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다시 자리로 돌아온 태건은 단원들을 다시금 둘러봤다.
슥슥, 삭삭.
“여기 로프 더 가져와.”
“그 교보재는 이쪽이요!”
목소리를 높이며 차곡차곡 교육훈련 준비를 이어갔다.
그런데 자극적인 대화가 많이 약해졌다.
“호오, 효과가 없는 건 아니네.”
의도한 바가 나타나자 태건도 옅게 미소 지었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라텔 2기 2차수 교육훈련이 시작됐다.
1차수와 비슷한 식순으로 진행됐다.
박규영 본부장이 입소 신고를 받고, 이어서 간단히 훈화했다.
“우리 라텔의 일원이 되는 과정이 험난…….”
교육실에 그 말이 울려 퍼졌다.
그 사이 태건은 10명의 후보대원들을 쭉 훑어봤다.
‘이번 차수에 눈에 띠는 대원이……. 흐음.’
표정이 조금 쓰게 변했다.
크게 눈에 띠는 후보대원이 없었다.
입소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훈련이 시작됐다.
1차수 때는 출동이 걸려 흐트러졌던 스케줄이었다.
이번엔 그런 일 없이 계획한 그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번 차수 또한 태건이 ‘악마 조교’를 담당했다.
소방장비 착용 훈련.
“착용 시작!”
-삑.
태건이 호각을 불자 초시계가 가동됐다.
동시에 후보대원들은 부리나케 착용을 시작했다.
후다닥!
“차압. 아자자!”
“헛헛!”
“후압!”
정신없는 후보대원들 앞을 태건이 좌우로 오가며 소리쳐 자극했다.
“더 빨리!”
“그 속도로 언제 입고, 언제 뜁니까!”
“아직도 방화복 입는 대원은 대체 뭡니까!”
태건의 지적은 꼼꼼했다.
후보대원들의 역량만 보는 교육훈련이 아니다.
각자 무언가 하나라도 얻어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1차수 때보다 더 매섭게 다그쳤다.
그 모습을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크게 둘러서서 지켜봤다.
예리하던 눈빛이 점점 허탈하게 변해갔다.
“3번 후보대원은 뭐야. 순서를 헷갈려?”
“5번 후보대원, 어이쿠. 산소통 미끄러졌네요.”
“9번은 플래시를 발로 차는데요. 눈이 아주 밝나 봅니다.”
그래도 군계일학은 있는 법이었다.
“쟤 누구냐. 2번……. 방기찬? 오호, 쟤는 좀 쓸만한 거 같은데, 더 지켜봐야겠어.”
오광휘 단장이 한 명을 주시했다.
이후 소방 능력 측정 테스트로 이어졌다.
소방학교에서 수료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로테이션 훈련이었다.
모든 개인소방장비를 갖춘 상태로 6개 코스를 쉬지 않고 도는 난이도 극악의 코스로 유명했다.
지금 그걸 2차수 훈련대원들이 하고 있었다.
“하아악, 헥헥!”
“학학.”
앞선 훈련에 더해져 시작부터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태건은 그런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쳐지는 누군가가 보이면 날카로운 눈매로 호통쳤다.
“더 올라옵니다!”
“당겨, 더 당겨!”
“내리칠 땐 헤드 힘을 이용해서!”
태건의 다그침은 숨도 못 쉴 정도로 빡빡했다.
통풍이 되지 않는 방화복을 입고 쉴 새 없이 움직인 후보대원들은 빠르게 지쳐갔다.
“헉헉, 이제, 그…….”
“그만 같은 소리 말고, 뛰어. 한 발 더, 더!”
짝, 짝!
박수로 박자를 맞춰주며 계속 재촉했다.
그게 한 명이 아니라 모든 후보대원에게 똑같이 적용했다.
일부러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거였다.
그 다그침은 끝없이 이어졌다.
1회차, 2회차……. 5회차…….
