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29)화 (228/320)

229화

그때를 곱씹어본 태건의 두 눈에 묘한 이채가 스쳤다.

쨍.

“아, 그러네요. 이후 얘기는 전혀 오간 게 없네요.”

“그걸 말해줘야 떠올리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제가 기억하는 건 본부장님의 호탕한 웃음 소리뿐이라서요.”

태건이 슬쩍 그때를 걸고 넘어졌다.

그래도 박규영 본부장 표정은 티끌만한 변화도 없었다.

“그럼 단원 가족이 왔는데 인상 쓸까.”

“그건 좀 아니긴 합니다.”

“강 단원, 출동 외엔 신경 쓰지 마.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박규영 본부장은 딱 잘라 답했다.

“현장 일만으로도 벅차잖아.”

“이번 교육훈련도 라텔에서 주관해서 우리가 할 게 없었지.”

그렇게 이혜지 행정팀장과 김여훈 지원팀장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태건은 머쓱하면서도 고마웠다.

“더욱 요구조자 구조에 집중하겠습니다.”

“바로 그거야. 그럼 이만들 일어나지.”

박규영 본부장이 회의의 끝을 알렸다.

그 소리에 모두가 똑같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릉.

“수고하셨습니다.”

그 회의 이후 특수소방단은 똑같은 하루로 돌아갔다.

라텔도 출동할 때를 기다리며 자신을 단련하고, 단원들끼리 호흡을 맞췄다.

강아지들 훈련도 물론 잊지 않았다.

*  *  *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정말 겨울이라 생각될 추운 날이었다.

특수소방단 본부 옥상에 커다란 가방을 멘 5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송강우, 최성철, 노주민, 김지수, 방기찬.

라텔 2기로 합류한 새 단원들이다.

그들 앞에는 원년 단원들이 마주 서 있었다.

모두를 시야에 둔 오광휘 단장이 좌우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죽어도, 살아도, 우린 한 식구다. 알간?”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국적으로다가 아주 진지하게 인사 한 판 때리자……. 상호 간에 경례!”

장난처럼 말하던 오광휘 단장은 마지막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모든 단원이 일제히 거수경례했다.

“라! 텔!”

-라! 텔!

그들의 외침이 우면산에 부딪쳐 메아리가 들려왔다.

그건 또 한 번의 새로운 변화를 이뤄낼 라텔 모두가 품은 각오였다.

거국적인 인사가 끝난 후였다.

1기 단원들이 대놓고 태건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구 막내가 신 막내들한테 잘 알려주고, 가르쳐주고, 수고!”

쌔앵.

선배 단원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쏜살같이 대기소로 들어갔다.

태건 혼자 우두커니 남겨졌다.

“어라?”

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태건 혼자였다.

앞에는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2기 단원들이 있었다.

태건은 억지로 어색한 미소를 그렸다.

“……하, 하하. 다들 참 저렇게 짓궂답니다.”

“네, 선배님!”

우르릉.

얼마나 각오를 다지고 왔는지 공기가 진동했다.

태건이 참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스르륵.

어느새 어색한 미소가 잔잔하게 변화했다.

“우선 말씀드릴 건, 라텔 내에선 나이순으로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방기찬 선배님.”

“음? 그건 예의가 아닌 거 같습니다.”

“집에서 찾는 예의, 현장에서도 찾으면 서로 곤란해집니다.”

태건은 수더분하게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 대한 언급을 하는 순간 눈빛이 돌변했다.

찌잉!

태건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입장에선 그 변화가 생생히 보였다.

지금까지와 다른 엄청난 존재감이었다.

같이 출동한 경험이 있는 2기 단원들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부르르.

‘그때 그 모습이야.’

‘가볍게 몇 마디 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 그들보다 더 놀란 건 방기찬이었다.

“흡!”

바라보기만 해도 밀려오는 압박감에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 소리를 듣고야 태건도 아차했다.

스스슥.

“제가 오버 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2기 단원들의 목소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반대로 태건은 괜히 머쓱해졌다.

‘이런 이미지로 굳혀지는 건 별론데.’

그렇다고 굳이 다르게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었다.

태건은 다시 2기 단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간략히 말씀드리면, 2기는 당분간 출동하지 않고 본부에서 훈련할 예정입니다.”

“바로 함께 하는 거 아닙니까?”

송강우가 얼른 손을 들어 질문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를 향해 태건이 일침을 놓았다.

“송 단원, 지금 그 체력으로 출동이란 말을 하나?”

“……아.”

“그동안 격무로 인해 단련하지 못한 체력,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끌어올리도록 해.”

태건의 이어진 말이 의외로 부드러웠다.

지금까지 2기 단원들의 근무경력을 존중해주는 말이었다.

그래도 송강우는 쓰게 답했다.

“꼭 빠른 시간 내에 체력을 올리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 부족함을 메우도록 하세요.”

“네.”

“일정 시간이 지나도 출동할 준비가 되지 않은 단원은 바로 아웃입니다.”

태건은 차분히 말했지만 속뜻은 너무도 매서웠다.

꾸욱.

2기 단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각오를 다잡았다.

그런 그들 중 태건이 한 명을 가리켰다.

“노 단원.”

“네, 선배님.”

“촬영 제한은 없으니까 편하게 찍어.”

그 소리에 노주민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닙니다. 그때 제가 무분별하게 업로드해서 문제가 더 컸단 걸 알고 있습니다.”

