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지역소방관들은 두 말 따윈 하지 않았다.
“이거 일단 끌고 가요. 뒤에 바로 연결해 드릴게!”
“이 호스는 약품 섞은 겁니다. 약품이 많지 않아서 곧 물로 바뀔 겁니다.”
호의 가득한 배려와 도움은 기본이었다.
거기에 한 발 더 앞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일단 갑시다. 우리 구역인데, 입구까진 안내하는 양심은 있어야지!”
“1구역, 물대포는 계속 불길 억제에 집중해! 그 외에 호스들은 한곳으로 모여. 집중포화 실시!”
촤아아악!
호스를 통해 발수된 모든 물줄기들이 모여 한 곳을 집중 타격했다.
확산 방지는 소방차들에게 일임했다.
호스들은 말 그대로 한 점만 노려 라텔이 들어갈 입구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고수현과 단원들의 표정은 더욱 무거워졌다.
언제나 이 순간에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동질감.
라텔과 이곳 소방관들은 분명 처음 본 사이다.
모두가 방화복에 방화헬멧까지 쓰고 있어 계급도 이름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같은 목적과 마음을 품고 있어 동료애가 절로 피어났다.
촤아악!
“차아압,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끄응, 금방 길 열어 드릴께!”
“으아아아! 뚫어, 그냥 좀 뚫려버려. 이 새끼들아!”
“다 삼키더라도 사람은 내놓고 불타라, 제기랄!”
물줄기를 쏘아내는 모든 소방관들의 염원이 외침 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한 점을 집중 타격했다.
그 지점만 불길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사람의 단결력은 무서웠다.
치직, 치지직.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불길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 잠깐 동안 라텔은 빈손이었다.
지역소방관들이 길을 열어주고 호스를 넘겨줄 작정인 모양이다.
이지성이 고수현 옆으로 다가서서 말했다.
“제 정신머리가 이상합니다. 속이 끓어오르네요.”
“이제 제정신 차리는 거야.”
“제정신이 이렇게 열 받는 건지 몰랐습니다.”
“가슴 뜨거워지는 거란 거다. 짜샤. 그래도 이해되지 않으면 보호소 강아지들 밥값 번다고 생각해.”
고수현의 비유 어린 충고에 이지성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예시가 저에겐 더 강렬하게 와 닿네요.”
“웃을 여유는, 젠장. 입구 뚫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고수현이 시간을 확인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벌써 투입한 지 1분이 지나고 있었다.
같은 시각.
태건은 안상윤 센터장에게 다른 질문을 건넸다.
“그럼 연구소 평면도는 준비됐습니까?”
“여기요.”
착.
안상윤 센터장이 바로 복사용지를 건넸다.
받아서 빠르게 훑어본 태건이 순간 멈칫했다.
“이거 왜 1층 밖에 없습니까?”
“2층은 그리는 중입니다. 연구 전용구역이라 공간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고 합니다.”
“……완성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태건은 꽉 막힌 속을 애써 억누르며 물었다.
안상윤 센터장도 면목이 없는지 무거운 얼굴로 답했다.
“최소 몇 분은 더 걸릴 거 같습니다.”
“흐음.”
태건의 묵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때였다.
호스의 물줄기가 집중 포화된 지점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스, 스스.
노주민이 그 지점에 바디캠을 집중시키며 소리쳤다.
“열립니다. 열리고 있습니다!”
그 말이 기폭제라도 된 듯 소방관들이 우레와 같이 소리쳤다.
“뚫리고 있단다, 더 갈겨!”
“우자자자자!”
푸우와아아아!
수십 개의 물줄기가 쏟아져갔다.
턱, 터덕.
한 걸음씩 전진하기까지 했다.
뜨거움을 뒤로하고 라텔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뚫어줬다.
소방관들과 연구소 건물의 거리는 대략 20미터 정도였다.
가깝지 않은 거리다.
그럼에도 엄청난 열기가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화르르, 화르르르!
