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한숨 돌린 순간은 잠깐이었다.
어느새 태건은 30대 후반의 서글서글한 홍시현 연구원과 마주하고 있었다.
홍시현 연구원을 통해 그간의 일을 전해 듣는 중이었다.
“……그렇게 황 연구원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곧 뒤따라 갈 테니까, 먼저 피신하라고 말입니다.”
“그러셨군요.”
“여기에 도착해서 방화셔터를 내리는데 뭐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찌나 겁이 나든지 요.”
부르르.
홍시현 연구원은 몸을 감싸기까지 했다.
그 아찔한 심정은 태건도 백 번 동감했다.
“어떻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이 나셨겠죠.”
“한 번도 겁나는데, 그 뒤로도 몇 번 더 폭발 소리가 났습니다.”
“몇 번 더요?”
태건이 의구심을 보이자 홍시연 연구원이 아는 대로 답했다.
“서너 번 정도 될 겁니다. 마지막 폭발은 조금 전이었는데, 꽤 가까이서 들렸고요.”
“아, 2층과 연결된 파이프. 그러고 보니…….”
태건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분명 파이프 폭발로 인해 2층에 문제가 생겼을 거라 추측했다.
막상 올라와보니 복도에 연기가 가득하다는 거 외엔 빨간 불꽃조차 본 적이 없었다.
‘1층의 불이 그렇게 났는데 2층이 그렇다고?’
문제가 있길 바라는 건 결코 아니었다.
건물을 잘 지어서 서로 영향을 적게 받을 수도 있었다. 연구소라 안전에 더 신경 썼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뭔가 썩 석연치 않았다.
이내 태건이 홍시현 연구원에게 물었다.
“그 호흡기는 언제부터 착용하신 겁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바로 찾아서 착용했으니까 아마 30분은 족히 넘은 거 같은데요.”
“호흡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태건이 재차 묻자 홍시현 연구원이 크게 숨을 쉬어보였다.
쉬익! 쉬익!
“별 문제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전 잠시만 실례하겠습니다.”
스윽.
태건은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으로 옮겨온 태건이 방화헬멧을 다시 착용했다.
턱.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들으셨죠.”
-모두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소방구획으로 피신했다니, 평소 안전교육 잘 받았나봐.
유중헌과 이지성의 한층 차분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은 그들 외에 다른 쪽 소식도 궁금했다.
“수현 선배, 그쪽은 어떻습니까. 좀 소강상태입니까?”
-계속 거품하고 물 쏘면서 식히고 있어. 아직도 시뻘게서 가늠이 잘 안돼.
“지금까지 문제없었으면 이대로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보다 탈출해야지. 왜 이렇게 느긋해졌어.
고수현이 중요한 문제를 거론하자 태건이 동조했다.
“너무 고요해서 현장이 맞나 싶습니다. 밖은 어떻습니까?
-거기만 조용해. 밖은 난리 났어. 엄청 쌔려 붓고 있는데 버티는 게 고작이야.
-진입로를 열어놓으면 닫히고, 또 열어놓으면 불이 삼키고, 탈출로 확보가 문제야.
전해 들은 말에 태건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현장에 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획기적인 변화를 바라기엔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 않았다.
‘문제는 이쪽인데.’
지금 조용하다고 마냥 기다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구조는 100퍼센트 안전이 보장된 장소까지 인도하는 게 정석이다.
여기도 물론 안전하지만 결국 현장의 일부였다.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탈출 방법을 고심하던 그때였다.
그, 그그그.
바닥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음?”
그런데 태건만 느낀 게 아닌 모양이다.
요구조자들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갸웃갸웃거렸다.
“떨리는 거 같지 않아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닌 거 같네요.”
“지진이라도 났나?”
그렇게 모두가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미미하게 시작된 진동이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졌다.
구구, 쿠구구구.
그리고.
-콰아앙!
-퍼버벙!
엄청난 폭발소리에 이어 연쇄폭발까지 발생했다.
태건의 등골이 순식간에 오싹해졌다.
“수현 선배!”
-대체 또 뭐야. 뭐가 터진 거야……. 와씨, 여기 탱크가 영향 제대로 받았어. 쓰브럴!
-탱크 위치가 틀어졌습니다. 젠장. 파이프가 또 하나 터졌습니다!
태건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영문 모를 연쇄폭발, 그리고 위험천만한 화학탱크의 문제까지.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마구 터져 나왔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방화구획의 바닥과 벽이 갈라졌다.
꽈직, 꽈지직!
폭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때 요구조자들 중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테스트 차량 대기소!”
“이 아래에요.”
“뭐예요. 그럼 테스트 차량이 터졌다고요. 수십 대가 넘는데!”
연구원들이 소리치며 경악했다.
그 말을 들은 태건의 표정도 똑같았다.
“테스트 차량 수십 대가……. 환장하겠네.”
번지고 번지던 불길이 차량까지 마수를 뻗친 결과였다.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는 갈라지고 틀어진 벽과 바닥의 틈새였다.
스스스.
미세한 틈으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청정한 공기가 순식간에 오염됐다.
