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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69)화 (268/320)

269화

폭발로 발생한 열풍들은 말 그대로 바람이었다.

한순간에 모두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잠깐이 모두에게 엄청난 데미지를 안겨줬다.

후들후들.

두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온몸에 흥건하던 땀이 말라 지독한 갈증과 답답함을 느꼈다.

“나, 나 물 한 모금만, 제발!”

“이거 벗어버리면 안 됩니까, 잠깐만. 정말 잠시만!”

터덕!

방화복 지퍼를 내리려는 시도까지 강행했다.

현재 장소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극심한 탈수 증상에 머릿속까지 헝클어지고 있었다.

송강우와 노주민은 참지 못했다.

둘의 행동을 본 태건이 마른입을 쩍 벌려 경고했다.

“마! 멈춰, 그거 벗으면 끝나!”

“이 새끼가 돌았나, 정신 안 차려!”

퍼벅!

유중헌은 그들의 방화헬멧을 후려쳤다.

거기에 이지성이 살벌한 충고를 더 했다.

“입술 깨물어서 피를 짜내, 그걸로 부족하면 혀라도 깨물어!”

“…….”

“사람 몸으로 어떻게 불을 이기는 줄 알아? 정신력. 불은 없지만 사람은 그게 있어.”

이지성이 삭막하게 덧붙였다.

태건은 내심 그의 말에 감탄했다.

‘저 선배가 저런 말을?’

이 위기의 순간 자신을 다잡을 자극으로 너무도 적절했다.

그런데 태건만 와 닿은 말이 아닌 모양이다.

송강우와 노주민의 혼란스런 눈동자가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더불어 모종의 행동을 강행했다.

“으으윽!”

“까득, 아악. 잘못 씹었……. 내 혀, 혀혀!”

노주민의 엉뚱한 고통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이 미쳐버릴 정도로 열기가 축적된 상황이다.

이 순간에도 저럴 수 있는 노주민이 다들 어이가 없었다.

“아씨, 저 개똘 자식.”

“그냥 넘어가면 개똘이겠냐.”

“좀 닥쳐.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귀 아파!”

다들 한 마디씩 노주민을 타박했다.

그 와중에도 화학탱크를 향한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촤아악!

두 줄기의 소방호스가 흔들림 없이 뻗어나갔다.

그러나 지금 악화된 상황 속에선 너무도 약한 물길이었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인 상황까지 발생했다.

다들 자신의 몸을 더듬는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터, 터덕.

“없어.”

“저도.”

개인 소화 장비가 다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 던질 게 없었다.

화르륵.

방해물이 없어진 화학탱크는 이때다, 라는 기세로 다시 열기를 축적해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지지직!

어디선가 뭔가 긁어내고 부수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화염이 가득해 어디서 일어나는 상황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추측되는 건 있었다.

“아무래도 연구소가 무너지는 거 같습니다.”

“이쯤 되면 진짜 막가자는 거네. 염병!”

이지성의 입에서 욕설이 가득 터져 나왔다.

태건도 같은 심정이었다.

연구소가 무너진다면 화학탱크를 보전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다.

‘더는, 정말 더는 어려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사면초가였다.

더 라스트.

그 콜사인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

태건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아니, 비틀어지게 씹었다.

꽈직.

상처 난 입술에서 터진 피가 메마른 입속을 적셨다.

비릿한 쇠맛이 감돌던 그때였다.

화학탱크에 집중하고 있던 태건의 눈이 급속도로 크게 떠졌다.

‘저, 저거…….’

화학탱크에 연결된 가장 굵은 파이프의 변형을 포착했다.

투둑.

이음새가 녹아 비틀어졌는지 점점 급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순간 태건은 직감했다.

당장 온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저게 터지면 끝이다.

-에엥, 에에엥!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쉬지 않고 울리며 경고했다.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말했다.

“탱크 오른쪽 하단, 문제 발생.”

“어? 어어어…….”

다들 발견하고 또 직감했는지 목소리가 급격히 떨려왔다.

거기에 태건이 한 마디 덧붙였다.

“나가려면 지금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니까…….”

말이 끝나기 직전 이지성이 끼어들었다.

“닥쳐. 당장 튄다고 쳐. 그런데 저거 터지면 뭐가 달라져?”

“천운이 따르면…….”

태건이 말하려는 순간 이번엔 고수현이 끼어들었다.

“천운이 따르면 산다고?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그런 말 할 때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유중헌이 끼어들어 잘라버렸다.

“주둥이 물어. 이 불어터진 면발 자식아. 유서는 폼으로 써 놨냐!”

“…….”

태건은 순간 동요했다.

그 잠깐 사이 송강우가 쓰게 말했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뛰어든 일입니다. 쓰벌, 지지리 운도 없지만요.”

“운이 아니라 실력이 후달린 겁니다. 쳇. 좀 더 열심히 훈련했어야 했는데…….”

