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단원들은 출동장비를 점검 중이었다.
황대산과 노주민이 커다란 망치가방을 여러 개 펼쳐 놓고 체크하며 외쳤다.
“망치 하나!”
“망치, 확인!”
“정, 5개.”
“정, 어라, 4개! 여기 하나 부족!”
노주민이 외치자 저쪽에서 김지수가 찾아 던졌다.
“정 하나, 받아!”
“야, 이걸 던지냐!”
휘릭, 탁!
뾰족하게 날아오는 정을 노주민이 놀라 얼른 낚아챘다.
그렇게 장비를 확인하는 사이.
한쪽에선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더블 산소통에 산소를 채우고 있었다.
치이익!
“한 세트, 충전 완료!”
“이건 완료. 이건 빈 거!”
“충전 시작!”
척, 척.
태건은 충전하고, 오광휘 단장은 충전한 걸 표시하는 등.
각자 바쁘게 출동 준비에 열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 큼지막한 가방을 매고 옥상에 올라왔다.
“오호, 여긴가.”
척척, 치익.
다들 바쁘게 움직이느라 누군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 누군가는 느긋하게 태건의 근처로 다가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퉁.
익숙한 박자와 어긋난 묵직한 소리에 태건이 반사적으로 돌아봤다.
“무슨 소리, 어?”
돌아본 태건이 깜짝 놀랐다.
여기 없어야할 인물이 갑자기 나타난 탓이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성지훈이었다.
태건은 너무 독특한 성격이라 한눈에 알아보고 물었다.
“성 선생님이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도 라텔이잖아요.”
그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단장인 저도 모르게 언제 입단하셨습니까?”
“3기 충원하면 저는 무조건 뽑는 거 아니었습니까?”
“아닌데요.”
오광휘 단장이 부정했지만 성지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직 3기 충원 계획이 없다고 하셨죠. 그때까지 기다려야죠 뭐.”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아무튼 어제 전문의 시험 보느라 올라왔습니다. 물론 합격할 거 같고, 올라온 김에 얼굴도 보고 가려고 온 겁니다.”
성지훈이 자기 마음대로 대답하자 오광휘 단장이 뒷목을 붙잡았다.
턱.
“아, 부단장아. 우리 3기 입단 테스트에 무조건 인성검사 추가하자. 꼭!”
“인성검사요. 제가 시험문제 뽑아올게요. 어디 걸로 뽑아올까요?”
“어으윽. 아, 혈압이야.”
오광휘 단장은 말을 할수록 뒷목만 뻐근해져왔다.
그 말이 실수였다.
성지훈이 바로 내려놓은 가방을 열며 말했다.
“있어 봐요. 내가 혈압약을 챙겼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의사야. 왜!”
“쉿. 뇌압 올라갔을 때 소리치다 터지면 답 없습니다.”
성지훈의 대꾸에 오광휘 단장은 태건에게 도움을 청했다.
“태건아. 나 좀 살려줘.”
“조용히 좀 있으라니까. 살려준다니까.”
부스럭.
성지훈은 인상까지 쓰며 나무랐다.
어느새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정말 주사를 놓을 작정인 모양이었다.
보다 못한 태건이 나서서 그를 만류했다.
“장난은 그쯤하시고, 그건 다 뭡니까?”
“장난이라니. 혈압이 어떻게 장난입니까!”
성지훈이 대뜸 소리치자 이번엔 태건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지금 진짜 단장님이 혈압 올랐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왜 아닙니까. 저렇게 뒷목 잡고 부들부들 떠는데!”
“……팀 이름을 바꿔야 되나.”
라텔이라고 지어놓아서 그런지 어떻게 오는 사람마다 죄다 라텔 같았다.
태건은 이 상황이 장난이었다는 걸 설명할 기력도 없었다.
“단장님 혈압 재보면 알 거 아닙니까.”
“그럽시다. 그게 좋겠네!”