“전혀 안 커졌으니까 신경 쓸 거 없어.”

“저, 정말이요?”

“본부장님이 허락하신 부분이야. 그래도 촬영은 부수적이란 걸 명심하도록 하고……. 자, 그럼 노세요.”

스윽.

할 말을 마친 태건은 그대로 대기소로 들어갔다.

순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된 2기 단원들이었다.

“우리도 들어가야 되나?”

“가서 뭐해. 지금부터 움직여야지.”

최성철은 곧바로 몸을 돌렸다.

우르르.

그 뒤를 얼른 다른 단원들이 따랐다.

한편.

태건은 대기소에 들어섰다.

텅.

문을 닫자 오광휘 단장이 옆으로 누워 발을 슬쩍 들어보였다.

“어이, 그래서 잘 얘기 했으?”

“알아서 놀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답이지. 낙동강 오리알이 될지, 미운오리 새끼가 될지, 좀 지켜보자고. 후후.”

오광휘 단장이 진하게 미소 지었다.

옆에 있던 고수현은 순간 갸웃거리며 물었다.

“둘 다 안 좋은 거 아닙니까?”

“진짜 여기저기 난리네. 어디서 말길 못 알아먹는 열매라도 먹었습니까?”

“야, 이지성. 넌 또 왜 잘난 척이야. 진짜 알고 시비 거냐?”

으르렁.

고수현이 인상을 팍 쓰며 따지고 들었다.

이지성은 어깨를 들썩이며 투박하게 답했다.

“낙동강 오리알은 버려지는 신세란 의미입니다.”

“미운오리 새끼도 마찬가지잖아.”

“그 녀석은 나중에 백조 되잖아요.”

“……오호, 그러네. 다른 의미네. 넌 눈치 빨라서 좋겠다. 으, 엄청 부럽네.”

찌릿.

해석을 파악한 고수현이었지만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지성의 시비 거는 말투 탓이었다.

정작 본인은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으르렁거려도 이젠 다른 단원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우리 선배님들을 어쩌면 좋아.”

절레절레.

고민해도 해답이 없는 문제라 태건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잠시 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옥상에 나와 있었다.

난간에 가볍게 팔을 얹고 우면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은 겨울이네요.”

“춥지. 이 날씨엔 군고구마를 씹어줘야 되는데.”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의 시선은 우면산 중턱에 머무르고 있었다.

2기 단원들이 뛰어올라가는 모습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악. 학학.

-헥헥!

거친 숨소리가 옥상까지 들려올리 만무했다.

그러나 입에서 한가득 터져 나온 입김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오광휘 단장은 나름 감탄했다.

“어이고, 잘 뛰네.”

“단련 좀 하고 온 모양입니다.”

“그래도 뛰는 폼이 한 달은 걸리겠어.”

“저희보다 빠른 거죠. 저희는 팀워크 훈련 이후에도 계속했으니까요.”

태건이 그때를 회상하자 오광휘 단장이 괜히 툴툴거렸다.

“막말로 저 길을 우리가 만들었잖아. 그걸 개척하는 게 훠어얼씬 더 힘들었어.”

“그땐 여름에 접어들 시기기도 했고요.”

“맞아. 풀벌레며, 나뭇가지며, 어휴 아직도 진드기는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해.”

“뛰긴 지금이 좋긴 하죠. 그런데 무작정 뛰기만 하면 결국 집에 돌아가야 할 겁니다.”

태건은 의미심장한 말을 곁들였다.

그건 오광휘 단장도 크게 동감을 표했다.

“그래. 죽어라 달리면 체력만 늘어나겠지, 체력만.”

“어떻게 할지는 두고 봐야죠.”

“제대로 말한 거 맞지?”

“전 부족한 걸 메우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아래층 휴게실로 이동하며 두런두런 대화했다.

개인단련은 라텔 2기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1기 단원들도 틈틈이 체력을 단련하고, 부족함을 배움으로 채웠다.

한 톨의 힘까지 짜낼 수 있는 힘을 길렀고,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번뜩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다.

최악의 현장에 투입된단 부담감.

출동을 거듭할수록 마음을 무겁게 했다.

*  *  *

흘러가는 시간만큼 SNS에 화제 됐던 특수소방단 견학 이슈가 흐려져 갔다.

더 정확하게는 다른 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옮겨졌다.

노주민이 동영상 플랫폼에 전용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라텔.

채널이름부터 아주 심플했다.

검색이 용이해 접근하기에 좋았다.

그러나 아직 구독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라텔 2기 입단.

-입단 후 우리는.

그게 전부였다.

업로드된 영상이 너무 적었다.

그 영상들도 대부분이 개인 운동이었다.

그래서 영상 속엔 거친 숨소리 밖에 없었다.

- 이거 사운드만 들으면 19금, 꼭 영상과 함께 감상하세요.

누군가가 작성한 댓글이었다.

웃자고 한 댓글이지만 다양한 컨텐츠에 대한 바람도 담겨 있었다.

정작 채널 주인인 노주민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소방장비착용 연습에 하늘이 노래질 위기였다.

“헤에엑, 헥헥. 몇 초?”

“1분 13초 76.”

“허어엉. 지수야, 난 왜 안 되는 걸까.”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노주민이 우는 소리를 쥐어짰다.

장비를 벗을 힘도 없어 그대로 주저앉았다.

풀썩.

그런 채널 주인이 동영상을 올릴 정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훈련이 끝나면 잠들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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