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51)화 (250/320)

251화

한 시간 후.

출근한 태건이 옥상 대기소 문을 열었다.

“다들 좋은 아침…….”

인사하는 사이 따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말이 되냐!”

“진짜라니까, 말을 하면 좀 믿읍시다.”

“네가 신뢰 받을 짓을 해야 신뢰란 걸 할 거 아냐!”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이 쌍심지를 켜고 으르렁거렸다.

태건은 고수현에게 슬쩍 다가가 물었다.

“수현 선배, 아침부터 왜 저럽니까?”

“기숙사 근처 국밥집의 대성황에 대한 의견차이라고나 할까.”

“아침에 해장국 땡기러 가는데요. 거기가 왜요?”

태건은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그에 대해 퇴근 준비를 마친 황대산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 단골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점심하고 저녁에 북새통이래.”

“어제 저녁에 밥 먹으러 갔다가 못 먹고 왔거든요.”

부단장조원인 송강우가 어느새 다가와 덧붙여 설명해줬다.

태건은 잠시 곱씹은 후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야. 거기 한가하게 밥 먹기 좋던데.”

“태건 선배는 한 번 가보셨잖습니까. 그 다음엔 퇴근 때마다 집에 가기 바쁘셨잖아요.”

불쑥.

노주민이 거짓말처럼 나타나 한 마디 거들었다.

태건은 살짝 얼굴이 붉어지며 괜스레 헛기침을 터트렸다.

“크흠. 그, 그건 내 개인사니까 됐고……. 진짜 밥을 못 먹을 정도였어?”

“네. 저희가 저희도 모르게 인플루엔자가 된 거 같습니다.”

노주민은 어깨를 쭉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가만히 듣던 태건이 이상한 단어에 귀를 쫑긋하며 정정해줬다.

“인플루언서. 인플루엔자는 독감이야.”

“그……. 언어유희 모르십니까. 그냥 농담이라니까요. 진짜라고요!”

노주민이 움찔하더니 괜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다들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

할 말이 참 많은데 하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때까지 논쟁이 끝나지 않았는지 오광휘 단장이 소리쳤다.

“내가 오늘 가본다. 가봐서 아니면 넌 반성문 쓸 줄 알아!”

“가보시라니까요. 가서 사인하다 팔 좀 빠져봐야. ‘아, 지성이 말 들을 걸.’ 이러실 겁니다.”

“내가 니 말을 듣긴 쥐뿔, 흥!”

“두고 보자니까요, 흥!”

휙!

두 사람은 똑같이 콧방귀 뀌며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지켜보던 태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도무지 발전이 없어, 발전이.”

견원지간 같은 1기 단원들이 오늘도 창피했다.

그래도 인수인계는 착실히 이뤄졌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 오광휘 단장이 어깨에 종이상자를 짊어지고 출근했다.

피곤으로 축 쳐진 태건이지만 궁금해 물었다.

“그게 뭡니까?”

“야식.”

퉁.

대답과 동시에 바닥에 내려놓았다.

쪼르르.

잰걸음으로 다가간 김지수가 열어보더니 모두에게 알렸다.

“이거 밥이에요. 카레, 짜장, 국도 있어요.”

“오오, 컵라면에서 즉석식품으로 발전하는 건가?”

“단장님은 확실히 우리 몸도 생각해 주신다니까.”

단원들 모두 만족해 했다.

그러나 태건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그러니까 갑자기 왜?”

“척 보면 모르냐.”

툭.

이지성이 가볍게 건드리며 지나갔다.

그러더니 오광휘 단장 앞에 서서 득의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어떠셨는지?”

“으으으.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

꾸욱.

오광휘 단장이 하박을 묵직하게 누르며 툭 쏘아붙였다.

그 행동을 본 태건도 어제 투덕거림이 떠올랐다.

사삭.

가까이 다가가 바로 물었다.

“정말 팔이 뻐근해질 정도로 사인하셨다고요?”

