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그 속에서 태건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요구조자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좀 알겠어.’
괜한 생각이 아니었다.
이 상황이 훈련이고, 태건이 소방관이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이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
짙은 연기로 인해 시야가 극히 제한된 상태다. 내부를 꽉 채운 연기만큼 가슴 속이 불안하고 답답함으로 채워졌다.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모르는 불길에 대한 경계도 늦출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요구조자들은 호흡기가 없는 경우가 절대적이다.
이런 생각 전에 이미 호흡에 문제가 생겼을 터였다.
요구조자 입장으로 바라보던 태건은 섬뜩함에 등골이 오싹했다.
“이래서, 이러니까 우리는 멈추면 안 돼.”
꾸욱.
다짐이 아니, 결심이 다이아몬드처럼 굳어졌다.
이 순간을 통해 화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러던 태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살아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어. 오늘을 평안하게 살아가는 하루, 나의 삶.”
흠칫.
뇌까리던 태건이 몸을 굳혔다.
흔들, 흔들.
동요된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움직였다.
방금 자신의 뇌까림.
그 속에 그토록 찾아 헤맨 화두의 답이 있었다.
- 나의 삶.
그게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의 바램이었다.
그때 그 처참한 현장 속에서 그들이 외친 말도 그 하나였다.
- 살아라.
지금에야 그 참 의미를 알았다.
바들바들.
태건은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다.
호흡기 커버에 막혀 닿지 않았다.
터덕.
“…….”
개의치 않았다.
태건은 그렇게 자신의 얼굴을 오랫동안 감싸고 있었다.
한편.
불길과 연기로 가득한 훈련장 속에서 2기 단원들이 악전고투 중이었다.
화르륵!
화염이 넘실거리자 따가운 외침이 울려 퍼졌다.
“강우, 저쪽 불길!”
“봤어, 차앗!”
콰아아!
송강우가 뿌리는 굵직한 소방용수가 불길과 맞부딪쳤다.
작은 틈이 생기자 최성철이 재빨리 비집어 파고 들어갔다.
타다닥!
“비켜, 이 새끼들아!”
최성철은 불길을 뚫으며 창문으로 내달렸다.
그런 그를 뒤에서 송강우가 걱정했다.
“다리 조심해, 아직 완전히 나은 거 아니야!”
“야이, 바보야. 진짜 현장에서도 내 다리 챙길래!”
“저 똥멍청이가, 에잇!”
촤아악!
송강우는 울컥하면서도 착실히 길을 열어줬다.
그 사이 무전기에서 김지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릭. 엉뚱라텔 송신, 까칠라텔 응급처치 완료, 이송 가능.
-띠릭. 집착라텔 알림, 빅라텔 탈출 완료. 로프 비었음. 서둘러!
-띠릭. 개똘라텔 송신, 갑니다. 어으씨, 보채지 좀 마!
그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모니터에 비춰졌다.
따갑게 오가는 고함과 무전 소리도 포함이었다.
박규영 본부장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쌍시옷 발음이 차진 걸보니, 다들 어엿한 라텔이 됐어.”
“에? 하하. 언어순화교육을 꼭 실시하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은 쥐구멍을 찾아갈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
박규영 본부장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와 동료, 요구조자의 목숨이 오가는 현장이야. 욕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절대 의식하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알지. 잘 알지. 이제 마무리만 잘 하면 좋으련만.”
사아악.
박규영 본부장의 의미심장한 말에 주변 분위기가 깊이 가라앉았다.
잠시 후.
라텔 2기 전원이 모여 어느 방 앞에 멈춰 섰다.
“왔다, 드디어 마지막까지 왔어!”
“뭐해. 열어!”
터덕!
최성철이 번개 같이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오픈!”
그가 자리를 피함과 동시였다.
“밀어붙여!”
“가자!”
촤아아악!
소방용수를 앞세워 힘차게 밀고 들어갔다.
이어서 서로 등을 맞대 불길과 맞서고, 또 플래시로 시야를 확보했다.
그렇게 합심해 불과 연기를 일차적으로 밀어냈다.
안전한 탈출로만 확보한 거였다.
그로 인해 일부 화재는 계속 되고 있었고, 충돌하며 발생한 엄청난 수중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배연기!”
“작동!”
이동형 배연기로 내부의 연기와 수증기를 모조리 빨아 들였다.
콰아앙!
조금씩 연기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 속에 있던 누군가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2기 모두가 빠르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번쩍, 번쩍!
“소방관입니다!”
“구해드리러 왔습니다!”
그 순간 가만히 있던 형체가 서서히 움직였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는지 실루엣이 점점 커져갔다.
스스슥.
놀랍게도 실루엣은 끝을 모르고 커져만 갔다.
“엇!”
“음?”
터덕.
다가가던 2기 단원들이 거대한 존재감에 놀라 주춤했다.
바로 그때였다.
촤악.
수증기와 연기를 가르며 태건이 나타났다.
그렇게 나타난 태건의 실체는 커다란 실루엣과 비교하면 일부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존재감은 실루엣보다 더 거대했다.
