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77)화 (276/320)

277화

태건은 넉살 가득 담아 인기척부터 냈다.

“크흐흠. 사장님, 이거 덧버선 어때요, 따뜻해요?”

그제야 김순자가 퍼뜩 눈을 떴다.

“그럼요. 몇 개나……. 에구머니나. 이게 누구야.”

벌떡!

태건을 한 눈에 알아본 김순자가 눈을 크게 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태건은 환한 미소 그대로 인사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서글서글한 인사부터 건넸다.

놀란 김순자의 얼굴에 그제야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이고, 태건님. 아니지, 부단장님이지.”

“어머니는 무슨 말씀을. 누가 아들한테 님, 님 거려요. 에이.”

태건은 친근하게 한마디 했다. 

김순자가 머쓱한 얼굴로 변했다.

“아니 그래도.......”

“자꾸 그러시면 정말 서운해요. 그냥 갈까요?”  

김순자는 아차한 얼굴로 얼른 다가와 태건의 팔부터 붙들었다.

처억.

“우리 아들 잘 났다고 그런 거지. 몸은 어때, 괜찮니?”

김순자는 이리저리 꼼꼼하게 둘러보며 건강부터 염려했다.

박성규에게 하고픈 관심일 거다.

태건은 그걸 듬뿍 느낄 수 있게 맞장구쳤다.

“겉만 멀쩡해요. 여기저기 아프고 쑤시고 뻐근하고, 아주 죽겠어요.”

“에이그, 이렇게 몸 상해 가면서 그 일이 뭐가 좋다고. 쯧쯧.”

“그나저나 엄마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태건은 김순자의 손을 조심히 붙들며 물었다.

그윽한 그 시선에 김순자의 눈동자가 가늘게 요동쳤다.

“엄, 엄마는 잘 있었지. 아주 잘 있었어.”

“에이, 거짓말. 근데 더 예뻐지셨는데요.”

“농담도.”

“진짜에요. 혼자 좋은 거 드셨나……. 같이 손잡고 가면 누나냐고 하겠네.”

태건의 듣기 좋은 넉살에 김순자는 환하게 웃었다.

“엄마를 그렇게 놀리는 거 아니야.”

“진짜라니까요. 사람들한테 물어볼까요? 저기…….”

태건이 진짜 물으려하자 김순자가 얼른 손을 당겼다.

“얘는 그러는 거 아니야. 그보다 바쁠 텐데 어떻게 왔어. 지나가다가 들린 거야?”

“오늘은 놀러왔습니다. 어머니가 타주신 커피가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요.”

“그럼 내가 타줘야지. 기다려봐. 잠깐이면 돼.”

김순자는 얼른 몸을 돌려 포목점 안으로 들어갔다.

스윽.

살짝 눈가를 훔치는 손길이 설핏 보였다.

태건은 가판을 둘러보며 괜한 소리를 했다.

“여기 먼지가 많은가 봐.”

먼지다.

무조건 먼지다.

그렇게 말하는 태건의 눈에도 먼지가 들어갔는지 살짝 뻘겋게 충혈됐다.

시야를 넓히던 태건이 멈칫했다.

어느새 포목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었다.

“…….”

다들 다가오지는 않고 멀뚱히 서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도 눈치라는 게 있었다.

태건과 김순자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다가오지 못하는 거 같았다.

태건은 그런 그들을 두 눈으로 빠르게 스캔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라면?’ 

태건은 뭔가 뇌리를 스치자마자 오랜만에 가면을 꺼냈다.

초정밀합금철면피다.

그 가면을 얼굴 피부에 덧씌웠다.

동시에 태건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창피? 그게 뭐야.’

뻔뻔함 그 자체로 변신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태건은 가판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김순자가 졸고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커피는 김순자를 잠시 들여보낸 구실에 불과했다.

진짜는 바로 이거다.

이내 태건이 뻔뻔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들 뭘 그렇게 구경만하고 계세요. 가까이 와서 좀 보세요.”

