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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46)화 (245/320)

246화

그런데 태건의 반응이 전과 달랐다.

빙긋.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수더분하게 답했다.

“즐거우셨다니 좋네요.”

그 반응에 놀리던 1기 단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어머낫! 누, 누구세요?”

“흐미, 얘 아픈가 봐.”

“쯧쯧, 열을 너무 먹은 거 아니야?”

심지어 걱정과 우려의 빛이 진하게 엿보였다.

그럼에도 태건은 여전한 미소로 부드럽게 답했다.

“이런 순간순간이 바로 사는 맛 아닙니까.”

잠시 후.

라텔 전원이 모여 정렬해 서 있었다.

그 앞에 선 박규영 본부장이 라텔 1기를 향해 물었다.

“이견 있나?”

하나의 물음, 그거면 충분했다.

태건을 포함해 모두가 묵직하게 소리쳤다.

“없습니다!”

“그럼 현 시간부로 라텔 2기 전원 출동대기를 명한다.”

박규영 본부장이 공식적으로 허락했다.

그 소리에 2기 모두가 끌어안고 또 뛰어올랐다.

풀쩍, 풀쩍!

“이야호! 드디어 출동이다!”

“이 영광을, 아으씨. 몰라!”

“해냈어. 우리가 해냈어!”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난리가 났다.

라텔 1기는 박수로 격려했다.

짝짝짝.

“지금은 웃지. 기쁘겠지.”

“많이 기뻐해라. 현장에선 국물도 없으.”

그 중엔 당연히 태건도 있었다.

“…….”

짝짝.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치고 있었다.

그런 태건을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리며 쳐다봤다.

“아주 온갖 진상은 다 떨 거 같이 하더니, 왜 순순히 나온 거야?”

“빡빡하게 살아서 뭐합니까.”

“너무 뻑뻑해서 목 막힐 거 같이 살던 어디 누구 씨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오광휘 단장이 의구심을 짙게 보였다.

그래도 태건의 미소는 여전했다.

“좀 자랐나 봅니다.”

“흐음. 쟤들이 현장에서 개판 치면?”

오광휘 단장은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질문했다.

그 순간 태건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찌릿!

“그럼 제 손에 죽습니다.”

그걸 본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얘들아, 우리 라면 이상 없어. 정상이야.”

“아,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1기 단원들은 내심 커져가는 불안감을 싹 지워냈다.

참 독특한 확인법이었다.

그렇게 라텔 2기의 현장 투입이 확정됐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미뤘던 일들이 급물살을 타며 진행됐다.

가장 먼저 시스템의 개편과 그에 따른 새로운 규칙이 필요했다.

다행히 미리 계획해 놓은 게 있어 메시지로 통보했다.

카톡!

-라텔은 당번, 비번, 2개 조 맞교대로 개편한다.

-비번시 이동제한은 없으나, 긴급소집령 발동시 최단시간 현장으로 집결한다.

…….

그 외에도 여러 개편안들을 공유했다.

이어서 조직재구성이 진행됐다.

그 부분은 오광휘 단장이 결재서류철을 보며 말했다.

“라텔은 이제 단장조와 부단장조로 나뉜다. 오키?”

“누가 부단장입니까?”

“누굴까.”

오광휘 단장이 슬쩍 떠봤다.

그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처저적!

태건의 손끝은 황대산을 향해 있었다.

“순서상 그게 맞지. 그런데……. 엥?”

순간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사사삭.

모든 손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던 탓이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쐐기를 박았다.

“다들 잘 알고 있네. 그럼 다음으로…….”

“잠시만요. 제 의견은요?”

태건이 재빨리 항의하려 했다.

예상했는지 오광휘 단장이 일축했다.

“단장 말이 법이라며.”

“…….”

“부단장은 2조장으로서 현장 책임이란 막중한 사명을 잘 이행하기 바란다. 이상.”

오광휘 단장은 순식간에 선포를 해버렸다.

라텔 모두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박수쳐 축하했다.

짝짝짝.

“잘됐네, 축하해.”

“우리 데리고 통제하려면 고생길이 훤히 보이네.”

“부단장 말 씹는 재미 좀 느껴봐야지.”

놀릴 생각이 더 강한 거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발랄한 분위기를 풍겼다.

오직 한 사람.

태건만은 상반된 분위기로 가득했다.

구구구.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태건이 오광휘 단장을 불렀다.

“단장님.”

“뭘 또 따지려고. 이미 결정 됐으니까 땡이야. 번복 없음, 물리기 없음, 퉤퉤퉤!”

오광휘 단장이 먼저 선수 쳤다.

그 순간 태건이 오광휘 단장의 어깨를 붙들었다.

턱!

“단장님!”

“아씨, 뭐, 왜, 뭔 말이 하고 싶은데!”

“……직책수당 나옵니까?”

태건이 너무도 비장하게 물었다.

그 순간 라텔 모두가 삐끗했다.

“그, 그게 중요한 거였어?”

“저렇게까지 비장할 일이야?”

“하긴 하겠단 거네.”

다들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죽이 잘 맞는 인물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었다.

어느새 묵직해진 표정으로 태건의 손등을 덮으며 답했다.

“물론 있지. 무조건 있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끄덕.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한 동질감을 보였다.

중요한 임용을 마친 오광휘 단장이 다시 결재서류철을 들며 말했다.

“호출명으로 말할게. 단장조는 캡, 빅, 멍청, 엉뚱, 집착.”

척척척.

호명 받은 이들이 순차적으로 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들지 않은 이들이 부단장 조에 속했다.

태건이 빠르게 쭉 둘러봤다.

