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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36)화 (235/320)

236화

태건과 단원들은 조용히 다시 병원 밖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병원엔 이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엔 무심코 지나가던 사람들이 주황색 기동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저 소방관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

“본 거 같긴 한데…….”

갸웃갸웃.

여러 환자와 보호자들이 힐긋거리며 쳐다봤다.

아직 긴가민가하는 표정들이었다.

알아보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아까 옥상에 헬기가 앉았잖아요.”

“맞아. 안내 방송도 나왔었고요.”

“응급환자라고 했었어요.”

“헬기 옆면에 이상한 그림이……. 설마?”

의아한 시선들이 점점 확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은 이상하지 않았다.

라텔은 무전 감청 건으로 너무 많이 알려져 있었다.

그 분위기를 직감한 오광휘 단장이 난처한 표정으로 단원들에게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병원 밖도 안전하지 않을 거 같은데.”

“일단……. 오오, 옥상으로.”

유중헌이 더듬거리며 해결책을 냈다.

일언반구 없이 모두 동의했다.

“고고.”

“어서!”

차자작.

일제히 몸을 돌린 라텔은 바쁜 걸음을 옮겼다.

다들 주목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들이었다.

그런데 한 명, 관심 받는 걸 즐기는 단원이 있었다.

고수현이었다.

“맞습니다. 저희가 바로 라……. 읍!”

“선배, 지금은 그거 아닙니다.”

태건이 얼른 고수현의 입을 막고 이끌었다.

곧 모두가 포천병원 옥상으로 올라왔다.

녹색 방수페인트로 가득한 공간 한가운데 헬기가 떡하니 서 있었다.

휙휙.

끝까지 뒤를 돌아본 황대산이 이내 숨을 툭 내쉬며 말했다.

“휴, 다행히 따라오는 분은 안 계십니다.”

그제야 태건이 고수현의 입을 놓으며 한소리했다.

“선배, 거기서 밝히면 뭐요. 그렇게 주목받으면 유빈이 아버지가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태건이 말이 옳아,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어.”

“이, 이번엔 네가 잘못했어.”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덧붙여 나무랐다.

고수현은 쓴 얼굴로 입을 삐쭉 내밀었다.

“칫, 언제는 비주얼 담당이라면서 여기저기 얼굴 팔고 다니라더니.”

“TPO 모르냐. 타임 짜샤, 장소 짜샤, 상황 짜샤!”

오광휘 단장이 윽박지르자 고수현은 그제야 어깨를 움츠렸다.

“알았다고요. 그래서 조용했다고요.”

“조용하기는 끌려왔으면서.”

마지막으로 합류한 황대산이 끝내 한소리했다.

“피이.”

고수현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어수선한 모습에 태건은 한쪽 머리가 지끈거렸다.

“언제까지 다들 그럴 겁니까. 집중 좀 해요. 좀!”

울컥.

결국 태건이 한소리 터트렸다.

“…….”

단원들 모두 쌜쭉한 표정으로 서로를 흘겨봤다.

‘너 때문이야.’

‘선배 때문입니다.’

‘단장님도 잘한 건 없으십니다.’

이 와중에도 눈짓으로 탓했다.

태건은 더 이상 단원들에게 관심을 접고 헬기로 향했다.

탈칵, 턱.

이제야 출동장비를 풀었다.

한층 더 몸이 가벼워진 태건이었지만 표정은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다 판다고, 집이고 밭이고 전부…….”

털썩.

읊조리며 헬기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한유빈 가족의 터전을 떠올렸다.

고지대에 위치했고 주변 인가까지 한참 내려와야 했다.

울타리 없는 집 한 채에 뒤편에 닭장을 설핏 봤었다. 그리고 밭은 모양이 반듯하지 않고 땅도 고르지 않은 맹지였다.

‘다 합쳐서 천 평이나 될까.’

크기는 작지 않지만 지리적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때 침묵을 뚫고 이지성이 툭 던져 말했다.

“똥값도 이런 똥값이 없네.”

“…….”

스윽.

고개를 돌려보자 이지성은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한소리했다.

“이지성이, 넌 이 상황에 주식 보냐?”

“주식이었음 상장폐지 돼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대체 뭔 소린데!”

“그 집하고 주변 땅, 벌써 매물로 나왔습니다. 여기요.”

처억.

이지성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걸 본 오광휘 단장이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에게. 진짜 여기가 맞아. 다른 동네 아니고?”

“내비 찍고 출발할 때 찍혔던 주소로 검색한 겁니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쓸데없이 기억력은 좋아서 다행이다.”

오광휘 단장이 이상한 어법으로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건 누구도 중요하지 않았다.

슬금슬금 다가와 전부 금액을 확인했다.

“겨우?”

“설마?”

“이건 좀…….”

다들 눈살을 찌푸렸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금액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한 번 더 쓰게 말했다.

“이걸로 병원비가 될까.”

그때 조용한 가운데 황대산이 묵직하게 헬기 옆면에 손도장을 찍었다.

터엉!

“젠장!”

“…….”

흠칫.

모두의 놀란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묵직한 분위기를 풍기는 황대산의 입에서 너무도 의외인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왜 또 생기는 거야. 쓰벌.”

“대산 선배?”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에잇!”

퉁.

괜히 스키드 랜딩을 차고는 난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태건은 물론 모두가 그의 민감한 반응을 눈치 챘다.

