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66)화 (265/320)

266화

태건이 귀에 울리는 안내를 따라 수색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째깍, 째깍.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그 경과 시간을 강영직 대원이 메마른 목소리로 알려줬다.

- 30초 경과!

- 1분 경과!

- 1분 30초 경과!

제한시간이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태건의 두 다리도 덩달아 바빠졌다.

타다닥, 타다다닥!

“헉헉, 아니야…….”

벌컥!

“여기도, 헉헉. 클리어. 다음!”

숨이 어느새 턱 끝까지 차올랐다.

태건은 지쳐가고 있다.

현장에 투입 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길어야 15분 남짓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까지 단 1초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고초와 역경을 뚫고 왔다.

그 몸이 멀쩡할 수가 없었다.

터덕.

달리던 두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걸 인지한 순간 태건은 독기를 끌어 모아 이를 갈았다.

으드득!

‘아직 멀었어!’

스스로를 재촉했다.

바로 그때 강영직 대원의 통보가 들려왔다.

-3분 경과, 남은 시간 60초.

쿠구궁.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 …….

이어지는 말소리가 없었다.

그 누구도 태건을 재촉하거나 닦달하지 못했다.

넓디넓은 연구소를 혼자 이 짧은 시간에 전부 수색할 순 없었다.

시도부터 무모한 계획이었다.

그러나 태건의 눈빛은 아직 생생히 살아 있었다.

제한시간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두 다리는 뻐근함이 몰려왔다.

지쳤다.

인정한다.

그렇다고 넋 놓고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었다.

‘이대로 멈추라고? 어떻게 멈춰. 다들 분명히 안전한 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안전한?’

피잉!

뇌까린 말을 곱씹던 태건의 머릿속에 어느 장소가 떠올랐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건물에 필수로 마련되어야 하는, 건축법에 명시된 공간이다.

그건 바로.

“방화구획!”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그 소리에 유중헌의 목소리가 따갑게 반응했다.

그런데 태건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재촉하는 목소리였다.

-관리소장님, 이 건물에 방화구획 있지 않습니까?

- …….

-뭐라고, 옆에서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뭐? 깜빡해? ……놔, 이거 놔, 너 이 새끼 당장 이리 와!

유중헌의 분노를 넘어 찢어버릴 기세가 목소리로 전해져왔다.

그 관리자는 유중헌이 알아서 할 거다.

태건이 신경써야할 부분은 오직 하나였다.

“운전, 소방구획 위치부터, 빨리!”

-씩씩, 토꼈어. 꼭 지구 끝까지 튀어라. 내 손에 잡히면 그대로 헬기 날개에 묶어서 갈아버릴라니까.

“선배!”

-푸우우. 그래도 위치는 파악했어. 그런데……. 좀 멀어.

유중헌의 목소리가 다시 가라앉았다.

태건의 귀엔 쓸데없는 소리로만 들려왔다.

“먼데, 그래서 뭐!”

-알았어. 지금부터 내가 씨불일 테니까 넌 뛰어. 오케이?

-40초 전.

-아으, 저 인정머리 없는 자식!

울화통 터지는 유중헌의 목소리에도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더, 빨리!”

-그대로 앞으로, 달려!

그 소리와 동시에 태건은 고함을 지르며 내달렸다.

“타아아앗!”

파바박!

시꺼먼 복도 속으로 단숨에 사라졌다.

태건은 자신의 상태도 잊고 사정없이 달렸다.

달리는 사이사이 온갖 목소리들이 뒤섞여 울렸다.

“갈림길!”

-오른쪽!

-35초 전!

태건은 경주마 같이 앞만 바라봤다.

팟, 팟.

연기투과 플래시가 휘젓는 손길에 맞춰 정신없이 흔들렸다.

시야 확보?

시꺼먼 연기가 가득해 보나마나였다.

‘보긴 뭘 봐. 볼 시간 없어!’

파바박!

태건은 더욱 팔을 크게 휘두르며 뛰었다.

그러나 태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말을 후회했다.

똬악!

달리던 태건 앞에 벽이 등장했다.

속도를 줄일 시간적, 거리적 여유가 없었다.

결국 벽에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콰앙!

“아아악!”

-뭔 소리야. 비명, 왜……. 설마 벌써 막힌 데까지 갔어?

-25초 전!

-넌 좀 닥쳐. 이 인정머리 없는 새끼야……. 강태건, 다 왔어. 오른쪽이야. 방금 박치기한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그때 태건이 헬멧을 붙들며 몸을 일으켰다.

비틀.

적잖은 충격에 비틀거리면서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끄으응. 이, 일단 오른쪽……. 이쪽인가.”

텅!

예상과 달리 다시 벽이었다.

두 번째 박치기에 아픔이 곱절로 늘어났다.

“크으으. 여기가 벽. 그럼……. 이쪽.”

터덕, 터덕.

