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그건 커다란 소방드론이었다.
-쿠와아아앙!
커다란 몸체만큼 가동소리가 요란했다.
그 드론 아래엔 큼지막한 가스통이 달려 있었고, 무언가를 쏟아냈다.
푸와아아!
하얀 기체가 닿자 불길이 순식간에 밀려나고 심지어 하얀 얼음 결정체까지 생겨났다.
그 현상으로 분사하는 기체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이산화탄소?”
쿠와앙.
드론이 살짝 방향을 비틀더니 그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단장은 역시 바로 알아보네.
“박사라텔!”
-박 기장만 알아보면 섭섭하지.
쿠아아앙!
또 하나의 드론이 날아와 마스터라텔인 왕지호 기장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순식간에 현장상황이 뒤집어져버렸다.
천재일우의 상황이 아니면 뒤집기 어렵다고 확신했다.
그 천재일우의 상황이 펼쳐진 지금이다.
죽음 앞에 한 발자국 거리까지 직면했었다.
갑자기 달라진 상황에 태건과 부단장조원들은 얼떨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때 오광휘 단장이 힐끗 쳐다보며 한 소리 했다.
“라텔 하나라며.”
“에? 어. 그래도 도착할 시간이…….”
“사소한 건 따지지 말고. 언제까지 넋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건데!”
오광휘 단장의 따끔한 질책에 태건과 부단장조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우리도!”
“달라고 하지 말고 뺏어!”
“내놔!”
“내껀데!”
우당탕.
어느새 달려들어 소방도구를 뺏고 빼앗기는 모습이 연출됐다.
그런데 현장에 돌진한 건 라텔만이 아니었다.
저 뒤에서 우렁찬 파이팅 소리가 연구소를 뒤흔들었다.
“전원 돌격!”
“가자아아아!”
촤아아아!
수십 개의 물줄기를 앞세워 달려오는 이들은 지역소방관들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힘을 얻은 오광휘 단장이 크게 외쳤다.
“이 순간은 우리 모두 라텔이다. 라텔이 지난 자리는 한 톨의 불씨도 남기지 않는 법. 금이빨 빼고 다 씹어 먹어!”
“우어어어어!”
촤아악. 쿵쿵쿵!
엄청난 숫자의 물줄기를 앞세운 소방관들이 비장한 각오로 밀려왔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져 연구소를 장악한 불길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꺼져버렷!”
“우리를 개무시 했겠다!”
“쳐 발라 아니, 밟아주마!”
퍼석, 퍼석.
해일 같은 소방용수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뒤집고 또 뒤집어 티끌만한 불씨까지 밟아 작살을 냈다.
그뿐이 아니었다.
파아악!
엄청난 밝기의 서치라이트까지 등장했다.
쿠와아앙!
배연기의 작동소리도 엄청나게 컸다.
불씨가 숨어있을 일말의 가능성까지 모두 지워버린 모습이었다.
모두가 동원된 그 모습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태건과 부단장조원들도 다시 힘을 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도 돌격!”
“싹 다 갈아엎어주마!”
“어이 탱크, 잘도 까불었겠다. 이리 와.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차자작!
누구라고 할 거 없이 형세가 기울어진 불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저녁무렵이 됐다.
불길로 가득했던 연구소는 하얀 연기만 풀풀 피어올랐다.
연구소 한쪽 벽면은 포클레인이 훑었는지 처참하게 부셔져 있었다.
이내 그 속에서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걸어 나왔다.
터덜, 터덜.
그들의 방화복은 누구라고 할 거 없이 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힘에 겨운 발걸음으로 현장을 무겁게 벗어났다.
그리고 안전한 곳에 도달한 순간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우르르르.
억지로 호흡기를 벗어낸 모두가 숨부터 크게 들이쉬었다.
“하아악, 학학!”
널브러진 소방관들의 가운데에 라텔이 한데 모여 있었다.
그 중 오광휘 단장이 옆에 누운 태건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툭.
“강태건, 너 지금 어딨냐.”
나지막이 건넨 질문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태건은 깊은 눈빛으로 답했다.
“……현장에서 방금 빠져나왔습니다.”
“혼자?”
“아니요. 모……. 모두, 한 명의 누락자도 없이……. 전부…….”
스스슥.
어렵사리 말을 이어가는 태건의 두 눈에서 눈물이 맺혀 흘러내렸다.
오광휘 단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긴……. 긴 악몽이 이제……. 끝났네.”
“…….”
태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누운 그대로 노을 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스스슥.
자신을 향해 웃어주던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가 몸을 돌리며 사라져갔다.
이젠 영영 떠나가나 보다.
태건은 억지로 붙들려하지 않았다.
그동안 저들을 붙들고 있던 건 자기 자신이다.
“…….”
그날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야 진즉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태건은 쉽사리 놓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현장 속에서 그 집착을 놓는 법을 터득했다.
그건…….
스윽.
주변에 쓰러져 있는 라텔 단원들이었다.
스르륵.
태건은 마음속 족쇄를 모두 풀어 그 두 사람이 훨훨 떠나도록 놓아줬다.
‘가끔, 아주 가끔은 추억할 겁니다.’
그때였다.
척, 척.
좌우에서 다가온 손이 태건과 오광휘 단장을 가볍게 붙들었다.
라텔 단원들의 손길이었다.
라텔 단원들끼리 서로의 몸에 한 손을 얹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라면 질색했을 감성적인 행동들이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이런 머쓱함까지도 너그럽게 포용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 순간까지 등을 맞댄 그들이다.
이번 출동으로 그들에겐 커다란 내적 변화가 일어났다.
