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단체 촬영은 곧 끝이 났다.
그러나 한번 작동시킨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 소리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강주미와 친구들이 서로 찍어주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주미야, 여기 봐.”
“채연아, 자연스럽게.”
“유리야, 저쪽보고.”
구도를 구상하고 자세를 잡는 모습이 프로 같았다.
평소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는지 대번에 느껴질 정도였다.
단원들은 그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와, 많이 찍는다.”
“우린 찍은 적이나 있던가.”
이상한 소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태건이 한숨을 푹 쉬었다.
“어휴. 여기서 다들 뭐하세요.”
“구경.”
“가서 찍어주냐고 물어보고 해야 할 거 아닙니까. 현장에선 넘쳐나던 눈치들이 여기선 왜 이래?”
태건은 대놓고 투덜거렸다.
평소라면 다들 울컥할 이죽거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모두가 이 순간만큼은 순한 양이었다.
머쓱한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그래도 되나?”
“뭐가 그래도 됩니까. 지금이 그때지!”
“알았어. 갈게, 간다니까.”
다들 쭈뼛거리며 동생들에게로 향했다.
“저희가 찍어드릴까요?”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감사 아니, 해드려야죠.”
“고맙습니다. 어머, 친절하셔라.”
이내 휴대폰들이 단원들에게로 건네지고, 촬영이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주라니까 정말 사진만 찍어주고 있었다.
“자, 찍습니다.”
“오오. 좋아요. 그렇게.”
무릎을 꿇거나 자세를 낮춰 구도를 만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런 단원들 모습에 태건은 속에서 열불이 뻗쳤다.
“다 남중, 남고, 공대 출신들이야? 아주 저러다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면 아주 기절하겠네.”
답답해도 너무 답답했다.
그때 황대산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허어억, 가, 같이 찍자고요?”
“네. 그러면 안 되나요? 꼭 같이 찍고 싶은데요.”
“채연 씨가 원하신다면 아니, 안 될 게 뭐가 있습니까. 됩니다. 다 됩니다!”
매번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황대산이 아주 쩔쩔맸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태건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진짜 가관이다. 저러다 팔짱이라도 끼면 얼굴 터지겠다.”
“저기 지성 선배, 지금 유리가 팔짱 끼는데요.”
“얼씨구. 진짜 얼굴 터지겠네. 난 쟤는 안 그럴 줄 알았어.”
“저도요.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하네요.”
절레절레.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똑같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진은 묘한 마력이 있는 모양이다.
촬영 횟수가 누적될수록 단원들의 긴장감이 내려갔다.
어느새 서로 모여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기도 하고 조언도 했다.
“거기 고 선배랑 채연 씨, 등을 살짝 맞댄 자세 어때요?”
“지성아, 이렇게 서라고?”
“그림 괜찮네. 그대로 있어요.”
앙숙인 고수현과 이지성의 대화가 너무도 부드럽게 오갔다.
그렇게 그들만의 창작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제 알아서 잘 놀겠네.”
태건은 거기까지 보고는 슬쩍 자리를 옮겼다.
이만큼 멍석을 깔아줬으면 됐다.
나머지는 단원들의 몫이었다.
잠시 후.
태건은 건물 밖 야외 휴게소로 자리를 옮겨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강주미도 함께였다.
곧 음료수를 내린 태건이 가볍게 탄성을 흘렸다.
“후. 다들 왜 저래. 보는 내가 다 목이 타더라.”
“…….”
만지작.
강주미는 힐끗거리며 음료수 캔만 매만졌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태건은 뭔지 짐작하고 있던 터라 먼저 말했다.
“이제 승진 못했단 소리만 들려봐.”
“어? 어. 그래도…….”
우물쭈물하며 사과할 낌새를 보였다.
내심 계속 미안했던 모양이다.
태건은 그런 소리 듣자고 꺼낸 말이 아니라 싹둑 잘라 버렸다.
“됐고, 그 사무장은 소방단이랑 항공사랑 가까운 게 뭐가 도움이 된다고 찍어오라는 거야?”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이슈니까.”
“그 정도 무전은 다 해. 소방관들 다 그 정도는 하면서 현장 뛰어.”
태건은 심드렁하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강주미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걸 그냥 아는 거랑, 직접 들어본 거랑은 달라.”
“흠.”
“이제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잘 살다 갔다, 라고 생각할 거 같아.”
강주미가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태건이 풀어주자 다시 평소 모습이 툭 튀어나온 거였다.
덕분에 태건의 이마에도 힘줄이 튀어나왔다.
빠직.
“왜, 아주 나 죽으라고 고사를 지내지.”
“그건 내가 나중에 따로 할게.”
“고맙다. 아주 고마워.”
태건은 어이가 없어 이죽거렸다.
그때였다.
강주미가 한 톤 낮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어리광 받아줘서 고마워.”
“짜샤. 시끄러.”
“솔직히 우리야 홍보도 되고 좋은 일인데, 라텔은 우리 때문에 시달릴 수도 있잖아.”
강주미가 짐짓 속 깊은 말을 꺼냈다.
SNS에 견학 내용이 올라가면 다른 데서도 분명 연락이 올 터였다.
그걸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거였다.
태건은 심드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그걸 왜 네가 신경 써.”
“그래도…….”
“네가 예상하는 걸 내가, 그리고 본부장님이 예상 못하시겠냐. 다 알고 하는 거야.”