“…….”

갑작스런 태건의 홍보에 다들 멈칫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꽃무늬 덧버선을 하나 들어올렸다.

“이게 말입니다. 크으, 이런 겨울에 출동할 때, 딱. 덧신어주면 땀이 차서 습진이 생겨버린다니까요.”

“…….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싶은 건데, 이거 우리 단원들 겨울 1호 애장품인데, 이게 참 신기한 게 꼭 여기서 사야 되는데.”

구수한 말투와 차진 표현까지.

얼핏 보면 최소 20년 내공을 갖춘 상인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물론 본인의 생각뿐이었다.

타인이 바라볼 땐 부족한 한 끗이 있었다.

그 어설픈 호객에도 사람들은 귀를 쫑긋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솔직히 호객하는 주체가 태건이기에 갖는 관심이었다.

그러나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머뭇거렸다.

“갑자기 무슨 장사야.”

“공무원인데 저래도 되나?”

사람들은 당최 무슨 일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 태건은 어느새 화려한 꽃무늬 조끼를 들어 올렸다.

아예 착용까지 하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차악!

“크으. 이 때깔 봐. 이거 보이시죠? 거기 휴대폰 든 형님. 거기 형님이요.”

태건은 더 적극적으로 특정인을 지목까지 했다.

휴대폰을 쥔 모든 남자들이 일순간 서로를 힐끗거리며 눈치를 봤다.

태건은 더 확실한 특징을 집어줬다.

“하얀 경량패딩 입으신 형님이요. 거기 형님.”

“저, 저요?”

“네. 와서 그거 벗고 이거 입어보세요. 내가 사란 말은 안 할게요. 그냥 입어만 보시라니까. 괜찮아요. 어서요.”

슥슥.

태건은 손짓하며 중년인을 끌어들였다.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과 분위기 탓에 중년인은 슬그머니 다가갔다.

“크흠.”

“뭘 부끄러워하시고 그래. 자자, 일단 입어 보셔. 딱 입어보시고 소감도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따, 따뜻하네요.”

중년인이 어정쩡하게 조끼를 입고 평을 해주자 태건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거보세요. 제가 거짓말하겠습니까. 저 아시죠?”

“그야, 당연히, 흠흠. 강태건 부단장이시지요.”

“맞습니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시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태건은 살가운 호칭을 초면임에도 스스럼없이 남발했다.

같은 시각.

사람들은 태건의 뻔뻔한 장사 과정을 지켜보며 더욱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포목점 사장님이랑 무슨 사인데 저렇게까지 해?”

“그러게요. 진짜 모자지간인가?”

“아니에요. 부단장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양봉한다는데, 제 지인이 얼마 전에 꿀도 샀어요. 확실해요.”

“그럼 뭐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점점 더 쌓여만 갔다.

그때 주변 상인들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말했다.

“저 사람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전에 왔던 그 사람이네. 라텔 부단장이었어?”

“아저씨, 어떤 사인지 아세요?”

“시장 사람들이야 다 알지요. 포목점네 아들이 소방관이었는데 몇 년 전에…….”

그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텁.

“헤에에. 그래요?”

“저 부단장이 내가 알기로는 후배일 거예요. 에휴. 선배 어머니네 장사까지 저렇게 도와주고, 어이고.”

스윽.

상인은 안타까워하며 자리를 떴다.

반면,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복잡한 눈빛을 했다.  

‘어휴. 참.’

태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그윽해져갔다.

그 사람들 중엔 젊은이들도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들어 태건을 촬영했다.

찰칵, 찰칵. 

“말발이 어설픈데 끌려.”

“여기서 저러고 있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사진도 찍고 동영상으로 녹화하기도 했다.

거기에 해시태크를 달아 SNS에 올렸다.

한편.

태건은 조끼를 중년인에게서 돌려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중년인이 갑자기 조끼를 꽉 붙들었다.

턱.

“어라?”

