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1기 단원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오죽하면 이지성이 오광휘 단장에게 몸을 기울여 물었다.
“쟤 왜 저렇게까지 난립니까?”
“내가 벌집을 건드린 거 같아.”
그 말과 동시에 다른 1기 단원들이 가느다란 눈빛으로 흘겨봤다.
“또요? 하여간.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째 단장님하고 태건이 분위기가 묘하더라.”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들을 어쩔.”
찌리릿.
흘겨보는 눈빛에 어느새 날카로움이 깃들었다.
오광휘 단장은 썩 틀린 말이 아니라 뭐라고 하지 못했다.
“우씨.”
괜히 툴툴 거릴 뿐이었다.
이후로도 라텔의 훈련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그러나 매번 불을 지르며 인위적인 위험을 자초하진 않았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르게 변화를 주었다.
그 모든 훈련은 태건이 자신의 경험을 참고했다.
무엇보다 훈련은 정해진 시간에 진행되지 않았다.
모든 현장이 그렇듯 갑자기 이뤄졌다.
어느날 오후 시간.
-에에엥!
본부 전역에 사이렌이 울렸다.
그리고 사방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간략한 상황설명이 시작됐다.
-우면산 중턱, 조난자 발생. 깡패라텔 대동 후 2기 전원 출동!
울리는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다.
그건 태건 본인의 목소리였다.
지원팀 사무실에 정말 태건이 자리하고 있었다.
툭.
마이크에서 입을 뗌과 동시였다.
-출동!
파바박!
-컹컹!
복도에서 격한 외침과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순이와 삼식이의 짖음도 함께였다.
태건은 어느새 시계를 보며 체크 중이었다.
“전보다 반응이 3초 정도 빨라졌네.”
그런 태건의 주변에 있는 지원팀 대원들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휙휙. 척척.
라텔의 훈련은 곧 이들에게도 훈련 상황이었다.
최현모 조장이 지원팀 책임자로 훈련에 응하고 있었다.
“우면산 지도 캡처해서 바보라텔에게 전송해!”
“지금 풀 화면, 줌 화면 캡처 중!”
차자작.
컴퓨터를 앞에 둔 지원대원이 빠르게 보고했다.
최현모 조장은 바로 옆에 지원대원에게 소리쳤다.
“우면센터에 지원 콜!”
전화기를 든 지원대원이 바로 반응했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어이고, 박 대원, 지금 라텔 훈련 중이야. 그냥 콜만 받아.”
태건은 그런 지원팀원들을 향해 잔잔히 미소 지었다.
‘여긴 걱정할 게 없지.’
그때 김여훈 지원팀장이 느긋하게 다가왔다.
한 손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종이컵이 쥐어져 있었다.
척.
“그래서 누가 조난 중인데?”
“단장님하고 이지성 선배요.”
“이야. 꼬장꼬장한 요구조자들이네. 구조가 쉽지 않겠어.”
안 봐도 비디오란 분위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태건도 동의하는 얼굴이었다.
“뭐 하나 순순히 따르지 않을 겁니다.”
“그건 좀 반칙 아닌가. 진짜 현장처럼 한다며.”
“최악을 가정해야 진짜 출동 때 허둥거리지 않을 겁니다.”
태건의 대답에 묘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김여훈 지원팀장은 직감했는지 가늘게 미소 지었다.
“대체 강 단원은 어디까지 경험한 거야?”
“좀 과격하게 말하면.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까지요.”
태건의 대답에 김여훈 지원팀장 표정이 대번에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진절머리 났겠네.”
“그땐 그랬는데, 지금은 도움이 되네요.”
빙긋.
태건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지원팀 사무실을 나갔다.
곧 태건은 우면산 공터로 향했다.
라텔 2호 헬기의 대기 장소였다.
거기엔 황대산과 고수현이 미리 자리해 있었다.
- 투다다다!
라텔 1호 헬기가 우면산의 경사면을 따라 날아갔다.
태건이 다가서며 선배들에게 물었다.
“중헌 선배는요?”
“부기장 출동. 무전기가 벌써부터 난리야.”
그릉.
황대산이 보란 듯이 무전기 볼륨을 올렸다.
무전기에선 유중헌과 박서진의 날카로운 대화가 오갔다.
-띠릭. 에이씨, 박사는 뭔 박사야. 고도 더 낮춰, 더!
-띠릭. 여기서 더 낮추면 나무랑 딥키스라니까!
-띠릭. 전쟁터에서 지휘관 구할 때도 그거 따질래!
-띠릭. 이 자식, 말끝마다 반말이네. 오냐. 해주마. 해준다고!
태건의 시선은 저 멀리 날아가는 헬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출렁출렁.
헬기가 위아래로 격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중헌과 박서진의 무전만큼 역동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런 움직임은 잠깐이었고, 금세 나무 끝을 아슬아슬할 정도로 고도를 낮춰 이동했다.
태건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높이가 좋죠.”
“그래야 진짜 급속강하하기에 좋지.”
황대산이 말을 받았다.
그 옆에서 쌍안경으로 살피던 고수현이 대뜸 한 마디 했다.
“오, 이제 뛰어 내립니다……. 이 자식들. A급 조교의 시범을 보고도 저따위로 뛰어?”
뭔가 단단히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오히려 반대로 후한 점수로 평가를 말했다.
“산악 훈련은 처음이잖습니까. 저 높이에서 뛴단 자체가 중요하죠.”
