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박규영 본부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라텔 1기. 자네들이 쌓아올린 덕이 만들어낸 결과야. 그러니 조금은 기쁘게 받아들여도 돼.”
“아……. 아직 좀 얼떨떨합니다.”
“그건 단장이 추가로 설명해 줄 거야. 그보다 이 정도면 서프라이즈라고 할 만한가?”
박규영 본부장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엉뚱한 질문을 건넸다.
그 순간 태건을 비롯한 모두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저 분도 절대 평범과는 거리가 멀어.’
오히려 그런 성격이라 특수소방단 본부장 자리가 어울렸다.
곧 태건과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했다.
“깜짝 선물 감사합니다!”
“만족한 모양이군. 그럼 내가 자리를 피해줄 때가 된 거 같아. 얘기들 나눠.”
처억. 척.
박규영 본부장은 느긋하게 영외 헬기장을 벗어났다.
“라텔.”
오광휘 단장이 간단히 대표해 인사했다.
곧 박규영 본부장이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라텔 1기 모두가 오광휘 단장을 둘러쌌다.
크르릉.
“단장님, 우리 사이에 이거 너무 섭섭한 상황 아닙니까?”
“단장님. 이건 경우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윗선에서 비밀유지라고 압력을 넣었어도 우리끼리는 공유를 했어야죠!”
선배들이 한 마디씩 으르렁거렸다.
마지막으로 태건이 도끼눈을 뜨고 한소리했다.
“이럴 거면 그동안 저는 왜 같이 다닌 겁니까?”
누구보다 억울해했다.
그 몰아침에 오광휘 단장이 얼른 귀를 막았다.
텁!
“어으, 잔소리 좀. 내가 니들 때문에 귀가 조용할 날이 없어!”
“조용하게끔 하셔야 조용해질 거 아닙니까!”
“시끄러, 다들 셧업, 묵념해. 묵념!”
투덜투덜.
오광휘 단장과 1기 단원들의 팽팽한 입씨름이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따로 자리했다.
야외테이블에 마주앉은 두 사람 중 태건의 시선은 이례적으로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 태건을 향해 오광휘 단장이 손을 휘저었다.
휙휙.
“야, 강태건.”
“…….”
“이젠 씹냐. 아주 투명인간 취급이네.”
오광휘 단장이 어이없어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때 태건이 그를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젠 제가 보이십니까? 안 보이시는 줄.”
“이 자슥, 뒤끝 봐라.”
“많이 보십시오.”
홱!
태건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결국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푹 찡그리며 한소리했다.
“새꺄. 적당히 좀 해라.”
“됐거든요.”
태건이 계속 딴청을 피우자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나는 생각 없이 벌인 일 같냐?”
“그건 아니시겠죠.”
“그럼 그걸 먼저 물어, 짜샤.”
퉁.
오광휘 단장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태건도 이런 모습만 보일 게 아닌 터라 마음을 돌렸다.
“후. 그럼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너.”
“네?”
“지금 라텔의 가장 큰 문제점이 너니까.”
순간 태건의 시선이 착 가라앉았다.
구구구.
뭔가 깊이 억누르는 어두운 분위기에 주변이 진동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한층 더 차가워진 태건이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말했다.
“단장님, 무슨 말씀이신지 확실히 해주셔야할 겁니다.”
“네가 없는 라텔을 생각해 본 적 있어?”
“아니요.”
“그럼 그걸 생각해.”
오광휘 단장이 딱 잘라 답했다.
너무 애매모호한 대답이었다.
차가운 분위기 가득한 태건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쿵!
“확실히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란 존재가 너무 커.”
“그게 왜 문제입니까.”
태건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대답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답 나오잖아. 네가 없는 라텔의 존속 여부.”
“제가 계속…….”
“혼자 언제까지 풀벌레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닐 건데.”
오광휘 단장이 말을 끊고 따져 말했다.
그래도 태건의 대답은 하나였다.
“옷 벗을 때까지요.”
“라텔은 그 다음에 해체하고?”
“왜 해체합니까. 계속 이어가야죠.”
“…….”
오광휘 단장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태건은 순간 멈칫했다.
자신이 방금 뱉은 앞의 말과 상반되는 걸 인지했다.
“흐음.”
“그게 문제야. 라텔이 계속 이어지려면 모두가 발전해야 돼.”
“…….”
“네가 모든 현장에 출동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짚어 말했다.
태건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다들 위험해집니다.”
“네가 없다고 불 못 끄고, 사람 못 구하면. 그게 더 문제 아니냐?”
“…….”
태건은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침묵을 예상한 듯 오광휘 단장이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너의 삶은?”
“제 삶이야…….”
태건이 말을 이어가려 했다.
처억.
