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31)화 (230/320)

231화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산의 위험성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낙상, 낙석, 지반붕괴, 젠장.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무엇보다 요구조자가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다.

그리고 주변에 어른은 없는 걸까.

혼자라는 게 더 이상한 노릇이었다.

당최 어떤 상황인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답답해하던 그때 강영직 대원의 무전이 다시 들려왔다.

-띠릭, 요구조자 통점 변경. 패닉 상태로 추측, 턱 끝 또는 명치에 통증 호소.

그 소리에 모두가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버럭 소리친 오광휘 단장이 무전에 그 황당한 심정을 그대로 담았다.

-띠릭. 정석대로 정확한 전달 바란다.

-띠릭.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다친 건 아니라고 합니다!

-띠릭. 그럼 보호자는!

-띠릭. 어른에 대해 물으니까 앓는 소리를 내고, 여기 아팠다, 저기 아팠다, 이런 상황이랍니다.

강영직 대원의 무전 소리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상황을 쭉 들어본 단원들이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유 선배,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이제 서울 벗어났어. 최소 20분은 걸려.”

웅성웅성.

단원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울렸다.

그때 절묘한 타이밍을 뚫고 이지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납치당했나?”

그가 던진 말이 모두를 들썩이게 했다.

“뭐라고?”

“야, 이지성. 그게 뭔 소리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막 나가진 말자!”

비관적인 추측에 대한 힐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지성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툭 던져 말했다.

“산속이다, 주변에 어른이 없다, 누구라도 날 도와줬으면 좋겠다, 일단 아프다고 119에 전화한다. 이거 다 합쳐 봐요.”

상황 자체를 심플하게 정리하며 모두에게 의견을 구했다.

너무도 깔끔한 정리였다.

그대로 상황을 이어가보던 모두가 크게 멈칫했다.

“그, 그래도 요즘 세상에 납치는 좀…….”

“영 아닌 건 아니긴 한데…….”

다들 부정했지만 그 끝이 매끈하지 않았다.

그때 태건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6살이면 자신이 납치당했단 사실을 모를까요?”

“……그럼 애를 버리고 갔나보네.”

“굳이 그 산까지 올라가서요?”

태건이 맹점을 파고들자 이지성이 울컥했다.

“그럼 뭐, 애가 허위신고라도 했단 거야, 뭐야……. 어?”

스스로 내뱉은 말에서 뭔가 힌트를 찾은 거 같았다.

그 힌트를 직감했는지 모두 비슷하게 반응했다.

“진짜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다고 하기엔 신고 위치가 너무 이상해.”

“아으씨, 대체 뭔데!”

벅벅.

결국 황대산이 답답했는지 목을 거칠게 긁었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태건이 말했다.

“어쨌든 출동이 떨어졌으면 현장에 도착해서 신고자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건 구조의 정석 아니, 정답이지.”

“최대한 억측을 삼가고 출동 물품부터 다시 세팅하시죠.”

“그래. 그게 좋겠어. 내가 들어갈게.”

휙.

고수현이 얼른 헬기 뒤쪽으로 이동했다.

“받아요.”

“받았고, 구조니까 접이식 들것에…….”

“흉통이라니까 일단 진통제 확인했고…….”

삭삭.

각각 건네받은 출동가방을 다시금 확인하며 현장에 맞게 변화시켰다.

그 사이 태건은 무전기를 들었다.

띠릭.

“막내라텔 송신, 요구조자와 최대한 차분하게 통화 유지하며, 다방면으로 대화를 유도 부탁드립니다.

-띠릭.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대략 17분 정도. 아니……. 운전라텔이 15분 이내로 끊겠다고 수신호 보내왔습니다.

-띠릭. 사칠.

우선 무전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태건도 이내 출동가방 재정비에 동참했다.

척, 척.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의구심을 키웠다.

첩첩산중과 미취학 아동.

여러 가정을 두고 유추해도 연관 짓기가 쉽지 않았다.

헬기는 현장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투두두.

어느덧 도시를 벗어나 겨울 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산이 하나가 아니었다.

봉우리 너머 또 봉우리로 이어져 있었다.

“여기 무슨 산맥 있냐?”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소리쳐 물을 정도였다.

그 사이 라텔은 출동준비를 마쳤다.

기동복에 엑스반도, 방화헬멧.

단순 구조 출동이라 방화복 등 화재 출동장비는 제외된 모습이었다.

그렇게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썩 가볍지 못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이 너무도 많았다.

스윽.

머리 복잡한 태건은 시선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 봤다.

현재 포천시와 춘천시 사이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길이었다.

한적한 분위기의 전원이 펼쳐져 있었다.

곳곳에서 연료를 태운 하얀 연기기둥이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전원풍경을 내려다보며 머리를 식힐 때였다.

투다다다!

유중헌의 목소리가 헬멧을 통해 들려왔다.

-띠릭. 여기는 운전라텔, 신고지점 도달까지 3분 전.

라텔과 본부에 동시에 알리는 무전이었다.

