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34)화 (233/320)

234화

그러던 중이었다.

“커윽 헉헉.”

한유빈의 숨소리가 변화했다.

태건은 재빨리 CPR을 멈추고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확인했다.

투둑, 투둑.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어긋난 소린 아니었다.

응급 중에 응급인 부정맥은 벗어난 듯했다.

“됐어.”

최악에서 한 걸음 후퇴한 정도다.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 사이 황대산과 고수현은 헬기에 올라탔다.

-띠릭. 와이어 하강!

지잉.

위를 바라보자 기계로 작동하는 와이어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지상에 도착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있었다.

슥.

주변을 돌아보자 한유빈의 부모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니, 이게…….”

“도, 도대체…….”

너무 놀라 이 상황을 믿지 못했다.

건강하다고 생각한 아이가 갑자기 응급이라고 하니 머릿속이 뒤엉킨 모양이다.

오광휘 단장도 그걸 본 모양이다.

“내가 가서 말할까?”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유빈이 상태 계속 체크해 주십시오.”

태건은 짤막하게 말하고 바로 보호자들에게 다가갔다.

바로 다가간 태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유빈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의사가 아니라 정확한 설명을 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할 상황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도 갑작스런 소식과 상황에 뜬구름 잡는 말을 꺼냈다.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가지 확인을 꼭 받아야 했다.

태건은 얼른 한유빈의 아버지 어깨를 붙들며 강하게 말했다.

“병원으로 당장 이송해야 합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화르륵.

재촉하는 태건의 등 뒤에서 활화산 같은 아우라가 퍼져 나왔다.

한유빈의 아버지는 그런 기세에 화들짝 놀랐다.

“헙, 그, 그러니까…….”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대답만!”

“이거 하나만, 꾀병이 아니란 거죠?”

“저게 꾀병으로 보이십니까!”

태건이 버럭 소리친 그때였다.

터덕!

한유빈의 어머니가 얼른 태건을 붙들며 울먹였다.

“뭐든 해주세요. 어떻게든 해주세요. 우리 유빈이 도와주세요!”

“…….”

“유빈이가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 정말 그런 줄만 알았어요. 아픈 줄 몰랐어요. 허으으.”

뚝뚝.

두 눈에 굵은 눈물이 금세 맺혀왔다.

태건의 팔을 붙든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태건은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얼추 이해가 됐다.

그러나 의사가 아니기에 그걸 섣부르게 말할 수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허락 감사합니다.”

스윽.

태건은 한 손을 높이 올렸다.

그와 동시였다.

와이어에 결속된 들것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그긍.

이내 들것이 헬기에 안착했다.

그에 대한 무전이 헬멧에 울렸다.

-띠릭. 빅라텔, 요구조자 회수 완료!

-띠릭. 운전라텔,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 실시!

투다다다.

헬기는 다급히 산중턱을 벗어났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지성의 따가운 무전 소리가 울렸다.

-띠릭. 까칠라텔 송신. 지원팀 속히 인근 흉부외과 병원 수배 바람!

-띠릭. 지원팀 사칠, 추가 요청사항은?

-띠릭. 응급수술이 가능한 병원, 요구조자 이형협심증 의심 증상!

-띠릭. 지원팀 확인, 행정팀에도 지원요청!

무전의 다급함으로 본부에 또다시 비상이 걸렸을 거란 걸 유추할 수 있었다.

헬기가 급격히 멀어지며 산중턱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

하지만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철수 준비 완료!”

그 소리를 들음과 동시였다.

태건이 한유빈의 부모를 향해 말했다.

“내려가시죠.”

“저기……. 강태건 단원님.”

한유빈의 아버지가 정확한 이름으로 태건을 불렀다.

처음이었다.

우뚝.

돌아서려던 태건의 두 다리가 일순간 멈췄다.

“저를 아니, 무슨 일이십니까?”

“저희가 유빈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게 절대 아닙니다.”

“…….”

“꾀병인 줄 알고, 자꾸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버릇을 고쳐주려…….”

말하는 그의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자신의 무지함에 혹여나 아이가 잘못될까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모습이었다.

태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걸 저에게 말씀하실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 그렇네요.”

“유빈이한테 직접 들려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해는 당사자와 풀어야죠.”

“그럼요. 그럴 겁니다. 정말입니다!”

한유빈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같이 굳은 결심을 내보였다.

태건은 지금 자신의 감정을 더하지 않았다.

그건 소방관으로서 역량을 벗어나는 월권이었다.

그래서 사실만을 말했다.

“일단 내려가시죠. 서두르는 게 좋습니다.”

“그럼요. 가야죠. 아니, 갑시다!”

타다닥.

한유빈의 부모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먼저 하산 길에 올랐다.

태건은 돌아서서 출동가방을 들쳐 멨다.

처억.

구급가방을 들고 서 있던 이지성이 차갑게 한 마디 했다.

“이제와서 호들갑은.”