‘이번엔 대산 선배야?’

‘뭔 일만 생기면 하나씩 얽혀 있어.’

차마 말하지 못하고 다들 씁쓸해했다.

황대산의 마음 속 깊은 아픔이 드러난 건 처음인 탓이다.

안 그래도 무거운 분위기가 더 무거워졌다.

“부모 입장이야 애가 더 중요하겠지.”

“그런데 유빈이는요. 퇴원했는데 돌아갈 집이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아으씨.”

벅벅.

짜증을 내며 머리를 거칠게 긁는 단원도 있었다.

고심하던 태건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단원들을 쭉 둘러본 후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간단하게 생각하시죠. 병원비를 우리가 부담하면 되잖아요.”

“…….”

“우리가 그동안 받은 게 얼맙니까. 그거 다 꿀꺽하고 오늘 발 뻗고 자겠어요?”

태건은 강한 어조로 공론화시켰다.

그런 태건에게 오광휘 단장이 묵직한 표정으로 딴죽을 걸었다.

“무슨 명목으로 전달할 건데.”

“네?”

“뭐라고 하면서 봉투를 내밀 거냐고. 사정이 딱하신 거 같아서 저희가 보태려고 합니다. 이럴 거냐?”

“그건…….”

태건이 말하려 할 때였다.

난간에 있던 황대산이 낮게 외쳤다.

“저거 유빈이네 트럭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뭐라고요?”

타닥.

모두가 한달음에 난간에 도착했다.

아래를 보니 정말 타고 온 트럭이 다급히 병원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이지성이 한 마디 했다.

“직접 발로 뛰어서 빨리 처분하실 모양이네요.”

“뭐 저렇게 급해!”

“내놨으면 좀 기다리는 맛이 있어야지!”

한유빈의 아버지가 서두르는 걸 보니 더욱 씁쓸했다.

그때 태건이 하려던 말을 마저 내뱉었다.

“전달할 시간도 없겠습니다. 다이렉트로 병원비 중간정산 하시죠.”

툭 던진 말에 모두가 귀를 활짝 열었다.

“오, 맞다. 여기 병원이지.”

“가장 부담되는 건 시술비야.”

“특히나 흉부외과 시술은 상당히 비싼 편이지.”

“입원비야 요즘 보장되는 보험이 많으니까.”

한 마디씩 긍정적인 말을 건넸다.

누구보다 황대산이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태건은 그를 주목했다.

‘유빈이도 유빈인데, 선배도 하나 덜어내셔야죠.’

이번 결정의 결정적인 역할로 작용한 건 황대산이었다.

과거에 묵혀둔 그의 어두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 터였다.

각자 가슴 깊이 자리한 돌을 걷어내려 모인 라텔이다.

황대산이 품은 가슴속 응어리도 하나 덜어낼 때가 됐다.

그리고 처음 한유빈을 꾀병이라 오해한 부분도 작용했다.

‘양심에 털 나는 건 좀…….’

기왕이면 개운하게 복귀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으니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내 태건의 눈빛이 살짝 번쩍였다.

그리고 갑자기 엉뚱한 발언을 했다.

“아니지, 이건 아닙니다.”

“넌 또 왜 잘 나가다가 유턴하냐. 또 뭐가 문젠데!”

“잠시 모여보세요.”

“그래. 대체 뭔지 들어나 보자.”

턱. 턱.

단원들이 가느다란 눈초리로 모여들었다.

모두가 둘러서자 태건의 목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러니까…….”

쏙닥쏙닥.

대체 뭘 들었는지 단원들 표정이 점점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거 괜찮네. 얘가 잔머리가 참 좋아요.”

“이런 폭넓은 사고와 응용력이 현장에서도 빛나는 우리 라면 아니겠습니까.”

“역시 넌 맛있……. 아니, 멋있는 녀석이야.”

뭔가 이상한 칭찬소리였다.

“하, 하.”

태건은 어이가 없어 그냥 쓰게 웃고 넘어갔다.

이내 오광휘 단장이 옥상 문을 가리키며 낮게 외쳤다.

“각자 위치로.”

“위치로!”

차자작.

태건과 단원들이 쏜살같이 움직였다.

티격태격하다가도 이럴 땐 거짓말처럼 한마음이었다.

잠시 후.

태건 홀로 원무과에 들어와 있었다.

찌직, 찍.

프린터가 작동해 납부영수증을 뱉어냈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이 감동한 얼굴로 공손히 건넸다.

“라텔에서 시술비를 대납해 주실 줄은 몰랐어요.”

“이건 비밀입니다.”

“그럼요. 조용히, 쉿.”

찡긋.

원무과 직원은 모종의 계획에 기꺼이 동참해줬다.

이내 태건이 원무과를 나와서 로비 방향으로 이동했다.

로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저 사인 좀 해주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라텔이라며? 아까 그 사람들 맞지?”

“맞네. 맞아! 우리도 사진 찍어 주세요!”

우르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더 몰려 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속엔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팬서비스 및 이목 끌기 담당이었다.

오광휘 단장은 아직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었다.

“저희 라텔을 이렇게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면 고수현은 제대로 즐기는 중이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핸썸라텔입니다. 여기 사인 받으시고, 사진도 찍으실 거죠?”

슥슥, 삭삭.

물 만난 고기처럼 너무도 행복해했다.

황대산과 유중헌, 이지성은 평범하게 팬서비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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