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82)화 (281/320)

282화

슥슥.

정연미는 걱정된 얼굴로 손을 쓸어줬다.

“오빠. 그냥 사람들은…….”

태건의 기분을 살피며 대신 변명까지 해주려 했다.

순전히 태건을 걱정한 행동이었다.

그런 정연미의 노력을 태건은 곡해하지 않았다.

“괜찮아. 화는 좀 나는데, 눈 돌아갈 정도는 아니야.”

“아닌 거 같은데…….”

“진짜 괜찮다니까. 어라, 출근시간 다 됐다. 태워 줄까?”

스윽.

태건은 휴대폰을 돌려주며 물었다.

정연미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아니야. 버스 타면 금방 가는데 뭐. 그나저나…….”

“괜찮다니까. 정말이야. 그러지 말고 피곤할 텐데 오늘은 택시 타고 가.”

“아니, 그냥…….”

“그게 내 마음이 편해. 뭐해, 어서 가자니까.”

태건은 정연미를 앞세워 집을 나갔다.

그런 태건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지금은 정연미를 안심시키는 걸 우선했다.

잠시 후.

집 앞에 도착한 택시에 정연미가 탑승했다.

“그럼 오빠, 갈게.”

“그래. 출근 잘하고.”

스윽스윽.

태건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이내 택시가 출발했다.

부웅.

그 순간 태건의 얼굴에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단장님, 라텔 하나.”

5분 후.

옥상 평상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자리했다.

풀썩풀썩.

오광휘 단장은 두꺼운 패딩을 들썩이며 열을 뿜어냈다.

“이게 왜 비난받아야 할 일이야. 이 채널에 뭘 올리든 그건 우리 마음이지!”

“…….”

태건은 말이 없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은 휴대폰으로 댓글을 계속 확인하며 툴툴거렸다.

“라텔은 그러지 않을 거라 믿었다고? 이봐요. 순직한 녀석 부인 가게입니다. 그거 좀 홍보해주는 게 잘못입니까!”

“…….”

“이건 또 뭐야. 시장, 분식집. 그 다음은 붕어빵이냐고? 속사정도 모르면서 이렇게 비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

태건이 여전히 말이 없자 오광휘 단장의 짜증이 그쪽으로 튀었다.

“야, 라면. 너 왜 샤따 마우스 하고 있어. 니가 열 받아서 불러 놓고, 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성적이지 않아서 이렇게 열 낸다는 거야?”

으르렁.

오광휘 단장이 싸우잔 기세로 쏘아붙였다.

태건은 차분하게 달래는 손짓을 하며 이어서 말했다.

“영상에 어떤 사연인지 설명도 없고, 너무 엉뚱한 건 사실이란 겁니다.”

“이거 우리 거잖아. 우리 훈련 영상이나 시시덕거리는 영상은 괜찮고, 이건 왜 안 돼?”

“단장님, 조금만 차분하게. 침착하게.”

슥슥.

태건이 진정하란 손짓을 좀 더 크게 내보였다.

오광휘 단장은 마음에 안 든 단 눈빛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이내 뚱한 얼굴로 변하며 툴툴거렸다.

“쓰벌. 영상 하나 올린 게 뭐 이렇게 수선 떨 일인지.”

“이거 빨리 수습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 괜히 제수씨가 알게 되면 또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해 할라. 그런데 어떻게?”

오광휘 단장이 묻자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아예 본격적으로 나서시죠.”

번뜩!

태건의 눈빛이 강렬하게 빛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채널이 개설됐다.

- 라텔, 우리 가족.

라텔의 두 번째 전용 채널이었다.

개설 목적을 채널 설명란에 확실히 명시해 뒀다.

-위 채널은 현직 소방관 및 소방 유공자들의 가족이 운영하는 점포들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거기 업로드 된 영상은 기존 라텔 영상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김순자의 포목점, 정지희의 분식집이 가장 먼저 업로드됐다.

그리고 노주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해장국 집, 송강우의 누나가 운영하는 네일아트샵 등등.

그간 촬영만 해놓았던 단원 가족들이 운영하는 가게도 모두 업로드 했다.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본부 행정실 컴퓨터로 확인했다.

오광휘 단장의 굳어진 표정이 상당히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이렇게 해놓으니까 확실히 비난은 줄어들었네. 응원소리도 많고, 찾아간단 소리도 엄청나고 말이야. 하하.”

웃음 짓는 그의 옆엔 노주민이 퀭한 얼굴로 마우스를 끄적거렸다.

“저는 어제부터 대체 콜택시도 아니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서 누군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서정민이었다.

“저는 자다가 전화 받고 달려왔습니다.”

“그 시간엔 일어나 계셨어야죠.”

“그럼 노 단원은 부모님 가게를 위한 건데 불평하면 안 되죠.”

찌릿.

진이 쭉 빠진 두 사람이 서로를 흘겨보며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웠다.

그때 이혜지 행정팀장이 다가와 말했다.

“정민 씨, 전국 소방서에 협조 공문 발송 완료했어요. 벌써 연락이 오는데요?”

“하아, 벌써요.”

“왜 기운이 없어요?”

“이제 사전답사 가야죠. 촬영팀, 편집팀 만들어야죠. 촬영 순서 잡고 인터뷰해야죠. 에휴휴.”

서정민은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박규영 본부장이 다가와 말했다.

“처음에 체계가 갖춰질 때까지만 고생하면 됩니다.”