“그렇다니까. 가게 벽에 주인아주머니랑 애들이랑 찍은 사진도 걸려 있더라.”

“헤에. 우리가 뭔 연예인도 아니고요.”

“내 말이. 그런데 셀럽의 삶이란 게 그렇다는데 어째. 크흠. 그러니까 잠시 주목!”

오광휘 단장이 갑자기 모두를 찾았다.

스슥.

다들 새로운 야식을 바라보다 시선을 모았다.

“네, 단장님!”

“다들 밖에 나가면, 특히 기동복 입고 있으면 말과 행동에 주의해라. 알간?”

“알겠습니다.”

“알아도 들어. 슈퍼를 가도 슬리퍼 질질 끌고 다니지 말고, 스쳐 지나는 분과도 가급적 웃으며 인사할 것이며…….”

오광휘 단장은 상황까지 예를 들어 충고했다.

언제부터인가 라텔이란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 그만큼 무거워졌음을 강조했다.

태건은 새삼스레 놀랐다.

그러다 이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니라고만 할 일이 아니야.’

소방관의 인지도가 그만큼 올라간단 의미와 같았다.

이런 관심이 더욱 커지면 모든 소방관들의 바람도 머지않아 이뤄질 거라 믿었다.

처우개선, 그리고 소방병원.

이젠 막연한 꿈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아직 넘어야할 산이 많을 뿐, 언젠가는 손에 닿을 수 있단 희망이 샘솟았다.

*  *  *

좋은 소식이 또 하나 찾아왔다.

며칠 후.

본부 주차장에 커다란 트럭이 멈춰 섰다.

기이잉.

마치 날개를 펼치듯 커다란 윙도어가 좌우로 열렸다.

그 속엔 상자들이 빼곡하게 적재되어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본부의 모든 대원들이 일제히 다가가 하차를 시작했다.

“자, 받아!”

“으쌰. 옆으로 전달!”

척, 척.

내리고, 옮기고.

다들 손발을 딱딱 맞춰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그 광경을 태건과 박규영 본부장이 지켜보고 있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가득한 박규영 본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추가 출동용품들이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야.”

“수입절차가 복잡했던데, 고생하셨습니다.”

“이후 출동에서 값지게 사용된다면 더 바랄게 있나.”

“보람을 느끼시도록 유용하게 사용하겠습니다.”

태건은 신념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창고로 옮겨지는 상자들을 뿌듯하게 바라봤다.

잠시 후.

옥상에 새로운 출동용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태건이 하나씩 들고 간단히 설명했다.

“이건 개량된 소화볼입니다. 기존 소화볼과 병행 사용을 권장합니다.”

“똑같아 보이는데 뭐가 달라진 거야?”

“눈으로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탈칵.

태건은 소화볼에 장착된 무언가를 눌렀다.

이어서 잠시 들고 있다가 빈곳에 던졌다.

날아가던 소화볼이 공중에서 터졌다.

슈우욱, 펑!

그걸 본 모두가 한 눈에 달라진 점을 알아챘다.

“불에 닿지 않았는데도 터지네요. 수류탄 같은 작동원리 같습니다.”

“타이밍을 조절할 수 있으면 원하는 지점을 타격하기 좋겠어.”

“불 뚫고 가다 갑자기 터질 일도 없고 말입니다.”

모두 긍정적인 부분을 하나씩 언급했다.

이지성만 목록을 보며 단점에 대해 말했다.

“장치가 추가 돼서 제작단가는 좀 올라가네요.”

“수량이 많지 않고, 언제 다음 물량이 도착할지 모른단 부분도 있습니다.”

태건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 소리에 좋아하던 단원들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아껴 써야 될 분위기네요.”

“출구 확보에 중점을 둬야겠습니다.”

한 마디씩 거들자 태건이 얼른 정리에 나섰다.

“다음을 기약해서 아낄 필요 없습니다. 세상에 한 명의 목숨보다 값비싼 출동용품은 없으니까요.”