“그러니까 더 미안하다고 하는 거잖아.”
강주미가 손을 꾸물거리며 반복해 말했다.
태건은 그 말과 모습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나오는 말은 퉁명하고 까칠했다.
“거 참, 됐다니까 그러네.”
“좀 미안하다면 순순히 받아주고 그래라. 성격 진짜 모났어.”
“누가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베에.”
강주미가 혀를 늘어뜨리며 얼렁뚱땅 무마시켰다.
그런 두 사람에게 조용히 접근하는 하얀 물체들이 있었다.
물론 이순이와 삼식이였다.
강주미의 뒤를 주시하며 슬금슬금 다가왔다.
뭔가 계속 아리송한 표정들이었다.
경계와 호기심을 동시에 보였다.
그런 강아지들을 발견한 태건이 싱겁게 미소 지었다.
“어째 니들이 조용하다 했다.”
“누구? 어머. 이순아, 삼식아!”
고개 돌린 강주미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그 순간 갸웃거리던 강아지들이 꼬리를 풍차처럼 흔들며 뛰어왔다.
-멍멍멍멍!
-캉캉캉!
쉬익.
급기야 강주미에게 뛰어올랐다.
강주미는 진작 양손을 펼쳐 기다리고 있었다.
푹!
두 마리가 동시에 안기자 얼굴을 부비며 행복해했다.
“우리 강생이들, 이렇게나 많이 컸어요?”
-헥헥헥.
할짝, 할짝.
볼에 뽀뽀는 기본이었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런 그들의 상봉을 본 태건은 턱을 괬다.
턱.
“나 전역했을 때도 그렇게 반겨주지 않은 거 같은데.”
“오빠가 강아지면 엄청 예뻐해줬을 거야.”
“패스. 그냥 니들끼리 놀아라.”
“그럼그럼. 우쭈쭈. 엄마랑 떨어져서 많이 슬프지, 저기 못된 삼촌이 막 괴롭히고 그러지. 우쭈쭈.”
강주미는 강아지들을 부비며 말했다.
강아지들이 그 말에 반응했다.
-아우웅, 우우아우아.
-끼잉, 힝힝힝.
정말 그 동안 서러웠단 듯이 앓는 소리를 기똥차게 냈다.
태건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세리 반만 닮으라니까. 1.5배를 닮았어. 니들이 더 해.”
말은 그랬지만 서로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훈련장 쪽에서 높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꺄악!
휙!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태건이 이내 쓴 미소를 흘렸다.
“뭔가 했네.”
김채연이 레펠장비를 착용한 모습으로 자세를 잡고 있었다.
훈련장 건물 중 가장 낮은 층이었다.
가볍게 체험을 해보려는 모양이다.
도우미로 황대산이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절한 모습이 아니었다.
안전과 관계된 체험이라 목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김채연 씨, 뭐하는 겁니까. 그렇게 발버둥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지!”
“무서워요!”
“승무원 안전교육 때 뭐 했습니까!”
“비행기는 레펠 안 탄단 말이에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얽혔다.
아래에서 지켜보는 황유리와 단원들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쭉 지켜보던 태건은 이내 관심을 접었다.
“알아서 하겠지.”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강주미가 재빨리 일어나 그쪽으로 뛰었다.
“나도 할래!”
차자작!
그 옆을 이순이와 삼식이가 경호견처럼 함께 했다.
어이없어하던 태건이 눈빛을 빛냈다.
번뜩!
“하고 싶다면 이 오빠가 특, 별, 히, 도와줘야지.”
이번엔 태건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가 강주미와 똑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였다.
강주미가 훈련장 건물 한가운데에 매달려 있었다.
“으아앙. 하지 마. 내려줘!”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도움을 구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태건이 다른 로프를 타고 나란히 레펠 중이었다.
“자, 오빠 잘못했습니다. 삼창 실시.”
“아까 다 했잖아!”
“그랬던가. 난 못 들은 거 같은데.”
“씨이익. 나도 자존심이 있지, 이깟 거. 내가 이까이 거……. 허엉. 오빠 잘못했어, 미안해!”
악을 쓰던 강주미는 결국 소리쳐 사과했다.
그 말을 듣고야 태건의 미소가 부드러워졌다.
“그럼 이제 천천히 내려가 볼까?”
스륵스륵.
아주 친절하게 강주미를 지상으로 이끌었다.
그런 태건을 본 단원들, 그리고 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쟤 진짜 가족한테도 뒤끝부리네.”
“주미 씨도 성격 장난 아니네요.”
“그 나물에 그 밥……. 됐다, 말해 봐야 내 입이 아프지.”
단원들의 말에 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똑같아요.”
“내가 저 집 애가 아니라 다행이야.”
도무지 태건과 강주미 사이엔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태건의 복수 후에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행정팀에 들어가 인사도 하고, 업무에 관한 설명도 들었다.
“여기가 행정실이고, 이분은 행정팀장님…….”
“이혜지에요. 딱 보니까 강 단원 동생이 누군지 알겠네요. 똑같이 생겼어요.”
그 평가에 태건과 강주미가 동시에 발끈했다.
“대체 어디가요!”
“초면인데 왜 그러세요?”
그런 뾰족한 반응에 모두가 한바탕 웃기도 했다.
“하하하.”
지원팀도 견학했다.
거기선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다.
“이분이 강영직 대원이셔. 주미야. 우리 먼 친척이야.”
“안녕하세요.”
강주미가 정중하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