불길은 괘씸하단 듯 다른 구멍으로 더욱 성난 불을 뿜어댔다.
그렇게 발악해도 별무소용이었다.
타협 없는 소방관들의 집중포화에 조금씩 입구를 열어줘야 했다.
태건은 안상윤 센터장과 대화 중에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도 계속 체크 중이었다.
‘현장 도착 후 1분 30초, 더는 안 돼.’
화재 발생부터 따지면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발길이 묶이는 건 여기까지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태건이 크게 말했다.
새로 개량된 양방향 무전기는 이제 더 이상 버튼을 누르는 절차를 밟지 않아도 통신이 가능했다.
“운전라텔, 지상으로!”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지금 내려간다!
촤아악!
늘어진 로프 하나가 크게 진동했다.
올려다보니 유중헌이 벌써 강하 중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이런 눈치는 최고였다.
태건은 하늘을 손짓하며 안상윤 센터장에게 말했다.
“이후 상의는 저분과 나눠주십시오. 그럼 전, 실례하겠습니다!”
“부단장이라면서, 현장지휘 안 합니까?”
“네. 전 몸으로 때우는 스타일이라서요.”
타다닥!
태건은 간략하게 대답한 후 내달렸다.
태건은 그 길로 연구소 건물과 거리를 좁혔다.
화르륵.
정말 어마어마한 열기다.
공기가 들끓어 사방에 아지랑이가 가득했다.
겨울?
그런 계절적인 흐름까지 거스르고 있다.
여긴 사막 한가운데였다.
그 정도로 연구소 1층의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 불길이 층고가 상당히 높은 2층까지 넘실거렸다.
‘저 새끼, 안에서 뭘 처먹고 있는 거야!’
불의 흐름을 가늠하던 태건은 쓴소리를 속으로 뇌까렸다.
곧 소방관들 뒤에 다가섰다.
사삭!
바로 지나치며 태건이 크게 외쳤다.
“힘을 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어!”
소방관들의 과격한 응답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지나친 태건은 어느새 호스를 넘겨받은 단원들과 거리를 좁혔다.
촤아악!
이내 시원한 물줄기들 사이에 태건이 위치했다.
눈앞엔 사람이 겨우 들어갈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연구소 전체와 비교하면 개미구멍만 한 크기였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구멍이 라텔에겐 생명을 향한 첫걸음을 디딜 장소였다.
구구구.
묵직하게 선 태건이 단원들에게 명령했다.
“라텔, 전원 호스 잠가.”
“잠가!”
차악!
엉뚱하고 황당한 명령인데 누구도 군말 없이 따랐다.
물이 잠기기 무섭게 태건의 목소리가 재차 울렸다.
“폼통 장착!”
“장착!”
끼릭, 끼릭.
각자 출동가방에서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을 꺼내 관창 앞에 부착했다.
셀프세차장에서 자신의 세제를 사용할 때 부착하는 통과 흡사한 모양이었다. 아니, 작동방식은 똑같은 원리였다.
용도가 다를 뿐이었다.
“장착완료!”
고수현이 대표로 외쳤다.
태건은 지금도 소방관들이 집중포화로 열어준 그 구멍을 응시하고 있었다.
휘익!
이내 그 방향으로 손짓하며 묵직하게 말했다.
“물어뜯을 시간입니다.”
“라텔, 돌격!”
“가자, 으아아아!”
타다닥!
태건과 단원들이 일제히 불구덩이 속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 뒤에서 소방관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조금이라도 더 밀어붙여!”
“1미터만 아니, 한 걸음만 더!”
“우리가 깡이 없냐, 땡전이 없지. 그런데 쓰브럴, 이건 물값도 내가 안 내, 차아아!”
누군가 사기를 끌어올릴 외침까지 서슴지 않았다.
척, 척.
그렇게 소방관들은 라텔의 길을 끝까지 열어줬다.
덕분에 라텔은 연구소 구멍까지 쉽게 접근했다.
구멍을 넘어가던 태건이 순간 멈칫했다.
