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그건 태건의 말이 옳은 모양이었다.
벌컥.
차문이 바로 열렸다.
한유빈의 아버지가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타려 했다.
그런 그를 오광휘 단장이 붙들었다.
텁.
“지금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시겠단 겁니까!”
“그래도, 그래도…….”
한유빈의 아버지는 몸을 떨면서도 운전하려 했다.
그 미련을 오광휘 단장이 깡그리 날려버렸다.
“뒤에 타세요. 지금 운전은 절대 안 됩니다. 자, 어서요!”
턱턱.
오광휘 단장은 얼른 한유빈 부모를 뒷좌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도 같이 올라탔다.
문을 닫기 직전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말했다.
“운전해.”
“저요?”
“이거 수동이더라, 난 오토 체질이라.”
탁.
엉뚱한 대답과 동시에 오광휘 단장은 뒷문을 닫았다.
사실 1종 보통 면허다.
태건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떠넘긴 거였다.
오광휘 단장뿐이 아니었다.
“안 가냐!”
이지성이 조수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재촉했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 편하지.”
부릉!
쓴소리를 흘린 태건은 얼른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이내 태건이 트럭을 출발시켰다.
끼릭, 부앙.
마을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신속히 내려갔다.
그 사이 이지성은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켜 태건이 보기 좋게 들고 있었다. 괜히 먼저 조수석을 선점한 게 아닌 모양새였다.
“여기서...... 서둘러.”
“최대한 안전하게, 그럼 출발.”
부우웅.
태건은 침착하게 운전을 이어갔다.
뒤에선 오광휘 단장이 한유빈 부모를 달래고 있었다.
“들어보니까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랍니다.”
“…….”
“너무 자책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멀쩡한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니까 꾀병이란 생각이 들 수도 있지요.”
“…….”
끄덕.
한유빈 부모는 고갯짓만으로 대답했다.
사실 그들에게 지금 오광휘 단장의 말은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래도 오광휘 단장은 부모를 최대한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라텔은 이 좁은 트럭 안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확실히 나뉘어 있었다.
그때 이지성이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저 선배가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운전하던 태건의 신경이 그쪽으로 분산됐다.
걱정이 솟아오르려 할 때였다.
이지성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트럭 안을 울렸다.
“아까 산에서 막말하고 소리쳐서 미안합니다. 제가 멋도 모르고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
“지금 이런 말도 안 들리시겠죠. 나중에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턱.
그 사과를 끝으로 이지성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태건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곧 흩어졌다.
한유빈 부모의 모습 탓이었다.
찢어지고, 흐트러지고, 넘어진 흔적이 가득했다.
“…….”
차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른 채 병원으로 향했다.
시간이 흐른 후.
태건이 운전한 트럭은 포천병원 정문을 통과했다.
부우웅.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병원 옥상에 주차된 헬기의 모습이었다.
맞게 찾아온 모양이다.
병원의 규모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크게 둘러보니 응급실 앞 벤치에 단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이내 태건은 그 근처에 트럭을 세웠다.
터덕!
차문이 일제히 열리며 모두가 내려섰다.
단원들도 발견하고는 얼른 다가왔다.
우르르.
황대산과 유중헌, 고수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 중 황대산이 간략히 상황을 알렸다.
“아직 시술 중입니다. 수술대기실로 가시면 안내해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유빈아!”
타다닥.
간략한 인사와 동시에 한유빈의 부모는 부리나케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제야 태건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후. 이제야 한숨 돌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넌 이형협심증을 어떻게 안 거냐?”
오광휘 단장은 그런 태건을 향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태건은 덤덤하게 답했다.
“성장기 아이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뭐? 자주 나타난다고?”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대부분 자라면서 자연적으로 해결이 되니까요.”
“그런데 유빈이는 아니었다, 이건데…….”
오광휘 단장이 곱씹자, 태건이 덧붙여 말했다.
“심장과 관상동맥이 자라는 속도가 크게 차이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증상이 악화된 거고?”
“정확히는 심장이 빨리 뛰는데 관상동맥이 그걸 받쳐줄 정도로 굵어지지 않은 거죠.”
태건의 대답을 들은 오광휘 단장도 이해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엇박자가 났다라. 상당히 자세히 아네?”
“경험이 도움이 되네요. 그런데 제가 의사가 아니라 정확한 의학지식은 아닙니다.”
“그건 겸손이냐, 아니면 더는 질문 받기 싫단 꼼수냐.”
“둘 다 아닙니다. 제가 의사가 아닌 게 진실이고요.”
으쓱.
태건은 어깨를 들썩이며 사실을 한 번 더 짚었다.
이내 턱을 쓸던 오광휘 단장이 쓰게 말했다.
“어쨌든 유빈이는 아팠다가 안 아팠다가를 반복했을 거란 소리네.”
“그래서 뛰어놀기 싫었을 겁니다. 뛰면 아프니까요.”
“부모님에게 말해 봐야, 그땐 아프지 않으니까 꾀병이란 소리를 들었을 거고.”
“그 오해가 쌓인 걸 겁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말을 주고받으며 전체적으로 상황을 유추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근접한 추측일 터였다.
그렇게 유추를 마친 후였다.
스윽.
오광휘 단장이 이지성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런데 이지성이, 넌 뭐야?”
“갑자기 뭐가요?”
