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23)화 (222/320)

223화

그 후로 이틀이 빠르게 지나갔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놀랍게도 서정민 사건에 대한 행정처분이 공개됐다.

-1. 피고인을 기소유예에 처한다.

-2. 피고인이 초범이고, 깊은 반성의 태도로 수사에 적극 협조하였으며, 고의성이 없는…….

행정처분 사유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이유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명시된 내용이 중요했다.

기소유예.

범죄를 저질렀으나 처벌은 하지 않는 처분이다.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 짓는단 의미였다.

“됐어!”

확인한 태건은 얼른 단원들에게 향했다.

타다닥.

한달음에 달려간 태건은 대기소가 터지도록 소리쳤다.

“정민씨 기소유예랍니다!”

“…….”

TV를 보던 모두가 조용히 고개 돌려 바라봤다.

뚱한 표정들이 썩 달갑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태건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에 살짝 뒷골이 당겨왔다.

“또 뭔데요. 또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소식 느린 죄.”

“네?”

“이리 와서 얼른 이거나 봐.”

휙휙.

오광휘 단장이 손짓하며 재촉했다.

‘뭐지?’

의아한 그때 TV 소리가 들려 왔다.

-지금 서정민 씨가 나오고 있습니다.

서정민?

‘그럼 검찰청?’

멈칫한 태건이 얼른 TV로 다가갔다.

휙.

TV를 보자 검찰청 현관으로 서정민이 걸어 나오는 장면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그를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카메라만 수 십 대였다.

들어갈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만큼 다수의 시선들이 이 일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와우.”

“쉿, 조용히.”

이지성이 흘겨보며 눈치를 줬다.

“…….”

태건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옆에 앉았다.

곧 서정민이 준비된 자리에 멈춰 섰다.

너무 많은 카메라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런 그에게 두부를 들고 다가가는 인물이 있었다.

그 상대를 본 단원들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부장님?”

“저 분이 왜 저기서 나와?”

“부업으로 두부 장사하신 답니까?”

눈으로 보는데도 머릿속에 인지가 되지 않는 황망한 순간이었다.

‘엄연히 따지면 두부 먹을 일은 아닌데.’

생각은 그랬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 모두의 놀라움과 별개로 곧 서정민이 소감을 말했다.

-제 그릇된 행동을 넓은 마음으로 선처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누구보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인 라텔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탄원서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앞으로 라텔을 제 한 몸 부서져라 지원하며 이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 후로도 서정민은 소감을 이어갔다.

그러나 태건과 단원들은 모두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헛 게 보이더니, 이젠 헛 게 들리는 건가?”

“제 귀도 고장 난 거 같습니다.”

갑자기 같이 일하게 된단 소리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이지성이 특유의 말투로 꼬집어줬다.

“굴러온 아저씨가 두부 배달 간 게 아니라, 두부로 꼬신 거 같네요.”

“사탕도 아니고 두부로?”

“저 나이면 사탕이라도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이지성이 툭툭 쏘아붙여 답했다.

그런 그의 자극적인 언변으로 인해 상황은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특채란 거네.”

“라텔 외에 인사권이야 본부장님 손에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뭐 무전 도청할 현장 있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태건이 불쑥 한 마디를 끼워 넣었다.

“그 실력으로 깔끔한 주파수를 찾아낼 지도 모르죠.”

“무전이 깔끔해지면 좋지.”

끄덕끄덕.

이상한 부분에서 다들 납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왜 납득하는 진 모르는 표정들이었다.

반면 태건은 화면 속 박규영 본부장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 분 그릇이 크긴 커.’

서정민의 기술과 국민들의 호감을 동시에 살 수 있는 기획적인 결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적을 동지로 맞이한 거다.

그 자체가 배포가 크단 증거였다.

그리고 서정민.

‘평범하진 않지.’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가 한 명 더 특수소방단에 합류한다.

라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솔직히 궁금했다.

곧 생중계가 끝났다.

화젯거리가 사라지자 하나둘 TV를 떠나기 시작했다.

태건도 자리를 뜨려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카톡.

메시지 도착음에 확인해보니 강주미였다.

-강주미, 거긴 이상한 사람들만 일하는 데야?

TV 생중계를 본 모양이다.

태건은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토도독.

-강태건, 너 언제 한국 들어왔냐?

-강주미, 어제 저녁. 중요한 일이 끝난 거 같은데 커피 한 잔 타 줄 수 있어?

-강태건, 기프트콘 보낼게.

-강주미, 누가 돈 없어서 커피 타령하냐. 본부로 초대한다며, 애들이 얼마나 푸시하는 줄 알아?

강주미가 언급하자 잠시 잊고 있던 약속이 떠올랐다.

“아, 맞다……. 단장님. 혹시 내일 면회 될까요?”

태건이 바로 묻자 단원들이 어이없어 했다.

“여기가 군대냐.”

“너 설마 연미 씨를 아예 여기로 초대한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그 정도 무개념은 아닐 겁니다.”

선배들이 말로 툭툭 건드렸다.

그 다음에야 오광휘 단장이 답했다.

“출동 걸리지 않으면 상관없다만, 누가 오는데?”

“동생이랑 친구들이요.”

