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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63)화 (262/320)

263화

더 생각할 거 없이 곧장 방화장갑을 착용한 손을 문틈에 밀어 넣었다.

텁.

“흡!”

전기가 끊어져 전자계폐식 자동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틈, 틈. 틈.

태건은 이리저리 둘러보며 미세한 틈을 찾기 시작했다.

불길에서 상당히 먼 장소였다.

플래시는 필수였다.

이내 이지성과 송강우가 소방호스와 플래시를 앞세워 도착했다.

촤아악, 번쩍.

이지성이 둘러보는 태건을 보고 바로 물었다.

“뭔데, 왜 그러고 있어!”

“틈!”

“제한구역? 장소도 이런 데만 골라!”

삭삭.

이지성은 투덜거리면서도 재빨리 태건과 거리를 좁혔다.

소방호스는 둘 다 송강우 몫이었다.

빠르게 둘러보고 또 둘러봤다.

그러나 최고 비밀을 취급하는 장소라 빈틈이 없었다.

심지어 창문도 없다.

‘시간이, 시간이…….’

마음이 급해도 너무 급했다.

지체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거 같았다.

“……에잇!”

부욱.

태건은 출동가방를 내리더니 소형 유압공구를 꺼냈다.

이거면?

문과 문이 맞닿은 부분에 끄트머리를 밀어 넣고 작동시켰다.

우지지직!

이판사판 작전이다.

시간에 쫓기고 있어 다방면으로 생각하고 계산할 겨를이 없었다.

누가 봐도 막무가내였다.

오죽하면 이지성이 자신의 출동가방을 뒤적이며 쓴소리를 던졌다.

“그냥 밀어 넣는다고 다 열려? 우선 뾰족한 걸로 길을 만들고…….”

그때였다.

꽈지직. 그르릉.

“열렸습니다!”

“뭐?”

이지성이 놀라 바라봤다.

태건은 벌써 어두컴컴한 그 속을 플래시로 비추며 들어가고 있었다.

“기밀성 덕분인지 이 안은 불길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아닌가, 연기가 어디서 흘러 들어오고 있는데…….”

저벅저벅.

어느새 태건은 어둠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이지성이 송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쟤가 정상이냐?”

“그, 글쎄요.”

우물쭈물하며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망설였다.

그 대답은 다른 장소에 있는 고수현에게서 들려왔다.

-까칠아, 라면이 언제부터 현장에서 정상이었는데?

“대화할 여유도 있으십니까?”

이지성이 퉁명하게 묻자 고수현의 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꺄, 너 여기 서 있어봐. 심장이 벌렁벌렁해!

“전 썩 경험하고 싶지 않네요. 폭발할 기미가 보이면 잘 피하기나 하세요.

-너, 너, 이 자식, 이리와, 너 당장 이쪽으로 뛰어와!

고수현이 길길이 날뛰는 외침이 따갑게 들려왔다.

그러나 이지성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흐트러진 출동가방을 정리했다.

탁, 턱, 그릉.

“겸사겸사 재고도 확인하고.”

선배 말을 씹는 재주가 정말 끝내줬다.

송강우는 그런 이지성을 볼 때마다 할 말을 잃었다.

‘라텔에 정상은 나 하나야.’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단 걸 아직 송강우는 몰랐다.

같은 시각.

태건은 원료배합실 깊숙한 장소까지 들어왔다.

사방은 적막, 그리고 어둠으로 가득했다.

슥, 슥.

태건의 손길에 따라 옮겨지는 플래시가 유일한 빛이었다.

‘중요한 장소란 건 확실해.’

각종 기계들이 거짓말처럼 멈춰 있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전원이 차단되는 구조란 걸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안으로, 더 안으로.

사방을 철저히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태건은 처음부터 신경 쓰인 부분을 다시금 인지했다.

옅게 깔린 부자연스러운 어둠.

그건 화재로 인한 유독가스였다.

‘기밀성이 이렇게 유지되는데 틈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 속 거무죽죽한 유독가스는 점점 짙어졌다.

저쪽 어디?

연기의 흐름을 따라 좀 더 이동했다.

어느새 여러 파이프와 기계들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장소에 도착했다.

원료배합기로 추측됐다.

그건 관심사가 아니기에 태건은 플래시를 사이사이 비췄다.

그러던 중 파이프들 틈으로 아주 잠시 무언가가 포착됐다.

“음……. 어?”

휙!

재빨리 다시 비추자 신발이었다.

사람?

눈에 불을 켠 태건이 번개같이 달려갔다.

타다닥, 휙휙.

장애물을 피하고 피해 다가간 태건은 일순간 동요했다.

“어, 어엇!”

정말 사람이었다.

하얀 연구복을 입은 채 엎드려 있었다.

사삭!

재빨리 자세를 낮춘 태건은 요구조자의 몸을 돌리며 의식부터 확인했다.

“소방관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라텔입니다!”

몸을 돌리자마자 품에 안고 있던 연구 자료들이 흘러내렸다.

스르륵.

태건은 연구 자료는 당장 안중에 없었다.

요구조자에게 더욱 커다랗고 중요한 특징이 발견된 탓이다.

입과 코를 덮은 마스크를 쓰고 있고, 그 아래 공기주머니가 부착되어 있었다.

태건은 한눈에 알아봤다.

‘이건 자흡식 호흡기.’

호흡하는 과정에서 공기주머니를 통해 오염된 공기를 걸러내는 간이호흡기구의 일종이다.

“스으읍, 스으읍.”

늘었다, 줄었다.

공기주머니가 움직였다.

즉, 스스로 호흡을 하고 있단 의미다.

흔들흔들.