빙긋.
잔잔한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그때 라텔 2호 헬기에서 정교현이 내렸다.
그리고 태건의 미소에 멈칫하더니 이내 다가와 물었다.
“태건이 미소가 그렇게 멋진 줄 몰랐네?”
“정 선배, 제가 좀 매력적입니다.”
“나야 그렇다고 치고, 2기 단원들은 그 미소가 보고 싶을 거 같은데 말이야.”
정교현이 의미심장한 질문을 건넸다.
태건은 기탄없이 답했다.
“다들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는 걸 보는 게 상당히 낯설지?”
“저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닙니다.”
태건은 싱겁게 답했다.
그런 정교현에게 황대산이 슬쩍 한 마디 했다.
“태건이보다 정 선배 걱정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또 그렇지. 중헌이가 헬기만 타면 아주 잡아먹으려고 해서 죽겠어.”
정교현이 쓴 얼굴로 말했다.
그 사이 쌍안경을 내린 고수현이 말했다.
“유 선배 성격도 어지간해야죠. 그런데 어쩔 수 없습니다.”
“전에는 몰랐어. 아니, 전에는 저렇지 않았지.”
“…….”
스윽.
순간 태건과 모두의 이목이 정교현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태건이 묵직한 얼굴로 물었다.
“같은 항공운항팀 소속이셨다고 했나요?”
“내가 1팀, 중헌이가 2팀. 처음 배속되고 한 달 정도는 있는 줄도 몰랐어. 그 정도로 조용했으니까.”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네요.”
“흠, 모르는 모양이야. 그럼……. 아니야. 내가 말할 건 아닌 거 같아.”
정교현이 말을 돌렸다.
그 소리에 황대산이 뚱한 얼굴로 변했다.
“말을 하려면 다 하든가. 중간에 돌리는 건 뭡니까.”
“흠, 비슷비슷한 아픔이 있다며.”
“엇.”
순간 황대산이 멈칫했다.
태건과 고수현도 마찬가지였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정교현이 어색하게 몸을 돌렸다.
“……난 체력단련이나 하러 가야겠어.”
휘휘.
괜히 휘파람을 불며 멀어졌다.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너무 익숙해져서 의심조차 안했던 거 같네요.”
황대산이 쓴 얼굴로 묵직하게 말했다.
“그러게. 뭐, 그 정도만 알고 있자고.”
“맞습니다. 묻어둘 건 묻어두죠.”
고수현이 대화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더 깊이 파고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다시 훈련이 진행 중인 우면산을 바라봤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박, 사박.
저 멀리서 황량해진 산길을 내려오는 단원들이 보였다.
철저하게 연습하는지 들것까지 보였다.
“이번엔 기대 좀 해도 되나?”
태건이 자그마한 기대감을 내보였다.
무전기가 조용했던 탓이다.
단원들이 가까워지는 사이, 먼저 달려온 이들이 있었다.
이순이와 삼식이였다.
-컹, 컹컹!
해맑게 꼬리치며 달려왔다.
얼른 자세를 낮춘 태건이 양손을 펼쳤다.
촤악.
“어이구, 우리 깽깽이들. 고생했어.”
그런 태건을 본 순간 이순이와 삼식이가 힘차게 달려와 안겼다.
-멍!
-컹컹!
빙글빙글, 붕붕.
이리저리 몸을 비트는 통에 힘차게 돌아가는 꼬리가 태건을 가격했다.
턱턱.
난데없이 꼬리에 얻어맞은 태건은 얼른 고개를 뒤로 빼며 진정시켰다.
“알았어. 잘 했어. 뭘 잘했는지 몰라도, 잘했으니까 꼬리 좀.”
슥슥.
두 손으로 각각 강아지들을 매만져 칭찬했다.
충분히 칭찬을 받았는지 이순이와 삼식이는 금세 태건의 품을 빠져나갔다.
촤자작!
-멍멍멍!
-헥헥.
서로 엎치락뒤치락 몸을 부딪쳐가며 멀어졌다.
그걸 본 황대산이 마치 강아지들을 대변하듯 말했다.
“할 거 다 했으니까 가서 놀게요.”
“귀찮게 이런 걸로 부르지 마세요.”
고수현이 덩달아 덧붙여 말했다.
그들의 말은 괜히 놀리려는 게 아니었다.
정말 이순이와 삼식이의 뛰는 폼이 그러했다.
태건은 발랄한 강아지들을 보며 조금 진지하게 물었다.
“쟤들 진짜 현장에서도 저러는 건 아니겠죠?”
“난 저런다에 한 표.”
“저도 저럴까봐 좀 걱정되긴 합니다.”
그때 고수현이 산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장은 저쪽이 더 문제인 거 같아.”
“왜요, 어라?”
고개를 돌린 태건이 멈칫했다.
앞에서 들것을 든 소방관이 다름 아닌 오광휘 단장인 탓이다.
“요구조자가 왜 들것을 들고 있어?”
그 말이 끝날 무렵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띠릭. 맨 다운, 똥멍청 맨 다운!
그 소리가 황당했는지 황대산이 무전기를 툭툭 내리쳤다.
“무전기 왜 이래. 맨 다운이라니.”
“똥멍청이면 성철인 거 같은데요.”
“우리 2기 단원들 참 가지가지 한다.”
절레절레.
나란히 선 태건과 황대산, 고수현이 똑같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직 2기 단원들에게 웃음을 보이긴 너무도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