손을 들어 막은 오광휘 단장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태건아, 채용이하고 성규가 왜 널 살렸는지 생각해 본적은 있냐.”
“흐읍.”
“그 자식들이, 지들 대신 불 끄고 사람 구해 달라던?”
“…….”
태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을 내린 채 무겁게 테이블만 바라봤다.
스륵.
오광휘 단장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한 번 생각해 봐.”
그 말을 남긴 채 오광휘 단장은 멀어져갔다.
홀로 남은 태건의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태건은 개 펜스 안에 들어와 있었다.
흙바닥에 앉아 좌우에 이순이와 삼식이의 등을 쓸고 있었다.
슥, 슥.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태건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 채용이하고 성규가 왜 널 살렸는지 생각해 본적은 있냐.
오광휘 단장이 건넨 화두가 떠나지 않았다.
“…….”
저 먼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저녁 무렵.
끼익.
대기실 문이 열리고 태건이 들어섰다.
안에는 단원들과 기장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활발한 인상의 왕지호가 손짓발짓해가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양이었다.
“……그때 총알이 빗발치는데, 헬기에 구멍 뚫리고!”
“우, 우와.”
다들 입을 벌리며 감탄 중이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태건은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그는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앉아 휴대폰으로 동영상 시청 중이었다.
- 이 소방실험의 결과로…….
휴대폰에서 익숙한 단어들이 들려왔다.
스윽.
태건은 잔잔한 표정으로 오광휘 단장 앞에 섰다.
그늘이 졌지만 오광휘 단장은 태건의 등장을 이미 알고 있던 모양이다.
시선을 주지 않고 입만 열어 물었다.
“뭔데?”
“보름만 주십시오. 2기 전원 출동 가능 상태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의 눈꺼풀이 크게 들썩였다.
꿈틀.
이어서 눈만 올려 떠 바라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콜.”
승낙과 동시였다.
스윽.
돌아선 태건의 두 눈에 2기 단원들이 가득 담겼다.
“후후.”
태건의 미소가 낮게 울렸다.
그 순간 2기 단원들이 움찔했다.
스윽.
섬뜩한 시선을 느껴 태건을 바라본 순간 다들 크게 동요했다.
“왜, 왜, 또 뭔데…….”
* * *
한 시간 후.
세상은 어둠이 찾아왔다.
그 어둠을 뚫고 특수소방단 본부의 훈련장에 빨간 불꽃이 일렁거렸다.
화르륵.
훈련 건물 전역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진짜 불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훈련 건물 주변엔 소방차들이 대기 중이었다.
그 소속은 우면119안전센터였다.
우면센터장이 불타는 훈련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들은 하여간 시도 때도 없이 난리야.”
“그러니까 말입니다.”
옆에서 김위영 소방사가 슬쩍 한 마디 얹었다.
그 소리에 우면센터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찌릿.
“니들 훈련도 겸하는 거야. 정신 바짝 차려!”
“헙, 알겠습니다!”
김위영 소방사는 괜히 한 마디 했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다.
반면 다시 건물을 바라보는 우면센터장 시선에 걱정이 차올랐다.
“하여간 무식한 녀석들. 쯧쯧.”
한편.
그 불타는 건물 속 어딘가에 누가 존재했다.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이 사방에 가득한 공간이었다.
출동장비를 완전히 갖춰 입은 누군가가 있었다.
쉬익, 쉬익.
호흡기를 통해 안전히 호흡 중이었다.
불길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당장 엄청난 위험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주변엔 소화기와 소화볼 등 안전장비도 확실히 갖춰 놓고 있었다.
그 누군가의 씹어뱉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까드득!
“강태건이, 이 자식. 복수를 이렇게 하냐. 썩을 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광휘 단장이었다.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빅라텔 송신, 단장님, 우리가 왜 불 속에 있어야 하는 겁니까. 왜요!
-띠릭. 핸썸라텔 송신,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요!
-띠릭. 까칠라텔 송신, 우리가 훈련할 땐 위험하다고 더미 집어 넣어놨잖아요. 우리가 더미입니까!
불만들이 가득한 울림이었다.
뒤를 이어 태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릭. 막내라텔 아니지, 라면라텔 송신. 후배들 훈련에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해 주신다면서요.
-띠릭. 인마, 짜샤. 불속에서 대기란 말은 없었잖아!
-띠릭.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다들 요구조자니까 괜히 탈출 마시고, 잘 버티세요. 이상!
그 소리에 참다못한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낚아채 소리쳤다.
띠릭!
“빌어먹을 라면 시끼, 2기들 뭐해. 빨리 구출해라. 안 그러면 밤새 우면산 반복할 줄 알아!”
한껏 외친 오광휘 단장은 이를 부두득 갈았다.
으득!
“날 불 속에 던져 놔? 강태거어언!”
그의 눈이 불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