태건은 아찔한 그 와중에도 벽을 짚으며 꾸역꾸역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서였다.

또 다시 태건의 눈앞에 벽이 나타났다.

터엉!

“크아으……. 젠장, 경고를 해줬어야 될 거 아닙니까!”

3연속 벽과 박치기에 태건은 정신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머릿속 깊이 울린 그 아픔에 결국 유중헌을 타박했다.

그런데 유중헌의 대답이 이상했다.

-뭔 소리야. 거기 벽이 왜 있어.

-10초 전.

태건은 강영직 대원의 카운트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벽이 없다고요? 잠시만요.”

태건이 난데없이 벽을 눌러봤다.

눌릴 리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눌렸다.

차랑차랑.

소리로 직감했다.

이건 알루미늄 셔터 소리다.

팟!

플래시로 빠르게 비춰 재차 확인했다.

정말 알루미늄 셔터가 맞았다.

그 소재의 쓰임새를 떠올린 태건이 눈에 힘을 줬다.

“자동방화셔터……. 도착했습니다.”

-도착했다고? 정말? 이야아아아!

-2초……. 1초……. 타임아웃.

강영직 대원은 이 순간까지도 지시이행에 충실했다.

역시 지독한 FM이다.

아무래도 좋았다.

태건에게 중요한 건 이 방화셔터를 끌어올리는 거였다.

“끄응!”

차라라랑!

아래 틈에 손을 밀어 넣어 힘을 주자 셔터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

그저 소리만 울릴 뿐 방화셔터는 제자리에 있었다.

여기서 막힐 순 없었다.

“제엔, 자아앙. 여얼려어라아아앗!”

쿠구구!

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한 번에 쏟아 부었다.

그때였다.

창창창.

규칙적인 두드림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방화셔터 안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있어요?”

목소리다.

사람의 아니, 요구조자의 목소리.

살아있다.

최악을 가정해도 한 명은 분명히 살아 있었다.

얼마나 듣고 싶던 목소리였나.

간절한 염원이 이뤄진 거 같은 심정이었다.

그 마음이 태건의 가슴을 미어지도록 조여 왔다.

“아, 아아, 아아아아…….”

투우웅.

방화셔터에 헬멧을 힘없이 부딪쳤다.

그리고 태건이 진심을 가득 담은 첫 마디를 건넸다.

“라텔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곧 안쪽에서 희열 가득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구, 구해주러 왔답니다. 라텔이랍니다!”

“살았다, 으아아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드르륵.

방화셔터가 순식간에 허리까지 불쑥 올라왔다.

늘어선 다리의 수로 보아 네 사람이 협동한 모양이었다.

태건은 재빨리 몸을 숙여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쑤욱.

순식간에 방화셔터를 넘어섰다.

허리를 펴기도 전에 또 한 번 격한 목소리들이 울렸다.

“진짜 소방관이야. 우리 이제 살았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정말 감사합니다. 이야, 살았다!”

“그런데 소방관님 모습이…….”

기쁨 가운데 어색한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제야 태건은 허리를 폈다.

이어서 방화셔터를 들어준 네 명의 요구조자들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3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성들이었다.

그런 그들 모두 황재열 연구원과 같이 자흡식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하아.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태건은 날숨부터 길게 흘러나왔다.

방화셔터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그 내부가 진짜 방화구획이었다.

전부 내화소재만 이뤄진 화재의 요새였다.

그래서 불길이 침투하지 못한 깨끗한 공간이었다.

방화셔터로 연기까지 차단되어 상당히 쾌적했다. 밖이 불과 연기로 난리가 났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창문이 그을려 있고, 그 너머로 검은 연기가 쉴 새 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게 요구조자들에겐 화재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을 거라 추측됐다.

그 모든 걸 태건은 들어서면서 한눈에 파악했다.

다음으론 요구조자들을 살피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큰 문제 없는 거 같습니다. 다음분…….”

슥, 슥.

한 명씩 꼼꼼히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이동했다.

그렇게 살핀 요구조자들은 도합 7명이었다.

셔터를 들어준 4명의 남자연구원들 외에 여성연구원들이 3명 더 있었다.

그 수는 남은 요구조자들의 숫자와 꼭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들 모두 자흡식 호흡기를 걸고 있었다.

쑤웁, 쑤웁.

부풀고 줄어드는 공기주머니를 봐도 호흡이 안정적이었다.

지금까지 갇혀 있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한 갈증 외엔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태건이 제일 기분 좋은 부분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여기까지 전전긍긍하며 찾아온 고생은 벌써 잊었다.

비통한 눈물이 아닌 잔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단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요구조자들 상태를 전부 확인한 후였다.

훌렁.

태건은 방화헬멧과 호흡기를 차례로 벗었다.

“푸우우.”

공기가 깨끗하진 않지만 호흡에 거슬릴 정도도 아니었다.

전용 환풍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숨을 쉴 수 있는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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