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같이 훈련하는 이지성이 놀랄 정도였다.
“쟤들 똑똑하네.”
그 사이 태건은 촬영 중인 노주민에게 물었다.
“개똘, 촬영 잘 되고 있지?”
“물론입니다. 엄청 신경 써서 촬영 중입니다.”
“단장조하고 사인이 맞아야 되니까 신경 써서 촬영해.”
“걱정 마시라니까요.”
휙휙.
노주민은 손까지 흔들어가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동시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지금 보시는 장면은 구조견 훈련입니다. 이순이와 삼식이가 저렇게 자라서…….”
틈틈이 동영상 업로드용 멘트도 잊지 않았다.
그러던 중이었다.
같은 훈련이 계속 반복되자 강아지들이 시큰둥해졌다.
이내 완전히 싫증을 느꼈는지 풀썩 엎어졌다.
태건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움직여. 아직 안 끝났어!”
-흐음.
툭.
강아지들은 한숨을 푹 쉬며 꼬리를 늘어뜨렸다.
척 봐도 반항 중이었다.
태건은 슬쩍 간식을 꺼내 내보였다.
“자아, 착하지. 이거 먹고 한 번 더 하자.”
…….
강아지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태건은 실망하지 않고 다른 꾐수를 던졌다.
“터그놀이 할까?”
…….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이후로 몇 번 자극적인 걸 시도했지만 강아지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사삭.
…….
심지어 태건에게서 등을 돌리기까지 했다.
그 뒷모습이 축 처져 있었다.
그걸 보고야 이지성이 태건을 만류했다.
“여기까지만 해.”
“알겠습니다. 저 녀석들도 지치겠죠.”
“자아, 훈련 끝!”
삐익!
이지성은 호각을 짧게 불었다.
약속된 신호였다.
그런데 강아지들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
여전히 축 늘어져 꿈쩍하지 않았다.
이지성이 갸웃거리며 다시 호각을 불려 했다.
“왜 저래? 다시…….”
“선배 잠시만요. 쟤들 아무래도 콧바람 쐴 때가 된 거 같습니다.”
“하긴 다람쥐 쳇바퀴 도는 거 같겠지.”
이지성은 바로 수긍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일만 반복하고 있으니 불만이 쌓일 만했다.
그 사이 태건은 강아지들에게 다가가 슬슬 등을 쓸었다.
슥슥.
“수고했어. 좀 쉬었다가 같이 집에 가자.”
격려와 포상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러나 강아지들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태건은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속닥속닥.
짧은 몇 마디를 건넸다.
그와 동시였다.
벌떡!
-멍멍!
-헥헥!
강아지들이 갑자기 기운찬 모습으로 변했다.
투다다다!
어느새 서로 엎치락뒤치락 뛰어놀기까지 했다.
지켜보던 이지성이 태건에게 물었다.
“뭐라고 그랬는데 저래?”
“퇴근이요.”
“그걸 알아들……. 쟤들 사람 아냐?”
강아지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지성도 지금만큼은 놀라워했다.
* * *
다음날 아침.
태건과 부조장조가 퇴근길에 올랐다.
어제 약속한대로 이순이와 삼식이가 함께였다.
태건과 이지성이 각각 리드줄을 붙들었다.
덩실덩실.
이순이와 삼식이의 걸음걸이가 경쾌하고 사뿐했다.
이지성이 그 모습에 조금 놀라워했다.
“목줄 싫어하던 녀석들이 오늘은 순순하네.”
“평소엔 건강검진 받으러 병원 가느라 목줄 했잖습니까.”
“그게 아니란 걸 아는 게 신기하다고.”
“차에 안 타니까요.”
태건이 단순하게 대답했다.
그 추측이 정답이란 걸 강아지들이 행동으로 보여줬다.
잠시 후.
단원들과 헤어지고, 태건의 양손에 각각 리드줄이 쥐어져 있었다.
주택가에 접어들자 강아지들은 호기심천국이었다.
-킁킁.
-헥헥.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냄새를 맡고 자신의 체취도 묻혔다.
평소 생활하던 환경과 달라 유독 신이 나 있었다.
“훅, 적당히 당겨라, 훅훅.”
태건은 긴 입김을 뿜으며 천방지축 날뛰는 강아지들을 제어하기 바빴다.
그러던 중이었다.
저쪽에서 젊은 여성이 나타났다.
다정하면서 두툼한 오피스룩 차림을 보아하니 출근길인 거 같았다.
“에티켓은 지켜야지.”
태건은 얼른 강아지들을 당겨 한 쪽에 멈춰 섰다.
한 번 더 이름을 불러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것도 있지 않았다.
“이순이, 삼식이.”
구조견이라 안 문다.
그건 안일한 생각이다.
현장이 아닐 때 지켜야할 매너를 익히는 일도 중요한 훈련과정이었다.
그렇게 여성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착, 착.
구두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어머, 강아지들이네.”
스윽.
여성은 경계심을 보이며 골목 한 쪽으로 옮겨 걸었다.
-헥헥헥.
강아지들은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자 기뻐하는 눈치였다.
숨소리가 커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가만히. 얌전히 있어야지.”
태건이 주의를 주며 계속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구두소리가 멈췄다.
스윽.
