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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71)화 (270/320)

271화

터엉.

이내 휴게실 문이 닫혔다.

그 속엔 태건과 오광휘 단장 밖에 없었다.

오광휘 단장은 순간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싸늘하다.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거 같다. 도망만이 살길이다.’

그가 속으로 읊조리며 눈을 굴렸다.

태건은 표정 변화만으로 눈치 챈 모양이었다. 

“동작 그만, 어딜 도망가시려고.”

“......”

“이 자식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톡 까놓고 말해서 오늘 내가 너 살려줬잖아. 아니야?”

오광휘 단장 배를 내밀며 불쑥 따졌다.

그건 옳은 소리라 태건이 살짝 움츠렸다.

“……그거야 그렇긴 하죠.”

“그런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 오광휘인데? 내가 단장인데?”

오광휘 단장이 배짱 튕기며 따지고 들었다.

태건은 강렬한 반발에 멈칫했다.

“저도 잘 알고 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뭐가 문제야. 이 단장은 자나 깨나 너희들 걱정에…….”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단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태건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고개까지 숙였다.

그 정중함에 오광휘 단장의 어깨가 쑤욱 올라갔다.

“크흠, 귀가 안 좋네. 뭐라고?”

“위험에서 구해주시고, 나쁜 기억을 좋게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더 확실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말해보지 않으련?”

스윽.

오광휘 단장은 대놓고 귀를 내밀며 눈썹을 들썩였다.

마치 기회를 잡았단 표정이 온몸에 익살맞게 자리해 있었다. 태건이 고개 숙인 순간을 아주 작정하고 즐기고 싶은 모양이다.

그걸 바로 직감한 태건은 감사의 마음과 별개로 울컥했다.

‘…….’

부르르.

주먹을 떤 태건이 오광휘 귀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감사하다고요! 고맙습니다! 땡큐 베리머치!”

“아, 아아악! 내 귀, 내 귀!”

“제 인사가 너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더 힘차게 인사드리겠습니다! 단장님!”

“아아악! 시끄러!”

타다닥.

오광휘 단장은 귀를 막으며 도망쳤다.

이내 혼자가 된 태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꼭 그렇게 얼렁뚱땅 넘겨야 직성이 풀리십니까.”

오광휘 단장이 일부러 장난치는 게 이젠 눈에 훤히 보였다.

그 장난에 맞춰준 거다.

그래야 오광휘 단장은 마음 편안해할 성격이었다.

잠시 후.

끼익.

태건이 휴게실 문을 열고 나왔다.

휴게실 밖은 바로 정형외과 병동과 맞닿아 있었다.

“인사하고 슬슬 올라가야지.”

저벅저벅.

중얼거린 태건이 병실로 향했다.

간호사실을 지나던 중 어느 간호사가 불러 세웠다.

“강태건 단원님.”

“네. 어? 그건…….”

고개 돌린 태건이 말꼬리를 흐렸다.

앞으로 다가온 간호사의 손에 환자복이 들려 있던 탓이다.

살짝 불안함이 스쳐지나갔다.

괜한 예감이 아닌지 간호사는 바로 환자복을 내밀었다.

“옆 병실에 병상 마련해 놨으니까 이걸로 갈아입고 쉬세요.”

“이걸 제가 왜요?”

“오늘은 입원하시고 내일 검사 받고 이상소견 없으면 퇴원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스윽.

간호사는 용건만 간단히 하고 돌아섰다.

간결한 대화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건 별로였다.

태건은 간호사가 멀어지기 전에 얼른 불러 세웠다.

“간호사님, 제가 언제…….”

“전 위에서 오더 내려온 대로 하는 거라, 실례할게요.”

간호사는 궁금증만 한아름 안겨주고 멀어졌다.

다른 간호사에게 물을까?

스윽.

태건이 고개를 돌려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간호사들은 모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내보였다.

‘저희는 아무것도 몰라요.’

물어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할 분위기만 가득했다.

“수, 수고하십시오.”

결국 태건은 환자복을 들고 병실로 향했다.

정말 단원들이 입원한 병실 옆에 태건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오광휘, 황대산, 김지수, 노주민.

나머지 단원들 이름도 빠짐없이 걸렸다.

드릉.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정말 다들 환자복을 입고 각각 병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은 손을 들어 반기기까지 했다.

“이제 왔냐. 후딱후딱 좀 다니자.”

“어떻게 된 겁니까?”

“뭘 어떻게 돼. 라텔 전원 다운인 상황이지.”

오광휘 단장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예민하지 않은 반응을 보니 박규영 본부장이 계획한 일이란 게 짐작됐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태건도 의외로 까칠하게 굴지 않았다.

꿀렁.

“이번엔 얼마나 쉬려나요.”

“그건 내일 싹 검사해보면 답이 나오겠지.”

“그렇겠네요. 그런데 다들 조용하네요?”

태건이 둘러보며 묻기 무섭게 황대산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렁!”

“주무시는 군요.”

“까드득!”

“지수, 쟤는 이 가네요.”

살짝 놀란 그때 뒤척이는 노주민의 잠꼬대가 들려왔다.

부스럭.

“라면이……. 쫓아와……. 아아아, 면발.”

그 소리에 태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노주민, 너 자는 거 맞아?”

“……고롱.”

“쓰읍. 좀 이상한데.”

“…….”

부스럭.

태건이 계속 바라보자 노주민은 이내 몸을 반대로 돌렸다.

…….

저벅.