한 번 하기도 힘든 로테이션 훈련을 몇 번씩이나 반복했다.
악독한 진행에 어느덧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철푸덕.
“커허억, 허어억!”
풀썩.
“하악, 학, 학.”
넘어지고, 쓰러진 후보대원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결코 약한 게 아니다.
태건이 작정하고 입에서 피맛 날 때까지 몰아붙이는 거였다.
스윽.
시간을 확인한 태건은 좀 씁쓸해했다.
체력의 한계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 정도인가.’
너무 몰아붙이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스윽, 스윽.
“하으아아악!”
악에 받친 소리와 뭔가 쓸리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휙!
고개 돌려 바라보자 한 명이 기어서 다음 코스로 이동 중이었다.
태건은 그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지?”
“2번 방기찬.”
척.
오광휘 단장이 다가오며 알려줬다.
태건은 그 이름을 듣고야 번뜩 떠올랐다.
“첫 훈련에서 타임아웃 했는데도 끝까지 착용했던 그 선배 말입니까?”
“선배? 아아, 지성이랑 같은 년도에 호스 잡았다고 했지.”
“10회 차라 기록이 떨어져서 미련이 남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좋게 말하면 끈기, 나쁘게 말하면 집착. 난 집착에 한 표.”
오광휘 단장은 바로 후자를 택했다.
늘 가벼워 보이지만 무엇도 허투루 보는 법이 없는 성격이다.
그런 그의 성격을 잘 아는 태건이 호기심을 보였다.
“집착이라. 현장에선 그게 필요하죠.”
“당연한 말씀.”
“진짜 집착인지는 기름을 부어보면 확실히 티가 납니다.”
스윽.
엉뚱한 말을 건넨 태건이 몸을 움직였다.
방기찬은 지금도 이를 악물고 다음 코스로 향하고 있었다.
“까으으. 으하아!”
그릉, 그릉.
그런 그의 옆에 태건이 도착했다.
지칠 대로 지친 방기찬에게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아직 여깁니까. 저 앞에 요구조자가 있어도 이렇게 한가하게 놀고 있을 겁니까!”
“아아아악!”
퍼석, 퍼석.
방기찬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기어가는 힘마저 빠져 거북이보다 느렸다.
태건은 그런 그를 더욱 괴롭혔다.
“그따위로 할 거면 때려치웁니다. 당장 옆으로 빠져서 열외 합니다!”
“흐아아악!”
“뭐합니까. 갈 거면 확실히 가고, 아니면 빠집니다!”
“크하아, 아아악. 저기, 사람. 아아악!”
벅, 벅.
악을 쓰는 방기찬의 기어가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태건이 자극할수록 모든 힘을 다 끌어 올렸다.
그런 반응에 태건은 남몰래 미소 지었다.
‘진짜 집착이네.’
얼추 예상되는 건 방기찬에게도 뭔가 사연이 있단 점이었다.
그 사연이 지금 방기찬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바로 라텔을 움직이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잠시 후.
방기찬은 끝끝내 다음 코스에 도착했다.
“흐아악, 아아아!”
번쩍!
두 손을 번쩍 들며 포효했다.
그리고.
턱.
“크흐으…….
그는 호흡기커버 위에 손을 얹어 흐느꼈다.
자신의 속사정에 대한 먹먹함이 터져나온 거였다.
같이 이동한 태건은 말없이 묵직한 박수를 쳤다.
“…….”
짝, 짝짝.
그 박수는 단원들에게 퍼져갔다.
척, 척.
하나둘 다가오더니, 이내 모든 단원들이 둘러서 박수를 쳤다.
“…….”
짝짝짝.
오가는 말은 없었다.
어떤 축하와 격려를 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말이다.
단원들 모두 방기찬의 심정을 잘 알고 있었다.
“…….”
애달픈 시선으로 방기찬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당신은 그 속에 무엇을 두고 왔습니까.’
