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84)화 (283/320)

284화

처음엔 갸웃거리던 오광휘 단장이 이내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번뜩!

끄덕끄덕!

눈치 챘단 신호가 강렬하게 쏘아져왔다.

태건은 정지희의 교육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오광휘 단장과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했다.

마침 정지희와 이세찬이 포옹을 마쳤다.

태건이 너스레 가득한 얼굴로 다가서 이세찬을 들어올렸다.

“으이쌰, 우리 세찬이 울어서 당 딸릴 텐데 가서 아이스께끼나 한사발 할까?”

“막내 삼촌, 당 딸리는 게 뭐야?”

“아, 어. 그게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고 싶지?”

태건이 말실수를 얼른 정정하자 이세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부웅부웅.

“응!”

“가자. 삼촌이랑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아이스크림 좋아.”

이세찬이 승낙하자 태건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우리 세찬이. 지금도 소방관하고 싶어?”

“응 세찬이는 세상에서 소방관이 제일…….”

저벅저벅.

태건은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하는 사이 이세찬과 담소를 나눴다.

같은 시각.

오광휘 단장은 정지희를 공략했다.

“제수씨, 그러니까…….”

“네? 소방차가 있다고요?”

“교육용이라…….”

속닥속닥.

오광휘 단장은 태건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정지희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그렇게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현장에서 단련된 쿵짝 호흡을 이곳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서로를 향해 눈짓했다.

찡긋. 찡긋.

두말하면 입 아픈 신호다.

오케이였다.

태건이 슬쩍 바라보자 정지희가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오호, 비밀작전이네.’

척하면 척이다.

태건은 바로 오광휘 단장의 계획을 알아챘다.

이내 아이스크림에 희희낙락한 이세찬에게 물었다.

“세찬아, 삼촌 일하는 데가 저긴데, 잠깐 구경하고 갈래?”

그 순간 이세찬은 거침없이 아이스크림을 집어던졌다.

휙!

“응. 라텔 좋아, 라텔은 짱 멋진 소방관이야. 아빠보다 조금 덜 멋진데, 그래도 멋진 소방관들이야.”

“아이스크림보다 라텔이 좋아?”

“응. 나 사진도 찍을래. 학교 가서 자랑할래.”

“아직 방학이라 못 가.”

태건이 찬물을 끼얹어도 이세찬은 끄덕하지 않았다.

“괜찮아. 애들한테 카톡 보내면 돼.”

“세찬이 휴대폰도 있어?”

“요즘 그거 없는 애들이 어딨어. 다 있어.”

“우와. 삼촌 어렸을 땐 없었는데.”

태건은 20년 전을 비교해 가며 특수소방단 본부로 향했다.

뒤에서는 정지희가 오광휘 단장에게 미안해했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리는 거 아닌가 몰라요.”

“전혀요. 세찬이가 소방관을 꿈꾼다는데 소방차가 문젭니까. 헬기를 태우……. 는 건 좀 어렵지만요. 하하.”

잠시 후.

태건이 직접 이세찬의 손을 잡고 특수소방단 안내를 시작했다.

“자아, 우선 여기가 옥상이고, 저게 라텔 1호 헬기.”

“우와, 헬기다. 멋지다!”

“사진 찍어야지?”

“응. 나, 저기!”

도도도!

이세찬은 얼른 헬기 앞으로 달려가 위치를 잡았다.

그저 앞에서 찍은 정도가 아니었다.

직접 조종석에 앉아보기도 하고, 헬멧을 쓰고 운전하는 척하는 사진도 찍었다.

라텔 대기소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 방화복 상의만 걸쳐 소방관 흉내를 내기도 했다.

중간에 오광휘 단장도 합류했다.

“나도 같이 찍어야지, 세찬이, 김치!”

“히이, 김치!”

찰칵.

이세찬의 추억이자 자랑거리가 계속 늘어났다.

같은 시각.

옥상의 부산함이 애꿎은 노주민에게 화살이 향했다.

