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잠시 후.
모두의 앞에 뚝배기에 한가득 푸짐하게 담긴 해장국이 놓였다.
“역시 양평에선 양평해장국입니다.”
“냄새부터 끝내주네.”
다들 감탄에 이어 수저를 들었다.
후릅.
국물 한 수저 떠 넣는 순간 눈이 띠용하고 떠졌다.
“오오오.”
더 말해서 뭐하랴.
얼른 밥을 말아 본격적인 식사에 들어갔다.
후룩후룩.
가득 퍼 올린 국밥을 바지런히 입으로 가져갔다.
그때 큼지막한 해물파전이 떡하니 다가왔다.
“입에 맞나 모르겠네요.”
노주민 어머니의 걱정에 태건이 엄지를 들어 화답했다.
“끝내줍니다. 특히 이 깍두기가, 흐음!”
와삭!
약간 오버스런 행동이었다.
그러나 맛까지 오버해서 표현한 건 아니었다.
노주민의 어머니는 기쁜지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먹고 부족하면 말해요. 아니지. 내가 더 가져와야겠네.”
후다닥.
아들과 동료들의 방문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반면 단원들은 살짝 당황했다.
뚝배기가 차고 넘질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더블곱배기 양인데, 더 준단 말에 벌써 배가 걱정됐다.
그때 태건이 결심을 굳히며 말했다.
“허리띠 풀죠.”
“그래. 어디 먹고 죽어보자!”
“때깔은 곱겠네.”
처억.
선배들이 비장하게 허리띠를 풀어 젖혔다.
“전 제 한계에 도전하겠습니다.”
송강우도 동참했다.
“…….”
노주민만 일을 크게 만든 게 아닌가 전전긍긍했다.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갔다.
식탁 위는 태풍이 휩쓸고 간 듯 깨끗했다.
“어흐흐.”
“좀 걷다 가야겠다.”
“이대로 운전하면 무조건 졸음운전입니다.”
숨까지 가빠올 정도로 배가 불러 옴짝달싹도 못했다.
그만큼 맛이 끝내줬다.
이런 맛집이 왜 소문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본격적인 점심시간이 됐는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사장님, 여기 해장국 4개요.”
“어디 앉을까. 어라……. 저 사람들?”
“맞지? 이쪽에 출동이 있었나?”
몇몇 사람들이 라텔을 알아봤다.
다들 기동복 차림이라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팀, 두 팀, 손님들이 늘어갔다.
그런데도 빈자리가 드문드문 보였다.
손님들 또한 단골로 보였다.
그만큼 외관상 특별함이 없는 식당이었다.
태건은 그걸 보더니 잠시 생각했다.
‘밥값은 해야지.’
그러려고 온 길이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나지막이 제안했다.
“좀 도울까요?”
고수현이 바로 나섰다.
“그거 좋지. 내가 식당 알바 출신이야.”
“저도 좋습니다. 저 테이블에 물부터 가져다드려야겠네요.”
스릉.
송강우는 벌써 파악하고 재빨리 움직여 보였다.
뒤따라 태건과 고수현이 행동에 나섰다.
“자자, 움직여 봅시다.”
“배는 꺼뜨려야지.”
그릉.
“어어?”
노주민은 어쩔 줄 몰라 당혹감으로 가득했다.
그때 이지성이 입 주변을 정리하고 천천히 일어났다.
“뭐해. 안 움직여?”
“선배님, 그냥 식사만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걸 믿냐.”
이지성은 한 마디 내뱉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그때부터 건장한 종업원들이 식당을 종횡무진 했다.
먼저 태건이 주방으로 다가가 노주민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이거 1번 테이블이죠?”
“아니, 부단장님.”
“에이, 아들입니다. 아들.”
스륵.
찡긋한 태건은 반찬이 세팅된 쟁반을 들고 날랐다.
송강우는 물을 가져다주며 주문을 받았다.
“뭐로 드릴까요?”
스윽.
귀에 꽂아 놓은 펜을 꺼내는 모습 속에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고수현은 손님맞이와 홍보에 한창이었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세 분 들어가신다.”
“에? 여기서 뭐하시는 겁니까?”
“저희 단원 부모님 식당이라 아들들이 효도하고 있습지요. 하하.”
쳘면피를 깔고 넉살을 왕창 부렸다.
사교성이 최악인 이지성은 홀로 조용히 뒷정리 중이었다.
“뭘 다 흘리고 먹어.”
벅벅.
행주로 테이블이 볏겨 지도록 닦는 깔끔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분담한 일은 그저 잠깐 거드는 수준이었다.
그보다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고 사인과 사진촬영을 하며 팬서비스가 더 주를 이뤘다.
노주민은 그런 선배들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러면 내가, 내가…….”
많은 생각이 오가는 표정이었다.
며칠 후.
노주민의 얼굴이 급격히 환해졌다.
“직원도 새로 고용하고, 난리도 아니랍니다.”
단편적인 소식이었지만 더 듣지 않아도 충분히 그려졌다.
그저 말뿐이 아니었다.
해장국이 며칠에 한 번씩 배달되어 왔다.
“오늘도?”
