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다른 2기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막무가내로 열심히 하는 게 아니었다.
“저, 단장님. 잠시만…….”
“황 선배님 시간 괜찮으세요?”
“저기, 지성 씨. 구급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는데…….”
막히는 건 무조건 1기 단원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그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샤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솨아아.
태건이 샤워를 하며 땀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룰루루.”
콧노래까지 부르며 즐겼다.
그런 태건의 몸은 단단하면서도 옹골찬 근육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옥의 티처럼 나이스 바디 곳곳에 화상과 상처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아물 대로 아물었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처들이었다.
벅벅.
태건은 그 흔적을 지울 기세로 몸을 씻었다.
그러던 중 샤워실이 다급히 열렸다.
벌컥!
“태건 선배님, 여기 계십니……. 아, 계시네요.”
두리번거리던 최성철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비눗물을 씻어 내리던 태건이 순간 눈빛을 굳혔다.
“출동 걸렸어?”
“아니요. 그런데 출동만큼 중요한 일입니다.”
“뭔데?”
태건이 짐짓 심각해졌다.
그때 최성철이 뒷주머니에서 복사용지를 꺼내 내밀었다.
1기 단원들이 서로의 교육을 위해 만든 자료였다.
“이 부분 말입니다. 산불진화 중 응급상황 발생 시에…….”
“잠깐만, 나 지금 샤워 중이잖아.”
“이거만 알려주고 계속하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여기 보시면…….”
스윽.
최성철은 아예 옆에 딱 붙어 질문을 이어갔다.
샤워실 가득한 물보라가 그를 축축하게 적셨다.
그래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건은 그런 열정은 밀어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연의 모습으로 누굴 알려주긴 처음이네.”
“처음이 어려운 겁니다.”
“두 번은 싫고, 아무튼 지금 질문한 건 말이지. 우선…….”
태건이 설명을 시작하려 했다.
그때 또 한 번 샤워실 문이 다급히 열렸다.
벌컥!
노주민이 뛰어들어오며 소리 높여 태건을 찾았다.
“태건, 선배님, 선배니임, 이거 보세요. 이거!”
처억.
초시계를 앞세운 채 달려왔다.
태건은 보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스스로 목표한 시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참 다들 이렇게 열성이니.’
태건은 2기와 함께 출동할 내일이 조금 기대가 됐다.
그런데 그런 기대감도 잠깐이었다.
불쑥.
어느새 다가온 노주민이 초시계를 내밀었다.
“여기요. 어서 보세요!”
해맑은 얼굴로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가슴께에는 항상 액션캠이 달려 있었다.
반짝, 반짝.
지금도 빨간불을 반짝이며 녹화 중이었다.
그걸 발견한 태건이 온몸을 움츠리며 버럭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어딜 쳐 들어와!”
“뭐 남자끼리 어때서요. 혹시 말하지 못할 신체적인 비밀이 있으십니까?”
“헛소리 말고, 캠, 캠!”
태건이 소리쳐 알리고야 노주민이 아차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 이거요. 나중에 편집할 때 잘라내면 됩니다.”
“그 원본도 지울 거지?”
“그건 제 개인소장입니다. 그걸 터치하시는 건 반칙입니다.”
“……그래. 그건 침해하며 안 되지. 그냥 원본이 없어지면 깔끔해지는 거잖아.”
화르륵!
태건의 맨질맨질한 등에서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그 흉흉함을 목격한 노주민은 위험을 감지하고 재빨리 몸을 돌렸다.
“헙, 튀…….”
턱.
“늦었어.”
“안, 안 돼!”
“돼. 최성철, 문 걸어 잠가라.”
태건이 스산하게 말하자 최성철이 칼 같이 답했다.
“예썰!”
터억!
문을 닫으며 아예 샤워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밖에서 사수하려는 모양이다.
이제 샤워실엔 태건과 노주민만이 남았다.
화르륵.
불 같은 아우라를 풍긴 태건이 스산하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메모리카드 내놔라.”
“절대 안 됩니다. 이건 제 개인물품입니다.”
“더 좋은 걸로 사줄게.”
“오늘 찍은 거 다 날아갑니다. 태초의 선배님 모습까지도요.”
노주민은 바짝 얼어붙은 모습인데도 할 말은 다 했다.
태건의 이마에 힘줄이 팍 튀어올랐다.
빠직!
“그게 문제란 거잖아, 짜샤!”
태건은 그대로 노주민에게 달려들었다.
이후 샤워실에선 노주민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왔다.
- 아아악!
밖에서 보초를 서는 최성철은 조용히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잠시 후.
태건이 액션캠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메모리카드를 빼서 그 자리에서 부셔버렸다.
와자직!
“저 개똘, 어휴!”
원본까지 완전히 파괴한 후에야 태건은 안심하며 캐비닛으로 향했다.
곧 노주민이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기어 나왔다.
터덕, 터덕.
“성철이 형. 샤워실에 악마가 살아요. 자연 그대로의 악마가 있어요.”
“넌 그렇게 될 걸 알면서도 왜 한 번씩 까부냐.”
“재밌잖아요.”
노주민의 대답이 일품이었다.
순간 황당해진 최성철은 그런 그를 버리고 자리를 옮겼다.
“……태건 선배님 수건 하나 더 드릴까요?”
“아, 아깝다.”
노주민은 엉망진창이 되었음에도 탄식을 흘렸다.
그 소리를 들은 태건은 옷을 입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푸우. 2기라고 정상일 리가 없지.”