대번에 동의한 성지훈은 정말 간이혈압계를 챙겨 다가갔다.
오광휘 단장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 진짜 혈압…….”
“입 닫아요. 누가 혈압 잴 때 말을 합니까!”
“아니, 내가 지금.”
“조용히 하라고!”
“…….”
오광휘 단장은 입을 다물었다.
이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태건은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3기 뽑지 말까.”
진심이 반은 담긴 심정이었다.
보나마나 오광휘 단장의 혈압은 정상이었다.
성지훈에게 이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10분을 더 설명해야 했다.
“그러니까 혈압 오른단 말을 장난으로 했단 겁니까.”
“흔히들 그런 말을 하니까요.”
“이 싸람들, 큰일 날 사람들이네. 혈관 터지는 게 우스워요?”
성지훈은 눈에 불을 켜며 노발대발했다.
그런 외골수적인 모습에 노주민과 김지수가 조용히 속삭였다.
“우린 저 사람 앞에서 건강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
“응. 다른 걸로 하자.”
이상한 부분에서 합의에 이르는 두 사람도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별 거 아닌 걸로 우당탕한 후였다.
성지훈은 그래도 괜히 온 건 아닌지 퇴원한 단원들에 대해 말했다.
“우선 유중헌 환자 아니, 단원은 기관지 내…….”
줄줄줄.
한 명씩 증상과 치료 과정, 치료 경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걸 통째로 외운 듯이 술술 풀어 말했다.
그건 솔직히 놀라웠다.
‘괜히 의사는 아닌가 봐.’
태건도 내심 놀라울 정도였다.
어느 정도 의료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솔직히 엄청 전문적이진 않았다.
성지훈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외골수에 마이웨이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확실히 한 팀이 된다면 든든할 거 같았다.
그건 출동 준비 과정에서도 또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이게 뭡니까. 가정용 구급상자도 아니고, 이리 내요!”
척, 척척.
알아서 필요한 걸 챙기고 더해줬다.
그가 들고 온 커다란 가방 속에 보다 전문적인 의약품들이 가득했다.
그 의약품들은 확실히 구급상자의 퀄리티를 높여줬다.
이지성이 지인에게 받아왔다던 의약품보다 더 수준이 높았다.
반면 성지훈은 라텔의 구급상자 내용물에 놀랐다.
“이거 수술장갑, 봉합사……. 수술도 합니까?”
“찢어진 상처는 저희가 현장에서 간단하게 임시 봉합하기도 합니다.”
“수술은 아니고요?”
성지훈이 세세하게 묻자 태건은 감추지 않고 술술 답했다.
“아직 환경적으로 그렇게 갖춰지진 않았습니다.”
“갖춰지면 가능은 하시다?”
“어느 정도는요.”
태건의 대답에 성지훈이 묘한 호기심을 보였다.
“참 재밌는 말씀을 하시네.”
“서로 호기심 풀 자리로는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만.”
“그러려고 온 건 아니니까 이쯤하죠.”
성지훈이 순순히 물러났다.
앞서 혈압으로 난리쳤을 때와 너무도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따지고 들었다.
“나는 혈압으로 농담했다고 정색하던 분이, 왜 지금은 그냥 넘어갑니까!”
“이 자리에서 확인이 안 되니까요. 확인하려면 누구 하나 어딘가 부러지거나 찢어져야 될 텐데…….”
스윽.
성지훈이 말꼬리를 늘이며 바라봤다.
그 시선에 오광휘 단장은 섬뜩함을 느꼈는지 얼른 시선을 피했다.
“휘휘휘.”
“아무튼 확인이 불가능하니 다음으로 미뤄야죠.”
“드, 듣고 보니 너무 일리 있는 말씀이네요.”
오광휘 단장은 얼른 수긍하며 자신의 무사한 팔다리에 감사했다.
태건은 자신과 필적한 말주변을 가진 성지훈을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봤다.