태건은 아예 노주민의 병상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고롱.”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진짜 자는 거 맞겠지?”

태건은 뚫어져라 관찰하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어떤 낌새도 눈치 채지 못한 건지 노주민에게선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흐음.”

태건이 쉽사리 눈길을 거두지 않자 보다 못한 오광휘 단장이 나섰다.

“얘 자다가 가위 눌리겠다. 그만 쳐다보고 너도 옷 갈아입어.”

“알겠습니다.”

저벅, 저벅.

태건은 천천히 노주민과 거리를 벌렸다.

정말 잠들긴 한 건지 노주민은 끝까지 별다른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태건도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상에 누웠다.

“에그그. 이제 허리를 좀 펴네요.”

경직된 근육이 풀어지는 찌릿한 느낌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오광휘 단장의 대꾸가 없었다.

그래서 병실은 빠르게 고요함으로 물들었다.

드르렁. 까드득.

코 골고, 이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태건은 그 소리를 들으며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스스슥.

순식간에 피곤함이 몰려오며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그럴 만하지.’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위험천만한 현장이었다.

게다가 화학원료들을 삼켜 비대해진 불길은 너무도 끈질겼다. 덕분에 화재제압 후에 모두 녹초가 되어 쓰러졌을 정도였다.

그 속에서 얼마나 긴장했는지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터였다.

가물, 가물.

서서히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왔다.

태건은 거스르지 않고 몽롱함에 서서히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잠들어 가던 그때였다.

귓가에 어렴풋하게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간 맘고생 많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 푹 놓고 쉬자.”

큰형 같은 푸근함과 포용력 가득한 말이었다.

태건은 들었지만 몰아치는 피곤함에 이미 깊게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단장님도…….”

웅얼거리며 그대로 잠들었다.

못다 한 그 말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입속에 머금어 있었다.

‘오늘은 마음 편히 쉬세요.’

빙긋.

잠든 태건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오늘은 하늘도 모두가 편하게 쉬길 바라는지 달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진료실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퀭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

“…….”

분명히 충분히 쉬었을 터였다.

그런데 눈가에 다크서클이 가득 자리했고, 눈은 십리나 들어간 거 같았다.

탈칵, 탈칵.

컴퓨터를 조작하던 의사가 두 사람을 바라보다 멈칫할 정도였다.

“결과는 모두 업데이트……. 엇, 하하. 검사가 많이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의사의 대답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이마에 힘줄이 솟아났다.

빠직.

“힘, 힘들기는요. 고작 15가지 검사밖에 안 했는걸요. 하, 하, 하.”

“그럼요. 저희야 하란 대로만 있으면 되고, 기계가 다 알아서 하는데요. 하, 하, 하.”

친절한 대답과 웃음까지 곁들였지만 쥐어짠 느낌이 가득했다.

의사는 십분 이해한단 얼굴로 말했다.

“병원장님이 각별히 오더하신 특별종합검사라 조금 힘들긴 하셨을 겁니다.”

“하하. 너무 감사했지 뭡니까.”

“그래도 덕분에 우리 라텔 단원분들의 속을 속속들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아.”

스윽.

의사가 모니터를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그리고 가볍던 표정이 어느새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

“…….”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빠르게 오갔다.

그리고 오광휘 단장이 짐짓 점잖은 태도로 정중히 물었다.

“혹시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요. 흐음. 한두 가지여야 편하게 말씀을 드릴 텐데요.”

“왜요. 단원들 중에 어떤 심각한 병이라도 발견된 겁니까?”

오광휘 단장의 눈꼬리가 빠짝 올라갔다.

태건의 눈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문제라니. 그럴 리가. 다들 얼마나 튼튼한데.’

속으로 부정하며 의사가 말하길 기다렸다.

…….

그렇게 조용히 집중했다.

이내 의사가 오광휘 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들 몸 관리를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저희야 지속적으로 운동을…….”

“근육량 많고, 지방량 적고, 간수치, 백혈구, 혈소판……. 그런 일반적인 수치들은 이렇게 건강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의사의 말에 여운이 느껴지자 태건이 마음 급히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호르몬이요. 불규칙한 생활패턴이 반복돼서 호르몬 분비가 제멋대로입니다.”

“그거야 저희 일이…….”

태건이 슬쩍 변명하려 하자 의사가 자기 말을 앞세웠다.

“저도 알고 있고, 라텔 운영 과정도 짤막하게 인터뷰해주셔서 히스토리까지 잘 알고 있습니다.”

“크흠. 네.”

“그런데 당직과 비번, 거기에 불규칙적인 출동으로 몸의 긴장도가 수시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적되면 분명히 이상이 생깁니다.”

“…….”

태건은 침묵했다.

솔직히 그걸 몰라서 이런 생활을 반복하는 게 아니다. 당장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듣고 있는 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진지한 표정 그대로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가 생기게 됩니까?”

“이 말씀이 가장 와 닿을 거 같네요. 그러니까…….”

속닥속닥.

의사가 조용히 몇 마디 건넸다.

이내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

태건이 말하려던 그때 오광휘 단장이 무릎을 내리치며 격분했다.

쩌억!

“뭐라고요? 밤이 찾아오는 게 무서워질 거라니요. 그 말씀 정말입니까!”

“제가 내과나 비뇨기과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건 알고 있습니다. 진짜 그런 상황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안 돼요. 저는 아직, 아니지. 저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됩니다!”

오광휘 단장이 절절히 부탁하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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