“너무 이러면 우리가 부담스럽지.”
다들 계면쩍어해도 노주민은 밝은 얼굴로 밀어붙였다.
“그런 말씀 말고 드세요. 아니, 드셔주세요. 부모님이 부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걸 뭘 그렇게까지.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오가는 대화가 한층 더 부드럽고 끈끈해졌다.
다들 뒷배가 든든해지자 날카로움이 조금씩 무뎌져가고 있었다.
특히 노주민이 매사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건 제가 하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영내 생활에서도, 현장에서도 그 적극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송강우가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저, 부단장님.”
“왜?”
“부탁이 좀 있습니다. 전 안 그러려고 했는데 그래도 주민이를 보니까…….”
송강우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태건은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무슨 의민지 알아챘다.
“너도 있어? 그럼 내일 같이 가자.”
“그래도 되겠습니까? 사실 저희 누나가…….”
“됐어. 뭘 일일이 설명해. 내일 알게 될 걸.”
태건은 가볍게 흘려넘겼다.
그런데 송강우가 의외로 주춤거렸다.
“그래도…….”
“괜찮다니까. 내일 안내나 해.”
태건은 다 안단 얼굴로 적당히 대답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날.
부단장조원들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장소에 자리해 있었다.
각자 두 손을 가지런히 앞에 내놓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 어색함이 가득했다.
그러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태건에게 쏠렸다.
“이게……. 맞아?”
그런 그들은 네일아트를 받고 있었다.
태건은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속으로 어제 자신을 타박했다.
‘뭔지 들어는 보고 수락했어야지.’
송강우가 왜 말하기 어려워했는지 알 거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으십니까?”
송강우가 쭈뼛 묻자 태건이 웃으며 답했다.
“그럼. 요즘은 이렇게 관리해 줘야지. 안 그렇습니까?”
송강우를 안심시키며 모두에게 도움을 바랐다.
그러나 사방에서 날카로운 시선만 가득 쏟아졌다.
찌리릿.
“…….”
“크흠흠.”
태건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슬쩍 눈을 돌렸다.
비단 부단장조만의 상황은 아니다.
단장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들 주변이 안정되어 가자 출동을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 * *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태건과 부단장조가 대기 중이었다.
조용하던 그때 본부 전역에 날카로운 출동벨이 울렸다.
-찌르릉!
-지원요청, 라텔 출동!
본부 가득 출동방송이 울려 퍼졌다.
각자 개인정비를 하던 단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번뜩였다.
“출동이다!”
“드디어, 가자!”
파바박!
번개 같은 속도로 헬기를 향해 내달렸다.
잠시 후.
헬기가 떠올랐다.
투다다다!
정교현이 조종간을 잡고 힘차게 조작했다.
그 사이 부기장자리에 유중헌이 모두에게 브리핑했다.
“평택시 인근 연구소에서 폭발 및 화재 발생!”
“연구소?”
“대피하지 못한 연구원들이 안에 있는 모양이야. 쓰벌!”
유중헌의 짜증이 가득 울려 퍼졌다.
투다다다!
그 사이 헬기는 평택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던 중이었다.
거리가 거리니만큼 단숨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잠깐이지만 시간이 있다.
그 시간 동안 현장 상황을 다시금 파악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태건은 헬멧을 통해 세부정보를 물었다.
“상황이 정확히 어떻답니까?”
“타이어 공장이야, 그 옆에 부속연구소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일어났대.”
유중헌의 대답이 끝남과 동시였다.
태건은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헉!”
타이어.
고무부터 시작해 수많은 화학물질들을 결합해 만드는 제품이다.
공장이 옆에 있다면?자칫 대형 재난급 사고로 번질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아찔함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태건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그 옆에 있던 고수현이 불쑥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 어디라고요? 발음이 샌 거 아니에요?”
“쓰벌. 뭐가 어떻게 발음이 새면 타이어로 들리는데!”
휙!
유중헌이 몸을 돌려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싸우자는 게 아니다.
안타까운 거였다.
그때 이지성이 유중헌에게 물었다.
“대응 2단계랍니까?”
“3단계 직전이래. 현재 출동차량은 대략 30대 정도. 출동인원은 70명 가까이 되는 모양이고.”
“어쩌다가 사고가 난 거랍니까?”
이지성의 질문에 유중헌 얼굴이 또 한 번 구겨졌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으씨!”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걸 왜 인상 씁니까!”
“저 자식이, 이제 아주 기어오르네!”
“기어오르는 게 특기라서 죄송하네요. 하!”
이지성이 대놓고 기막혀 했다.
그 반응에 유중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뿜어냈다.
“너, 이 새끼. 거기 그대로 있어. 내가!”
부스럭.
정말 넘어올 기세였다.
그때 태건의 싸늘한 목소리가 헬멧에서 울렸다.
“지금 불구경 갑니까?”
“…….”
유중헌과 이지성의 입이 동시에 닫혔다.
태건은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언제까지 출동하면서 우리끼리 신경 곤두세울 겁니까.”
“크흠.”
괜한 헛기침 소리만 들려왔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송강우와 노주민을 의식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