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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96)화 (287/320)

96화

태건뿐만 아니라 모두 썩 달갑지 않아 했다.

순응보다 반발이 더 빠른 성격들이었다.

가장 먼저 이지성이 한 소리 했다.

“빨리 오라면서 깔끔하게 정돈하라니, 천천히 빨리 오란 말하고 뭐가 다른 거야?”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게 저런 느낌이네요.”

태건이 심드렁하게 보태어 말하자 이지성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너 뭐 좀 안다?”

“선배도 좀 아시네요.”

이상한데서 일치단결했다.

그렇게 우석진 정책과장을 향한 시선이 삐딱했다.

천막에 가까워져 갈 때였다.

태건이 무심코 바라보다 누군가를 발견했다.

김위영 소방사였다.

방화복 앞섬을 풀어헤치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먼저 발견한 태건이 상황상 가볍게 인사했다.

“위영 선배. 고생하셨습니다.”

“어? 어! 태건이……. 아, 맞다.”

타다닥!

김위영이 반가운 얼굴로 거리를 빠르게 좁혀왔다.

의외의 서두르는 반응이었다.

살짝 놀란 태건은 일단 양해부터 구했다.

“어? 선배, 죄송한데 저 지금 들어가 봐야 합니다.”

“나도 알지. 그런데 이 소식은 먼저 전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말이야.”

“무슨 소식이요? 혹시 사망자…….”

태건은 내심 마음에 걸린 부분을 언급했다.

김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딱 나오네.”

“무슨 소식입니까?”

“김일우 이병 말이야.”

갑작스런 이름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김일우……. 혹시 아들 이름입니까?”

“그래. 세린 병원으로 안내했어. 부검 후에 장례 치를 거 같더라.”

“세린 병원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건은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앞서 가던 오광휘 단장은 긴장 탓에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저 대화 소리만 신경 쓰였는지 살짝 언성을 높였다.

“센터 가서 떠들어라.”

“그만 빠지려고 했습니다. 단장님 수고하셨습니다.”

“위영이, 너도 고생했어. 상황이 그러니까 이따가 넘어가서 차 한 잔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스윽.

김위영은 분위기에 맞춰 알아서 퇴장했다.

바로 그때.

타이밍 기가 막히게 현황판 뒤에 도달했다.

“다들 긴장하고, 바로 들어가자.”

그때 태건이 막으려 했다.

자신들을 보이는 거보다 더 중요한 소식 탓이었다.

“잠…….”

“…….”

스윽.

오광휘 단장은 그 부름마저도 듣지 못하고 이미 움직였다.

딱 반 박자 늦었다.

‘아…….’

할 수 없이 태건도 순서에 맞춰 일단 들어갔다.

곧 태건이 마지막으로 현황판 옆으로 등장했다.

내부엔 플라스틱 의자가 오열 맞춰 비치되어 있었다.

맨 앞에는 소방제복을 입은 중년인들이 보였다.

아침에 인사해서 바로 알아봤다.

김을영 소방차장, 박선웅 정책국장.

그들을 수행하는 보좌관과 참모들이 주변에 함께 자리해 있었다.

최소 소방경 이상의 소방청 간부들이었다.

그들 뒤쪽에는 많은 카메라들이 삼각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공중파부터 케이블tv, 그리고 이름이 낯선 방송국도 있었다.

미디어 대폭발 시대라 여러 매체에서 모인 모양이다.

기자들의 수도 그만큼 많았다.

“왔다. 영상 편집은 여기서부터 잡자고.”

“다들 꽤 젊은데?”

“마지막으로 들어온 소방관은 어려.”

웅성웅성.

기자들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다양하게 들려왔다.

그들 외에도 유관기관이나 여러 단체 사람들이 명찰을 걸고 있었다.

그 많은 이들 앞에 선 거였다.

특수소방단 중에서도 오광휘 단장은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어 버렸다.

“…….”

“…….”

다른 단원들은 물론이고, 의외로 고수현도 바짝 굳어 있었다.

막상 많은 카메라와 마주하니 긴장된 모양이었다.

그런 반면 태건은 좀 달랐다.

속으로 가느다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겸사겸사네.’

라텔을 보려고 이 많은 사람이 몰려온 건 결코 아니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형화재로 인해 찾아온 거였다.

때마침 특수소방단이 출동한 거였다.

그리고 우석진 정책과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홍보에 활용하려는 계획일 터였다.

태건의 예상이 꼭 맞았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무선마이크를 귀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현황판을 가리키며 말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4층부터 옥상까지, 총 84명의 요구조자들을 구조한 그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특수소방단, 콜사인 라텔을 소개합니다.

동시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오광휘 단장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걸 본 오광휘 단장이 뚜렷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동 차렷, 경례.”

“라텔!”

척.