그렇게 건네지 못할 질문을 똑같이 떠올리고 있었다.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다.
2박 3일의 일정이 완전히 끝이 났다.
퇴소 후에는 똑같이 특수소방단 중역회의로 이어졌다.
“라텔은 2차수 합격자로 방기찬 대원을 추천합니다.”
오광휘 단장이 모든 단원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사락사락.
방기찬의 이력서와 프로필을 살펴본 박규영 본부장이 물었다.
“이유가 있겠지?”
“성격은 조용한데, 한 번 삘 받으면 집착이 말도 못 합니다.”
“조용한데 고약하다라. 라텔답네.”
사락.
박규영 본부장이 바로 방기찬 이름에 동그라미쳤다.
그렇게 선별 평가가 마무리 되려 했다.
“그럼 이렇게 결정짓는 걸로……. 강 단원 할 말 있나?”
박규영 본부장이 물었다.
손을 들고 있던 태건은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헬기 조종사 후보들은 언제 도착해서 교육훈련하는 겁니까?”
“그건 조만간 일정이 잡힐 거야. 특별 이벤트를 기획 중이니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돼.”
“특별 이벤트란 말씀이 더 마음 조이는 데요.”
태건은 넉살을 담아 답했다.
박규영 본부장도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두 손 들고 환영할 이벤트니까 미리 걱정할 거 없어.”
“그럼 파티 준비라도 하고 있겠습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그는 수더분하게 말을 마쳤다.
그때를 기다렸는지 이번엔 오광휘 단장이 손을 들었다.
“본부장님, 그런데 좀 조용한 거 같아서 말입니다.”
“조용하다라, 뭐가 조용하지?”
“태극항공 SNS 건이요. 여기저기서 찔러봐도 벌써 찔러봐서 강 단원이 눈총을 받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오광휘 단장은 괜히 태건을 끌어들였다.
태건은 그런 그를 향해 뚱한 얼굴로 삐쭉거렸다.
“항상 제가 문제지요.”
“응. 늘 네가 문제니까.”
오광휘 단장은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 사이를 비집고 이혜지 행정팀장이 끼어들었다.
“둘 다 어지간히 좀 해.”
“크흠.”
“그리고 오 단장이 걱정하는 대로 여기저기 전화가 오고 있어.”
그 말에 오광휘 단장 표정이 진지해졌다.
“저희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겠습니까.”
“오늘 택배 분류한 거부터 좀 가져가줘.”
“네. 그럼 저희가……. 택배요?”
오광휘 단장이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이혜지 행정팀장은 부드러운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 정도는 행정팀에서 거를 수 있어.”
“그래도 난처하실 때도 있을 거 같습니다만.”
“물론 있긴 하지. 그럴 땐 강 단원 팔아서 넘어가고 있어.”
그 소리에 가만히 있던 태건이 삐끗했다.
“저, 저를요?”
“강 단원하고 주미 씨하고 남매란 건 세상이 다 알잖아.”
“주미랑, 그럼 패키지 판매입니까?”
“응. 우리는 가족 차원에서 초대한 거고, SNS에 올라갈 줄은 몰랐다. 우리도 상황파악 중이다. 이렇게 넘기고 있어.”
이혜지 행정팀장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입에 침 한 방울 안 묻히고 하는 거짓말이 뭔지 생생하게 체감 중이었다.
듣고 있던 태건이 괜히 어색해질 정도였다.
“괜히 난감하게 해드리네요.”
“본부장님은 사진 촬영을 허락하셨다는데, 아니야?”
“에?”
태건이 바라보자 박규영 본부장이 서류를 정리하며 말했다.
척, 척.
“난 분명 주미 씨에게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했어. 같이 듣지 않았나?”
“같이 들었죠.”
“그 사진을 어떻게 할지는 듣지 못했지.”
박규영 본부장은 너무도 덤덤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