“아, 그때 말했던 그 스튜디어스들. 오오. 진짜 오나보네. 오시라고 해.”

오광휘 단장은 너무도 수더분하게 허락했다.

아직 마음속 아픔이 짙게 남아 있는 표정이었다.

반면 다른 단원들은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

지금까지 태건에게 했던 모든 언행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들을 본 태건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들 별로 좋지 않으신 모양이네, 오지 말라고 할까.”

슬쩍 말을 던짐과 동시였다.

후다닥!

쏜살같이 달려온 단원들이 손까지 내저으며 외쳤다.

“아니야. 오시라 그래. 어렵게 시간 잡았을 텐데 바람 맞추면 안 되지!”

“대산 선배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죠.”

“수현 선배 말씀에 한 표.”

“나, 나도.”

조용하던 유중헌까지 은근슬쩍 한 발을 얹었다.

그러나 이대로 호락호락 수락할 태건이 아니었다.

“다 좋은데, 요즘 제가 너무 잘못을 하고 있는 거 같아서 동생에게 보여주기가 좀…….”

그 말에 다들 펄쩍 뛰었다.

“누누누, 누가 그런 엄한 소리를 지껄여. 우리 강태건이가 뭘 잘못해!”

“저는 아닙니다. 언제나, 늘, 모든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는 태건이를 항상 존경해 왔습니다!”

“태건아 나도 아니야. 내 말투가 좀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 거지. 너한테 뭐라고 한 거 절대 아니야.”

이지성까지 얼른 부정했다.

그 다음으로 유중헌이 급발진했다.

“나, 나는……. 아이씨. 말 더럽게 안 나오네. 강태건, 내가 많이 의지하는 거 알지. 넌 그런 녀석이야!”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운전대를 잡은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런 단원들이었지만 태건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도 반응이 영…….”

“도대체 어떤 누구야. 어떤 놈이 우리 강태건이가 말하는데 반응이 개판이야!”

황대산의 따가운 목소리가 대기소를 들썩였다.

그 어이없는 모습이 계속 되자 오광휘 단장이 한 소리 했다.

“아이고, 한심한 놈들아.”

“단장님이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솔로로 이 날까지 살아봤어요?”

“그걸 말하냐. 휴대폰 뺏어서 니네가 답장 보내면 될 걸 뭘 절절매고 난리야.”

후비적.

오광휘 단장은 심드렁하게 소스를 던져줬다.

그 말과 동시였다.

피잉!

태건을 향한 절절한 눈빛이 대번에 날카롭게 돌변했다.

“흐, 흐흐. 강태건이.”

“선배들 가지고 노니까 좋디?”

“우리 태건이, 휴대폰 좀 줘 봐.”

처억.

스산한 얼굴로 대놓고 손을 내밀기까지 했다.

그걸 본 태건은 위험을 감지했다.

“어허, 왜들 이러십니까. 오지 말라고 해요?”

“흐흐. 해봐. 어디 한 번 해봐.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오지 말고, 거기서 말씀들 하시죠.”

회심의 협박이 통하지 않자 태건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수적으로 너무 열세였다.

그런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단원들이 아니었다.

“휴대폰부터 내놓으라니까.”

스윽.

거친 손길들이 휴대폰을 낚아채려 사방에서 다가왔다.

태건은 재빨리 몸을 피하며 외쳤다.

“……튀어!”

타다닥!

“저 자식, 어딜 튀어!”

“뭐합니까. 잡아!”

우르르.

단원들이 곧바로 뒤쫓았다.

그런 엉망진창인 대기소 모습에 오광휘 단장이 결국 버럭 소리쳤다.

“이 자식들아, 하루라도 좀 곱게 넘어가자!”

소소한 바람을 말했지만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  *  *

다음날 아침.

특수소방단 본부는 화사하게 재탄생했다.

본부 전역이 쓰레기가 아니라 먼지 한 톨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옥상의 대기소는 더 했다.

깔끔하다가 못해 광채가 반짝였다.

은은하게 풍기던 퀴퀴한 냄새는 짙은 향기로 바뀌었다.

심지어 헬기도 반짝반짝 윤이 났다.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하루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태건은 현관에서 전체적으로 둘러보며 황당해했다.

“선배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때마침 옆을 지나가는 지원팀 강영직 대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30대 초반으로 은테 안경에 반듯한 인상이었다.

“태건아, 오늘도 좋은 아침이지?”

스윽.

그는 밝게 인사하며 지나쳐갔다.

반면 태건의 표정은 얼떨떨함으로 가득했다.

“네? 에, 네……. 저 선배가 또 웃었어.”

원래 강영직은 FM의 정석이라고 할 만큼 늘 비장하고 날이 서 있는 성격이었다.

게다가 기동복을 얼마나 다렸는지 스치면 베일 거 같았다.

얼마 전부터 계속 저랬다.

오늘 유독 심한 거 같았다.

변화는 그에게만 찾아온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대원들, 그중에서도 특히 솔로 남자대원들의 극단적인 변화가 눈에 띄었다.

서로를 보며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너 오늘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 하나 바꿨을 뿐인데. 그러는 그쪽은 미용실 다녀오셨나?”

“원래 이 스타일이야.”

찌릿.

스쳐 지나가며 끝까지 주시하며 날카롭게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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