“거, 이거 내가 살 테니까 나랑 크흠, 거, 흠흠. 사진 한 장 박읍시다.”

중년인은 부탁이 쑥스러운지 얼굴이 벌게지며 말했다.

태건은 그런 거 없었다.

미소는 더욱 환해지고, 말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해졌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아니, 엣다. 기분이다. 형님, 사진 받고 사인까지. 콜?”

“코, 코올!”

“우리 형님 화끈하시네. 딱 제 스타일이십니다.”

태건이 한껏 분위기를 띄우자 중년인도 어느새 휩쓸려 들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거 얼마요?”

“이거……. 크흠. 형님, 이 각박한 세상에 꼭 정해진 가격으로만 거래를 해야 합니까. 마음으로 통하는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 그거라……. 에라. 모르겠다. 부단장 얼굴값으로 합시다.”

턱!

중년인이 적잖은 돈을 시원하게 꺼내 건넸다.

태건이 아무리 조끼 가격을 모른다고 해도 절대 손해 볼 금액은 아니었다.

촤악!

바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건넸다.

“형님, 조끼 받으시고, 사진 찍으시고, 김치, 오케이 됐고, 그런데 사인은 어디다 해야 하나…….”

“여기 하시면 되지. 여기!”

“조끼에요? 우와, 우리 형님 상남자시네. 그럼 나도……. 우린 오늘부터 1일, 동생 태건이가 형님께 인사드립니다.”

사사삭!

태건은 특별서비스를 아낌없이 팍팍 뿌렸다.

의미 가득한 문구가 그려진 조끼를 받은 중년인은 입이 쭉 찢어졌다.

“크흠, 그럼 앞으로 우리 부단장님…….”

“형님, 동생이라니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 그래. 태건아.”

“네, 형님!”

“이거, 참. 하하하!”

중년인은 당장 하늘을 날아갈 듯한 얼굴로 떠나갔다.

물론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였다. 이벤트로 친근하게 몇 마디를 나눈 이 순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태건은 진심이었다.

“형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태건아. 형 갈게!”

멀어지던 중년인은 어느새 손까지 흔들었다.

그런 상황까지 펼쳐지자 눈치 보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들을 뒤로하고 불쑥 앞으로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젊은 남녀들이었다.

이럴 땐 주변 눈치 보지 않는 신세대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뾰로로.

한달음에 다가온 20대 초반의 청년이 대뜸 태건에게 부탁했다.

“부단장님, 엄마한테 선물하려고 하는데 추천해주세요.”

“무난한 건 역시 덧버선이지. 금액은 동생 마음 가는대로.”

“저기 3천 원 적혀 있는데……. 만원! 대신 어깨동무하고 사진 찍어주세요!”

청년이 만 원짜리를 내밀며 비장하게 소리쳤다.

태건은 뭐든 받은 이상으로 돌려줬다.

“겨우 어깨동무? 내가 업어 주는 건 어때?”

“오오오. 좋아요, 부단장님 멋지다!”

“어허, 떽. 부단장이라니, 동생아, 형이야.”

“네, 태건이 형, 아싸!”

청년은 벅찬 기쁨을 표현하며 풀쩍 뛰어올랐다.

뭐든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한 번 물고를 트면 그 다음은 술술 이어진다.

우르르.

“저, 이거요.”

“이건 얼마예요?”

“전 팔짱 끼고 사진 찍을래요!”

사람들이 코앞까지 몰려와 지폐를 흔들며 구매요청과 요구사항을 알아서 말했다.

소위 ‘대박’이라고 할 모습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

처억!

태건은 아예 가판에 떡하니 올라가 짝다리를 집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자, 골라골라. 일단 골라잡아.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가격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잘 보입니다.”

그런 태건의 모습에서 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때 김순자가 커피를 들고 나오다 화들짝 놀랐다.

“에구머니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태건이는 저기 왜 올라가 있고…….”

자리를 비운 시간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았다.

그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점포 상황에 김순자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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