당장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겠지만 그들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 * *
그날 밤.
각 언론사 뉴스를 통해 소식이 알려졌다.
-나이트 뉴스입니다. 평택 타이어공장 부속연구소에 발생한 대형 화재가…….
-라텔 전 단원 및 지역소방관들까지 총 100여 명이 동원되어…….
-화학탱크를 필사적으로 막아……. 폭발 시 산업단지 전역이 위험에…….
각 언론사들은 오늘 라텔의 활약에 대해 반복적으로 송출했다.
그러나 라텔 단원들은 그 소식을 바로 접하지 못했다.
뉴스가 한창 방영 중인 시각.
평택의 어느 종합병원 병실에 붕대를 감은 환자들이 있었다.
유중헌, 고수현, 이지성, 방기찬, 송강우까지.
총 다섯 명이 부상을 입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진정 가슴 미어지게 아파하는 인물은 따로 있었다.
노주민이었다.
그는 녹아버린 바디캠을 부여잡고 절규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내 바디캠이 이렇게 사망하실 순 없단 말입니다, 으아아아!”
그런 그에게 이지성의 베개가 날아갔다.
퍼억!
“가뜩이나 아픈데 머리 울리게 할래!”
“허어엉, 제 가슴은 찢어집니다!”
“바디캠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줄게, 사주면 되잖아!”
이지성이 짜증을 버럭 냈지만 노주민의 절규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이 껍데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흐어엉. 메모리카드가 녹았습니다. 녹화한 게 다 날아갔다고요!”
“다시 찍어!”
“화학탱크에 다시 불 질러서요?”
노주민이 이상한 쪽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사방에서 베개가 쏟아졌다.
퍼버버벅!
“저 개똘, 진짜!”
“쟤는 왜 다치치도 않아!”
“부상도 피해가는 거야.”
“야, 너 부상자 아니면 빨리 사라져!”
타박하고 구박하는 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그 속에서도 노주민은 꿋꿋했다.
“진짜 주옥같은 명장면들이 많았는데, 우리 한 번만 더 비슷한 케이스로 출동하면 안 됩니까.”
다들 어이없다 못해 답답한 속을 두드리며 쏟아냈다.
턱턱.
“어흐, 어흐! 저 진상. 쟤 2기로 누가 뽑았니?”
“태건이요.”
“라면 잡아와. 당장 가서 라면 데려와!”
고수현과 이지성이 번갈아가며 소리쳤다.
그런 상황인데 유중헌만 조용했다.
“…….”
이지성이 캐치하고 얼른 물었다.
“중헌 선배는 할 말 없으세요?”
“내, 내가 뭘…….”
기어들어가는 그의 목소리에 이지성은 본인 가슴을 두드렸다.
턱턱.
“아, 또 왜 저래!”
“미, 미안.”
“사과하지 마요. 누가 사과 하래!”
“그, 그래도 미안…….”
“아으씨, 제발 조옴!”
이지성은 노주민과 유중헌 사이에서 속이 터지는 답답함에 말라갔다.
한편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휴게실에 자리해 있었다.
거기엔 박규영 본부장도 함께였다.
박규영 본부장에게 오광휘 단장이 현장보고 중이었다.
“……그렇게 포클레인으로 벽을 뭉개버리고 일제히 투입했습니다.”
“타이어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다지?”
“연구소 부수자고 먼저 제안한 게 그쪽이었습니다. 화학탱크가 터지면 답 없단 걸 알고 있었던 거고요.”
대화가 오가는 그 틈에 태건이 슬쩍 끼어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라텔 하나 발령과 도착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그걸 뭘 따지냐니까.”
오광휘 단장은 이번에도 밀어내려했다.
그러나 박규영 본부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줬다.
“출동소식 듣고 오 단장이 모두 소집해서 대기 시켰어. 그리고 라텔 둘을 발령했을 때 라텔 1호기로 떴지.”
“그럼……. 아아, 그럼 도착시간이 맞습니다. 그런데 단장님은 어떻게…….”
태건이 또 다른 의구심을 내보였다.
그러자 휴게실의 다른 쪽에 자리한 이들이 반응했다.
그들은 헬기 기장들이었다.
정교현 기장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라텔 2호기 아래 캠 설치한 거 알지. 서정민 씨가 최근에 설치한 거 말이야.”
“본부 지원팀에서도 원격접속 가능하단 건 알고 있습니다만.”
“단장님도 집에서 접속 가능해.”
그의 대답에 가만히 듣던 태건이 깜짝 놀랐다.
“그럼 부단장조 출동상황이나 현장을 몰래 보셨단 거 아닙니까.”
“어허! 몰래 보다니. 난 엄연히 인허가가 존재하는 단장이야. 단장!”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거나, 촬영 사실을 알리지 않은 영상은 도촬에 해당하며…….”
찌리릿.
태건이 흘겨보며 도촬의 정의를 읊조렸다.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또 한 번 펄쩍 뛰었다.
“이 사람이, 누굴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어, 본부장님 쟤 좀 보세요!”
“허락을 받지 않은 건 사실이지.”
박규영 본부장이 인정하자 태건의 기세가 살아났다.
“그렇죠? 역시 공명정대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대화를 좀 하시지요.”
“아니지. 본부장님, 지금 발뺌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휙휙!
박규영 본부장은 또 한 번 원치 않게 두 사람 사이에 끼게 됐다.
그도 점점 더 학습을 하는 모양이다.
벌떡.
바로 일어나 기장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먼저 철수하지.”
“그러시죠.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우르르.
박규영 본부장과 기장들은 그 길로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