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33)화 (232/320)

233화

곧 헬멧에서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라텔 신고자 건강 양호 확인, 상황종료. 단원들 확인 마치고 집결 바람.

이쪽으로 걸어오며 무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말을 듣고야 태건이 한유빈의 부모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정리하고 돌아갈까 합니다.”

“이렇게 오셨는데, 이거 뭐라도 좀 드려야 하는데요.”

“아닙니다. 유빈이가 건강한 걸 본 걸로 충분합니다.”

“그러지 마시고, 산 아래 집으로 가시죠. 올해 고구마가 실하게 잘 됐거든요. 그거라도 좀 가져가시지요.”

한유빈의 아버지는 손까지 붙들고 간절히 소원했다.

그 간곡함에 태건이 난처해졌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때 어머니가 한유빈을 끌고 오두막으로 향했다.

“너, 당장 들어와. 넌 아주 혼날 줄 알아!”

“엄마, 하앙.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디서 그런 못된 장난을 배워서, 오늘은 얄짤 없을 줄 알아!”

질질.

어머니는 우는 한유빈을 억지로 당겼다.

그런데 그때였다.

“허어엉, 어엉, 아니야. 아니……. 흐윽, 흐윽!”

터억.

꺼이꺼이 울던 한유빈이 갑자기 가슴을 짚었다.

그 모습이 어머니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너 또 가슴 아프다고 꾀병 부리니, 엄마가 그거 하지 말라고 했지!”

“흐으……. 윽, 으으……. 팔, 엄마, 나 팔.”

“이젠 또 팔이 아프니? 넌 어떻게 거짓말을 그렇게……. 다리에 힘 줘. 네 발로 걸어. 어서!”

“으, 으윽.”

한유빈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태건이 멈칫했다.

태건보다 더 먼저 나선 인물이 있었다.

이지성이었다.

그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버렸다.

“당신들 지금 애한테 뭐하는……. 저런!”

당장 쫓아가 떼어놓을 기세 아니,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타다……. 턱.

몇 발자국 가기도 전에 한유빈의 아버지가 막아섰다.

“저 녀석은 혼이 좀 나야 합니다.”

“저렇게 끌고 가서 뒤지게 패려고? 니 자식이니까 상관하지 말란 거냐!”

카르릉.

이지성은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움찔한 한유빈의 아버지는 얼른 다음 말을 꺼냈다.

“그게 아니라, 오냐오냐 했더니 꾀병이 아주 일상입니다.”

“7살이야. 이제 겨우 7살. 꾀병 좀 부릴 수 있는 나이잖아!”

“저희도 웬만하면 이해하려고 했는데…….”

“그딴 가식적인 소리할 거면 닥쳐. 남들 앞에선 소중한 척, 귀한 척! 결국 당신들 화풀이 대상이잖아!”

점점 격해진 이지성은 급기야 한유빈의 아버지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 기세를 직감한 태건이 적시에 나타나 가로막았다.

턱.

“선배, 현장입니다.”

“누가 몰라, 새꺄! 그런데 저거 안 보여? 네 눈엔 안 보이냐고!”

“…….”

태건은 묵직하게 막기만 했다.

그때 한유빈의 아버지가 억울한 얼굴로 반박했다.

“우리는 좋아서 이럽니까. 누가 내 자식 때리고 싶겠냐고요!”

“뭔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려고!”

“핑계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뛰기 싫어서 아프다고 안 뛰고, 뭐 좀 하라면 가슴 붙들고 웅크리고 있습니다.”

“…….”

“오죽 답답하면 산에 데려왔겠습니까. 좀 뛰어놀라고 했더니, 이런 일을 저지르고. 어휴유.”

한유빈의 아버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민망해 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여전히 이지성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한유빈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아아, 으으.”

고통의 흐느낌이 계속 됐다.

지금까지 파악된 증상들을 꼬집어 보면?

일정한 주기 없이 발발하는 흉통.

급격한 업다운의 바이탈.

짙은 입술.

그리고 아픔을 호소하는 왼팔.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특히 왼팔은 방금 전까지 전조증상이 전혀 없었다.

갑작스럽게 발발했다.

꾀병과 진짜 아픔의 구분법은 간단했다.

꾀병은 아픔을 알리려 한다.

그런데 정말 아프면 움츠리게 된다.

지금 한유빈은 움츠리려 했지만 어머니의 손에 끌려가고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이리 와!”

“아아, 아아아…….”

아이에겐 그 자체가 극도의 스트레스일 터였다.

그걸 모두 조합하면?

“감정적인 스트레스로 증상이 급격히 악화……. 허업!”

읊조리던 태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반응에 대치 중인 이지성과 한유빈의 아버지가 멈칫했다.

“뭐야?”

“왜, 왜 그러십니까?”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파바박!

태건이 미친 듯이 한유빈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어머니, 멈추세요!”

“…….”

“지성 선배, variant angina!”

덧붙여 외친 의학용어에 이지성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저 자식이 쉬운 국어 놔두고 또……. 그러니까 이형협심증이란 거잖아. 어? 어어?”

“왜 그러시…….”

한유빈의 아버지가 눈치를 보며 물으려 했다.

그때 이지성의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치잉!

동시에 무전기를 거칠게 눌렀다.

“라텔, 하나. 전 단원 집합. 응급, 한유빈 응급!”

그르릉!

그의 외침이 오두막과 그 일대에 강하게 울렸다.

일순간 오광휘 단장은 혼란에 빠졌다.

“갑자기 응급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설명은 나중에, 일단 들것부터. 빨리 와서 도와요!”

