대질조사는 잘 마무리됐어.”

“잘 됐다고 하시면…….”

“서정민 씨가. 음. 감청한 사람 이름이야.”

언급한 이름을 각자 수첩에 가볍게 메모했다.

삭삭.

“서정민 씨요.”

“나이는 강 단원하고 동갑이더군. 취준생이고.”

간단한 정보부터 언급했다.

그 정도 정보는 있어야 다음 말을 이어가기 편한 모양이었다.

“…….”

사삭.

다들 알아서 메모했다.

태건도 똑같이 메모하며 말했다.

“영상으로는 어려 보이던데……. 그보다 얘기가 어떻게 됐습니까?”

“서정민 씨 전공이 무선통신분야였던 모양이야. 꽤 오랜 취미였고, 그에 대한 증인과 증거들도 차고 넘쳐.”

“그리고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지. 서로 까칠하게 대할 사이는 아니니까. 하지만…….”

박규영 본부장이 쓴 얼굴로 말꼬리를 늘렸다.

바로 눈치 챈 태건이 나지막이 물었다.

“검사 의견은 다르답니까?”

“담당검사는 조금 어렵다고 보고 있어.”

“어렵다면 어느 정도 형량이 예상된답니까?”

“1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 원 정도 벌금이 예상된다고 해.”

대답을 들은 태건이 눈에 힘을 주며 반발했다.

“악의적인 용도도 아니고, 고의적인 것도 아니잖습니까.”

“나도 그 점을 어필했지. 하지만 공무집행방해란 부분을 묵과할 수가 없다더군.”

“흠.”

태건이 묵직한 탄성을 자아냈다.

옆에 있던 오광휘 단장이 살짝 목소리가 올라갔다.

“누가 피해를 입은 건 아니잖습니까. 무전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요.”

“이번에는 그렇지만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단 보장이 없다고 해.”

“그건 너무 비관적인 입장이라고 봅니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이 또 우리 무전을 해킹하겠습니까.”

오광휘 단장은 딱딱한 잣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에 대해서 태건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예 일리 없는 소린 아닙니다.”

“너 갑자기 왜 그쪽으로 급회전 하냐. 유턴해, 짜샤.”

“현실이 그렇단 겁니다. 모방 사례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요.”

태건의 의견에 오광휘 단장 표정이 좀 더 굳어졌다.

“그렇게 치면 무전을 방해한단 보장도 없잖아.”

“방해하지 않는단 보장도 없고요.”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말이 왜 자꾸 그쪽으로 가!”

오광휘 단장이 결국 짜증을 뿌렸다.

태건은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수더분하게 반응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단 겁니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있자고?”

오광휘 단장이 뾰족하게 반응했다.

유독 예민한 반응이었다.

찌리릿.

눈빛까지 날카로웠다.

태건이 정말 노선을 바꿨다고 오해하는 시선이었다.

“…….”

다른 팀장들의 눈빛도 안 좋게 변해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말 역적으로 몰릴 거 같았다.

난처해진 태건이 바삐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었다.

불쑥.

이예지 행정팀장이 퉁명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강 대원, 나 좀 실망이야.”

“행정팀장님. 제 말은…….”

“무전 영상이 퍼진 후로 전국에서 택배가 쏟아져 들어오는 거 강 단원도 알잖아.”

툭 쏘아붙이자 태건은 얼른 수긍했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한 차 가득 들어오던데요.”

“내 말이. 그거 취합하고 분류하느라 행정업무 마비될 지경이야.”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태건이 다시 이어서 말하려 했다.

그러나 이혜지 행정팀장의 말이 또 빨랐다.

“국민들이 정성껏 보내주신 선물들이 그렇게나 많단 거야.”

“저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그렇게 된 게 서정민 씨 덕분이잖아. 우리가 도움을 드리진 못할망정, 훼방을 놓으면 안 되는 거잖아.”

이혜지 행정팀장은 타이르듯이 말했다.

정말 오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난처해졌다.

‘이거 참.’

그게 아니란 걸 이제라도 말해야 했다.

그러려는 찰나, 김여훈 지원팀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혜지 행정팀장을 적극 지원하는 말을 꺼냈다.

“우리는 출퇴근하잖아. 그래서 온몸으로 와 닿는 부분이 있어.”

“어떤 부분이요?”

“우리 애가 초등학생인데, 요즘 매일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시달린대.”

그 말을 들은 태건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달린다니, 괴롭힌답니까?”

“아주 징하게 괴롭히지. 아빠가 지원팀장이니까 라텔 사인 받아다 달라고 말이야.”

“에? 에이, 그건 좀…….”

살랑.

태건은 가볍게 손을 저으며 오버라고 치부했다.

그 정도로 와 닿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김여훈 지원팀장은 진심인 모양이다.

구우우.