“엇, 본부장님.”

그릉.

서정민이 얼른 일어나자 박규영 본부장이 푸근하게 말했다.

“장기 프로젝트가 될 거고, 그만큼 정민 씨도 안정적인 수입이 생길 겁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런 거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바빠지겠지만요.”

“그렇다고 라텔 통신장비 개선을 게을리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럼요. 물론입니다.”

서정민은 머쓱함을 뒤로하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잠시 후.

본부장실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자리했다.

박규영 본부장이 먼저 태건에게 물었다.

“어떻게 전용 방송 채널을 생각하게 된 거야?”

“그분들이 욕먹는 게 싫어서요.”

“사정을 모른다면 안 좋은 시선으로 볼 수도 있는 문제긴 했어.”

박규영 본부장이 수긍하자 태건이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그 싹을 자르잔 심산도 있었습니다.”

“이후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시도는 아주 훌륭해.”

박규영 본부장이 크게 칭찬했다.

그러나 반대편에 자리한 오광휘 단장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예상되는 문제가 좀 있긴 합니다.”

“뭐지?”

“유가족들의 가게 말입니다. 저희야 주소를 기입하지 않고 어떤 사정인지 소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결국 알려지게 될 겁니다.”

그 의견에 박규영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원하지 않는 분들이 계시겠지.”

“저희는 절대 명시하지 않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까요.”

오광휘 단장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그에 대해선 태건이 차분한 목소리로 의견을 말했다.

“촬영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사전 동의를 받는 방법밖엔 없을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모두가 좋은 말을 하진 않을 거란 말이지.”

“정당한 비판과 맹목적 악성댓글은 구분해야죠.”

태건은 가장 보편적인 의견을 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 구분 짓기에는 부족했다. 더 명확한 기준점이 필요했다.

그에 대해선 박규영 본부장이 말했다.

“그건 내가 고문변호인단과 상의하도록 하지. 최대한 꼼꼼히 검토할 테니 걱정은 접어둬.”

“알겠습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규영 본부장이 가볍게 장내를 정리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일을 벌였다고 생각지 마.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는 했어야할 일이니까.”

“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했단 걸 언젠가 자랑스러워할 날이 올 거야.”

박규영 본부장이 밝은 앞날을 그리며 격려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그 분식집……. 이채용 팀장 부인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나.”

“……네.”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답했다.

박규영 본부장은 소파 등받이에 깊게 등을 기댔다.

꾸욱.

“그래. 단장과 부단장이 더더욱 해야 할 일이었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슬 일어나 봐. 재정비 기간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가서 좀 더 쉬도록 해.”

그렇게 박규영 본부장은 묵직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잠시 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본부장실 밖으로 나왔다.

태건이 머쓱한 얼굴로 먼저 말했다.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요.”

“본부장님 말씀을 금방 까먹었냐. 언젠가,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니까.”

“어쨌든 기분 나빴던 건 많이 가신 거 같습니다.”

태건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든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내밀며 말했다.

“댓글 봐봐. 아까랑 확실히 달라.”

불쑥.

휴대폰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다.

얼른 고개를 뒤로 빼 거리를 둔 태건은 댓글을 읽어봤다.

-주소가 빠져 있어요. 주소 좀 올려주세요.

-아까 라텔 채널에서 욕하던 분들 다 어디 갔습니까.

-소방유공자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라는데, 여기서 욕하면 그 사람은 그냥 확!

-어디라도 찾아갈게요. 꼭 갈 테니까 절대 문 닫으시면 안 돼요.

확실히 비난이 아닌 응원의 댓글들이 넘쳐났다.

그때 휴대폰이 울리며 액정에 낯간지러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 우리 자기.

- 어머머, 휘야휘야, 우리 자기 어쩜 그렇게 예쁜 생각을 했어, 하트 뿅뿅.

태건은 멈칫하며 오광휘 단장에게 알려줬다.

“우리 자기님께 문자왔습니다.”

“뭐라? 어라? 어허험. 유정이가 봤나 보네.”

휙.

얼른 휴대폰을 회수한 오광휘 단장이 머쓱해 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보며 진한 미소를 흘렸다.

“후후. 휘야휘야. 후후.”

“뭐, 어쩌라고. 알만한 녀석이 뭘 놀리고 그래. 커흠!”

오광휘 단장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를 향해 태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단장님 마음은 어느새 봄이……. 어억!”

“이 식기가. 적당히 안 하냐. 앙!”

“단장님, 목, 목, 목!”

탁, 탁.

오늘도 어김없이 헤드락에 걸린 태건이 탭을 치며 기권했다.

오광휘 단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아주 틈만 나면 놀리고, 괴롭히고, 그럼 못 써 짜샤. 내가 단장이고, 니가 부단장이야!”

“안다니까요. 알아요. 아니까 적당히. 아아. 진짜 아픕니다!”

“어쩌라고. 이따가 세찬이 만날 때 비딱하게 인사하게 해주마!”

꽈아악!

오광휘 단장이 더욱 압박하자 태건의 비명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아악! 진짜 아프다니까요!”

“아프라고, 제발 좀 아파라!”

“아아악!”

두 사람의 투덕거림이 온 행정팀 사무실을 울렸다.

듣다 못한 이혜지 행정팀장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정신 사나워, 나가서 놀아!”

“……네.”

사사삭.

끝내 두 사람은 한 소리 듣고야 슬그머니 행정팀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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