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50)화 (249/320)

250화

곧 강태영과 강주미가 부산을 떨며 둘러봤다.

“이야. 집 좋네!”

“어떻게 내 집보다 더 좋을 수가 있는 건데!”

“아, 자식, 부럽네. 막내야. 열 받는다. 술 찌끄리자!”

“응!”

강주미는 아주 능숙하게 와인을 다루기 시작했다.

태건은 식탁 의자에 앉아 남매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지?”

대놓고 하는 험담이었다.

물론 불청객 남매의 귀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강주미가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퐁!

“됐다! 언니부터 받으세요.”

“그래요. 연미 씨. 못 뵌 사이에 더 아름다워지셨습니다.”

강태영이 변죽 좋게 밀어붙였다.

두 남매의 연합공격을 막아내는 건 정연미에게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만 주세요. 집에…….”

“에이, 못 간다니까요. 그럼 따를게요.”

콸콸콸.

과하게 술잔을 채우는 강주미의 미소에 사악함이 스쳐지나갔다.

태건은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형제가 원수라더니.’

강태영과 강주미가 단단히 연합하면 태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투욱.

뭔가 크게 내려놓자 술이 확 당겼다.

“야, 술 줘!”

벌컥벌컥!

고삐 풀린 태건은 와인을 물처럼 들이켰다.

자정 무렵.

태건은 작은 방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부스럭.

옆에서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강태영의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동생, 자니?”

“쿨쿨.”

“이 형을 위해 이불도 준비해 놓고, 다 컸네. 다 컸어.”

강태연의 놀리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그때 태건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을 줄 알아.”

“읍읍읍읍.”

텁.

강태영이 입을 손으로 막고 소리를 냈다.

그 행동 역시 놀리는 거였다.

“아으씨!”

휙!

태건은 거칠게 몸을 돌렸다.

그때 귀에 조용하면서도 은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아까 연미 씨랑 어디까지……. 억!”

퍼억!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태영 얼굴에 베개가 꽂혔다.

뒤를 이어 태건의 손이 무차별적으로 날아갔다.

“자라고, 자라니까. 자, 자, 자자자!”

퍼버버버벅!

영원히 재우려는 건지 태건의 감정실린 주먹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같은 시각.

큰 방 침대에 강주미와 정연미가 누워 있었다.

스윽.

강주미가 게슴츠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언니, 우리 오기 전에 뭐 했어요?”

“지, 집에 가려고…….”

“아니던데, 머리카락이 흩트려져 있던데, 그리고 옷이 구겨져 있던데…….”

강주미가 떠보자 정연미가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니에요. 막 시작하……. 흠흠.”

“흐흐흐.”

강주미의 미소에 아저씨가 설핏 엿보였다.

그렇게 태건의 첫 번째 퇴근은 엉망진창으로 끝났다.

이틀 뒤.

태건의 두 번째 퇴근 날이다.

저녁시간.

식탁에 로맨틱한 분위기로 가득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태건과 정연미가 식사를 마무리 하고 있었다.

톡톡.

냅킨으로 입가를 정리한 태건이 말했다.

“그제는 많이 당황했지?”

“아니야. 그래도 태영 씨하고 주미 씨를 오랜만에 봐서 반갑고 좋았어.”

“……우리 연미는 예뻐.”

태건이 진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놀라운 건 정연미의 반응이었다.

대뜸 휴대폰을 들었다.

“엄마, 미주가 아직 아파.”

뚝.

짧은 통보를 끝으로 휴대폰을 내렸다.

바로 그때 태건이 정연미를 그대로 안아들었다.

“연미야.”

“…….”

스윽.

정연미는 목을 감싸며 눈을 감았다.

태건의 입술이 거리를 좁혀갔다.

그리고 맞닿으려는 그 순간.

-띵동,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그 소리에 태건과 정연미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씨!”

“흐으!”

울컥한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 오빠, 계세요?

고운 미성의 여자 목소리다.

태건은 멈칫하다 이내 누군지 알아챘다.

“이거 채연이 목소린 거 같은데.”

“……그 X이 누군데?”

사아악!

정연미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울렸다.

태건은 화들짝 놀라 말했다.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내 동생 친구, 승무원.”

“그 동생친구가 이 시간에 왜 오빠 집에 와?”

“몰라. 씹어.”

태건은 무시하고 하던 걸(?) 이어가려 했다.

그러나 정연미가 막았다.

턱!

“……나 집에 갈래.”

“연미야.”

“그 XXXXXXX이랑 잘 해봐.”

정연미는 한기를 풀풀 풍기며 몸을 돌렸다.

태건은 이상하게 변질된 오해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아, 진짜!”

벅벅!

인상을 찌푸리며 뒷머리를 거칠게 긁었다.

그대로 가게 내버려 둘게 아닌 터라 빠르게 뒤쫓아 갔다.

바로 그때였다.

“어? 어어어…….”

터덕.

정연미는 크게 당황하며 뒷걸음질까지 쳤다.

“왜 그래. 무슨…….”

태건의 의아함은 질문하기도 전에 해소됐다.

강주미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뒤에 손짓했다.

