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잠시 후.
최성철이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 옆에 2기 단원들이 반성 가득한 자세로 무릎 꿇고 있었다.
태건이 그들 앞을 왔다갔다하다 이내 멈췄다.
우뚝.
“구조를 하러 가서 구조를 당해? 이 상황이 말이 되냐!”
“…….”
움찔.
2기 단원들은 입도 벙긋 하지 못했다.
태건은 그런 2기 단원들을 마구 몰아붙였다.
“누가 이 상황을 이해 좀 시켜주라. 누구라도 제발!”
“그, 그게 성철이가 급속강하에서 착지를 하다가 실수로…….”
송강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건의 날카로운 눈빛이 날아갔다.
피잉!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고 있어!”
“이해시켜달라고 하셔서, 헙!”
한 마디 덧붙이던 송강우가 헛숨을 가득 들이켰다.
콰르르!
노려보는 태건의 눈에 퍼런 서슬이 가득 뿜어져 나온 탓이다.
태건의 목에서 동굴 같이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진짜 출동 상황이었으면, 요구조자가 소방관 구조한 거야. 내 말이 틀려?”
“맞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출동해. 요구조자보고 걸어서 내려오라고 하지!”
카르릉!
태건의 입에서 불이 쏟아져 나왔다.
그만큼 이 어이없는 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
2기 단원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뒷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벅벅.
“푸우. 잠깐 스톱.”
“…….”
태건은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내 오광휘 단장이 2기 단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2교대를 제한했는데,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
“강태건, 얘들 후보로 다시 돌리고, 당분간 1기가 출동전담하자.”
오광휘 단장이 쓴 얼굴로 철회를 말했다.
2기 단원들은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
뭔 할 말이 있겠는가.
최성철을 탓할 일도 아니다.
모두가 잘못했고, 미진해서 이런 상황까지 온 거였다.
태건은 2기 단원들을 쭉 둘러봤다.
이내 2기 단원들에게 물었다.
“단장님 의견은 그러신데, 할 말 있는 사람?”
“……없습니다.”
한목소리로 답했다.
그때였다.
불쑥!
최성철이 손을 들더니 홀로 다른 말을 건넸다.
“저……. 제가 잘못한 거니까 저만 빼고 동기들은 출동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야, 씨. 가만히 있어.”
툭.
송강우가 얼른 팔꿈치로 건드리며 째려봤다.
그래도 최성철은 멈추지 않고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현장에선 개개인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평가도 각각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성철, 그 말 감당할 수 있어?”
“……있습니다.”
최성철이 굳게 답했다.
그런 최성철을 향해 2기 단원들이 끈끈한 눈빛을 보냈다.
“야, 성철아.”
“성철 선배.”
지잉.
뭔가 울컥한 표정들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짝짝짝.
태건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그래. 그런 단결력이 중요하지.”
인정의 말까지 하자 2기 단원들 모두가 멈칫했다.
“선배님.”
1기 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모습이 중요하고말고.”
“우리랑은 상당히 다르네요.”
“그 점은 인정.”
자신들에게 없는 끈끈함이 조금은 부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때 태건이 반전을 걸었다.
“……라고 하면서 감동하겠지만, 난 아니야.”
“에?”
“어쭙잖은 신파 따윈 갖다 버려.”
부릅!
태건의 눈빛이 더욱 따가워졌다.
그 반전에 1기 단원들 모두가 허탈하게 바라봤다.
“그럼 그렇지.”
“어째 순순히 넘어간다 했어.”
절레절레.
어느새 그럴 줄 알았단 표정들로 변했다.
2기 단원들은 할 말이 없었다.
“…….”
모두 침묵할 따름이었다.
유일하게 오광휘 단장만 태건의 반전에 딴죽을 걸었다.
“넌 도대체 심장이 뭐로 되어 있는 거냐?”
“티타늄합금이요.”
“튼튼해서 좋겠네. 삭막한 자식.”
어이없단 목소리로 대꾸했다.
태건은 그런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그럼 단장님 말씀대로 전원 후보로 다시 돌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자고.”
오광휘 단장이 수더분하게 답했다.
태건은 2기 단원들에게 물었다.
“이 결정에 이의 있는 단원?”
“…….”
“없으면 현 시간부로 훈련은 보류. 전원 휴식.”
“……네.”
대답은 했지만 개운치 않은 목소리들이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표정부터 풀었다.
빙긋.
미소를 지으며 2기 단원들에게 말했다.
“너무 몰아치기만 해서 미안해. 고생들 했어.”
“에?”
“우선 속 좀 채우고 한숨 푹 자.”
“에, 어, 그게…….”
2기 단원들은 돌변한 태건의 태도에 적응하지 못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광휘 단장과 1기 단원들을 챙겼다.
“우리가 먼저 자리를 피하죠. 그래야 쉬기 편할 거 같네요.”
“그, 그래. 그러자.”
“뭘 그렇게 보십니까. 자자, 다들 움직이시고, 2기 단원들은 편히 쉬면되고. 해산!”
탁, 탁.
태건은 가볍게 주먹으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이 자리를 파했다.
대기실.
곧 문이 열리며 태건과 1기 단원들이 들어왔다.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은 이 순간을 기다렸단 듯이 눕기부터 했다.
벌러덩.