“이봐요. 아니, 황재열 연구원님!”

목에 걸린 신분증으로 상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소리에 밖에 있는 현장 유중헌이 반응했다.

-부단장, 발견했어? 누구라고?

“황재열 연구원이요. 연구원님 눈 떠 보세요. 제 말 안 들리세요?”

태건은 대답하며 동시에 플래시로 시각적 자극을 주는 등, 반응을 살폈다.

바로 유중헌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어, 그 사람. 행방이 묘연했던 사람이 그 사람이야!

-운전 잠시, 나 까칠, 지금 바보랑 진입 중!

이지성의 감정이 사라진 목소리가 빠르게 들려왔다.

태건은 이지성에게 현재 위치부터 알렸다.

“배합기 주변, 의식 레벨 저하, 그리고…….”

태건의 말꼬리가 갑자기 길어졌다.

그건 요구조자의 볼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해서였다.

“쓰어흐엉러어…….”

공기주머니에 울려 무슨 소린지 잘 들리지 않았다.

태건은 재빨리 그와 거리를 좁히며 침착하게 물었다.

“천천히, 한 마디씩 하시면 됩니다.”

그 소리에 다른 곳에서 난리가 났다.

-요구조자가 뭐라는데!

-배합기가 어딨는 건데!

방해 가득한 소리에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조용!”

- …….

다들 거짓말처럼 침묵했다.

반면 그 외침이 자극이 됐는지 요구조자가 움찔거렸다.

그리고 좀 더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출구……. 막혀, 피신……. 2층.”

“2층이라고요? 다른 분들은 모두 올라간 겁니까?”

태건이 일부러 목소리 높여 물었다.

황재열 연구원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는 자료, 챙기다……. 으윽! 그륵그륵.”

말하던 그가 갑자기 고통을 토로했다.

숨소리도 이상해졌다.

태건이 예리하게 변한 두 눈으로 재빨리 그의 온몸을 훑었다.

‘육안으로 보이는 부상은 없어. 그럼 설마?’

스윽.

살포시 복부에 손을 얹어 봤다.

그 순간 의식이 흐려지던 황재열 연구원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으, 흐으…….”

“복부?”

휙!

와이셔츠를 재빨리 위로 끌어 올렸다.

복부부터 멍이 타고 올라가 옆구리가 온통 시퍼렇게 물들어 있었다.

“어엇, 이게 어떻게, 혹시?”

휘휙.

태건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가 넘어진 방향을 유추해보니 눈에 거슬리는 구조물이 있었다.

뭉뚝한 모양의 특이한 밸브였다.

황재열 연구원이 넘어진 타격지점이 갈비뼈와 간에 상당히 밀접해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었다.

흉부와 복부의 복합적인 부상이다.

“이런! 까칠 선배, 여기 응급!”

-가고 있어, 가고 있다고!

-저도 가고 있습니다!

휙휙.

그들의 외침에 이어 플래시 빛이 나타났다.

저 멀리 다가오는 게 보이자 태건은 파악한 증상부터 알렸다.

“넘어지면서 흉부와 복부에 복합적인 부상, 최소 갈비뼈 골절, 최대 간열상, 혹은 폐열상!”

“기혈이나 토혈, 아무튼 출혈 흔적은!”

타다닥.

어느새 가까워진 이지성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태건은 슬쩍 공기주머니를 들춰본 후 답했다.

“다행히 출혈 없음!”

“뭐가 다행이야. 차라리. 뱉어내는 게 속 편하지. 안에 다 쌓여 있단 거잖아!”

차자작!

잰걸음 소리와 함께 이지성과 송강우가 나타났다.

이지성은 서둘러 출동가방을 풀며 눈으로는 환부를 가늠했다.

그러다 갑자기 출동가방을 다시 어깨에 멨다.

사락.

접이식 들것을 펼쳐 잽싸게 조립하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젠장. 운전라텔, 구급차 대기, 그리고 출구 확보, 응급실도 수배, 당장!”

-운전라텔 접수, 구급차 뒤로 빽, 빽해서 저기 입구 앞으로! 다른 분들, 입구 좀 확보해주세요!

-지원팀입니다. 평택 소재 종합병원 응급실들에 콜 때리고 있습니다!

멀리 본부 지원팀까지 한 손 거들었다.

조용히 감청하다 나설 타이밍이 되자 주저 없이 존재감을 보였다.

태건은 이지성이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걸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심각합니까?”

“추측대로 출혈이 내부에 쌓이고 있어. 그게 지금 당장 복부인지, 흉부인지 가늠이 안 돼. 둘 다 일 가능성도 있어!”

“……서둘러요. 송강우, 빨리 거들어!”

순간 태건의 표정도 다급해졌다.

“자리 잡았습니다. 간이호흡기로 대체, 호흡 확보, 의식레벨 최저, 바이탈…….”

척, 척.

송강우는 신속하게 응급환자의 상태를 파악했다.

일전에 응급처치 중 버벅거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단 노력이 엿보였다.

태건과 이지성은 황재열 연구원을 들것에 빠르게 싣고 또 고정시켰다.

착, 착!

“하체는 오케이!”

“상체 됐고, 송강우, 주사약 준비 됐어?”

이지성이 찾자 송강우가 번개같이 주사기를 차례로 내밀었다.

“리도카인, 진통제, 강심제!”

“오케이, 좋아, 굿……. 투여, 완료. 들어!”

“으쌰, 들었습니다!”

“가자!”

처척척.

이지성과 송강우가 바람처럼 움직이려 했다.

바로 그때 태건이 막았다.

“잠깐.”

스윽.

어느새 취합한 연구 자료를 황재열 연구원의 등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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