지독한 독연기의 일부가 태건의 콧속까지 파고들었다.
“큭! 다들 호흡기 확실히 착용하세요. 어서!”
터덕!
소리친 태건도 내려놓은 호흡기를 번개같이 착용했다.
다시 완전무장한 태건은 반사적으로 게이지부터 점검했다.
“후욱, 대략 70퍼센트, 겁나게 양호. 후욱.”
깊고 크게 호흡하며 들이마신 유독 연기를 뱉어냈다.
바로 그때였다.
“어흑, 쿨럭, 쿨럭!”
“카학, 허으으, 켁켁!”
두 곳에서 호흡이 막힌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왜!’
휙!
태건은 반사적으로 요구조자들을 살폈다.
다들 재대로 호흡기를 걸고 있었다.
부풀고, 줄어들고.
공기주머니도 원활하게 작동되고 있다.
그런데 숨 쉬는 걸 불편해했다.
두 명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인원이 점점 늘어났다.
“케에엑, 커흑!”
“헉, 윽. 왜, 왜…….”
스스스.
검은 연기는 가느다란 균열을 비집고 점점 내부에 쌓여갔다.
아무리 방화, 방연 소재로 둘러쳤다고 해도, 균열은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불타는 차량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들이다.
위험도는 극상이었다.
방화구획은 순식간에 혼란으로 가득했다.
“사, 살려. 크으으.”
풀썩.
숨이 가빠 주저앉고.
“나, 나 좀…….”
그륵, 그륵.
서서히 옆으로 기울어지며 이상증세를 보였다.
유일하게 멀쩡한 건 태건밖에 없었다.
자신과 저들의 차이는 호흡기밖에 없었다.
그 단조로운 분류만으로도 원인을 유추해냈다.
자흡식 호흡기의 필터가 문제다.
사용한지 40분이 훌쩍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멀쩡할 리가 없지!”
지금까지는 공기가 오염되지 않아 인지하지 못한 거였다.
약간의 오염도 걸러내지 못해 사용자의 호흡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태건은 가까운 요구조자와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여기, 이걸로 숨 쉬세요.”
터억.
보조 호흡기를 반사적으로 얼굴에 댔다.
“하우, 하우, 학학!”
거친 숨소리가 반복되더니 빠르게 안정됐다.
들이마신 유독가스의 양이 적어 가능한 변화였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보조호흡기는 하나 밖에 없다.
‘잠시…….’
스윽.
태건은 눈치를 보며 살짝 떼어보려 시도해봤다.
“하읍!”
턱!
요구조자는 재빨리 두 손으로 붙들어 떼지 못하게 막았다.
다른 요구조자들이 이 순간을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우, 우리도, 쿨럭!”
“살려. 어서, 숨, 켁켁!”
처덕, 처덕.
괴로움을 토로하며 필사적으로 다가왔다.
간이호흡기!
그게 필요한 순간이다.
턱턱!
자기 몸을 더듬던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젠장. 출동가방!”
그 속에 고이 모셔 놨다.
그리고 그 출동가방은 2층 계단에 내려놓고 왔다.
방화셔터를 연다?
그건 이들을 더 빨리 고통스럽게 하겠단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어떻게든 다가오고 있었다.
“끄으으.”
“크윽, 윽, 컥!”
터덕, 턱, 턱.
거리가 점점 좁혀진다.
피할 장소도 공간도 없었다.
태건은 벌써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차라리 내가 괴롭고 말지!”
입 발린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고, 즉시 행동에 옮기려 했다.
터억!
호흡기 커버를 강하게 붙들었다.
‘후우. 에잇!’
단숨에 벗어내려던 그때, 상의 주머니에 담아둔 무언가가 걸렸다.
버스럭..
비닐봉지 소리다.
그 소리를 들은 태건은 뭐가 들었는지 대번에 기억났다.
“젠장. 호흡기를 왕창 챙겨놓고 까먹는 건 뭐야!”
사삭.
자책과 동시에 주머니 안에 있는 걸 모조리 꺼냈다.
빨간색 포장지에 싸인 그 정체는 ‘습식방연마스크’, 일명 숨수건이다.
얇고 가벼운 제품이라 챙겨온 수량이 넉넉했다.
부욱!
태건은 재빨리 숨수건을 펼쳤다.
이어서 자흡식 호흡기를 벗겨버리고 숨수건을 대신 포갰다.
터억!
“숨 쉬어요. 괜찮아요. 쉬어요!”
“쓰으읍, 으읍, 흡흡흡!”
한 번 숨을 들이켜 본 시착자의 반응이 격렬했다.
태건은 재빨리 다른 요구조자들의 호흡도 바꿔줬다.
처저적!
“허어업, 흐우우!”
“허억, 쿨럭, 헉헉!”
괴로움으로 가득한 숨소리가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요구조자들도 다시 이성을 찾은 듯 했다.
태건은 그런 그들에게 강렬한 어조로 조언했다.
“이제부터 절대 떼시면 안 됩니다. 무조건 그걸 대고 호흡하셔야 합니다.”
“…….”
끄덕, 끄덕.
입을 막은 터라 고갯짓으로 반응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