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화
그에 대해 이지성은 간결하게 말해왔다.
“진돗개 특징 알잖아.”
“……아!”
모호한 느낌이 번뜩 선명해졌다.
이지성은 그 목소리로 충분히 답이 됐는지 나지막이 한 마디 덧붙였다.
“거기에 세리도 우리가 뭘 하는지 아는 거야. 그러니까 영물이지.”
“그러네요. 일단 끊어야겠네요. 마저 회복 잘하시고, 식사 거르지 마시고…….”
“야, 꺼져.”
뚝!
태건이 걱정하려하자 이지성이 매정하게 끊어버렸다.
휴대폰을 내린 태건이 싱긋 미소 지었다.
“선배도 참, 쑥스러워하시기는.”
의외로 놀리는 맛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태건은 우면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세리를 불렀다.
“세리야. 이거 치울게.”
촤악.
태건은 물그릇의 물부터 버렸다.
이어서 사료그릇과 간식들을 모두 들고 일어났다.
그런 태건을 관찰하던 세리가 이내 꼬리를 흔들었다.
살랑살랑.
-멍멍.
차자작!
그리고 찬바람으로 가득한 우면산으로 날쌔게 뛰어올라갔다.
태건은 그 모습으로 이지성의 추측이 확실해졌다.
“세리야. 넌 진짜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엄마 진돗개야.”
그렇게 읊조린 태건은 사료와 간식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식당 테이블에 태건과 영양사, 그리고 식당 이모님들이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냉랭함만이 감돌았다.
태건은 그 냉대에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그만큼 예뻐해 주시는 거니까.’
그러나 세리의 방식도 사랑이었다.
이제 그 오해를 풀어줄 때였다.
태건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세리의 행동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모시게 됐습니다.”
“……흥!”
역시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듣기 불편하시더라도 우선 제 말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해 봐요.”
“먼저 세리는 애들을 싫어하지도 않고, 여기 눌러앉을 생각도 없습니다.”
“…….”
몇몇 이모님들이 발끈했지만 다른 이모님들이 만류했다.
고요함이 이어지자 태건이 이어서 말했다.
“세리는 애완견과 들개, 양쪽의 삶을 모두 경험한 특별한 아이입니다.”
“…….”
“그리고 저희 손에 구조돼서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압니다.”
그 소리에 이모님들의 냉랭한 기세가 한풀 누그러졌다.
“그거야, 뭐. 우리도 얘기는 다 들었죠.”
“반대로 이순이와 삼식이는 잘 모릅니다.”
“훈련받잖아요.”
이모님들의 대답에 태건은 고개를 저었다.
“왜 해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그 아이들에겐 여기가 세상의 전부니까요.”
“아…….”
“세리는 그걸 가르쳐 주는 거 같습니다.”
태건의 말에 몇몇 이모님들이 반대 의견을 보였다.
“그건 좀 억지 아닌가요. 부단장님 추측이잖아요.”
“맞아요. 너무 확대 해석하는 거예요.”
태건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침에 쥐 소식 들으셨죠.”
“그건 사냥이잖아요. 개들한테는 놀이잖아요. 이거랑 상관없잖아요.”
“사냥은 냄새를 맡고 기억하고, 끝까지 쫓아야 하고, 또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태건이 단계적으로 설명했다.
이모님들 중엔 애견 혹은 애묘인들도 있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으음.”
“한 마디로 사냥 자체가 개들에겐 종합훈련인 거죠.”
“그건 결국 살생 아닌가요?”
누군가 묻자 태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먼저 배웠다면 문제가 됩니다. 우리 애들은 반대의 경우죠.”
“그래도…….”
“나중엔 살아있는 걸 데려올 겁니다. 세리라면 분명 그렇게 가르칠 겁니다.”
태건은 분명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모님들도 그 단호함에는 강하게 반발하지 못했다.
“부단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뭐……. 그래도 애들 밥도 못 먹게 하는 건 나쁜 거 아니에요?”
“솔직히 우리 애들, 살 많이 쪘잖습니까.”
“그건…….”
다들 말 못했다.
솔직히 하루에 먹는 양이 엄청났다.
산을 뛰어다니고, 고강도 훈련으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다.
태건은 모두를 둘러보며 양해를 부탁했다.
“좀 지켜봐 주십시오. 세리는 절대 애들한테 나쁜 걸 가르치거나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알았어요.”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태건은 깊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 든 태건이 불쌍한 얼굴로 부탁했다.
“이제 저 밥 좀 먹어도 될까요?”
“호호호.”
삭막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웃음꽃으로 만발했다.
그런데 태건은 진심이었다.
덜덜.
고강도 운동으로 손발까지 떨리는 중이었다.
그런 허기는 이내 풍성한 식사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우걱우걱, 쩝쩝.”
양손으로 숟가락을 놀려가며 식사하는 묘기까지 선보였다.
그날 오후.
특수소방단에 특별공지가 내려졌다.
-현 시간 부로 구조견들에게 간식 금지.
-적발시 전 대원에게 간식 선물 벌칙.
-특별한 사유로 간식 제공 요망시 부단장에게 상담.
위 내용으로 된 공문이 게시판에 붙었다.
물론 그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특수소방단 본부장 박규영.
본부장의 직인이 찍힌 공문이었다.
즉, 불만을 제기하려면 본부장에게 직접 항의를 해야 했다.
간식 제공을 이유로 삼기엔 터무니없는 항의였다.
그런 이유로 아무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만 그러했다.
“솔직히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애들이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세리란 어미개가 똑똑해 봐야 얼마나 똑똑하겠어.”