“선배, 저분들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는데 왜 단정 짓습니까?”

태건이 덧붙여 묻자 이지성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흐음.”

“내 사정에 빗대 남을 평가하는 건 잘못된 겁니다.”

“……쯧. 여기 이러고 있을 거 아니잖아!”

타다닥.

이지성은 괜히 소리치며 먼저 움직였다.

뒤따라 태건이 움직이려 할 때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물었다.

“쟤 대체 뭐냐?”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긴 하다만……. 아니다. 우리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

사삭.

오광휘 단장은 의구심을 접고 움직였다.

“…….”

태건도 그와 함께 이동했지만 대화는 삼갔다.

하산 길은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앞에 달려가는 한유빈의 부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자작, 파박!

“크윽, 미끄러워, 조심.”

“몰라요!”

미끄러운 비탈길이라 넘어지고,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달렸다.

심지어 길이 없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치직, 찍!

옷이 찢어지고 넝마가 되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 과격한 하산 길은 엄청나게 빨랐다.

단원들이 상대적으로 느려 보일 정도였다.

“저렇게 막무가내로 가면 다칠……. 어어, 다칩니다. 다쳐요!”

오광휘 단장이 소리쳐 우려를 보였다.

“……헉헉.”

한유빈의 부모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막무가내 하산길을 강행했다.

가쁜 숨이 하얀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겨울이란 계절이 무색하게 땀이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태건과 이지성은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하산 중이었다.

“…….”

한 마디 말없이 묵묵히 뒤따랐다.

과격한 하산을 30여 분 정도 강행했을 무렵이었다.

비탈길이 끝나며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정비된 길에 접어들자 하산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파바박!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집입니다, 헉헉. 거기 차가!”

앞서 달려가던 한유빈의 아버지가 간략한 정황을 전해줬다.

그 말이 끝난 직후 오광휘 단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릭.

“훅훅. 누가 전화. 황대산이 전화야!”

“빨리 받으세요!”

“받고 있잖아, 황대산이, 어떻게 됐어……. 뭐어?”

서둘러 전화를 받은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 끝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태건이 인내하지 못하고 재촉했다.

“뭔데요. 왜요!”

“거 짜식……. 오케이. 됐어. 황대산이 다시 씨부려 봐!”

타다닥!

걸음을 이어가며 휴대폰을 멀찍이 떨어뜨려 소리쳤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한 거였다.

곧 휴대폰에서 황대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이형협심증이 맞습니다. 응급수술 들어가야 되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답니다!

그 소리가 앞서 달려가던 한유빈의 부모 귀에 쏙 들어갔다.

우뚝!

“헉헉, 수술이요?”

돌연 멈춰선 그들은 당장이라도 다리가 풀릴 듯 휘청거렸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을 받은 거였다.

단원들은 얼른 그들 근처에 멈춰 섰다.

그리고 태건이 휴대폰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대산 선배, 무턱대고 수술 얘기부터 하시면 어쩝니까. 거기 의사분 계시죠?”

-저는 포천병원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한유빈 군은 현재 심장을 둘러싼 관상동맥 중 하나가 얇아…….

의사는 최대한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했다.

하지만 응급수술이란 말에 한유빈의 부모는 패닉에 빠졌다.

“응급수술이라니!”

“심장이, 정말 심장이 아픈 거라니요!” 

사실 그렇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응급은 맞지만 관상동맥을 확장하는 시술이면 회복이 가능했다. 

물론 신속한 처치가 없다면?

위험했다.  

태건은 패닉에 빠진 한유빈 부모에게 얼른 조언했다.

“우선 동의부터 하시는 게 좋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시술 후에 들어도 되니까요.”

“우리 유빈이, 유빈이…….”

“어서요. 동의를 빨리 해주셔야 유빈이가 건강해집니다.”

태건은 가급적 차분하게 재촉했다.

한유빈의 부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휴대폰에 소리쳤다.

“시술이고, 수술이고 빨리 해주세요. 우리 유빈이 살려주세요!”

거기에 덧붙여 태건이 휴대폰에 말했다.

“의사 선생님, 보호자 동의서 작성은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시술부터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환자 바로 수술실로 올려!”

의사의 다급한 외침이 휴대폰에서 빠르게 멀어졌다.

태건은 마저 한유빈의 부모를 재촉했다.

“어서 내려가시죠. 어서요.”

“네.”

타다닥.

다시 하산길이 시작됐다.

남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1분여를 더 내려가자 산에서 벗어나 도로가 나타났다.

그 부근에 집이 세워져 있고, 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5인승 낡은 1톤 트럭이 집 근처에 주차되어 있었다.

“차로 가요. 어서요!”

타다닥.

한유빈 부모는 곧장 차로 내달렸다.

이지성이 그걸 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차키는…….”

“시골에선 차키 꽂아둬요!”

태건이 툭 치고 나와 따끔하게 한 소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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