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화
“단장님, 저는 다 이해합니다. 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말부터 좀 들어봐.”
“이해한다니까요.”
“네 멋대로 이해하지 말고 들어. 짜샤. 그게 아니라…….”
오광휘 단장이 설명하려는 찰나 김지수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와, 서자니 뭐니 하는 건 책에서만 봤는데, 요즘도 그런 게 있나요?”
“내 말 좀 들어!”
“네!”
“대답하지 말고 들으라고!”
“네!”
김지수의 해맑은 대답은 일방통행이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자 태건이 뒤에서 스산한 기운을 짙게 뿌렸다.
“단, 장, 님.”
“아니, 있어 봐. 내가 설명을…….”
“괜찮습니다.”
“아, 좀 들어보라고!”
“네!”
“미촤버리겠네!”
오광휘 단장은 가운데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던 중 태건이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흩트렸다.
짝.
“자, 그만하고 운동하자.”
그 한마디에 노주민과 김지수는 곧장 몸을 돌렸다.
“움직입시다!”
“아자!”
그리고 바로 운동기구로 다가가 운동을 시작했다.
오광휘 단장은 숨이 턱턱 막히는 압박감이 일순간 사라지자 허탈해 했다.
“뭐야……. 이 자식들, 감히 단장을 가지고 놀아!”
이제야 눈치 챈 오광휘 단장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잠시 후.
황대산까지 복귀해 모두가 운동에 매진했다.
끼릭, 덜컹.
“끄으응!”
“헙, 헙!”
장난칠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체력단련장이 타오를 정도로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뚝, 뚝.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갔다.
지치고 힘들수록 눈빛은 강렬하고 날카롭게 살아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점신시간이 됐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낸 라텔도 식당에 도착했다.
척.
식판을 들고 배식줄 뒤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인사 못한 행정대원들에게 가볍게 인사도 했다.
“……네.”
그런데 태건에겐 뭔가 냉랭함이 풍겨왔다.
오광휘 단장과 다른 단원들은 행정대원들과 살갑게 대화 중이었다.
유독 자신만 조용하자 태건이 갸웃거렸다.
‘뭐지?’
그냥 기우라고 생각했다.
이내 배식대에 도착했다.
매끼 고생해주시는 이모님들과 살가운 인사도 잊지 않았다.
“이모님 안녕하세요.”
“…….”
툭.
차가운 시선과 함께 밥주걱이 다녀갔다.
그런데 밥의 양을 본 태건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밥알의 수를 샐 수 있을 정도로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었다.
“저기, 이모님?”
“다음.”
“양이, 이거 양이…….”
“뒤에 기다리잖아요. 다음!”
찌릿!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태건은 어쩔 수 없이 식판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 다음 배식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배식을 마친 태건의 식판은 썰렁하기만 했다.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눈을 끔뻑거리며 물어볼 정도였다.
“이건 이제 먹을 거냐, 다 먹은 거냐?”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는 걸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지.”
스윽.
오광휘 단장은 너무도 풍성한 식판을 들고 먼저 앉을 자리로 떠나갔다.
태건이 어정쩡하게 서 있을 때였다.
꼬르륵.
열심히 운동해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더 서러웠다.
그때 유미라 행정대원이 지나가다 멈칫하더니 한 마디 했다.
“부단장님, 세리가 훌륭한 개라면서요. 실망이에요!”
휙!
난데없이 한 소리 쏘아붙이고 멀어져갔다.
태건은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세리가 왜? 아니, 잠깐만…….”
오늘 자신에게만 차가운 모두의 시선이 세리와 무관하지 않은 듯 했다.
휙.
태건은 바로 뒷문으로 나갔다.
식당 뒤에는 구조견들의 식사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식당 이모들과 영양사가 머리를 맞대고 따로 준비해주는 습식사료를 먹는 공간이다.
당연히 구조견들도 식사시간이었다.
세리도 함께 먹을 터였다.
역시 세 마리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크르릉!
세리가 이순이와 삼식이를 향해 낮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끼잉,
-낑낑.
이순이와 삼식이는 눈치를 보며 다가가지 못하고 주위만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런데 모습이 엉망이었다.
목과 관절들에 특히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세리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태건은 그 모습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래?”
의아해하며 세리에게 다가갔다.
-멍.
세리는 태건을 보자 짖는 소리부터 바뀌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사료그릇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태건이 세리를 가볍게 밀어내며 달랬다.
“다 같이 밥 먹어야지. 세리야, 비켜.”
스윽.
그런데 그때였다.
-크릉.
세리가 처음으로 태건에게 낮은 울음소리를 냈다.
“음? 세리야.”
멈칫한 태건이 다시 불렀다.
그러자 세리는 언제 그랬냔 듯이 다시 원래대로 가볍게 짖었다.
-멍.
역시 태건은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세리가 그럴 리가 있나. 자자, 이리 나와.”
스윽.
태건이 다시 세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또 세리는 표정이 사납게 변하며 이를 들썩였다.
-크르르릉.