“아으으. 이제 등 좀 펴네.”
“들것의 승차감 좀 개선하자고 해야겠습니다.”
요구조자로 훈련에 참가한 소외를 가볍게 말했다.
황대산과 유중헌, 고수현도 그 옆에 하나둘씩 몸을 눕혔다.
“아이고고, 이제 좀 쉬겠어.”
“니들만 고생했냐. 우리도 못 쉬었다고.”
“기, 기장들 교육도 만, 만만치 않았어.”
그간 속에 담고 있던 말을 슬쩍 흘리기도 했다.
그때 태건이 1기 단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휴대폰 잘 가지고 계시죠?”
그 소리에 다들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며 갸웃거렸다.
“왜, 승무원 동생들이 톡 했어?”
“지금 브라질이라던데.”
“선물 얘기하던데, 그냥 열쇠고리면 되는데.”
금세 엉뚱한 주제로 빠졌다.
태건은 어이없이 바라봤다.
“애들이 연락할 거니까 휴대폰 잘 붙들고 있으라고요.”
“그러니까 애들이 무슨 일로 연락하는데?”
“그 애들 말고, 2기 애들이요.”
태건이 콕 집어 말하자 다들 멈칫했다.
“무슨 연락?”
“휴식인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서웠다.
뚜루루.
황대산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수네? 한 건물에 있으면서 뭔 전화야.”
김지수의 전화가 시작이었다.
띠리링. 찌르릉.
갖가지 벨소리가 울리고, 선배들이 각각 반응했다.
“강우?”
“성철?”
“주, 주민이?”
“전 기찬입니다.”
오광휘 단장부터 이지성까지 다들 갸웃거렸다.
유일하게 태건의 휴대폰만 조용했다.
“다들 가서 얼른 상담이나 하세요. 아이고, 난 좀 쉬어야겠다.”
스륵.
태건은 예상한 듯 느긋하게 몸을 눕혔다.
곧 전화를 받은 1기 단원들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얼굴 보자네.”
“뭐야. 강태건, 어떻게 알았어?”
휙휙.
이내 모두 태건에게 집중했다.
그 정도 시선에 부담스러워할 태건이 아니었다.
세상 편한 자세로 누워서 대답했다.
“영 꽝은 아니라니까요.”
“뭔 소리야.”
“룰루루.”
까딱까딱.
태건은 발끝을 부딪치며 홀로 망중한에 빠졌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태건의 발끝을 건드렸다.
툭.
“짜샤, 똑바로 얘기해.”
괜히 한 대 얻어맞은 태건이 뚱한 표정으로 변했다.
“악역은 저 하나로 충분하다고요.”
“넌 원래 나빴어. 그러니까 뭐냐고.”
“…….”
태건은 입을 댓발 내밀고 바라만 봤다.
그 무성의한 태도에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 진짜.”
“에헤이, 단장님. 참으세요. 참아.”
황대산과 고수현이 얼른 나서서 말렸다.
그때 뒤에서 이지성이 턱을 쓸며 묘한 눈빛을 보냈다.
“오호, 그런 건가?”
“지, 지성아, 뭔 말인지. 아, 알겠어?”
유중헌이 더듬거리며 묻자 이지성이 간단히 답했다.
“바지단장은 아니란 소립니다.”
“으응?”
유중헌은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거렸다.
그 말이 거슬렸는지 오광휘 단장이 홱 돌아섰다.
“넌 왜 바지 타령이야. 내가 그 바지 땜시롱 세탁소를 안 가는 사람이야!”
“바짓단 소리 나올까봐. 더불어 그 좋아하는 바지락 칼국수도 끊으셨죠.”
태건이 얄밉게 덧붙여 말했다.
일순간 오광휘 단장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빠직!
“이 자식들이 좌우에서 쌍으로 옆차기 갈기네!”
이지성이 그런 오광휘 단장을 툭 찔러 말했다.
“아직도 못 알아 들으셨습니까.”
“이지성. 할 말 있음 제대로 해라.”
으르렁.
오광휘 단장의 짜증이 한계치에 다다랐다.
그제야 이지성은 귀찮단 듯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아, 진짜. 뭘 자꾸 태건이한테 묻냐고요. 단장님 파워가 단원보다 못한 건 대체 어느 나라 경우야?”
“…….”
멈칫.
오광휘 단장이 순간 침묵했다.
이어서 최근 자신의 행동을 돌아봤다.
“흐음.”
쓴 탄성을 내뱉으며 살짝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이다.
태건은 그런 그에게 조금 더 덧붙여 말했다.
“제가 악역을 하면 다들 뭉치기 좋잖아요.”
“그러는 넌?”
오광휘 단장이 묻자 고수현이 눈치 없이 툭 나섰다.
“태건이야, 왕따 되는 거죠.”
“고수현이, 빽.”
찌릿.
순간 오광휘 단장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헙.”
아차한 고수현은 얼른 황대산의 뒤에 숨었다.
그렇게 등을 내어준 황대산이었지만 생각은 좀 다른 듯 했다.
“태건이가 따돌림 당할 가능성은 제로 아니겠습니까.”
“그, 그건 저도 어렵다고 봅니다.”
유중헌도 한 표 행사했다.
현장 속 태건에 대한 신뢰를 의미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