‘이건 폭발 흔적?’
느낌이 싸했다.
그에 깊이 고찰할 시간적 여유조차 지금은 없었다.
촤아악!
집중된 물줄기가 조금씩 사방으로 흩어졌다.
더 집중시키는 건 가능하지만 라텔이 들어갈 공간까지 차지해버린 탓이다.
내부는 용광로 같았다.
지글지글.
불이 사방에 가득 세를 키워 잔치라도 열고 있는 듯 했다.
선두에 선 태건이 가장 먼저 열기를 맞닥뜨렸다.
“크윽, 방수!”
”아으으, 쏴아!“
촤아악!
단원들은 일제히 폼통이 장착된 소방호스 노즐을 열었다.
물은 약제와 뒤섞여 배출되자마자 엄청나게 부풀어 거품으로 변했다. 그 거품은 원래 물줄기와 거의 비슷한 거리를 날아갔다.
솨솨솨솨!
호스들에서 쏟아지는 거품이 가라앉으며 열을 머금은 구조물과 맞닿았다.
열과 산소를 차단할 용도로 만들어진 특수약품이다.
시이이, 치이이.
놀랍게도 별다른 소리와 반응 없이 구조물을 거품으로 뒤덮어버렸다.
마치 입자가 고운 거품을 살포시 덮은 거 같았다.
고수현이 이리저리 거품을 내뿜으며 외쳤다.
“비눗방울 놀이를 이제야 원 없이 하네!”
“이런 비눗방울은 애들이 별로 안 좋아합니다!”
“야, 까칠, 난 다 컸어, 차아압!”
기합까지 내지르며 거칠게 호스를 움직였다.
뽕뽕뽕뽕.
물 대신 거품이 쏟아져 나오자 장난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거품이 덮인 장소는 열기와 연기까지 대부분이 차단 됐다.
“효과 죽이고!”
“방심하지 마요!”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효과는 물대포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사용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태건은 가슴께 달린 폼형 스프레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슥.
“특별제작을 의뢰한 게 적시에 도착했어.”
“라면아, 웃을 때가 아니야, 벌써 반 넘게 썼어!”
고수현이 외치자 태건이 미간을 좁혔다.
“5킬로그램짜리는 역시 지속성이 떨어지네. 그럼 핸썸, 바보가 1조. 까칠, 개똘이 2조. 폼통을 교대로 장착하세요!”
“오케이, 나하고 바보가 먼저! 까칠, 개똘은 최대한 넓게 물 뿌려!”
철컥, 뽕뽕뽕뽕.
고수현과 송강우가 폼통을 교체 후 계속 거품을 쏟아냈다.
이지성과 노주민은 폼통을 버리고 방사형으로 물을 뿌려 몰려오는 연기를 억제했다.
태건은 그들이 확보해준 시야를 통해 앞으로 나아갔다.
척, 척.
무척이나 정신없이 들어왔지만 이제 초입이었다.
연구소 전체 길이와 비교하면 들어왔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였다.
불길은 주변만 밀어낸 정도다.
전체를 10,000으로 놓는다면 아직 1도 점령하지 못했다.
‘폼통 재고가 별로 없어. 퇴각할 때도 필요해, 그런데……. 저건!’
태건의 눈동자가 순간 가득 흔들렸다.
하나는 폭발의 여파로 반 밖에 남지 않은 화학탱크였다.
소형 화학탱크가 폭발로 파편이 튀며 여기저기 구멍이 생겨 불길이 걷잡을 수 없게 일어났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다.
더 놀라운 모습에 태건의 시야를 가득 잡아끌고 있었다.
저 앞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거대한 화학탱크.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
그때 그 화학탱크보다 더욱 거대했다.
엄청난 불길과 열기로 인해 아주 선명하게 발견됐다.
무엇보다 태건은 보고야 말았다.
백화.
각종 화학원료들이 타들어가며 섬뜩한 하얀 불꽃을 피웠다.
“…….”
파르르,
태건의 어깨가 저절로 떨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