첫 단추를 잘못 꿴 여파가 분명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질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끈.
태건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라텔 1기와 2기는 조금씩 가까워져갔다.
2기 단원들의 적극성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오늘도 라텔 모든 단원들은 같이 혹은 따로 자신을 업그레이드 중이었다.
돌연 특수소방단 건물 가득 사이렌이 울렸다.
-에에엥!
그 소리에 모두 일시정지 되어 굳어졌다.
그리고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다.
곧 방송이 터져 나왔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라텔 1기 즉시 헬기로!
방송이 귀에 쏙 들어옴과 동시였다.
챙, 띵, 핑, 구구구.
각자 흩어져 있던 라텔 1기 단원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리고 하던 모든 걸 내던지고 옥상으로 내달렸다.
태건도 식사하다 식판을 내팽개치고 옥상으로 향했다.
파바박!
“구급출동이라고?”
누군가 생명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분명했다.
단 1초가 요구조자의 생사를 가를지도 모를 일이다.
번뜩!
태건의 두 눈이 시리도록 차갑게 변했다.
오늘은 출동부터 자신의 모든 감각을 뾰족하게 세웠다.
* * *
잠시 후.
헬기가 옥상 높이 솟구쳐 올랐다.
투다다다!
유중헌이 좌우를 살피며 외쳤다.
“그래서 어디냐고, 이륙할 때까지 어딘지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그 외침에 헬멧 속에서 강영직 대원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운전라텔, 요구조자가 위치를 몰라 지금 위치 확인 중.
“아까부터 그 소리. 태건아, 그게 말이 되냐. 어떻게 자기 위치를 몰라!”
-띠릭. 지금 위치 확인. 북북동으로 운행 바람, 자세한 위치는 휴대폰으로 전송하겠다. 사육.
“그놈의 사육은, 운전라텔 북북동 사칠!”
콰과과과.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갔다.
방향을 잡은 후 유중헌의 신경질이 계속 이어졌다.
“단장님, 도와달라고 전화해 놓고 위치를 모를 수가 있습니까!”
“낯선 동네일 수도 있지.”
“표지판 봤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근처에 누구라도 잡고 물어보면 될 거 아닙니까!”
“이 자식이 왜 나한테……. 음? 오오. 위치 왔어. 그런데 이거 뭐야!”
오광휘 단장이 화들짝 놀라자 유중헌이 힐끗거리며 따져 물었다.
“뭔데요?”
“있어봐……. 됐으, 다들 확인해!”
띠링.
그의 외침과 동시에 모든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서둘러 꺼내 확인해보자 지도에 점이 하나 찍혀 있고, 좌표가 밑에 기재되어 있었다.
태건은 점의 위치를 본 순간 눈을 의심했다.
“여기 뭡니까. 산속이잖아요!”
“산중턱이면 뭐야, 조난이야?”
“이래서 정확한 위치를 몰랐단 건가?”
황대산에 이어 고수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이지성이 태건의 휴대폰을 흘깃거리며 본인 휴대폰을 만졌다.
슥슥.
빠르게 손을 놀린 그가 곧 따갑게 외쳤다.
“길도 없는 산속으로 확인됐습니다. 도로까지 대충 봐도 한 시간은 내려와야 할 거 같습니다.”
“그쪽은 산악구조대 없어?”
“우리나라에 산이 몇 갠데 일일이 다 붙여 놓겠습니까!”
이지성이 고수현을 향해 톡 쏘아붙였다.
그러는 동안 이번엔 태건이 이지성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스윽.
이어서 손가락으로 지도를 확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내 태건의 미간이 와락 좁혀졌다.
‘등산로가 아닌데.’
어려서부터 산에서 자라 얼추 짐작이 됐다.
심마니?
이런 지형으로 접근할 수 있는 요구조자라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태건이 그에 대해 말하려 했다.
무전기 버튼을 누르려는 그 찰나 무전기가 먼저 울렸다.
-띠릭. 요구조자 6세 미취학 아동으로 확인, 사육?
그 소리에 라텔 모두가 동시에 몸을 굳혔다.
“…….”
그리고 두 눈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아이?’
‘아이라고?’
‘며, 몇 살?’
다들 귀를 의심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유중헌에게 대뜸 소리쳤다.
“이 자식아, 넌 무전 주파수를 어떻게 바꿨는데 수신 상태가 이따위야!”
“지금까지 잘 들어놓고 왜 나한테 난립니까!”
“그럼 새꺄, 첩첩산중에 6살짜리가 조난당해서 119에 전화했다고,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되냐!”
“그렇게 따지면, 우리 라텔은 엄청난 확률로 탄생했습니까?”
유중헌이 팩트를 제대로 찔렀다.
“…….”
오광휘 단장은 뭐라 반박할 수가 없는지 저절로 입이 닫혔다.
침묵이 흐른 순간, 태건은 무전기를 쥐며 소리쳤다.
“다들 조용히 좀!”
이어서 바로 버튼을 누르며 되물었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신고자 6세 미취학 아동 맞습니까?”
-띠릭. 맞아. 현재 흉통을 호소……. 뭐요? 잠시 그대로 대기!
갑자기 무전이 뚝 끊어졌다.
순간 라텔 모두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뭔데!”
“흉통이라며, 어디 찍힌 거야?”
“대체 그 어린 애가 왜 거기까지 올라간 건데!”
뿌연 안개 같은 상황에 모두의 머릿속에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