모두 예행연습이라도 한 듯 똑같이 거수경례했다.

태건도 거수경례 중이었지만 속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인사했음 이제 퇴장합시다.’

다른 볼일이 늦어져 조급해했다.

그런 속마음도 몰라주고 셔터소리들이 울렸다.

찰칵, 찰칵.

사진기로 찍고, 동영상 촬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반해 반응은 열화와 같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짝짝짝.

“…….”

박수 정도로 환영을 대신했다.

이런 반응이 옳았다.

화재 현장 앞에서 떠들썩한 분위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거수경례 후 우석진 정책과장이 조금 더 추가 설명을 시작했다.

-특수소방단 라텔의 창단 취지는…….

순전히 보도용 멘트들이었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보도 자료로 돌려도 될 내용이었다.

태건은 어느 순간 관심을 껐다.

‘세린 병원은 여기서 가깝지?’

아예 듣지 않고 딴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우석진 정책과장의 소개로 끝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이어서 김을영 소방차장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우석준 정책과장의 호명에 김을영 소방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으흠!”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그 소리에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가 또 있어?’

빠직!

결국 인내심이 끊어져 버렸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서 잠시 집중이 흐트러졌다.

기회를 보고 있던 태건의 눈빛이 일순간 빛났다.

‘지금이다.’

스윽.

조용히 특수소방단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그 아버지와 아들, 지금 세린 병원에 있답니다.”

쫑긋.

굳어 있던 모두의 귀가 동시에 활짝 열렸다.

견고하던 시선들이 순식간에 흔들렸다.

‘세린병원?’

‘아까 그렇게 보낸 게 역시 마음에 걸려.’

생각들이 많아져 갔다.

라텔에 있어 중요한 건 이런 소개 자리가 아니었다.

더 까놓고 말하면?

창단 승인 여부조차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우리는 라텔이다.

-최후의 한 사람까지 보듬기 위해 존재한다.

그 공통된 마음이 강하게 자리해 있었다.

화재 현장은 분명 상황 종료됐다.

그러나.

‘우린 아직 아니야.’

슥슥.

“…….”

오가는 시선에 똑같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고수현도 이 순간은 예외인 모양이었다.

태건이 바로 발언을 할까 했다.

‘아니지, 아니야.’

엄연히 공식적인 자리였다.

무턱대고 나서는 건 누가 봐도 좋지 않을 터였다.

아무리 막 나가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말하면?

이 자리가 끝난 후로 미루란 소리만 들려올 터였다.

그런 감정싸움을 또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아하.’

괜찮은 생각이 떠오른 태건은 한쪽 입꼬리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꼭 필요한 인물들이 바로 앞에 있었다.

오광휘 단장, 그리고 김을영 소방차장이었다.

스윽.

태건은 슬쩍 오공휘 단장이 있는 앞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단장님이 차장님께 허락받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느, 이 자스, 나 여머이냐.(너, 이 자식. 나 엿먹이냐.)”

“그게 아니라…….”

속닥속닥.

태건은 얼른 풀어서 재차 설명했다.

“흐으으음.”

이내 오광휘 단장의 굳은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태건도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꿋꿋.

두 다리 묵직하게 서서 시치미를 뗐다.

반면, 오광휘 단장은 비장한 눈빛으로 김을영 소방차장에게 걸어갔다.

저벅저벅.

김을영 소방차장은 마이크 작동법 숙지가 한창이었다.

바로 다가간 오광휘 단장이 입을 열었다.

“차장님 외람되지만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오 단장. 지금 뭐하는 거야. 자리로 돌아가 대기해.”

우석진 정책과장은 돌발 상황에 멈칫하며 얼른 뒤로 밀어내려 했다.

스윽.

그때 김을영 소방차장이 손을 들어 막았다.

“할 말이 있다잖아. 그래, 뭔가.”

“사실, 그게…….”

속닥속닥.

오광휘 단장은 김을영 소방차장의 귀에 바짝 다가가 손으로 가려가며 귓속말을 했다.

태건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 중이었다.

그래서 옆에서 훤히 지켜보는 우석진 정책과장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

표정에 궁금증이 가득 묻어 나왔다.

같은 시각.

모두가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자신이 조언한 부분이라 더 유심히 지켜봤다.

그 대상은 역시나 김을영 소방차장이었다.

‘비슷한 반응이면 실망할 거 같은데.’

우석진 정책과장과 비교한 읊조림이었다.

지금 그는 엿듣지도 못하고 궁금해 죽겠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고체계를 싹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찌릿.

이쪽을 강하게 노려봤다.

정확히 태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또 너냐.’

딱 그 눈빛이었다.

“…….”

태건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끙.”

결국 우석진 정책과장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해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남몰래 슬쩍 한쪽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후후. 궁금하겠지.’

중얼거림 속에 조금 즐기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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