정말 세리가 낸 소리가 맞았다.
태건은 당혹스러워 눈을 똥그랗게 떴다.
“세리야. 나야. 나.”
-멍.
다시 또 밝게 짖었다.
그 이중적인 태도에 태건은 순간 헷갈렸다.
“너 세리 맞지? 나 누군지 알지?”
스윽.
태건은 경계하며 슬쩍 손등을 주둥이 쪽으로 내밀어 봤다.
-할짝!
세리는 너무 당연한 듯이 익숙한 애교를 선보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사료그릇은 철저하게 사수하고 있었다.
“얘 뭐지?”
태건이 갸웃거릴 때였다.
식당 이모 한 분이 뒤따라 나왔는지 퉁명하게 한 소리 했다.
“아주 뺑덕어멈이야. 아침부터 거기서 꼼짝도 안 하고 애들 밥도 못 먹게 하고 말이야.”
“아침부터요?”
“그래. 얼마나 성질이 고약한지 애들이랑 한참 싸우더니. 그 뒤로 저렇게 밥그릇을 뺏고 지키고 있는 거 있지. 아주 못된 것!”
식당 이모는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살벌하게 나무랐다.
그러나 태건은 그 말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야산에서 갈비뼈가 앙상할 때까지 젖 먹였던 애가 이제 와서?’
새끼를 위해 모든 걸 내어준 세리다.
그 모정을 직접 목격한 태건이었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그때 식당 이모가 추가 제보를 해줬다.
“밥만 못 먹게 하는 게 아니야. 물도 못 먹게 하고, 대원들이 주는 간식도 다 뺏어서 뒤에 숨겨놨어.”
“뒤에요?”
힐끔.
태건은 세리의 등 뒤를 바라봤다.
정말 물그릇이 있고, 그 주변에 상당한 양의 간식이 쌓여 있었다.
“…….”
태건은 말없이 세리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스윽.
세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이순이와 삼식이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닥!
-으르릉, 컹컹컹!
-깨개갱, 깽깽!
후다닥!
이순이와 삼식이는 놀라 산으로 냅다 줄행랑 쳤다.
세리는 끝까지 쫓지 않고 바라만 봤다.
뒤에서 식당 이모의 분노가 폭발해 세리에게로 향했다.
“어이고, 저거저거. 결국 지 새끼들 내쫓았어. 여기 아주 눌러 살려고 작정했네!”
“이모님, 제가 좀 지켜볼게요.”
“부단장, 직접 보고도 쟤 편을 들어요? 그러면 안 되지. 이순이하고 삼식이 편을 들어야지!”
“안 되겠으면 데려가겠습니다.”
태건은 그렇게 진정시켜 식당 이모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바닥에 자리했다.
털썩.
“흐음. 뭐지?”
팔짱까지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때 세리가 사뿐사뿐 걸어와 옆에 엎드렸다.
부비적.
-히잉.
쓰다듬어 달란 칭얼거림이 언제나처럼 똑같았다.
“너도 뭔가 생각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슥슥.
태건은 세리를 쓰다듬어주면서도 갸웃거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태건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세리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럴 땐 더 전문적인 행동 지식이 있는 인물의 조언이 필요했다.
바로 이지성을 떠올리고 전화했다.
“선배, 세리가…….”
태건은 빠르게 설명했다.
그런데 이지성에게서 들려오는 첫마디는 구박이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입원한 선배들 안부는 안 궁금하냐?”
“그런 거 챙기는 거 별로 안 좋아하시잖습니까.”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게 먼저 아니냐고.”
이지성이 뚱한 목소리로 툭툭 내뱉었다.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확실히 부드러워졌어.’
처음 봤을 때 이지성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이지성도 라텔에 조금씩 스며드는 모양이었다.
태건은 일부러 헛기침하며 안부를 물었다.
“어흠. 건강은 어떠십니까. 병원 식사는 입에 잘 맞으시고요?”
“……그냥 하던 대로 하자.”
“그러지 마시고. 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십니까. 드시고 싶은 건 없고요?”
태건이 집요하게 묻자 이지성이 결국 울컥했다.
“에이씨. 살 만해. 됐지. 끝.”
“그러지 마시고. 퇴원하시기 전에 과일바구니라도 들고 한 번 내려가서…….”
“닥쳐. 이 자식은 하여간 적당히를 몰라.”
“큭큭. 확실히 건강해지셨네요.”
태건은 다 놀렸는지 웃으며 화제를 마무리 지었다.
이지성도 더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은지 세리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아무튼 세리가 그러는 이유를 모르겠단 거 아냐.”
“네. 딱히 애들이 싫은 건 아닌 거 같은데 말입니다.”
“내 추측이 맞다면 걔는 사람 아니, 영물이야.”
이지성의 뜬금없는 말에 태건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영물이라니요?”
“어렸을 때 헤어진 애들이잖아. 그때 못한 교육을 지금 시키는 거 같아.”
“교육이라……. 어떤 교육 말입니까?”
태건은 뭔가 느낌이 오는 거 같지만 아직 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