“핸썸, 까칠, 바보, 개똘……. 아, 안 돼. 단장님!”

절망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태건이 다급히 소리쳐 부른 순간 오광휘 단장이 선수 쳐 말했다.

“라면아, 수당이 짭짤할 예정이란다.”

“……환상의 조합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태건의 말이 알아서 시정됐다.

그 반전에 이지성이 나지막이 한소리했다.

“이래서 자본주의가 무섭다니까.”

“지성 선배, 수당 받으면 소고기 쏘겠습니다.”

“……이래서 자본주의가 최고야.”

앞선 쓴소리가 무색하게 이지성도 말을 뒤집었다.

“헐.”

모두가 어이없이 바라봤다.

정작 말을 돌린 태건과 이지성은 뻔뻔스레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은 유중헌과 기장들에게 말했다.

“거기 사천왕은 별도 운영이야. 알아서 근무 짜.”

“알겠습니다.”

“유사시 부기장은 현장 투입인원에 포함되는 거 잊지 말고.”

“명심하고 있습니다.”

유중헌과 기장들의 대답이 시원시원했다.

오광휘 단장은 결재서류를 한 장 뒤로 넘기며 다음 주제를 꺼냈다.

사락.

“이제 숙소 문제로 접근해 보자고. 기숙사를 희망한다, 거수.”

우후죽순 손이 올라왔다.

쑥쑥.

“저요.”

“저도.”

그 중 몇몇은 손을 들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헬기 기장들이었다.

“저희는 기혼이라.”

“중헌이 빼고요.”

스윽.

기장들이 동시에 바라보자 유중헌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저, 저는 솔로…….”

오광휘 단장은 바로 손바닥을 뻗어 뒷말을 막았다.

척.

“너무 잘 아니까 스스로 가슴 아픈 말은 하지 말자.”

“흐, 흐읍.”

“울컥하겠지. 그건 네 사정이고……. 어라. 지수도 비희망이야?”

오광휘 단장이 묻자 김지수가 답했다.

“아쉽게도 다리 건너면 본가에요. 아흥, 합숙하고 싶었는데……. 그냥 할까요?”

괜히 엉뚱라텔이 아니었다.

이상한 기대감을 보이는 김지수를 향해 모두가 손을 내저었다.

휙휙.

“아니야. 지, 집에서 출퇴근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난 절대적으로 네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해.”

“고맙다. 집이 서울이라. 정말 감사하다.”

그 반응에 김지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피이. 나도 밤새 술 마시고 노는 거 잘 하는데. 나 빼고 놀려고.”

뭔가 어수선해진 분위기에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엉뚱아, 3기에 여성대원 합격하면 그때 기숙사 들어가.”

“아, 그럼 되겠네요. 부단장님이 역시 명쾌해요.”

척.

김지수는 엄지를 힘차게 내보였다.

그 속내를 간파한 모두는 놀란 속을 쓸었다.

“그냥 합숙 판타지가 있는 거였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부단장 참 잘 뽑았네.”

그렇게 태건의 빠른 수습으로 어수선함이 일단락됐다.

오광휘 단장은 아예 식은땀을 손으로 쓸어냈다.

“후. 그럼 나, 기장 삼총사, 지수만 제외란 거지.”

“단장님도요?”

태건이 묻자 오광휘 단장이 오히려 어이없어 했다.

“왜 이래. 나 아파트 팔아서 보증금 있어. 그리고 무려 월세 낼 정도는 벌어.”

“……그럼 저도 제외.”

스윽.

잠깐 뜸을 들인 태건이 이내 손을 들었다.

오광휘 단장 표정이 우려로 급변했다.

“라면아, 그냥 기숙사 들어가.”

“저는 혼자 살아야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연미 씨? 결혼? 그거 다 부질없는 일이야. 혼자가 편해.”

오광휘 단장은 특정 부분에선 극단적으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 이제부터 창창할 나이라서요. 죄송.”

“너 알아서 하세요. 라면도 제외.”

슥슥.

오광휘 단장은 두 번 말리지 않고 쿨하게 수락했다.

반면 태건은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까드득.”

“으드득!”

이 갈리는 소리에 뭔가 한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건에겐 관심 밖이었다.

그건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자, 그 다음으로는…….”

줄줄줄.

이후 여러 개편안을 발표하고, 또 조율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다음날.

태건은 다급히 방을 알아봐야할 처지가 되어 있었다.

그에 대해 황대산이 다가와 자극했다.

“음하하. 기숙사는 계약 끝났다는데, 강태건이는 어떻게 되어가고 계신가?”

“벌써요?”

“우리 멋쟁이 본부장님께서는 이미 다 계획이 있으셨던 거지.”

불쑥.

고수현이 둘 사이에 고개를 빼꼼 내밀며 끼어들었다.

“대로 건너에 있는 빌라래. 마침 두 가구가 빠지는 바람 우리가 쏙 들어가게 된 거래.”

“본부랑 가까우니까 저도 그 근방으로 알아봐야겠네요.”

“빨리 알아보는 게 좋을 걸. 2교대로 바뀌는 게 며칠 안 남았잖아.”

그건 고수현의 말이 옳았다.

그런데 저쪽에 여유로운 오광휘 단장의 모습이 의아했다.

“단장님은 왜 한가하십니까?”

“어디든 뭔 상관이냐. 내 한 몸 뉘일 공간이면 충분하거늘.”

아직 돌싱이 된 현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태건은 입장이 달랐다.

한창 멋을 내고 싶어 할 나이였다.

게다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하는 일이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저 오늘 월차요!”

후다닥.

일방적으로 통보한 태건은 두툼한 패딩을 낚아채며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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