노주민은 후회를 들먹였다.

그런 단원들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

태건은 찰나의 시간 그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구구구.

우직함을 넘어 굳건한 각오와 신념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태건은 내심 놀랐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의 순간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 순간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겸허히 받아들이고 의연하게 대처하려 노력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태건을 뒤흔들었다.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다.

그래서 더 피맛이 감도는 입안이 텁텁했다.

‘이번엔 이겨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발버둥쳤는데…….’ 

이제 태건도 마지막 희망을 내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흘러간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첫 만남부터 으르렁거렸던 라텔이다.

지독하게 싸우고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하나가 되었던 자신들은 돌이켜봐도 신기했다.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을 이제 만났는데……. 이제야 사는 거 같이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후회와 미련이 가득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어떤 방법이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색하게 비틀린 파이프가 크게 부풀었다.

꾸지직.

강철이 부풀어 뒤틀리는 소리가 끔찍하게 들려왔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곧 터진다.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절대 폭발을 막을 수 없다.

태건은 어렵사리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손수건 준비하시죠.”

“…….”

다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수긍도 부정도 없었다.

덤덤한 손길로 가장 깊숙한 곳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들 뿐이었다.

그 잠깐 사이.

-콰과과과과!

연구소가 부서지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네.”

“그래. 씨발. 죽어주마. 뒤져도 아주 화끈하게 뒤져주마!”

각오를 씹어뱉으며 호흡기 커버를 비집고 손수건을 밀어 넣었다.

터업!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최후의 순간을 준비해야 했다.

불쑥 이지성의 옹알이 같은 말이 들려왔다.

“사아에어에어어 오아아.(사람답게 살게 해줘서 고맙다.)

“이으오어. 에어에어.(내 형제들, 사랑한다.)

“애아아러아어.(위에서 보자.)

고수현과 유중헌이 차례로 마지막 심정을 내뱉었다.

죽음을 앞에 둔 지금.

가장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일 터였다.

“…….”

송강우와 노주민은 더 할 말이 없는지 침묵을 택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오라면 가야지.’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 사이 최후의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쩌적. 쩌적!

팽창한 파이프에 균열이 시작됐다.

이젠 끝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콰아앙!

동시에 시작된 엄청난 폭음, 드디어 생에 마지막 폭죽놀이가 시작됐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걸 두 눈으로 감상할 정도로 속없진 않았다.

그렇게 모든 시야를 차단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그때였다.

바로 그 순간, 귀에서 환청이 들려왔다.

-다들 기도하냐? 기왕이면 내 평안과 안녕도 좀 빌어주라.

이 목소리는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다.

‘별별 소리가 다 들리네.’

- 사내 자슥들이 불 좀 났다고 잔뜩 쫄아서는. 확 다 떼버려 이 새끼들아!

황대산의 목소리도 귓가에 울렸다.

‘이렇게 환청이라도 목소리 들었으면 됐지.’

모두 자신이 상상해낸 허구의 소리라 치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

시간이 지나도 폭발 소리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기도하는 게 아니라 졸고 있냐? 눈 떠, 이 자식들아!

그 벼락같은 외침에 태건이 두 눈을 떴다.

번뜩!

그런 태건의 눈앞엔 옹골차게 단단한 등이 자리해 있었다.

순간 태건은 누군가가 겹쳐 보였다.

“이채용 팀장님.”

휙!

듬직한 누군가가 고개를 돌리더니 버럭 화를 냈다.

“이 끓이다만 라면 같은 게. 이젠 내가 채용이로 보이냐!”

스르륵.

물고 있던 손수건이 너무 놀라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단장님?”

“이제 제대로 보여? 혹시 쟤는 성규로 안 보이는 거 아니야?”

스윽.

오광휘 단장이 옆을 가리켰다.

덩치 좋은 누군가 부단장조원들 앞에 서서 보호하고 있었다.

저런 거구는 라텔에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대산 선배?”

“…….”

황대산은 말이 없었다. 대신 굵은 소방호스를 양쪽에 낀 채로 우직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을 확인한 그때였다.

촤아아악!

사방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화학탱크로 날아갔다.

그 중의 일부는 거품을 쏘고 있었다.

뽕뽕뽕.

그 물줄기와 거품을 앞세우고 달려온 이들이 차례로 도착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척척척.

“뭐하고 있어!”

“방기찬 선배.”

“이런 건 나도 할 수 있어요!”

휘리릭, 퍼버벙!

커다란 망치가방에서 소화볼을 계속 꺼내 던지는 누군가도 바로 알아봤다.

“김지수?”

“부단장님, 실례합니다!”

차작!

앞을 막아선 상대의 트윈산소통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최성철? 아니, 다들!”

태건은 순식간에 나타난 단장조원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건 다른 부단장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어라라……. 어엇, 저건 뭐야!”

놀라던 노주민이 둥둥 떠다니는 비행물체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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