“자자, 어서 들어오세요.”

그 다음으로 뭔가 한아름씩 안고 있는, 낯익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 모두 당황하는 정연미에게 인사부터 했다.

“연미 씨죠.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태건이랑 같이 일하는 고수현입니다.”

“태건이랑 죽지 못해 어울려 지내는 이지성입니다.”

“노주민이고 막내입니다. 전 형수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송강우입니다. 형수님.”

우르르.

단원들이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라 김채연과 황유리도 함께였다.

“어머, 계신 줄 몰랐어요. 전 김채연이고요, 연미…….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요?”

“황유리에요. 우와, 피부 좋으시다더니, 정말 피부가 예술이에요.”

우글우글.

모두가 정연미를 둘러싸고 인사하기 바빴다.

그때 강주미가 다가와 태건의 등을 강하게 두드렸다.

툭툭.

“우후, 이 포기를 모르는 남자 같으니라고.”

“왜, 오늘은 대체 왜!”

“집 구경하고 싶대서. 그런데 연미 언니가 또 계시네……. 혹시 같이 살아? 쿄쿄쿄.”

강주미의 사악한 웃음이 한층 더 발전했다.

태건은 그런 강주미에게 진심으로 물었다.

“내가 너한테 대체 뭘 잘못했어, 뭘?”

“아니야. 난 오빠가 행복하길 바라.”

“너 때문에 도대체 행복할 수가 없어!”

태건은 강주미를 붙들고 절규했다.

그리고 그날도 역시 새벽까지 먹고 마시는 홈파티가 이어졌다.

세 번째 비번 날.

태건은 퇴근 직전이었다.

‘오늘은!’

핑!

뭔가 중대한 결심을 굳혔는지 눈빛이 살벌했다.

그리고 태건은 단원들부터 단속했다.

“오늘 제 집에 오실 분, 거수.”

“없습니다!”

“절대, 절대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으득!”

살벌한 소리까지 덧붙여 경고했다.

그들만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바로 강주미에게 전화했다.

“너, 또 나타날 거냐?”

“하암, 아침부터……. 나 오늘 호주 비행이라니까. 별꼴이야.”

“돌아오지 마. 거기서 살아.”

뚝!

태건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강태영에게 연락했다.

“형, 오늘…….”

“왜 한 잔 해?”

강태영이 선수쳐 물었다.

그 순간 태건이 스산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답했다.

“아니,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면 누군가는 땅에 묻힐 거야. 그게 누굴까.”

“헙, 나, 나 바빠!”

뚝.

강태영이 겁먹은 목소리로 끊었다.

그렇게 모든 방해물을 치운 후에야 태건은 홀가분해졌다.

퇴근한 태건은 집으로 직행했다.

어제 정연미가 보낸 한 줄의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

-오빠, 나 내일 월차 냈어.

뭔가 비장함이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태건도 똑같은 비장함을 풍겼다.

곧 태건은 주택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비장한 걸음으로 다가가 옥상 문을 열어젖혔다.

벌컥!

드디어…….

힘차게 열어젖힌 태건은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정연미가 평상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이 함께였다.

심지어 아침부터 고기를 굽고 있었다.

치이익!

“역시 아침엔 고기야!”

“이렇게 모인 게 얼마만이냐.”

박유신과 정혜랑이 집게를 들고 솔선수범 중이었다.

그 옆에선 김윤재와 손미주가 소주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쨍.

“역시 아침부터 달릴 용자는 우리 미주 밖에 없어!”

“그럼요. 제가 요즘 저도 모르게 좀 아팠는데, 어쨌든 술 마실 컨디션은 돼요.”

“오늘 가볍게 12시간만 달릴까?”

“태건 선배 오면 15시간까지도 가능할 걸요? 호호호!”

그렇게 평상은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결국 태건은 두 눈을 꽉 감았다.

솟구쳤던 열정이 불씨 하나 없이 사그라지더니 심지어 하얀 재가 되어 흩날렸다.

“포기하면 이렇게 편한 걸. 허허.”

뭔가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이 많은 걸 초월한 읊조림이었다.

다음날 아침.

태건과 정연미가 식탁에 마주앉아 아침식사 중이었다.

둘 다 무척 편안한 차림이었다.

문득 태건이 정연미를 가만히 바라보다 갸웃거렸다.

“왜 뭔가 생략된 거 같지?”

그 소리에 식사하던 정연미가 마주보며 의아해했다.

“오빠, 뭐가?”

“어제 우리 뭐했더라?”

“다들 초저녁까지 술 퍼붓다가 갔잖아. 정확히는 쫓아낸 거지만.”

정연미가 알려줬지만 태건은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 다음은?”

“어?”

“갑자기 아침이 밝은 느낌이라.”

“오빠도, 참……. 잘 먹었어. 나 출근 준비할게.”

화르륵.

얼굴이 시뻘게진 정연미는 부끄러운지 얼른 욕실로 향했다.

태건은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아 했다.

“아닌데, 뭔가 중요한 게 쑥 지나가버렸는데…….”

처억.

팔짱까지 끼며 고민했지만 끝내 그 무언가는 떠오르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