…….
저벅, 저벅.
느긋하게 다가온 태건이 2기 단원들 앞에 멈춰 섰다.
이어서 한 명씩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13분 22초. 나쁘지 않아.”
“그걸 쟤고 계셨다고요. 이 속에서?”
다들 방안에 들어섰을 때 가득한 불길을 알기에 놀라워했다.
태건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
“오느라 고생했어.”
우우웅.
커버 속에 비친 눈빛이 한층 더 깊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직 불길이 남아 있는 훈련장이었다.
태건의 뒤쪽에서 불길이 일렁거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방심하는 태건을 향해 시뻘건 손길을 뻗어왔다.
화르륵.
최성철이 놀라 손짓하며 소리쳤다.
“선배 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휘리릭.
소화볼 하나가 불길을 향해 날아갔다.
…….
퍼엉!
이내 소화볼이 터지며 다가오던 불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2기 단원들 모두 태건의 전광석화 같은 대처에 경악했다.
“보, 보였을 리가 없는데…….”
“순간적인 반응속도, 어쩔.”
“소화볼이 더 빨랐던 거 같지 않아?”
“말이 되냐. 너무 빨라서 동시로 보인 거겠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때 태건이 수더분하게 말했다.
“마무리하고 나가자.”
“네? 이렇게요?”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건이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내가 경계대상 1호였나 보네.”
갑자기 노주민이 튀어나와 급발진했다.
불쑥.
“그럼요, 진상 중에서도 상진상!”
아차한 모두가 얼른 손을 뻗어 노주민을 제압했다.
“이 개똘, 진짜!”
“어이그, 이 화상아!”
“그걸 말이라고 씨불이냐!”
사방에서 퍼부어지는 구타에 노주민의 앓는 소리가 울렸다.
퍼버벅.
“아, 아흐. 아파요.”
“아프라고, 그러라고 때리는 거야!”
상대가 누구라도 실례인 대답이라 2기 단원들이 더욱 매섭게 꾸짖었다.
그때였다.
스윽.
태건이 조용히 초시계를 꺼내들며 말했다.
“13분 50초.”
“…….”
우뚝.
모두가 일시에 멈췄다.
제한시간까지 1분 10초 밖에 남지 않았다.
이동시간을 감안하면 빠듯했다.
잠깐 지체한 사이 여유가 초조함으로 급변했다.
정신이 바짝 든 모두가 다급해졌다.
“으아악!”
“움직여. 가야 돼!”
“어떻게!”
허둥지둥.
마음은 급한데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
그때 방기찬이 태건을 가리키며 외쳤다.
처억!
“태건이 들어!”
“……들어!”
모든 손이 일제히 다가와 태건을 그대로 들어올렸다.
우르르.
그리고 밖으로 냅다 뛰었다.
얼떨결에 들려 가게 된 태건은 어이가 없어 웃음 지었다.
‘라텔은 뭔가 다르다니까.’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고 해도 이렇게 탈출할 줄은 태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언제나 상상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라텔이었다.
잠시 후.
2기 단원들이 태건을 들어올린 모습으로 훈련장 밖으로 뛰쳐나왔다.
“탈출 했다!”
“시간, 시간!”
“14분 54초!”
“아싸라비아!”
제한 시간 내에 전원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기엔 일렀다.
총평이 더해져 합격 여부가 판가름 날 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모든 무전기에서 울려퍼졌다.
-띠릭. 라텔캡 송신, 재평가 상황종료, 본부 화재진압 실시!
-띠릭. 지원팀장 알림. 가스차단 완료. 잔화 진압 돌입 개시!
-띠릭. 행정팀장 확인. 얘들아, 신나게 퍼붓자!
촤아악, 파아악!
모든 물대포가 일제히 훈련장으로 날아갔다.
그때 어디선가 2호 헬기가 쏜살같이 날아와 거대한 물주머니를 터트렸다.
쿠와아아!
폭포 같은 물벼락에 잔화들이 대부분 진압됐다.
-띠릭. 교수라텔입니다. 크하하. 이 맛에 물 뿌린다니까요!
-띠릭. 행정팀장입니다. 교수라텔, 훈련 종료 후 행정실에서 나 좀 봅시다, 으득!
고대한 순간이 허무하게 무산되자 이혜지 행정팀장이 뚱하니 2호 헬기를 노려봤다.
투다다.
2호 헬기는 도망치듯 훈련장 밖으로 크게 우회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근처 화단 경계석에 자리해 있었다.
“푸우.”
후두둑.
방화헬멧과 방화두건을 벗으니 쌓인 땀이 물처럼 쏟아졌다.
콸콸.
생수를 한껏 들이부어 누적된 열을 식혔다.
그때 앞서 구조된 1기 단원들이 다가왔다.
다들 태건을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푸헤헤헤, 짐짝인 줄!”
“하하. 완전 하이라이트, 명장면이었어!”
“다시 보기 됩니까? 큭큭큭.”
“후, 후후.”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놀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