“물론. 팍팍 싸 주겠으!”

언제 시무룩했냔 듯이 다들 다부지게 답했다.

그 후로 새로운 출동용품 설명과 시연은 바로바로 이어졌다.

“이건 딱 보면 아시겠죠?”

“산소통이 2개잖아. 그런데 기존 사이즈보다는 좀 작지 않아?”

“작지만 강합니다. 압축 방식이 달라 최대 1시간까지 호흡이 가능합니다.”

“오오오. 늘어나면 땡큐지. 완전 땡큐!”

다들 열렬한 환호를 보였다.

현장에서 산소통 교체로 구조시간이 지체된 경험이 있던 탓이다.

이어서 스프레이를 꺼내들었다.

“이건 스프레이형 소화기입니다.”

“그건 있잖아.”

“달라진 건…….”

치이익!

태건이 직접 시연했다.

소화액이 공기에 닿자 엄청나게 부풀며 거품으로 변했다.

그걸 본 모두가 눈을 가늘게 떴다.

“폼형이면 산소차단과 연기억제 효과를 노렸단 건데.”

“중요한 건 유지시간입니다.”

다들 보자마자 예리하게 가늠했다.

태건은 스프레이를 흔들며 수더분하게 답했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0분, 최대 20분입니다.”

“이야, 소방용품도 엄청 발전하네.”

“거기다 이건 국내에서 개발된 거라 팍팍 쓰셔도 됩니다.”

“그게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아주 사정없이 써주자고!”

제한이 없단 소리에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다음으로는 소형열화상 카메라를 선보였다.

“이건 방화헬멧 부착방식…….”

“간편해서 좋은데 내구성이…….”

“불 속에서 최대 5시간까지 버티는…….”

그렇게 하나를 선보일 때마다 착용도 해보고 평가도 했다.

그 외에 소형 유압공구, 소방헬리캠 등 기존 제품을 개선한 출동용품도 소개 됐다.

그런 제품 소개도 어느새 마지막에 이르렀다.

다양한 출동용품 소개에 태건은 살짝 지쳐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이 무색할 정도로 마지막 출동용품 소개에 힘을 실었다.

“이건 이렇게 비닐을 뜯으면 안에 천이 있습니다.”

“그 천을 어디 쓰는 거야?”

“이 자체가 필터입니다. 누구라도 최대 5분까지 호흡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차락.

태건이 직접 시험착용해서 보여줬다.

그 용도를 확인한 순간 모두의 반응이 제일 뜨겁게 돌변했다.

“그 천쪼가리가 요구조자들 호흡을 유지시켜 준다고?”

“바로 그게 필요 했어, 딱 그거야!”

“보조호흡기는 하나고, 간이호흡기는 몇 개 들지도 못했는데.”

“그건 주머니 여기저기 왕창 넣어 다녀도 되겠습니다!”

화재가 무서운 건 불보다 연기다.

그걸 모두 처절히 경험했기에 환호했다.

그렇게 개선된 출동용품을 통해 더 신속하게 이뤄질 현장구조 상황을 그렸다.

그저 설명을 듣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직접 만져보고 착용, 혹은 사용해보며 감각을 익혔다.

척. 척.

“이건 사용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이건 좀 더 연구를 해 봐야겠어.”

각자, 혹은 같이 더 좋은 사용조건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태건은 뒷마당에 자리해 있었다.

강아지들의 구조견 훈련을 위해서였다. 그간 쑥쑥 자라 이제 강아지란 표현이 어울리지 않았다.

생후 10개월 차에 접어들어 몸집이 성견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몸이 자란만큼 훈련 강도도 높아졌다.

“이순이, 탐색!”

“삼식이, 요구조자 발견, 그 다음은?”

태건은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다.

수신호가 복잡해지고 요구조건도 까다롭게 상향했다.

더불어 강아지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유도했다.

-헥헥!

휘릭, 휙!

강아지들은 태건의 손짓과 명령에 빠르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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