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24)화 (223/320)

224화

또 다른 곳에선 유미라 대원이 같은 행정팀 오승영 대원에게 따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좀 그렇게 하고 다녀요. 오늘만 이러지 말고!”

“원래 이러고 다녔습니다.”

“아, 그래서 어제는 김칫국물 묻은 기동복 입고 다니셨어요?”

“내가? 언제? 제 기동복은 소방에 임하는 제 마음같이 늘 깨끗했습니다.”

“으이그.”

절레절레.

유미라 대원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런 모습들이 특수소방단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문제를 인식한 태건은 심히 고찰했다.

“내가 괜한 짓을 저질렀나.”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

가볍게 만나, 서로 유쾌한 시간을 보내잔 의의였다.

단원들의 뾰족한 성격을 누그러뜨리고, 생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어 계획했다.

처음 계획할 땐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특수소방단은 급성장을 이룩했다.

태건은 그 부분을 너무 간과했다.

그렇게 반성을 겸한 고찰을 할 때였다.

스스슥.

진한 향수 냄새가 후각을 훅 찌르고 들어왔다.

“카윽!”

텁.

인상을 팍 일그러뜨린 태건은 얼른 코부터 막았다.

그리고 돌아보자 고수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품이 넉넉한 기동복이 쭉 조여져 핏이 딱 들어맞게 변화해 있었다.

깔끔하게 면도하고 머리에 힘까지 준 게 아주 작정하고 꾸민 티가 팍팍 났다.

그런 그가 너무도 다정하게 불렀다.

“우리 라텔의 기둥. 여기 있었니? 형이 찾았잖아.”

“크윽. 냄새. 좀 떨어져서 말씀하십시오.”

“이 향수 한정판이야. 아방가르드하면서 엘레강스한 이 고풍스런 향을!”

“그 고풍스런 향이 얼마나 진한지 제 코에 선전포고 중입니다.”

척.

태건은 먼저 한 걸음 비켜섰다.

그 정도로 진한 향이었다.

태건이 질색해도 고수현의 미소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내가 좀 과했나 보구나, 다섯 번만 뿌린다는 게 열 번 뿌렸더니.”

“그 정도면 향수를 퍼부었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동복은 그렇게 수선하면 안 될 텐데요.”

“이거 실로 살짝 꿰맨 거야. 힘 한 번 빡주면 제자리로 돌아와. 그 정도 생각은 있지.”

슥슥.

고수현은 이리저리 자신을 내보이며 만족해했다.

멋이야 고수현이 확실히 뛰어났다.

그러나 태건에겐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더 궁금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맞을 준비가 다 되어가는데, 손님들이 언제 도착하는지 대산 선배가 물어보라고 해서 왔단다.”

“그 말투……. 아무튼 곧 도착할 겁니다.”

태건이 느끼함을 애써 억누르며 답했다.

고수현은 화들짝 놀라 수선을 떨었다.

“그럼 얼른 마무리해야겠다. 도착하면 얼른 연락해, 바로 내려올게. 룰루루.”

폴짝폴짝.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반대로 태건은 순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냥 오지 말라고 할까.”

아직 늦지 않았다.

그 후폭풍을 견뎌낼 각오가 알아서 단단히 굳어질 지경이었다.

정말 괜한 일을 벌인 게 아닌가 싶었다.

스트레스가 살짝 몰려올 즈음이었다.

태건은 문득 허전함을 느꼈다.

이쯤 되면 이순이와 삼식이가 나타나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얘들은 뭐하나.”

스윽.

태건은 이 순간 힐링이 너무도 고파 강아지들에게로 향했다.

곧 펜스에 도착한 태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강아지들이 땅을 파고 코를 묻고 있던 탓이다.

본부 전역에 풍기는 온갖 냄새에 코가 괴로운 모양이었다.

-낑.

-힝힝.

복슬복슬하게 솟아오른 엉덩이가 너무도 귀여웠다.

그보다 강아지들이 겪고 있을 괴로움에 대한 미안함이 앞섰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태건은 이번만큼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그렇게 사과하던 중이었다.

쫑긋.

이순이와 삼식이의 귀가 바짝 올라오더니 주차장 방향으로 크게 짖었다.

-컹, 컹컹!

-멍멍멍!

낯선 소리에 대한 반응이다.

그와 동시에 태건의 귀에 희미한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부우웅.

도착한 모양이다.

태건은 찰떡 같이 경계하는 강아지들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 내가 예뻐하지. 이따가 고기 한 캔씩 하자.”

보상을 약속한 태건은 손님을 맞으러 향했다.

*  *  *

잠시 후.

태건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본부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어제 황대산이 전 대원들에게 전파한 부탁(?)이 있었다.

-괜히 기웃거리거나 훔쳐보지 맙시다. 어렵게 오시는 손님인데, 부담 주면 나도 선 넘을 거니까 알아서들 합시다.

처음 하는 간절한 부탁(?)이라 다들 이해해주는 거 같았다.

‘그래놓고 참.’

태건은 속으로 어이없음을 삼켰다.

옥상 난간에 숨어서 힐끔거리는 단원들이 보인 탓이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태건은 방금 주차된 차량으로 향했다.

다가가니 강주미와 김채연, 황유리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래도 원판들이 좋아서 그런지 화사해 보였다.

‘한 명은 그닥.’

역시나 강주미에 대한 평가는 각박했다.

그러면서 다가간 태건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척척.

“어서들 와.”

