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79)화 (278/320)

279화

그럼 그렇지.

아무리 막 나가는 형이라도 아침부터 용건도 없이 전화할 정도로 안하무인은 아니었다.

‘후우우. 혈육이 뭔지.’

태건은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뭔지 빨리 말해.”

“흐윽, 흐윽. 둘째야, 주머니 사정이 그렇게 안 좋았으면 형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갑자기 억지 울음과 함께 들려온 강태영의 말이 너무도 엉뚱했다.

오죽하면 태건의 사고를 마비시킬 정도였다.

“뭐?”

“시장가서 알바까지 뛰어야 할 지경이었다니. 인마. 그럴 때 찾으라고 있는 게 형이야.”

“……하아아.”

태건은 생각을 포기했다.

아니, 강태영에 대해 너무도 큰 착각을 하며 살았다.

“진짜 막 나가는구나.”

태건이 대놓고 삐딱하게 대꾸했지만 강태영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우리 회사 와서 소방 강의 한번 해. 형이 잘 얘기해서 강의비는 섭섭지 않게 챙겨줄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큭큭. 크흐흠. 건아, 형은 다 알아. 살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그런 거지.”

강태영은 끝까지 놀리고 또 놀렸다.

태건은 허탈함이 몰려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는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 태건이 강태영에게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꺼져.”

“크큭, 으하하하. 골라맨!”

“…….”

뚝!

거칠게 전화를 끊은 태건의 속이 계속 부글거렸다.

“아으, 강태영. 아으, 아으!”

텅, 텅텅텅!

결국 태건은 애꿎은 쿠션을 짓누르며 분풀이했다.

개운하게 맞이하고팠던 아침이 강태영이란 불청객으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동.

그 소리가 태건애게 그나마 남아있는 모든 이성을 완전히 마비시켜버렸다.

“에이씨, 아침부터 누구야!”

쿵쿵!

태건은 신경질 가득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한달음에 현관에 도착한 태건은 거칠게 열어젖혔다.

벌컥!

“누가 아침부터 남의 집……. 크흠.”

일단 쓴소리부터 퍼붓다가 상대를 알아보고 멈칫했다.

정연미가 놀란 눈으로 서 있었다.

“오빠…….”

“……아으. 강태영!”

태건은 이 모든 사달의 주범인 강태영을 울부짖었다.

잠시 후.

태건이 소파에 등을 돌린 채 길게 누워 있었다.

“진짜 형만 아니면, 아오, 정말 내가…….”

강태영에 대한 짜증 가득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정연미는 식탁에 앉아 웃음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있었다.

“프, 흐음. 흠흠.”

“연미야, 차라리 그냥 웃어.”

“호호호. 진짜 너무 짓궂고 재밌는 분 같아. 호호.”

그 소리에 태건이 벌떡 일어나 울컥했다.

“재미? 얼마나 대놓고 속을 긁는데!”

“그만 화내고 이리와 차 마셔.”

“안 마셔!”

팩!

태건은 고개를 반대로 돌리며 반항했다.

화가 단단히 난 모습이다.

정연미는 그런 태건을 달래는 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식탁에서 소파로 옮겨왔다.

그리고 두 손으로 태건의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

스륵.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

“나 진짜 화났어. 당장 회사에 쳐들어가서 목을 비틀어버릴까도 진지하게 고민 중이야.”

태건의 살벌한 목소리에 진심이 가득했다.

눈가에 살기까지 번뜩였다.

누구라도 거리를 두고 싶을 스산함이 가득 풍겼다.

그러나 정연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건이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오빠, 나 봐봐.”

“싫어.”

태건은 요지부동이었다.

정연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같이 갈 데 있다며. 무리해서라도 월차 내고 와달라고 해서 이렇게 왔잖아.”

“그래.”

“그런데 계속 이렇게 얼굴도 안 보고, 화만 낼 거야?”

정연미가 애잔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순간 살기 가득한 태건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다.

“후우.”

“그래. 오빠가 참아. 솔직히 태영 씨보다는 오빠가 훨씬 듬직하고 아량이 넓잖아.”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지.”

태건은 못내 수긍하는 척 대답했다.

타이밍 맞춰 정연미가 태건의 얼굴을 돌렸다.

스윽.

이내 얼굴이 마주하자 정연미가 마지막 회심의 카드를 날렸다.

“이렇게 멋진 남자가 내 거라니.” 

어느새 태건의 얼굴엔 이 세상 모든 화가 지워지고 평화가 찾아와 있었다.

“흐음. 그래. 동생이지만 형 같은 내가 이해해야지.”

“그럼, 그럼. 이제 우리 식탁에 가서 차 마시자.”

스윽.

정연미가 달래듯 권하며 일어났다.

한 시간 후.

태건의 차가 시원하게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부우웅.

어쩐지 차 안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

특히 태건은 두 손으로 운전대를 붙들고 운전에만 집중했다.

집에서 보여준 다채로운 모습이 진짜 거짓말 같았다.

그 무거움으로 계속 침묵이 감돌았다.

“…….”

옆에 자리한 정연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는 이내 서해대교에 진입했다.

휴대폰을 보고 있던 정연미가 나지막이 말했다.

“다들 아침부터 바쁘네.”

“뭐가?”

“성규 씨 어머니네 가게.”

정연미의 대답에 태건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엇!”

끼긱.

차가 일순간 휘청거렸지만 다시 균형을 찾았다.

한순간이었지만 가슴 철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차 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무겁고 가라앉아 있었다.

정연미는 태건이 뭘 궁금해하는지 알기에 시간 끌지 않고 말했다.