“아까 유빈이 엄마가 유빈이를 끌고 갈 때 그 반응. 그걸 모른 채 하란 헛소리는 하지 마라.”
“…….”
이지성은 입을 닫았다.
스윽.
태건이 나서서 오광휘 단장을 만류했다.
“단장님, 뭐 일단 우리도 복귀하는 게…….”
“강태건, 나설 때와 빠질 때 구분 못 해?”
“여기 병원 응급실 앞입니다. 여기서 이럴 거 아니잖습니까.”
그건 태건의 지적이 옳았다.
잠시 이지성을 노려보던 오광휘 단장이 차갑게 말했다.
“그 문제는 돌아가서 다시 제대로 짚어보자.”
“뭘 또 그렇게까지.”
“강태건, 너 자꾸 나선다. 이지성이한테 약점이라도 잡혔냐?”
“그게 아니라……. 어?”
턱.
어깨에 올라온 손길에 태건이 멈칫했다.
이지성의 손이었다.
태건을 옆으로 물린 이지성이 짤막하게 말했다.
“대충 예상하시잖아요.”
“뭔 말이 그렇게 두루뭉술해.”
“…….”
“왜 입 닫아. 이게 그렇게 넘길 문제 같아?”
오광휘 단장이 본격적으로 몰아붙였다.
태건이 만류하려 했지만 이젠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 쯧.’
그런데 오광휘 단장만 그걸 짚고 넘어가려는 게 아니었다.
황대산이 묵직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봤어.”
“중헌 선배한테도 말했고.”
“으, 으응.”
고수현이 덧붙여 말하고 유중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를 넘은 그 행동을 모두가 알고 있단 의미였다.
이지성은 그런 단원들을 쭉 둘러보고는 싱겁단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저에게 관심을 주시다니.”
“말 돌리지 말라고 했다.”
“……후. 그래요. 겁나 얻어터지면서 자랐습니다. 됐습니까?”
이지성이 말을 툭 던졌다.
가장 가슴 깊은 상처를 스스로 꺼낸 거였다.
삐딱해도 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 성격을 알기에 쏘아붙이려던 오광휘 단장의 말이 자신도 모르게 꼬였다.
“어, 그, 아, 크흠.”
“에, 어…….”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지성이 덤덤하게 말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드릴 수 없는 발언이었다.
어색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태건이 파고들어 분위기를 흩뜨렸다.
“단장님도 참 잔인하십니다. 그걸 꼭 찍어 먹어봐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게. 어, 그러니까…….”
“뭐요. 할 말 있으면 빨리하세요.”
태건이 몰아치자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축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할 말 없어.”
“그럼 음료수나 한 잔 돌리세요.”
그 소리에 괜히 민망해진 단원들이 오광휘 단장을 몰아붙였다.
“맞습니다. 이건 단장님이 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도 대산 선배 의견과 같습니다. 단장님이 잘못하셨네요.”
“나, 나쁜 단장님.”
같이 몰아붙였지만 다들 오광휘 단장의 탓으로 돌렸다.
오광휘 단장은 일일이 탓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쓴 얼굴로 수긍했다.
“그래. 가자, 가서 음료수 한잔 때리고 복귀하자.”
“저기 자판기 있습니다.”
“마침 가까이 있네. 자.”
척.
오광휘 단장은 뜬금없이 지폐를 태건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태건이 눈을 끔뻑거리며 물었다.
“이걸 왜 주십니까?”
“막내가 뽑아와야지. 어디 막내가 단장을 시켜 먹고 있어.”
휙.
오광휘 단장은 뻔뻔하게 말하며 벤치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다들 한 마디씩 던지며 지나쳐갔다.
“막내가 막내다워야 막내지.”
“난 스포츠음료.”
“모, 못된 막내네.”
이어서 이지성도 한 마디 했다.
“하여간 본전도 못 찾는 재주가 일품이야.”
스윽.
그가 흘린 말에 태건이 발끈했다.
“제가 누구 때문에 그랬는데요!”
“내가 그러라고 했어?”
“그거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아, 됐어요!”
휙.
태건은 더 따지지 않고 돌아섰다.
그런 태건의 입가엔 어느새 가느다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다들 철이 쬐금 들었네.’
누구라고 할 거 없이 이지성의 아픔을 얼렁뚱땅 흘려 넘겼다.
잠시 후.
라텔은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유빈이 얼굴은 보고 가야지.”
“우리를 가장 좋아하는 소방관이라는데, 사진도 한 방 찍어야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하네.”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한유빈에게로 향했다.
어린 아이라 좀 더 마음이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렇게 회복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유빈의 아버지가 마침 저 앞에 보였다.
등이 보였지만 특유의 옷차림으로 바로 알아봤다.
“저기 계시네.”
처저적.
걸음을 재촉해 그와 거리를 좁혔다.
“유빈이 아버지…….”
막 부르던 그때였다.
한유빈 아버지의 다급한 통화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러니까 급매로 부탁드리는 거 아닙니까. 저희 땅하고 집하고 전부 다요……. 살 사람이 없다고만 하지 마시고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애원하는 통화소리가 모두의 귀에 강하게 꽂혔다.
“…….”
일순간 태건과 단원들 모두 걸음을 멈췄다.
무슨 전화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입가에 미소가 일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 중 부유하게 자란 단원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통화인지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 중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라텔, 일단 후퇴.”
“빽, 빽.”
척, 척.
다들 아무 말 없이 뒷걸음질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