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37)화 (236/320)

237화

그런 대비되는 모습에 태건은 가볍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훗.”

그때였다.

스윽.

“저기 혹시 강태건 단원님…….”

누군가 다가와 바로 태건을 알아봤다.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주황색 기동복 차림 탓이었다.

태건은 앞선 볼일이 끝난 터라 굳이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싱긋.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진짜 강태건 단원이야!”

누군가 순간 강하게 외쳤다.

그 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우르르.

“강태건 단원이다!”

삽시간에 모여든 사람들이 휴대폰과 종이를 내밀었다.

“사진 찍어주세요.”

“사인 해주세요.”

“욕 해주세요.”

문득 들려온 이상한 요구에 태건이 삐끗했다.

“뭐, 뭘 해달라고요?”

“욕이요. 무전할 때 막 소리쳤던 거요. 그거 해주세요!”

“와아, 해줘요!”

주변 사람들이 환호하며 보채기까지 했다.

태건은 순간 너무도 황당해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땐 상황이 그랬던 거라니까요.”

“와하하!”

사람들은 서글퍼하는 태건을 보며 더욱 기뻐했다.

태건도 장난으로 표현한 거였다.

‘어떤 이미지면 어때.’

이렇게 알아봐주는데 대한 감사함이 더욱 컸다.

그때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고맙습니다!”

엉뚱한, 그리고 너무도 뜬금없는 인사였다.

그런데 그 인사가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퍼져갔다.

“맞아요. 감사해요.”

“라텔도 고맙고 소방관분들 모두에게 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걱정 없이 삽니다.”

그 선명한 인사말들이 태건과 단원들의 가슴을 크게 진동시켰다.

‘이거지, 이거야.’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격려였다.

그리고 모든 소방관들에게 똑같이 전해지길 바랐다.

그걸 위해 만든 라텔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음에 자부심이 더욱 짙어졌다.

한편.

포천병원의 병원장실.

병원장이 원무과장을 향해 더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게 정말인가?”

“네. 라텔이 로비에서 팬서비스 중입니다. 지금 환자들과 내방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후후. 응급환자를 받은 게 신의 한수였어.”

병원장이 자화자찬하자 원무과장이 얼른 추켜세웠다.

“탁월하신 선택이셨습니다.”

“그보다 오 단장도 왔나. 차 한 잔 하자고 하면 실례일까?”

스윽.

재차 묻는 병원장의 손은 빈 종이로 향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의 팬인 모양이었다.

그때 원무과장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응급환자 시술비 말입니다. 라텔에서 대납했습니다.”

“뭐?”

“그 아이 사정이 좀 안 좋은 거 같습니다. 비밀로 해달라고도 했습니다. 그게 참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습니까.”

원무과장은 라텔에 대한 칭찬을 듬뿍 얹었다.

그런데 병원장 표정이 어느새 와락 구겨져 있었다.

“원무과장, 자네 제정신이야?”

“왜 그러시는지…….”

“범국민적으로 지지받는 라텔한테 돈을 받아? 병원 말아먹으려고 작정했나!”

쾅!

병원장은 책상까지 내리치며 격분했다.

그제야 원무과장도 뭐가 문제인지 알아챘는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빠빠, 빨리 돌려주고 병원차원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 사람 일처리를……. 뭐해, 얼른 가 봐!”

“최대한 신속히 해결하고 보고를…….”

“가보라니까!”

버럭!

병원장이 진정 화를 내고야 원무과장은 쏜살같이 도망쳤다.

잠시 후.

태건은 한창 팬서비스 중이었다.

어느새 단원들과 합세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또 했지만 행렬은 쉽게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흠칫 몸을 떨더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태건에게 바짝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야, 너 무슨 일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갑자기 왜요.”

“중간정산금에 오류가 있다고 우리 계좌번호 보내라잖아.”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태건은 억울할 따름이었다.

“분명히 확인하고 납부했는데요.”

“아, 짜식. 일처리 두 번하게 만드네.”

그 속삭임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저, 저분들 분위기가 안 좋은데.”

“너무 오래 잡고 있었나?”

“바쁘신 분들인데……. 아무래도 안 되겠지?”

“사진이라도 찍자.”

찰칵, 찰칵.

슬쩍 물러서서 단원들 사진만 찍기 시작했다.

몇 명이 시작한 행동이 순식간에 모두에게 퍼져갔다.

움직일 공간이 생기자 오광휘 단장이 양해를 구하며 서서히 움직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위험이 닥쳤을 때 저희를 찾아주십시오.”

“벌써 끝났……. 읍.”

“크흠. 선배.”

고수현이 어리둥절해 하자 이지성이 얼른 옆구리 찔러 눈치를 줬다.

그렇게 그들은 팬사인회를 마치고 옥상으로 향할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옥상으로 돌아와 통화하던 오광휘 단장이 눈을 끔뻑거렸다.

스륵.

휴대폰을 내린 그가 얼떨떨하게 말했다.

“이게 뭔 경우야.”

“진짜 착오가 있었답니까? 아까 분명히 확인했는데요.”

태건은 억울함을 한 번 더 어필했다.

오광휘 단장은 고개부터 저었다.

절레절레.

“그게 아니라 시술비 돌려준대.”

“네?”

“유빈이가 병원복지프로그램 적용대상인데 중산정산에 적용이 안 됐다고, 아무튼 돈 돌려준대.”