“노 대원, 옥상에 누가 왔어?”

“행정팀장님, 전 계속 여기 있었는데요.”

“모르면 다야? 모르면 알아보는 척이라도 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어제부터 다들 저만 가지고 그러세요. 단장님하고 부단장님이시겠죠. 아까 세찬이…….”

노주민이 억울함을 한창 풀어낼 때였다.

박규영 본부장이 마침 근처를 지나갔다.

‘이세찬이라면?’

저벅저벅.

갑자기 박규영 본부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편.

이세찬은 옥상 구경을 마치고 교보재 창고로 향했다.

태건이 커다란 창고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저기 안에 소방차가 있어.”

“진짜요? 우와! 진짜 소방차 타는 거야?”

“그럼그럼. 엄마는 저기 계시네.”

스윽.

태건이 한쪽을 가리켰다.

정지희가 야외휴게소에 홀로 앉아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이 아직 그녀에게 편하지 않을 터였다.

그때 이세찬이 정지희에게 손짓했다.

휙휙.

“엄마, 빨간차 타러 간대요. 빨리 오세요!”

“응. 다녀와. 엄만 괜찮아.”

“아니야. 같이 가야 돼. 빨리이!”

이세찬이 몇 번이나 손짓했다.

정지희는 계속 고개를 젓고 손을 저으며 거부의 의사만 밝혔다.

오죽하면 이세찬이 직접 나섰다.

“엄마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어서 가요. 삼촌들이 특별히 태워주는 거란 말이야.”

“얘가 참.”

정지희는 이세찬이 끌어당기자 마지못해 움직였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교보재 창고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끼익.

안에는 여러 선반이 놓여 있었고, 가장 끝에 커다란 펌프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타다닥.

재빨리 달려간 이세찬이 입을 떡 벌리며 둘러봤다.

“우와, 이야, 헤에…….”

가까이서 이렇게 세세하게 관찰하는 게 처음인지 하나하나 기억에 담아두려 했다.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졌다.

그걸 누구도 만류하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이세찬이 만족할 때까지 모두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오히려 유심히 관찰하는 이세찬이 흐뭇할 따름이었다.

‘저 조막만한 녀석이 커서 소방관이 된다면.’

‘우리랑 등을 마주한다면.’

그날이 온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그 짜릿함이 무언지 느껴보고픈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걸 느껴보려면 그때까지 살아야했다.

‘목표로 괜찮은데?’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엉뚱하지만 꽤 괜찮은 삶의 이유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비상 출동벨이 울렸다.

-찌르르릉!

그 소리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몸이 동시에 굳어졌다.

구우우!

라텔은 현재 가동 불가 상태다.

그러나 출동벨이 울렸다.

출동 가용인원이 단 두 명일지라도 상관없었다.

출동벨이 울렸으면 출동해야 한다.

번뜩!

“출동이다.”

“가자!”

두 사람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 다른 강렬함이 터져 나왔다.

터덕!

“하압!”

이세찬이 너무 놀라 헛숨을 터트리며 두 눈을 똥그랗게 뜰 정도였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이 순간은 이세찬이 안중에 없었다.

휙!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옥상으로 뛰어갈 자세를 잡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놓은 화살처럼 그대로 뛰어가려 했다.

바로 그때 스피커에서 방송이 울렸다.

-라텔 출동, 테스트 하나, 라텔 전 단원은 즉시 펌프차에 올라…….

방송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며 달리려 했다.

그러나 엉뚱한 소리에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다급히 두 다리를 멈췄다.

끼익.

“뭐라고?”

“제가 잘못들은 게 아니란 겁니까?”

오광휘 단장에 이어 태건이 질문을 던졌다.

바로 그때였다.

타다닥.

열린 창고문으로 몇몇 사람들이 쏜살 같이 뛰어 들어왔다.

그 중 가장 먼저 박차고 들어온 인물은 너무도 친숙한 인물이었다.