어느새 마주한 김채연과 황유리가 차분히 화답했다.

“오빠,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다음으로 강주미가 시큰둥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스윽.

“어.”

“어는 뭐가 어야……. 그래. 안녕, 이번엔 엄청난 장거리였다며, 피곤은 다 풀렸어?”

태건도 동생과 친구들을 대하는 온도 차이가 상당했다.

친구들도 태건에게 상냥하게 답했다.

“그럼요. 익숙한걸요.”

“여기서 길게 인사하는 건 실례고, 일단 들어가자.”

태건은 가볍게 강주미와 친구들을 이끌었다.

현관으로 향하는 사이였다.

뒤에서 친구들이 여기저기 둘러보며 감탄했다.

“어머, 여기 너무 깔끔하고 좋다.”

“화단도 잘 꾸며졌고, 음. 좋은 향기도 나는 거 같아.”

첫인상 평가가 나름 괜찮았다.

그 사이 태건의 옆으로 강주미가 다가왔다.

“나 할 말 있음.”

“보증 노노.”

“님보다 내가 신용 좋음.”

“헐, 그건 님 생각.”

오가는 둘의 대화가 너무도 유치찬란했다.

모든 사회적 시선에서 무장해제 된 민낯이었다.

하려는 말이 그게 아닌지 강주미는 대뜸 손부터 휘둘렀다.

쩍!

“이상한 소리 말고 좀 들어.”

“손찌검이 아주 일상이네. 저 성질머리를 어따 쓰나.”

“오빠, 직장에서 꼬집혀 본 적 있어?”

찌릿.

강주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스쳐지나갔다.

‘헙!’

무조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성격이다.

바로 상냥한 미소를 지은 태건이 부드럽게 권했다.

“그래, 우리 동생, 이 오빠한테 무슨 부탁일까나.”

“사무장님한테 특명 받고 왔어. 여기저기 사진 찍어서 우리 항공사 SNS에 올리래.”

“그건 안 되지. 면회 왔지, 현장 견학 왔냐?”

태건이 흘겨보며 거절했다.

강주미는 예상했다는 듯이 태건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덥썩.

“오빠, 나 빈손으로 가면 사무장님한테 찍혀.”

“너,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얼른 안 놔?”

태건은 질색하며 손을 빼내려 했다.

강주미는 절대 놓지 않았다.

오히려 축 쳐진 강아지 같은 얼굴로 재차 부탁했다.

“몇 장만, 응? 다섯 장만, 아잉, 오빠아아…….”

“누구냐, 넌.”

“그러지 말고. 나 좀 있음 승진이란 말이야. 사진 몇 장 못 찍어서 미끄러져야겠어? 그것도 강태건 동생이? 오빠아.”

흔들흔들.

이리저리 팔을 흔들며 막무가내 앙탈을 부렸다.

그런 강주미의 행동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그 어떤 강철 같은 오빠도 이런 동생의 애원에는 살짝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딱히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오빠, 내가 앞으로 욕도 안 하고, 때리지도 않을게.”

“……뭔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사진 몇 장이 크게 문제 될 건 아니긴 아닌데.”

태건을 계속 여운을 흘렸다.

동생이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게 처음이라 즐기는 거였다.

강주미는 아예 강수를 던졌다.

“이거 도와주면 내가 앞으로 평생 존댓말 할게. 아니, 할게요.”

“너……. 진짜구나.”

“아니라니까요. 오오빠아앙. 히잉.”

급기야 강주미가 필살 애교까지 선보였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지갑을 열 수 밖에 없었던 바로 그 필살 애교였다.

그런 강주미 모습이 태건은 내심 안쓰러웠다.

‘녀석.’

오죽하면 자신에게 이럴까.

같이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으로써 연민이 들었다.

그렇게 흔들리던 태건의 마음은 결국 넘어갔다. 

“잠깐만, 그건 내가 결정할 부분이 아니라 본부장님께 허락 받아야 돼.”

“전화 드리는 건 실례잖아요. 우리가 가서 뵙고 인사드리고 여쭤보는 게 좋지 않겠어요?”

“조, 존대를 이렇게. 허억!”

“오빠, 왜요?”

초롱초롱.

강주미는 순박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도 손을 잡고 있었고, 천진난만하게 흔들기까지 했다.

태건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찾아봬도 되냐고 여쭤볼게.”

스윽.

그대로 바로 휴대폰을 꺼내 박규영 본부장에게 다이렉트로 연락했다.

곧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이랑 좋은 시간 보내지, 무슨 일로 전화야?”

“실은 제 동생이…….”

술술.

태건은 숨도 쉬지 않고 바로 사연을 알렸다.

이어서 박규영 본부장의 칼 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예의를 갖추려는 자세가 그 오빠에, 그 동생이군. 와서 차 한 잔 하시자고 해. 직접 들어보도록 하지.”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척.

전화를 마친 태건이 휴대폰을 내렸다.

강주미가 애타는 얼굴로 얼른 물었다.

“오빠, 뭐라고 하셔요?”

“차 한잔하면서 직접 들어보겠다고 하셔.”

“어머, 감사해라……. 그런데 오빠, 본부장님한테 허락받으면 다 되는 거예요?”

강주미가 묻자 태건은 바로 답했다.

“그럼 그 분이 여기 책임자니까.”

“그 분을 만나러 지금 간다는 거죠?”

“그렇다니까. 다 들어 놓고 뭘 또 묻고 그래. 얼른 가자.”

스윽.

태건은 멈춘 걸음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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