그때를 기다렸단 듯 강영직 대원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지원팀 확인, 요구조자와 통화 유지 중. 통증을 계속 호소하고 있는 상황.

“막내라텔입니다. 같은 아픔이 계속된단 겁니까?”

-띠릭. 통점 위치만 변경, 그 외에 보호자나 주변 상황에 대한 질문은 의도적인 회피가 추측 됨.

그 소리에 황대산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생각할수록 머리 빠개지겠네.”

“곧 도착하니까 생각 접어.”

“그게 제 마음대로 안 됩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해. 다들 잡생각 날리고 요구조자만 생각해라. 명령이야.”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모두에게 경고했다.

“…….”

다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각자 차분함을 유지하며 현장 도착시 행동요령에 대해 다각도로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띠릭. 현장 도착 1분 전.

동시에 전속력으로 날아가던 헬기 속도가 빠르게 줄어갔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저 산속 어딘가에 있을 아이를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특정지점이 시야에 확 들어왔다.

뭉게뭉게.

산 중턱에서 하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건 엉뚱하게도 자그마한 집의 굴뚝에서 나는 연기였다.

“저기 왜 집이 있어?”

이지성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소리를 냈다.

같이 보고 있던 태건이 바로 답했다.

“심마니나 산꾼들이 머무는 오두막입니다.”

“저긴 아니겠지.”

“아니요. 저기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이 겨울에 아이가 맨몸으로 추위를 버티고 있단 소릴 테니까요.”

태건의 말을 생각하던 이지성은 이내 수긍했다.

“그러네. 저 안이 아니면 말이 안 돼.”

“중헌 선배.”

태건이 찾자 유중헌의 대답이 반사적으로 들려왔다.

“나도 거기로 가고 있어, 지금 바람 잔잔하니까 바로 떨어질 준비해!”

“예썰!”

차자작.

태건을 비롯한 단원들이 대답과 동시에 출동준비 마무리에 들어갔다.

이내 헬기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스릉.

문을 여니 겨울바람이 그대로 온몸을 덮쳤다.

“크으!”

누군가의 아찔한 탄성이 들려왔다.

쌔애앵!

이가 떨릴 차가운 바람이라 충분히 그럴만 했다.

태건은 빠르게 착륙지점을 스캔했다.

다행히 오두막 주변이 널찍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중헌 선배, 앞마당!”

-띠릭. 거기로 가는 중이야. 레펠 10초 전!

소리쳐도 전달되지 않을 소음 탓에 헬멧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투다다다.

이내 목표지점에 근접한 헬기는 급히 호버링하며 동시에 고도를 낮췄다.

태건은 가까워지는 지면을 바라보다 멈칫했다.

오두막 문이 활짝 열린 탓이었다.

띠릭.

“오두막에서 누가 나옵니다!”

-띠릭, 보고 있어. 진짜 애가 나오잖아!

오광휘 단장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다른 단원들의 무전이 빠르게 울려왔다.

-띠릭. 어? 어어? 쟤 맞는 거 같습니다. 손을 흔듭니다.

-띠릭. 지금까지 아프다고 했다며, 아니지. 너무 반가워서 아픈 걸 잊은 걸지도.

-띠릭. 손에 휴대폰 쥐고 있습니다. 확실히 맞는 거 같습니다.

아이의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알렸다.

스스슥.

그 사이 헬기는 빠르게 적정 고도에 다다랐다.

그리고 유중헌의 외침이 들려왔다.

-띠릭, 포인트 도착, 레펠 카운트 쓰리, 투, 원. 강하!

-띠릭, 강하!

촤아악!

동시에 대답한 단원들이 일제히 뛰어내렸다.

강하하는 시간은 순식간이었다.

처저적.

땅에 내리자마자 로프를 풀었다.

마지막으로 점검한 오광휘 단장이 외쳤다.

“운전라텔. 현 위치에서 대기!”

-띠릭, 최대 10분 유지 가능. 고도 올려서 대기하겠습니다!

투다다.

유중헌의 외침과 동시에 헬기가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내 헬기는 손가락 하나로 가려질 정도로 작아졌다.

그만큼 주변을 울리는 진동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같은 시각.

라텔은 전원 아이에게 달려갔다.

차자작.

듬성듬성 남아있는 눈을 거칠게 밟으며 내달렸다.

신고 후 지금까지 1시간가량 흘렀다.

그 시간을 감안하면 빨리 아이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빠르게 접근할 때였다.

아이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와, 라텔이다. 진짜 라텔이다!”

너무도 밝고 활기찬 외침이었다.

그 순간 달려가던 단원들의 걸음이 급격히 느려졌다.

터, 터더더.

“뭐, 뭐지?”

“좀 이상하다니까요.”

“아프다며, 너무 건강해 보이는 내 눈이 이상해?”

의구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이지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결정적인 말을 꺼냈다.

“허위신고 아닐까요?”

“에이, 설마……. 라고 하고 싶지만. 상황 이상하게 돌아가네.”

오광휘 단장도 부정의 말을 비틀었다.

그 정도로 아이는 발그레한 얼굴로 해맑게 반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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