“전 처음 듣는 프로그램입니다만.”

태건도 얼떨떨해졌다.

그때 고수현이 눈을 굴리다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거네. 병원 이미지 챙기기. 증평에서도 고아원 무료진료 이런 거 하거든.”

“그런 거라면 좋은 거긴 한데요.”

태건의 대답 속에 여운이 남아있었다.

그걸 오광휘 단장이 받았다.

“우린 얼굴 판 거 말고 뭐 한 게 없어지는 건데, 칼을 빼들었는데 무도 못 자른 거잖아.”

“그게 좀 그러네요.”

그에 대해 황대산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일인데, 그때도 그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너무 작은 혼잣말이라 아무도 듣지 못했다.

다들 뭔가 개운하지 않은 표정을 지을 때였다.

이지성이 툭 한 마디 던졌다.

“그럼 그 돈으로 차라리 주변 땅을 더 사면 되겠네요.”

“어?”

“밭이 넓어지면 수입이 늘어날 거 아닙니까.”

단순한 이치면서도 적절한 계산이었다.

그 아이디어에 태건이 놀라 바라봤다.

“선배가 어쩐 일로 그런 훌륭한 생각을?”

“난 양심도 염치도 없는 놈인 줄 알아?”

“막말한 게 엄청 미안하긴 하셨나 보네요.”

“넌 그 주둥이 좀 다물어.”

이지성은 괜히 태건에게 툴툴거렸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은 모두에게 동의를 구했다.

“지성이 의견에 반대, 손.”

“저……. 는 아닙니다.”

고수현이 번쩍 손을 들려다 얼른 내렸다.

오광휘 단장이 바로 지적했다.

“한국말인데 끝까지 좀 들어라.”

“보통 들라고 합니다.”

“그건 그쪽에 가서 따지고, 아무튼 모두 동의란 거지.”

“네!”

대답하는 단원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했다.

오광휘 단장이 시원하게 외쳤다.

“뭐해, 칼을 빼 들었는데 제대로 휘둘러야지. 움직여!”

“갑시다!”

우르르.

한껏 외치며 움직였다.

그런데 모두가 아니라, 이번엔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은 남아있었다.

유중헌은 크게 도움이 안 될 성격 탓이었다.

오광휘 단장은 경우가 좀 달랐다.

“라텔, 본부장님, 단장입니다. 복귀가 늦어지는 이유가…….”

이쪽 상황에 대한 보고를 이어갔다.

어느새 해가 저물 시간이 되었다.

생각보다 출동시간이 엄청 길어지고 있었다.

한유빈의 집 근처까지 왕복하는 시간이 더해진 탓이다.

그러나 누구 한 명 불만을 보이는 단원이 없었다.

‘좋은 일이잖아.’

‘어려울수록 도와야지.’

‘받은 거 돌려주는 건데 아까울 게 뭐 있어.’

다들 이 시간을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었다.

구조만 치열한 게 아니다.

살아간다는 치열함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라텔은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태건이 대표로 하얀 봉투를 오광휘 단장에게 전달했다.

“여기 있습니다.”

슥.

밝게 받아든 오광휘 단장은 내용물부터 확인했다.

-토지매매계약서.

주소지는 유빈이네 주변이었고, 계약자는 라텔로 되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만족한 얼굴로 다시 곱게 접었다.

“고생들 했어.”

그 말에 고수현이 삐쭉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쉽던데요. 워낙 외진 지역이고 거래도 몇 년 동안 없어서 땅주인이 아주 쌍수를 들고…….”

떠벌떠벌.

가끔 이렇게 눈치가 없었다.

특히 오늘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

지켜보던 황대산이 결국 한소리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될 걸.”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선배도 알잖아요.”

“알았어. 너 잘했어.”

휙휙.

황대산이 대충 손을 내저으며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이내 태건이 좋은 소식을 알렸다.

“오는 길에 들었는데 유빈이 깨어났답니다.”

“그럼 이제 가서 마무리 짓고, 우리도 복귀하자.”

“네.”

태건과 단원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라텔은 어느새 회복실 앞에 서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에 한유빈이 누워 있었다.

띡, 삐빅.

각종 의료기기가 부착되어 신호를 보내주고 있었다.

보기에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라텔의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짜식, 손 흔드네.”

“관상동맥확장술은 회복이 빠르다면서요.”

“기술이 많이 좋아진 거지.”

한마디씩 하자 태건이 불쑥 끼어들었다.

“얘 기다립니다. 손부터 들어요.”

“그래. 유빈아, 짜샤.”

휙휙.

다 같이 짓궂은 얼굴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런 그들의 시선 끝엔 한유빈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방긋.

다들 그런 한유빈과 좀 더 시선을 마주했다.

저 모습이다.

진심으로 바랐던 미소를 보자 다들 한층 편안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때 한유빈의 부모가 다가왔다.

여러 일로 이젠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한규성, 이미정.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그런 그들 중 한규성이 조금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빈이 보고 가신다고 아직 복귀도 못하시고, 죄송해서 어떻게 합니까.”

“이거요. 아까 사놨는데 어디 계신지 몰라서요.”

이미정은 음료수 상자를 내밀었다.

얼마나 들고 다녔는지 손잡이가 흐물흐물해졌을 정도였다.

정작 부부의 모습은 산에서 내려왔을 때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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