휙휙.

이지성이 다급히 들것을 꺼내 펼치기 시작했다.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에 오광휘 단장도 일단 의구심을 접었다.

“대체 뭐가 뭔지, 같이 해!”

차작!

곧 오광휘 단장도 이지성에게 달려들었다.

같은 시각.

태건은 한유빈에게 부리나케 다가섰다.

“유빈아, 유빈아!”

“흐으, 하으으. 아파요.”

왼쪽 팔을 붙들고 웅크리려 했지만 어머니가 팔을 잡고 있어 여의치 않았다.

태건은 그런 한유빈의 어머니에게 재촉했다.

“어머님, 유빈이 팔부터 놓아주세요. 어서요. 빨리!”

“네? 그, 그냥 꾀병…….”

어머니는 혼란과 부정을 반복했다.

설명을 하고 싶지만 한유빈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태건이 어머니와 한유빈의 손을 억지로 잡아뗐다.

턱!

“자세한 건 병원에서!”

“허으으.”

“유빈아. 그대로 있어, 으쌰!”

번쩍.

태건은 잽싸게 한유빈을 안아들고 이지성 쪽으로 내달렸다.

그 사이 헬기가 신속히 고도를 낮춰 내려왔다.

투다다!

길게 늘어진 줄이 그대로였다.

그리고 황대산과 고수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타다닥!

“무슨 일인데, 갑자기 라텔 하나야!”

“꾀병이라며!”

이쪽 상황을 모른 탓에 그들 얼굴에도 황당함이 가득했다.

일일이 설명할 틈이 없었다.

태건은 우선 펼쳐진 들것에 한유빈을 눕혔다.

처억.

그 순간 이지성이 재빨리 서포터 했다.

“난 고정할게!”

턱, 턱.

한유빈과 들것을 단단히 고정하기 시작했다.

태건은 간이혈압계를 재빨리 한유빈에 팔에 두르고 버튼을 눌렀다.

띡!

수치가 작은 화면에 뜨자 태건의 목소리가 따갑게 울렸다.

“전 바이탈 체크……. 젠장, 부정맥!”

“하으, 하으.”

한유빈의 숨소리가 너무도 거칠고 얕았다.

차작.

이지성이 순간 자리를 벗어나며 소리쳤다.

“주사 준비할게, 넌 압박부터, 단장 거기 뭐하고 서 있는 겁니까!”

“흉부압박 실시. 하나, 둘…….”

꾹꾹.

태건은 제멋대로 날뛰는 한유빈의 심장을 힘으로 반복해 억눌렀다.

오광휘 단장은 이지성의 부름에 아차했다.

아직 한유빈이 들것에 완전히 고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간다, 간다고, 헬기 최대한 고도 낮춰!”

차자작!

미끄러지듯 도착한 오광휘 단장은 재빨리 들것 고정을 이어갔다.

유중헌도 아래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는지 과격한 조종을 강행했다.

-띠릭. 내려갑니다. 내려가!

콰과과과.

헬기 고도를 급격히 낮췄다.

순식간에 지면에서 10미터 상공까지 내려왔다.

헬기가 착륙할 공간으로는 너무 협소했다. 그 전에 과격한 프로펠러의 회전력이 눈과 먼지들을 흩날렸다.

퐈자작!

그뿐 아니라 자그마한 돌멩이들도 날렸다.

그 돌멩이 중 하나가 태건의 등에 작렬했다.

퍽!

“큭, 선배 프로텍터!”

“오케이, 막아!”

이지성이 외침과 동시에 태건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사삭.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어 한유빈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었다.

그런 그들의 등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사정없이 날라왔다.

“크으! 무턱대고 낮추면 어쩌자고!”

“진짜 엔간히 좀!”

두 사람의 고통을 본 오광휘 단장이 빠르게 무전으로 소리쳤다.

“야, 운전, 똑바로 안 하냐. 애들 벌집 만들 일 있어!”

-띠릭, 그럼 어쩌라고, 착륙할 공간은 안 나오고, 라텔 하나라며!

유중헌의 반박도 일리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오광휘 단장은 들것 고정을 마무리했다.

콰과과!

헬기의 굉음에 모든 소리가 먹힐 지경이었다.

늘어진 로프가 지면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탓이었다.

그 과격한 소리를 뚫고 오광휘 단장이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고정 완료. 이제 로프에 걸어!”

“뭘 걸어요. 실어야지, 당장 와이어 내리라고 해요!”

“위에 혼잔데 누가 내려!”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쳐 따졌다.

“…….”

소리친 이지성은 아차했는지 순간 멈칫했다.

그 난리통에도 태건의 표정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그만큼 냉정함을 유지 중이었다.

이지성의 계획이 옳다.

이대로 들것을 로프에 걸어서 옮기면 환자 상태를 체크할 수가 없다.

응급 상황인 만큼 누군가 지켜봐야 했다.

휙, 휙.

좌우를 돌아보던 태건이 황대산과 고수현을 발견했다.

저들 체력이라면?

핑!

눈빛을 빛낸 태건이 차분하게 무전했다.

띠릭.

“빅라텔, 핸섬라텔, 로프타고 올라가서 와이어 내려 주세요.”

-띠릭. 오케!

대답과 동시에 황대산과 고수현은 로프를 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터덕턱턱.

가벼운 출동 복장이라 그런지 그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그렇다고 해도 와이어가 내려올 때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태건은 한유빈에 대한 CPR을 한시도 쉬지 않았다.

쑥쑥.

이지성은 항부정맥제와 진통제를 투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