그런 불만들이 뒤에서 들려왔다.
이틀 후.
그 모든 뒷소리가 한 방에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이순이와 삼식이가 정말 살아있는 들쥐를 잡아온 거였다.
-찍, 찍찍.
한 마리는 이순이가 물고 있고, 또 한 마리는 삼식이가 발로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그 사이 얼마나 산을 헤집고 다녔는지 온몸이 근육질이 되어 있었다.
그걸 모든 행정단원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말도 안 돼.”
“진짜 살려왔어.”
“……와.”
보고도 믿지 못하고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이건 시사하는 바가 무척이나 컸다.
구조대상의 생사유무를 판단할 수 있단 의미였다.
태건이 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제 애들 밥 줘도 되지?”
할짝.
세리는 대답대신 태건의 손을 핥았다.
굳이 손을 핥은 건 너무도 확신한 의사표현이었다.
태건은 이내 습식사료와 물을 가져왔다.
척, 척.
내려놓자 구조견들은 쥐들을 내팽겨 치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찹찹.
그런 구조견들에게 세리가 다가갔다.
할짝, 할짝.
잘했단 듯이, 대견하단 듯이 얼굴을 핥아줬다.
마치 졸업식 같았다.
이제 새끼가 아니라 어엿한 성견으로 인정해주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래서 부단장이 그때 세리를 추천한 거였어. 충분히 그럴만 해.”
짝짝.
어느 틈에 나타난 박규영 본부장이 가볍게 박수치며 말했다.
세리를 향한 그의 두 눈에 부러움과 소유욕이 설핏 자리하고 있었다.
최신 소방헬기도 무덤덤하게 바라보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태건은 저절로 어깨가 펴졌다.
“저 세리가 저희 어머니 보물 1호입니다. 하하.”
한껏 자랑했다.
누구도 그런 태건을 팔불출이라고 놀리지 못했다.
“얄밉지만 이건 인정.”
“그때 세리를 내가 데려갔어야 했는데.”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이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태건을 흘겨봤다.
그날 오후.
세 마리의 진돗개가 나란히 습식사료를 먹었다.
그런데 유독 세리의 사료만 풍성했다.
닭고기가 그것도 단백질 가득한 가슴살이 몇 덩이가 더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국물도 한 대접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는 잘 먹어야 돼.”
“그럼그럼. 먹고 부족하면 더 먹어.”
식당 이모들이 세리의 곁을 떠날 줄 모르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한기 가득한 눈빛은 온데간데 없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사료를 다 먹은 이순이가 슬그머니 기웃거렸다.
스윽.
그걸 본 식당 이모가 얼른 옆으로 밀어냈다.
“어딜. 엄마 밥그릇에 주둥이 들이미는 불효녀가 되면 안 되지!”
“다 먹었으면 저리 가서 놀아!”
어느새 다른 식당 이모들도 이순이를 나무랐다.
-끼잉.
이순이는 서럽단 울음을 흘리며 터덜터덜 멀어져 갔다.
오죽하면 세리가 눈치를 보다 슬쩍 닭가슴살 한 덩어리를 입에 물고 뒤따르려 했다.
식당 이모들은 그런 행동조차 막았다.
“아니야. 쟤들은 그동안 많이 먹었어. 세리, 더 먹어.”
“자식새끼 키워봐야 다 소용없어. 많이 먹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지.”
이젠 그들이 누구보다 열혈팬이 되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세리만 챙겼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이순이와 삼식이는 펜스 뒤에서 부둥켜안고 울었단 목격담이 속속 전해져 오기도 했다.
* * *
다음날.
어느덧 휴가 마지막 날이 됐다.
체력단련실엔 에어컨을 틀어야할 정도로 후끈한 열기가 가득했다.
철컹, 철컹.
운동기구 소리가 끝없이 울렸다.
지난 3일 동안 밤낮으로 울린 소리였다.
그 노력만큼 단원들의 몸은 바위보다 단단하게 재정비되어 있었다.
흘린 구슬땀만큼 체력은 확실하게 충전되어 있었다.
이내 시간을 확인한 오광휘 단장이 순간 크게 목소리를 냈다.
“전원 멈춰!”
척.
“…….”
모두 운동을 멈추고 바라보자 오광휘 단장이 이어서 말했다.
“현 시간 11시 55분. 점심 식사 후. 13시까지 옥상 대기소에 집결. 출동준비 및 점검 실시한다. 이상.”
“알겠습니다!”
처억.
모두 한 톨의 미련 없이 운동기구에서 일어났다.
마음가짐부터 출동 준비 태세로 전환 중이었다.
시간이 흘러 13시 정각.
라텔 단원들은 옥상 대기소 앞에 집결했다.
옷부터 주황색 기동복을 갖춰 입었다.
다음날 00시까지 이제 12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에 대해 오광휘 단장이 다시 한 번 강조해 말했다.
“지금부터는 준출동 준비 태세가 아니다. 진출동 준비 태세란 마음으로 준비하고, 대기하도록. 알겠나!”
“네!”
“퇴원한 인원은 내일 오후에 출근 예정이니 우선 출동 점검부터 진행한다. 실시!”
“실시!”
처저적.
복창과 동시에 단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사이 출근한 기장들은 옥상에 주차된 헬기 1호기로 우선 몰려갔다.
“통신장비 테스트부터 진행합니다!”
“송수신테스트, 행정팀, 지원팀, 사육.”
“연료 게이지 확인, 고도계, 수평계…….”
기장들은 매뉴얼대로 각 센서와 게이지들 확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