태건은 의아해 고개를 들어봤다.
저쪽에서 걷던 여성이 어느새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시선은 강아지들에게 온통 쏠려 있었다.
그러다 첫 마디를 꺼냈다.
“너희가 이순이랑 삼식이니?”
쫑긋. 붕붕!
-헥헥, 멍!
강아지들은 이름이 불리자 기다렸단 듯이 격하게 기쁨을 표했다.
“진짜야? 예뻐라, 저 얘들이랑 인사해도 되나요?”
여성은 묻자 태건은 엉겁결에 답했다.
“네, 뭐. 그래도 될…….”
“감사합니다!”
얼른 대답한 여성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태건은 이 상황이 조금 낯설었다.
그러다 이내 이해했다.
“어떻게……. 아.”
하네스에 큼지막하게 소속과 이름이 적혀 있어 알아본 모양이다.
그 사이 여성은 강아지들을 쓰다듬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도 찍었다.
찰칵.
“사진발도 잘 받네.”
-컹컹!
핥짝.
강아지들은 칭찬 소리에 기뻐 짖고 핥고 난리가 났다.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앞발을 들더니 옷에 발자국까지 냈다.
터덕.
그걸 본 태건이 깜짝 놀라 나무랐다.
“이순이, 삼식이, 그만!”
엄한 꾸짖음에 강아지들이 움찔하며 귀가 축 처졌다.
-끼잉.
그 순간 여성이 얼른 강아지들을 감싸며 태건을 나무랐다.
“왜 애기들 기를 죽이고 그러세요!”
“네?”
“강아지들이 그럴 수도 있잖아요……. 괜찮아. 너희는 잘못 없어. 우쭈쭈.”
여성은 더러워진 옷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들을 친절하게 위로했다.
쫑긋.
강아지들의 늘어진 귀도 순식간에 솟아올랐다.
괜히 한소리 들은 태건이 민망해졌다.
“크흠.”
“……어머나, 맞다. 강태건 단원님이시죠?”
“맞습니다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순이랑 삼식이 보호자잖아요. 고향에 있는 다른 아가들도 잘 지내고 있죠? 엄마가 세리라면서요.”
여성은 순식간에 여러 정보들을 쏟아냈다.
태건이 오히려 얼떨떨한 얼굴로 답했다.
“네. 다른 애들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때 관악산에서 구조한 애들이 이렇게 씩씩하게 컸네요. 구조견도 하고, 너무너무 장해라.”
슥슥.
여성은 어느새 대화의 주체를 바꿔 강아지들 얼굴을 쓰다듬었다.
반면 태건은 이런 대화가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기만 했다.
“이게 뭔지.”
그때 여성이 아차한 얼굴로 제안했다.
“저 사진 같이 찍을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 찍으셔도 됩니다.”
“아니요. 단원님도 같이요.”
“저도요? 뭐, 그러시죠.”
스윽.
태건은 승낙하며 자세를 낮췄다.
여성은 팔을 쭉 빼면서 옷에 발자국까지 앵글에 넣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출근길 개이득, 강태건 단원과 찰칵, 이순이와 삼식이 발도장. 출근시러병 특효약.”
그 자리에서 SNS에 올리는 듯 중얼거림도 들려왔다.
태건은 이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비슷한 연배였지만 생활패턴이 너무 달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여성은 태건에게 종이를 불쑥 내밀었다.
“사인도 부탁하면 실례일까요?”
“무슨 말씀을요. 자아.”
사삭!
태건은 시원하게 사인을 휘갈겼다.
그 종이를 돌려받은 여성은 이순이와 삼식이의 발도장까지 찍었다.
꾹, 꾹.
“이건 너희 사인. 호호호. 오늘 아침 왕재수!”
여성은 아이처럼 해맑게 기뻐했다.
그러다 얼른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더욱 함박 미소를 지었다.
“아싸, 그 사이 댓글 엄청 달렸어요. 보실래요?”
불쑥.
휴대폰 화면을 가까이 내밀기까지 했다.
“읏. 어?”
태건은 놀랐지만 이내 댓글을 살피기 시작했다.
-진짜 개이득, 축축!
-나도 아가들한테 발도장 찍히고 싶다.
-강태건 단원이다. 와아, 사진이 더 멋져요.
-푸헤헤. 실물보다 사진빨.
띠링띠링.
댓글을 확인하는 사이에도 댓글이 계속 추가됐다.
태건은 적당히 살핀 뒤 화면에서 시선을 뗐다.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나, 제가 기뻐서 너무 제멋대로 했네요.”
“별 말씀을.”
“퇴근하시는 길인 거 같은데, 얼른 들어가 쉬세요. 얘들아, 안녕.”
슥슥.
여성은 인사하더니 그대로 쓩하고 멀어졌다.
태건은 갑자기 조용해져 귀가 허전해진 착각까지 들었다.
“완전 직진이시네.”
그런 만남이 불쾌한 건 티끌만큼도 없었다.
곧 차분함을 되찾고 자신을 챙겼다.
“진짜 조심해야겠다. 너희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막 으르렁거리면 안 되겠어.”
-낑?
강아지들은 갸웃거리며 뭔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튼 황당한 순간은 그렇게 얼렁뚱땅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