“사람들이 거기서 산 옷이나 덧신을 입고 SNS에 인증하고 있어.”

“그래?”

“젊은 사람들이 많아. 챌린지가 될 거 같다는 댓글도 상당해.”

그 말을 들은 태건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라도 장사가 꾸준히 잘 되면 좋지.”

“그래서 오빠가 어제 그렇게 도와드린 거잖아.”

정연미의 반응이 덤덤했다.

스윽.

태건은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알고 있었어?”

“얼굴 팔리는 걸 제일 싫어하는 오빠를 내가 왜 몰라.”

“그런데 이럴 땐 쓸모가 있더라.”

태건이 쓰게 말하자 정연미가 넌지시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찾아가는 중이잖아. 어젯밤에 팀장님 생각 많이 나더라.”

“그 호칭을 얼른 정정하지 않으면 악몽이 연달아 기다려.”

“그러네. 팀장님이라고 하면 듣는 척도 안 하셨는데. 큰오빠라고 불러야 대답해 주셨는데.”

그 다음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

또 침묵이 찾아왔다. 

차 안의 분위기는 너무도 무거웠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태건은 문득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오른손을 움직여 정연미의 손을 가볍게 포갰다.

스윽.

“연미야. 우리 가볍게 가자. 가볍게.”

“응. 그런데 오빠. 지희 언니가 찾지 말라고 하고 훌쩍 떠나셨다고 하지 않았어?”

정연미가 묻자 태건은 운전하며 답했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셨지.”

“그런데 어떻게 어디 있는지 알고 가는 거야?”

정연미가 갸웃거리며 물었다.

동시에 태건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면서 답했다.

“다 방법이 있어.”

“누구든 찾을 수 있는 거야?”

“왜, 누구 찾을 사람 있어?”

태건이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그때 정연미가 장난스럽게 탄식을 흘렸다.

“아니 오빠랑 싸우면 잠수타려고 했거든. 돌아가는 폼이 날 샌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잠수? 어림도 없지.”

“아아, 이제 꼼짝없이 잡혀 살겠네. 좋은 시절 다 갔어. 연미야, 내 창창했던 앞날아, 안녕.”

슥슥.

정연미는 창밖을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태건은 그 장난에 어이없어 했다.

“전에도 그렇게 창창하진 않았어.”

“오빠, 지금 뭐라고 그랬어?”

챙!

정연미의 눈이 가늘어졌다.

순간 위험을 감지한 태건은 허둥지둥 현재 상황을 어필했다.

“어어, 나 지금 운전 중이야. 운전자를 겁박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응, 몰라. 그러니까 다시 말해 봐.”

스윽.

정연미는 손톱을 세워 서서히 압박해 왔다.

태건은 어디로도 도망갈 데가 없었다.

이럴 땐 얼른 꼬리를 내리는 게 상책이었다.

“다, 다시 잘 생각해보니까 내가 잘못한 거 같아.”

“그렇지?”

“응. 잘못했어. 그냥 일단 무조건 잘못했어.”

“알면 잘해.”

스윽.

정연미는 그제야 손톱을 내렸다.

그런 두 사람의 장난으로 무거운 분위기가 적당히 가벼워졌다.

그렇게 서로 무거움을 털어내며 목적지로 달려갔다.

점심시간 무렵.

태건과 정연미는 충남 당진에 도착했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똑같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길 건너에 자리한 자그마한 분식집이었다.

유리가 시트지에 가려져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외부와 통하는 조그마한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 안으로 누군가가 보였다.

이채용 팀장의 부인인 정지희였다.

안 본 사이 더 수척해지고 안색도 나빠졌다.

“지희 언니.”

옆에서 정연미의 축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건도 같은 심정이었다.

분식집의 위치하며 규모만 봐도 느낌이 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떠나셨으면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고 계셨어야죠.”

이게 뭐냔 소리는 차마 할 수 없어 다른 푸념으로 대신했다.

태건은 섣부르게 들어가지 않고 주변부터 살펴봤다.

가게 위치가 너무 좋지 않았다.

저 앞에 펼쳐진 도로만 봐도 유동인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골목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길가에 즐비한 식당을 두고 굳이 골목길 안까지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지금 정지희는 화구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부스럭.

라면을 꺼내든 걸 보니 안에 손님이 있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네.’

아무도 없는 거보다야 백배 나은 일이다.

문제는 정지희였다.

라면 봉지를 여는 손길에 의욕이 없어 보였다.

얼마나 현실에 지치고 삶에 찌들었는지 단편이나마 엿보였다.

그렇다고 정지희에게 세상 모든 악재가 몰아친 건 결코 아니었다.

대부분 유가족들의 삶이 저러했다.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나.

지나가는 아무나 붙들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이채용 팀장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게 마음 무겁게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창밖으로 라면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본격적인 조리가 시작된 모양이다.

그 냄새가 조금 독특했다.

태건은 코를 크게 벌름거렸다.

‘맞아. 이 냄새였어.’

어떻게 잊을까.

시중에서 판매하는 라면이었지만 정지희의 특별한 비법이 더해진 특제라면 냄새가 분명했다.

길 건너까지 군침 도는 냄새가 풍겨왔다.

특히 그 맛을 알고 있는 태건과 정연미에겐 고욕과도 같았다.

“아, 형수님 라면. 저거 끝내주는데.”

“이 냄새. 아, 배고파.”

“가자. 소금 세례를 받아도 저 라면은 기필코 먹어야겠어.”

라면을 구실 삼았지만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기 가장 적절한 구실이었다.

그렇게 태건은 정연미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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