타다닥!

“아으씨, 난 어제부터 일진이 대체 왜 이런 건데!”

“개똘?”

“못 들었어요! 화재 출동이라잖아요. 네가 이세찬이지. 잠깐 실례 좀 할게. 으쌰!”

처억.

달리는 와중 노주민은 이세찬을 그대로 안고 펌프차 뒷좌석으로 향했다.

그 행동에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저 개똘이 뭐하는 짓이야!”

“셔터 올립니다. 단장, 부단장, 아직도 멍 때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기합이 아주 단단히 빠졌어!”

드르륵.

김여훈 지원팀장이 어느새 정면 셔터를 올리며 면박을 줬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그제야 출동 방송을 재빨리 곱씹었다.

‘테스트 하나.’

‘펌프차?’

라텔은 테스트도 없거니와 차량출동이 없다.

본부 내에 무엇보다 김여훈 지원팀장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몇 명 없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번뜩 떠올랐다.

“…….”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바로 마주쳤다.

끄덕.

아무래도 같은 인물을 떠올렸는지 똑같이 고갯짓했다.

그와 동시였다.

싱긋.

이번엔 똑같이 미소 지었다.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개똘, 세찬이 조수석에 태워!”

“그럼 제수씨, 뒷좌석으로 가시죠.”

사삭.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순식간에 흩어져 펌프차로 향했다.

이내 태건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조수석엔 노주민이 태운 이세찬이 자리해 있었다.

“우와, 와아. 출동이야.”

이세찬은 잔뜩 흥분해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비상출동시에 안전벨트는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이는 예외라 태건은 얼른 몸을 기울여 안전벨트를 채워줬다.

탈칵.

“차에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 해야 돼. 꼭이야.”

“네, 차에 타면 안전벨트!”

“그렇지. 단장님?”

스윽.

태건이 돌아보며 묻자 오광휘 단장이 시원하게 답했다.

“뒤엔 이상 무.”

“개똘도 탑승 완료!”

“출동 인원 채웠다고 통보. 사육.”

뒤따라 들린 소리에 태건이 휙 돌아봤다.

정말 강영직 대원이 탑승해 있었다.

그를 포함해서야 6명이었다.

태건은 어색한 얼굴로 무전하듯 대답했다.

“머릿수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칠.”

“시끄럽고 출발!”

텅텅!

오광휘 단장이 뒤에서 발을 구르며 재촉했다.

그제야 태건은 기어를 넣고 힘차게 펌프차를 출동시켰다.

“세찬아, 가자.”

“네!”

“자아, 출발!”

부아앙!

“이야, 간다. 불 끄러 간다!”

펌프차가 출발하자 이세찬이 방방 떠올랐다.

그렇게 펌프차는 곧 창고를 벗어났다.

밝은 곳으로 나온 펌프차 앞에 펼쳐진 건 주차장이었다.

아니, 주차장이어야 했다.

분명 주차장인데 평소 모습과 달랐다.

모든 행정 대원들이 주차장 끝에서 끝까지 도열해 있었다.

가운데에 박규영 본부장이 바르게 서 있었다.

그리고 펌프차가 주차장 가운데에 다가서자 그가 우렁차게 외쳤다.

“일동……. 경례!”

-안! 전!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는 구호가 특수소방단 전역을 진동했다.

‘라텔’이 아닌 ‘안전’이라 외쳤다.

그건 일선에서 활약하는 소방관들의 구호였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경례였다.

마지막으로 소방관들의 가족들이 알고 있는 구호였다.

박규영 본부장과 행정 대원들의 경례.

그건 어느 현장에서 모두를 구하고 순직한 어느 소방관에 대한 예의였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으며.

그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고 마음으로 기리는 표현이었다.

이세찬은 아직 어려 그 깊은 의미를 몰랐다.

“…….”

모두가 만들어낸 장관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정지희는 뒤에서 소리 없이 굵은 눈물을 소매에 찍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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