표정까지 굳히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집 애들도 비슷하대. 심지어 미혼인 대원은 자식도 아니고 조카들이 전화 온다더라.”

“소방체험관에 유치원생들 견학 예약 문의가 빗발친대.”

이혜지 지원팀장이 얼른 끼어들었다.

번갈아 말하는 그들 표정이 너무도 진지했다.

티끌만큼의 덧붙인 말도 없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솔직히 놀랐다.

그렇게까지 이슈화 되고 있는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자꾸 말이 끊겼단 사실조차 잊을 정도였다.

“정말 그 정도라고요?”

“우리는 잘 모르겠던데.”

오광휘 단장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24시간 무한대기 중이라 외부활동이 극히 적었다.

그런 근무환경으로 인해 확실히 체감하지 못한 부분이 컸다.

팀장들은 눈꼬리를 내리며 한 마디씩 더했다.

“난 강 단원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고, 좋은 쪽으로 봤으면 좋겠어.”

“태건아. 이 형이 좀 더 살아보니까 더불어 살아가는 게 최고더라.”

오해를 아예 확신으로 굳히고 타이르기까지 했다.

태건은 너무 기가 막혀 억울하지도 않았다.

“본부장님께 구제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게 접니다.”

“응?”

흠칫.

팀장들 표정이 대번에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때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박규영 본부장이 증언을 해줬다.

“맞아. 그날 밤에 나한테 직접 말했어.”

“…….”

팀장들은 아차했는지 입이 꾹 다물어졌다.

태건은 살짝 억울함을 표현했다.

“그걸 말할 시간도 안 주시는 건 반칙이죠.”

민망해진 팀장들은 얼른 사과했다.

“큼, 큼. 미안.”

“너무 앞섰나 봐.”

머쓱한 표정으로 몸 둘 바를 몰라했다.

태건은 오히려 수더분하게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이런 걸로 섭섭해할 사이는 아니잖습니까.”

“그렇지? 이해해줘서 고마워.”

“대신 다음엔 좀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웃는 얼굴로 한 번 더 짚었다.

그런 태건의 뒤끝에 팀장들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흠, 흠.”

“크험.”

괜히 헛기침만 흘렸다.

오광휘 단장은 태건을 슬쩍 흘겨봤다.

“하여간 꼭 한 번 더 찍어보는 습관이 있다니까.”

“억울하니까요.”

“알았으니까, 해결책이나 내놔 봐.”

처억.

오광휘 단장은 아예 맡겨놓은 사람처럼 당당히 손을 내밀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오해하게끔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뻔뻔함으로는 무조건 원 탑이었다.

태건은 고개를 돌려 박규영 본부장에게 물었다.

“서정민 씨 말입니다. 변호사는 없습니까?”

“국선변호사가 도움을 주고 있어.”

그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 번뜩 생각이 스쳤다.

띵!

돌연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아니겠죠?”

“전혀 아니라고는 볼 수 없겠지.”

“참 더럽네요.”

태건의 입에서 험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기왕이면 다 같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진행하는 게 어떨까요?”

“쉽게 말하자면, 국선변호사가 무슨 힘이 있겠나.”

박규영 본부장이 씁쓸한 얼굴로 흘려 말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눈에 불을 켜며 책상을 내리쳤다.

쾅!

“이런, 쓰블. 유전무죄, 무전유죄!”

잔뜩 흥분해 콧김이 팍팍 뿌려질 정도였다.

이혜지 행정팀장과 김여훈 지원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돈 모아서 변호사 선임하면 안 되나요?”

“아예 기자들한테 뿌려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어떤 정의로운 변호사가 나서지 않겠습니까?”

박규영 본부장은 그런 모두를 차분하게 타일렀다.

“자자, 흥분들 가라앉혀. 무조건 단정 짓는 건 좋지 않은 습관이야.”

그 말은 좌중을 더욱 들끓게 했다.

“본부장님, 상황이 너무 뻔하게 흘러가잖습니까.”

“누구는 잘못해도 뒷공작으로 형량이 뚝 떨어지던데요.”

“재판까지 가는 자체가 문제 아닙니까. 이건 백번 양보해도 집행유예감이죠!”

다들 감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반면 태건은 덤덤하면서 조용했다.

“…….”

그 침묵에 오광휘 단장이 얼른 채근했다.

“라면아,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지금 입 다물고 있으면 안 되는 거라고!”

“이런 경우라면 검사가 원리원칙을 준수한다고 봐야죠.”

태건이 짚어서 말했지만 오광휘 단장은 이미 감정이 너무 앞서버렸다.

“너 또 핸들 멋대로 틀래?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짱짱한 변호사라면 뒤집을 수 있단 거잖아.”

“그러니까요.”

“아이씨, 그게 대체 뭔 말인데!”

오광휘 단장의 짜증이 더욱 날카로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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