‘확실히 외골수가 맞는데, 아예 경우가 없지는 않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 * *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두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출동 가방은 하나씩 완성이 되어갔고, 흐른 시간만큼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졌다.
아차 싶어 시간을 확인하자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었다.
띠리릭.
휴대폰이 울려 바라보자 강태영의 전화였다.
태건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너 어디냐. 왜 집에 없어?”
“옥상?”
태건이 반문하자 강태영이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됐고 비번이나 톡으로 찍어 보내. 엄마 좀 쉬시게. 세리는 네가 데리고 있지?”
“어딜 갔다 왔는데 목소리가 그래?”
“몰라. 내가 이틀은 화성 갔다가 이틀은 당진 다녀왔다고 내 입으로 말할 거 같아?”
강태영의 짜증 섞인 말에 태건이 갸웃거렸다.
“화성하고 당진은 왜?”
“너,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일단 좀 쉬어. 이따가 세리 데리고 갈게.”
태건은 대화해 봐야 피로감만 높아지자 대화를 포기했다.
그나저나 화성과 당진이란 지명들에 너무도 깊은 연관성이 느껴졌다.
뭐지?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라텔 1호기를 점검하던 정교현 기장이 다급히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인컴!”
휘리릭!
동시에 헬멧이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왔다.
오광휘 단장이 바로 낚아채 머리에 썼다.
그리고 헬멧의 통신장치로 누군가와 통신했다.
“음, 음음……. 음……. 알겠습니다.”
“…….”
모두가 집중하며 바라봤다.
이내 오광휘 단장이 진지한 얼굴로 둘러보며 말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연락이 왔어. 아침에 놀러나간 아이들 5명 행방이 묘연하다고 해.”
그 소리에 다들 미간을 찌푸렸다.
“아침이면…….”
“지금까지 대략 10시간 정도.”
“아무도 못 봤답니까?”
“음. 마지막으로 목격된 게 10시간 전에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이었대.”
오광휘 단장이 말하자 태건이 눈을 굴리다 쓰게 말했다.
“이 겨울 산에 먹을 게 없을 텐데. 그것도 10시간 동안 헤맨다는 게 이상한데…….”
“인제군 소속 소방, 경찰 인력 상당수가 6시간 가까이 추적 중이야.‘
“그런데 못 찾고 있단 겁니까?”
태건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계속 수색 범위를 넓히는 중인가 봐.”
“혹시 납치된 거 아니에요?”
휙!
노주민의 질문에 모두가 바라봤다.
오광휘 단장이 쓴 얼굴로 묵직하게 말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모양이야. 그 동네 애들이라 이렇게까지 오래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해.”
“경찰견이나 구조견 투입은요?”
“경찰견 4마리, 구조견 2마리 투입. 한 시간 전에.”
“그래도 못 찾았다라…….”
태건은 입안이 살짝 마르는 걸 느꼈다.
그때 정교현이 헬기를 바라보며 물어왔다.
“단장님, 드론이나 다른 장비는 투입됐답니까?”
“가동 중인 거 같은데, 워낙 범위가 넓어서 아직 소득이 없는 모양이야.”
“이거 뭐, 다 투입됐다면 뭐 어떡하자는 건지.”
“…….”
다들 막막한지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 바라보던 성지훈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낙상 같은 부상의 우려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단 겁니까?”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그런 경우엔 오히려 생존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겠죠.”
“겨울산, 장시간 노출, 부상……. 그래도, 아니, 그래도!”
성지훈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목에서 턱턱 막혀 했다.
가슴은 반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의학적 소견과 경험이 어렵다고 판단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이걸 고민하고 있는 겁니까. 일단 출발하고 생각하는 게 옳은 거 아닙니까?”
“저쪽에서 출동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수색 범위에 대한 조언을 바라고 있어. 아무래도 어렵다고 판단하는 거 같아.”
“엿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벌떡!
태건은 욕설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